회귀했음에도
모래아르마딜로의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여러 아이템이 드랍되었다.
일단 아르마딜로 코인이 무려 100개가 드랍되었다!
이건 시중에 흔하게 풀리는 물건이 아니라 엄청 고가일 텐데.
기분 좋군.
그 다음으로 확인한 아이템은 바로 이것이었다.
[모래아르마딜로의 갑옷]
- 레벨제한 : 77
- 착용제한 : 힘(10), 민첩(10), 마력(10), 집중력(10)
- 분류 : 상의
- 등급 : S+
- 특수효과 : 10분 동안 착용자가 받는 피해를 70% 감소합니다. 이 효과를 사용하는 동안 갑옷의 무게는 매우 무거워집니다. (쿨타임 1시간)
맙소사! 자라투스트라님!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아이템을 획득했다.
등급이 무려 S+.
동 레벨에 이것보다 좋은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특수효과도 사기다.
10분 동안 착용자가 받는 피해량 70% 감소.
이런 물건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내가 마법사라고 해도 이 특수효과만 발휘하면?
10분간 탱커 클래스로 둔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착용제한도 입이 떡 벌어진다.
모두 최소 능력치.
사실상 아무나 껴도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게도 가벼웠다.
특수효과를 발동할 때는 이것보단 훨씬 무거워진다고 하네.
도대체 이 아이템은 단점이 뭐야?
귀여운 아르마딜로를 눈 딱 감고 죽여야 한다는 것 말곤 없다.
‘마법사로서 착용할 수 있는 방어 아이템 중 최상급 아이템을 얻었네.’
기분 좋게 웃었다.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자라투스트라를 향해 두 손 모아 감사를 표했다.
자리를 이동했다.
원하는 것을 획득했으니 이제 퀘스트에 집중할 때다.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외눈박이 손바닥을 사냥했다.
우우우어어어어얽!
죽어라! 죽어!
신이 나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다녔다.
만약 누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미친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여긴 나 혼자라서 정말 다행이야.
‘에잉··· 다 채우진 못했네.’
모래아르마딜로에 정신이 팔려서 이미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그래서 한 번에 퀘스트를 끝내지 못했다.
총 53마리의 손바닥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레벨이 1 올랐다.
‘내일 또 들어와서 잡아야겠다.’
던전 바깥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갔다.
‘엥? 무슨 부재중 통화가 이렇게 많이 와 있지?’
휴대폰을 확인하니 그동안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전부 한 사람한테서 온 전화였다.
바로 패트리샤의 것이었다.
‘패트리샤가··· 웬일이지?’
조심스럽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송신음이 몇 번 들리지도 않았는데 패트리샤가 전화를 받았다.
“헤이! 현민!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우렁찬 목소리였다.
기뻐하는 패트리샤의 표정이 그려질 만큼 생생했다.
“그거야 던전에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야?”
“현민, 놀라지 마. 나 한국 왔어~”
뭐라고?
갑자기 네가 왜?
원래부터 지 마음대로인 건 알고 있지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냥 와보고 싶더라고. 네가 사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이랑 일본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네가 별 일이네.”
“그러니까 알아가려고 온 거 아니겠니. 나 지금 서울인데, 너는 어디야?”
“나주라고 하면 아나?”
“나···주···? 서울 근처야?”
“Nope. 한참 남쪽으로 와야 돼.”
“그래? 그럼 지금 그쪽으로 갈게.”
거리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는 말투로 패트리샤가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한국에 온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인데 여기까지 네가 오겠다고?
여긴 볼 것도 하나 없는데.
“여긴 왜 오니? 서울이 훨씬 재미난 동네니까 거기서 있어.”
“글쎄, 도쿄랑 별로 다를 것도 없고 재미없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그 동네까지 가는 게 훨씬 재밌을 것 같아.”
“휴··· 마음대로 해라. 주소 찍어줄 테니까, 알아서 찾아오든가.”
“OK.”
전화가 끊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후 3시에 입장해서 네 시간을 굴러다녔다.
이미 해는 지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참 별 꼴이야.
‘하긴 이런 즉흥성이 또 패트리샤의 매력이기도 했지.’
언제나 호쾌하고 언제나 즉흥적인 그녀의 성격.
그 성격이 회귀 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동시에 그것에 질려서 헤어진 것이기도 했고.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어 생각을 그만두었다.
숙소에 들어가 먼저 몸을 씻었다.
그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갔다.
“헤이! 현민!”
패트리샤가 나를 찾아온 시각은 밤 11시쯤이었다.
어디서 빌린 것인지 렌트카를 끌고 내가 있는 숙소 앞에 나타났다.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녁은 먹었니?”
“Nope, 아직.”
“그럼 배고프겠네.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먹어.”
“그것보다 우리 술 한 잔 어때?”
“술?”
“거기서 안주로 배 좀 채우면 될 것 같은데.”
“뭐··· 못할 건 없지.”
“가자, 그러면.”
패트리샤가 팔짱을 끼고 나를 이끌었다.
피곤해서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그녀가 워낙 흥을 내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술 안 마신 지 꽤 오래되기도 해서 마냥 싫은 건 아니었다.
숙소 근처에 화려한 간판이 붙은 촌스러운 술집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크으- 이게 한국 사람들이 먹는 술이야?”
패트리샤는 소주 한 잔을 들이키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은 경멸적인 눈빛으로 찰랑거리는 술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흐흐흐, 맛없지? 인생에 굴곡이 없는 사람은 소주의 참맛을 느낄 수 없지.”
난 으레 사람들이 인용하는 오글거리는 명언을 발사하며 보란 듯이 한 잔을 들이켰다.
“뭐야? 왜 이렇게 잘 마시는 거야.”
“마시다보면 맛있어져. 계속 먹어 봐.”
“그럼, 어디······.”
우리는 계속해서 술잔을 주고받았다.
패트리샤는 처음엔 소주 냄새를 못 견뎌하더니 이제는 물마시듯 들이붓고 있다.
나도 주량으로 치면 어디 가서 빠지질 않기 때문에 그녀의 페이스에 맞추었다.
우리는 점점 얼큰하게 취해갔다.
“너 지금 레벨은 몇이지?”
“나? 오늘 딱 71 찍었다.”
“뭐? 벌써 71이라고? 진짜야?”
“그래, 진짜야. 넌 레벨 몇인데?”
“······65.”
패트리샤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입을 비쭉 내밀었다.
타는 속을 달래려는지 소주 한 잔을 빠르게 들이켰다.
그래도 레벨 65면 성장세가 평균 이상임에 틀림없다.
벌써 도제 시련도 통과한 모양이다.
허나 나보다 성장이 느리다는 사실이 그녀의 신경을 거스른 것이다.
“하··· 이래서 템빨이 중요한 건데. 내가 저 스킬증폭구슬인가 뭐시긴가 하는 걸 가졌더라면···.”
“흐흐, 지금이라도 날 죽이고 빼앗아 가지 그러냐?”
“이미 늦었지 뭐. 너랑 나랑 레벨 차도 벌써 6렙이나 나는 걸.”
“뭐야, 시시하네. 나 죽이고 구슬 차지하려고 한국 온 거 아니었어?”
“······.”
패트리샤가 말이 없었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곧 그만 두고는 손을 저었다.
우리는 계속 술을 위장에다 부었다.
취기가 점점 올라왔다.
드디어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상이 핑핑 돌 지경이 되었다.
술을 더 이상 마실 수 없었다.
내일도 던전을 돌아야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패트리샤가 일부러 여기까지 왔으므로 술값은 내가 계산했다.
우리는 취기가 달아올라 서로를 보고 킥킥대면서 숙소로 향했다.
“네 방은 어디냐?”
“302호.”
302라고 적힌 낡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숙소 너무 후져. 한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야?”
“무슨 소리야? 여기 숙소만 좀 많이 후진 거야. 우리 집 보면 너도 생각이 완전 달라질 걸?”
“크크크크, 농담이야 농담.”
그녀는 자기 혼자 말을 뱉고 자기 혼자 깔깔대며 웃었다.
나도 취기가 한껏 올랐기에 그녀가 아무런 말만 뱉어도 실실 웃곤 했다.
“그럼 잘 자고.”
난 패트리샤가 침대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불을 끄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발걸음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패트리샤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난 이상한 전율과 함께 뒤를 돌아 패트리샤를 바라보았다.
“무슨···.”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등을 돌리자마자 패트리샤의 입술이 내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순간 등허리로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정수리까지 치솟은 전율은 내 머리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입술을 뗐다.
패트리샤가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입맛을 다시며 한 마디를 뱉었다.
“왜 자꾸 네게 끌리는 거지?”
그녀의 한 마디가 내게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히 나는 회귀했지 않던가?
회귀한 만큼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와야 마땅했다.
나와 패트리샤의 관계는 일절 아무것도 아니어야만 했다.
나야 패트리샤의 기억이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패트리샤는 왜?
방금 그녀가 한 말은 내가 처음 패트리샤와 교제를 갖게 되었을 때.
그때 그녀가 했던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때도 술에 한껏 달아오른 채 그 말을 했더랬다.
그러나 시점 상으로 보면 그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회귀 전 이 시점엔 나와 패트리샤는 마주칠 수도 없었다.
난 한낱 비루한 암살자였고, 그녀는 스킬증폭구슬까지 얻은 저격수 최고 루키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확히 똑같은 말을 뱉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에까지 마음이 치닫는 것이었다.
“왜 네게 자꾸 끌리는 걸까.”
패트리샤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는 다시 내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손길이 나의 어깨를 더듬었다.
손길은 자연스럽게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취기가 만연한 상태여서 나는 더 이상 판단이란 걸 하기 힘들었다.
생각의 끈을 모두 놓아버렸다.
회귀 전 패트리샤가 이 말을 뱉었던 그날과 같이.
똑같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었다.
- 작가의말
검열 삭제된 장면이 있었습니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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