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야
털썩-
노랑머리 전사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너덜너덜해진 시체로부터 핏물이 새어나왔다.
나는 두 녀석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숨을 골랐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나보다 레벨이 높은 두 녀석과의 전투였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싸웠다.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만약 저들이 조금만 더 숙련된 헌터였다면 나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실제로 죽을 뻔했다.
민수 녀석의 쇄도를 반 박자 빨리 맞받아치지 않았다면 싸늘한 주검이 되는 건 저들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한숨을 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발퀴레의 위대한 사랑, 프레이야가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엇? 프레이야로부터의 메시지잖아?’
의외였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다니.
그가 이제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위대한 자는 자신과 계약을 맺은 헌터만 직접 지켜볼 수 있으니까.
아 그렇군.
심지현과 매일 다니니까 나를 발견하게 된 거네.
그가 가장 아끼는 헌터가 심지현이니까.
그렇다면 심지현을 사라지게 했던 것도 바로 프레이야였나?
말 되는군.
여기는 프레이야의 땅, 발퀴레니까.
[발퀴레의 위대한 사랑, 프레이야가 당신의 전투에 대해 평을 합니다. 이제껏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전투의 양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겠지.
나는 제8의 클래스 마법사니까.
[프레이야가 당신을 기이하게 여깁니다. 차림새는 분명히 주술사인데 주술사가 아닌 것 같다고 의심합니다.]
아··· 안 되는데?
하긴 프레이야가 주술사의 위대한 자니까.
내가 주술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단숨에 간파할 수 있겠지.
그래도 설마 내 정체를 눈치 챈 건 아니겠지?
[프레이야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합니다. 입을 가리며 고상하게 웃습니다.]
제발.
[프레이야가 당신은 분명히 마법사 클래스임에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자라투스트라와 계약을 맺은 자라고 확신합니다.]
아, 미친. 망했다.
프레이야가 나의 정체를 눈치 챘다.
좋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어그로가 끌리면 어떡하지?
만약에 그가 크로노스에게 나의 정체에 대해 말하기라도 한다면?
앞으로의 계획이 모두 어그러질지도 모른다.
아니 근데 어떻게 알았지?
공허의 사제는 분명히 아무도 자라투스트라가 계약을 맺는 길을 열어놓았는지 모른다고 그랬는데.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이마를 짚으며 난색을 표합니다. 역시 다른 이는 몰라도 프레이야를 속이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내 머릿속에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와 계약을 맺은 자라투스트라였다.
그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난처해하는 것 같다.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당신을 일갈합니다. 정체를 좀 더 제대로 숨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자라투스트라님.
당신의 취향을 거스르는 일을 했군요.
역시 그는 정체를 숨기는 일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프레이야가 자라투스트라의 반응을 보고 미소를 짓습니다. 자라투스트라에게 걱정 말라고 말합니다. 아무에게도 당신의 정체를 발설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자라투스트라가 프레이야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이제 한숨 돌리겠다며 땀을 닦습니다.]
흐음, 아무래도 둘이 좀 친한가?
자라투스트라의 취향을 프레이야도 알고 있는 걸 보면.
하긴 가지고 있는 능력의 계열도 비슷하니까 친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자라투스트라와 계약을 맺은 자라는 걸 알아냈나보군.
[프레이야가 그런데 단서를 붙입니다. 단 한 사람에게는 모든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자라투스트라가 프레이야의 말을 듣고 멈칫합니다. 그의 편애하는 버릇은 여전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단 한 사람··· 설마?
[프레이야가 본인의 딸과도 같은 심지현에게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어야겠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를 기만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여기서도 그가 얼마나 심지현을 아끼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심지현에게 모든 진심을 다해 대해주고 싶은 것이다.
언젠간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알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숨을 푹 쉬었다.
[프레이야가 당신에게 이제 심지현을 당신의 곁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합니다. 심지현을 위해 싸워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들렸다.
심지현은 그가 구해준 것이 맞았다.
심지현이 쇄도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심지현을 쏙 빼간 것이다.
이곳 땅이 발퀴레다보니 그 정도 개입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테지.
프레이야로부터의 교신이 끝나자마자 내 눈 앞에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빛들은 형상을 조직했다.
잠시 후, 심지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현 씨.”
“현민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그는 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현민 씨, 주술사 아니었어요?”
“······.”
할 말이 없었다.
이제 내 정체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프레이야로부터 모든 정보를 알게 되었을 터이다.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 맞아요. 저 주술사 아니에요. 마법삽니다.”
“아니 어떻게··· 마법사라는 클래스가 따로 있었던 거예요?”
“그렇죠. 숨겨진 제8의 위대한 자가 있었어요. 그로부터 계약을 받은 거고요.”
“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저는 당연히 현민 씨가 저랑 같은 주술사인 줄 알았는데···. 저는 현민 씨 말 다 믿었단 말이에요. 정말 감쪽같이 속았네요.”
“죄송해요. 어차피 말해도 믿을 수 없으실 거라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어요.”
“뭐, 괜찮아요. 저도 현민 씨 마음 이해해요. 어느 누가 현민 씨의 클래스를 마법사라고 믿겠어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뭐를요?”
“제8의 위대한 자가 있다는 사실이요. 공허의 사제로부터도 들은 적 없는 말인데.”
“아 그게···.”
나는 말을 이으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래, 마법사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까지는 도저히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말이 되는 일이여야 말이지.
마법사가 되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납득시킬 방법도 있었다.
내가 가진 스킬들이 주술사치고는 지나치게 강력했으니까.
그런데 회귀는 정말 이해시킬 방법이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미친 놈 취급하겠지.
거기에다 크로노스가 야욕을 품고 있다는 말까지 더한다면···.
정말 미친놈처럼 생각할 것이다.
이 세계의 어느 누구도 위대한 자의 자비를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말을 말아야겠다.’
나는 결국 설명을 포기했다.
“현민 씨, 왜 그러고 있어요? 말 좀 해봐요.”
심지현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으, 어쩌지.
어떻게 둘러대면 좋지.
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을 어떻게 받아치면 좋을까.
우우어어어어어어!!
그때 멀리서 순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저거다.
마침 잘됐다.
“엇! 근데 지금 순록 떼거리가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 같은데요? 방금 소리 들었죠?”
“네··· 들었어요.”
“전투 준비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게 버프 걸어주세요.”
그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말없이 정신을 집중했다.
다행이다.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어.
흐흐흐, 순록들아 고맙다.
우우어어어어!!
어마어마한 양의 양 갈래 뿔 순록들이 몰려왔다.
순록들아, 고마웠다.
이제는 곱게 죽어주렴.
내 경험치가 되어라!
마법 구체가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우우어어어어어!
그렇게 학살의 현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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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오오오오···
오크 녀석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레벨업 메시지가 떠올랐다. 드디어! 드디어 레벨 30을 찍었다!
[이현민]
- 레벨 : 30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1
- 존재 등급 : 생도
- 마나 : 2000/2000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68+20), 집중력(45+25)
그리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나서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 여기까지 왔다.
마법 구체와 마력 방어는 5레벨을 찍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30의 마나를 잡아먹었다.
마나 호흡 역시 5레벨을 찍었다.
1분에 7의 마나를 회복할 수 있었다.
“레벨업 축하해요, 현민 씨.”
내 옆에서 웃고 있는 심지현의 성장도 나 못지않다.
그의 레벨은 현재 20.
“고마워요. 덕분에 여기까지 빠르게 왔네요.”
심지현을 보고 생긋 웃어주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메시지들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당신에게 때가 왔다고 말합니다. 당신에게 서클 진급의 기회를 부여합니다.]
[서클 진급을 하면 더 강력한 스킬들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2서클로 진급을 하면 2서클 스킬에 대한 스킬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레벨 30.
레벨 30이 바로 2서클 진급의 시험을 칠 수 있는 조건이었구나!
하긴 이제 한 단계 상승할 때가 되긴 했지.
마력 방어랑 마나 호흡은 5레벨이 만렙인데 이미 5레벨을 찍었으니.
마침 잘 됐다.
흐흐,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무엇을 하면 됩니까, 자라투스트라님.
아직까지도 내 말은 못 듣겠지요.
소통이 안 되니 답답하긴 하다.
일방적으로 말을 듣기만 해야 하니까.
서클도 서클이지만 얼른 존재 등급이 올랐으면 좋겠다.
생도에서 도제로만 올라가도 자라투스트라에게 말을 걸 수 있는데.
그때가 되면 나는 한 번 말해볼 생각이다.
크로노스와 회귀에 대해서···.
[서클 진급 시험을 치르겠습니까?]
마지막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엇을 망설이겠어?
당연히 yes지.
[서클 진급 시험을 치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시험의 내용은 ‘퀘스트창’을 확인하십시오.]
나는 시스템을 확인했다.
상태창과 스킬창 말고도 퀘스트창이 활성화되어 있다.
퀘스트창에 들어가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2서클 진급 시험]
- 난이도 : A
- 내용 : ‘부산시 사하구 제7던전’에서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세 개의 마법구슬을 획득하라. 오직 혼자의 힘으로만 해내야 한다.
- 보상 : 2서클로 진급
흐음, 물건을 모으는 미션이군.
물건 모으는 것 정도야 그렇게 어렵진 않겠지?
좋다.
“현민 씨, 뭐에요? 좋은 일 있어요? 왜 혼자서 그렇게 싱글벙글하고 있어요?”
심지현이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아, 너무 혼자서 좋아했구먼.
“아, 지현 씨. 마법사 클래스에는 서클 개념이 있다는 거 말씀드린 적 있었나요?”
“네, 들은 적 있어요.”
“방금 막 그 서클을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헐! 진짜요? 축하해요. 정말 잘 됐네요!”
심지현이 나의 경사를 축복해주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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