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대학살
‘순간이동.’
내가 가장 먼저 사용한 스킬은 바로 순간이동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 얻은 스킬을 발동했다.
바로 환술이다.
막 얻었기 때문인지 이미 2회의 사용량이 충전되어 있었다.
내가 순간이동을 했던 자리에 나의 환영이 생겼다.
심지현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와 환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난 재차 순간이동을 사용했고.
나의 환영이 하나 더 생겨났다.
총 세 명의 이현민이 라르고 드래곤 앞에 선 것이다.
나락에서 고개만 배꼼 내밀고 있던 녀석은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아이스 브레스.’
그 상태에서 나는 아이스 브레스를 사용했다.
모든 다른 이현민에게도 아이스 브레스 스킬을 사용하라고 명령했다.
총 세 명의 스태프에서 아이스 브레스가 번져나갔다.
2배 정도는 강력해진 얼음장 같은 바람이 라르고 드래곤을 향해 몰아쳤다.
구어어어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녀석의 몸이 굳어갔다.
눈 깜짝할 새에 동결 상태가 되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사용한 스킬은 바로 번개광선이었다.
콰아아앙-
공기를 뚫고 번개가 지나가면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세 방향에서 뻗어 나온 광선은 모두 한 군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라르고 드래곤의 머리.
번개광선이 머리를 뚫고 지나갔고 순간적으로 막대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한 번 더.’
이미 비실대고 있는 녀석이었기에 굳이 다른 두 명의 환영에게 스킬 명령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 혼자만 번개광선을 쏘았다.
콰아아앙-
구어어어···
번개는 정확히 드래곤의 머리를 관통하여 지나갔다.
동시에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이제는 레벨 차가 많이 좁혀졌다.
10레벨 던전에 들어가도 마땅할 만한 레벨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 마리를 잡아도 1레벨 업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쉽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새로 얻은 스킬을 활용했을 때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라르고 드래곤 한 마리를 쓰러뜨렸다.
지이이잉-
덩굴나락의 지속시간이 종료되었다.
지형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시체들이 떠올랐다.
새로운 라르고 드래곤 한 마리가 던전에서 빠져나왔다.
길목에 시체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여기까지 걸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이거 이제는 던전에서 나오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답답한 걸?’
처음에 나는 놈들이 덩치가 너무 커서 빠져나오는데 오래 걸리는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감당 못할 양이 쏟아지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냥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나니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훨씬 더 많은 드래곤들이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이제는 나락도 별로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는 족족 그냥 조져버리면 될 것 같다.
나락에 빠질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으리라.
난 놈을 향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어느덧 5분이 지났기에 두 명의 환영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구어어어-!
던전 입구 근처까지 걸어갔다.
녀석의 거대한 덩치가 보다 생생하게 보였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환술과 함께 환영 한 마리가 생겨났다.
5분마다 한 명의 소환 가능한 환영이 충전된다.
그래서 지금 환술로는 환영 한 마리밖에 소환할 수가 없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아까보다 화력은 좀 줄어들겠지만.
치이이익-
사아아아-
나는 아이스 브레스, 환영은 독 구름을 사용했다.
초록색 구름과 은빛 구름이 뒤섞여 뭉게뭉게 피어났다.
라르고 드래곤은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중독 상태에 들어갔다.
‘화염지옥.’
이번에 난 화염지옥을 써보기로 했다.
라르고 드래곤의 두 앞발을 가로질러 거대한 화염이 솟구쳤다.
화염지옥은 지속되는 동안 화염에 맞는 상대방에게 폭발을 일으킨다.
그런데 놈은 동결상태로 화염 위에 서 있었다.
그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
그렇다.
녀석의 앞발 곳곳에서 주기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지속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곧 다리가 초전박살이 나서 놈은 중심을 잃고 무너졌다.
‘번개광선.’
마무리로 나와 환영이 동시에 광선을 날렸다.
지직거리는 번개가 대가리를 관통했고 곧바로 녀석은 쓰러졌다.
‘좋아. 다음 녀석 나와라.’
나는 다른 녀석이 빠져나오길 기다렸다.
이내 녀석이 머리를 배꼼 내밀었다.
구어어어-
느릿느릿한 모양새로 울부짖었다.
빨리 좀 나와라.
이제는 답답해 돌아가시겠다.
‘잠깐만. 어차피 던전 폭발 시기에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녀석들은 던전 안에 있는 개체들이 아니잖아?’
그때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던전 폭발이 일어나면 진정될 때까지 던전 입구로부터 많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던전 입구에서 쏟아져 나온 녀석들이 던전에서 빠져나오는 놈들은 아니다.
세계 반대편에서 줄을 서서 빠져나오려고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녀석들은 모두 새로 생성되는 녀석들이다.
던전 안에 돌아다니는 몬스터와는 전연 별개이다.
‘그러니까 머리만 배꼼 내놓을 때부터 녀석을 조져야겠다.’
줄을 서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몬스터가 생성되는 주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냥 한 녀석이 다 빠져나오면 뒤이어 바로 다른 녀석이 생성되는 식인 것이다.
‘번개광선.’
그래서 나는 녀석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머리만 쳐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번개광선을 발사했다.
콰아아앙-
나와 환영으로부터 동시에 광선이 뻗어나갔다.
빠른 속도로 쏘아진 번개는 녀석의 머리에 적중했다.
몇 번 더 광선을 발사했다.
구어어어-!!
고개가 반쯤 막 빠져나왔을 때.
녀석은 벌써 목숨을 잃었다.
바닥으로 픽 쓰러졌다.
던전 입구에는 라르고 드래곤의 목만 비쭉 나와 있었다.
‘시체는 곧 사라지겠지.’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3초를 막 세었을 때 라르고 드래곤의 시체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오로지 드래곤 코인 2개만 드랍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 세계와 던전 내부의 세계는 전연 별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일단 시체가 된 이상 어딘가에는 물리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두 세계에 속할 수는 없다.
경계선에 걸쳐 있는 시체는 사실 그 어떤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사라졌다.
완전히 빠져나온 라르고 드래곤이었다면 시체가 남았겠지만.
경계선에서 죽었기에 그렇지 못했다.
다행히도 아이템은 정상적으로 드랍되었다.
구어어어-!
곧바로 다른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3서클이 되면서 사냥의 효율이 급격히 좋아졌다.
그래서 난 이제 녀석이 빠져나오기도 전에 놈들을 처치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사냥이 아주 깔끔해지는 것이다.
이제까지 잡은 라르고 드래곤은 모두 처참하게 시체가 되어 들판에서 썩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니다.
시체는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고.
경험치와 아이템은 온전할 것이다.
게다가 완전히 빠져나오는 걸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리젠도 빨라질 것이다.
콰아아아앙-
나오자마자 번개광선부터 날려주었다.
라르고 드래곤의 신음소리가 벌판을 뒤흔들었다.
곧 녀석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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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어어어어어얽!!
렌토 드래곤이 괴상한 신음을 토해내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메시지들이 줄지어 들이쳤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보스 몬스터 렌토 드래곤이 사망하였습니다. 던전 폭발이 종료됩니다. 폭발 진정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추가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던전 폭발이 종료되었습니다. 던전 소멸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렌토 드래곤은 이곳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그 녀석의 목을 쳐버린 것이다.
렌토라는 이름에 걸맞게 녀석도 걸음이 굼뜬 놈이었다.
그러나 라르고 드래곤보다는 좀 빨랐다.
뭐··· 사실 상관없었다.
레벨 100밖에 안 되는 놈이었다.
스킬 몇 대를 정통으로 맞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내 레벨은 100이 넘었거든.
방금 전의 보너스 레벨업으로 인해 내 현재 레벨은 다음과 같았다.
[이현민]
- 레벨 : 110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3
- 존재 등급 : 도제
- 마나 : 1100/10000
- 능력치 : 힘(40), 민첩(40), 마력(302+50), 집중력(111+50)
휴··· 탈진해서 쓰러져버릴 것 같다.
난 너무나도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장시간의 사냥으로 워낙 혹사 받았기 때문에 내 마즈다 스태프 역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제는 제 기능을 다하기 힘들 것 같다.
사실 레벨 40 가량의 갭을 버텨내고 이제껏 사용한 게 신기하다.
레벨 차가 나면 아이템 내구도는 급격하게 떨어지니까···.
다카하시가 만든 물건이라 그나마 이 정도인 것 같다.
“하··· 이제 모든 게 다 끝났네요.”
심지현도 나와 마찬가지 상태였다.
그녀도 한숨을 푹 쉬며 내 옆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레벨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현재 정확히 101.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정말 힘들었다. 그쵸?”
“그러니까요. 던전에서 빠져나가면 일단 잠부터 자야할 것 같아요······.”
이런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사냥을 지속한 때문이다.
어제 오후 1시에 사냥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시각은 새벽 2시 반.
13시간도 넘게 사냥만 한 것이다!
내가 레벨 90대를 넘겼을 때.
그때부터 레벨 업 속도가 더뎌졌다.
98을 넘겼을 때부터는 레벨 차로 인한 경험치 보너스는 없었다.
물론 그만큼 사냥 속도가 빨라지긴 했다.
녀석들이 머리를 내밀자마자 스킬 한 방으로 즉사시켰으니까.
나중엔 1분에 4마리 꼴로 잡았다.
한 시간에 240마리를 넘게 잡았던 것이다.
나오면 조지고 나오면 조지고······.
그렇게 해서 110을 찍은 것이다.
중간에 피곤해서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야 있나.
내버려두고 자버리면 녀석들은 계속 쏟아질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곤을 무릅쓰고 던전 폭발을 종료시켜버린 것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하루 만에 레벨을 40 가까이 올렸으니까.
나 말고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하겠어.
회귀의 특권이자 마법사의 특권이며 심지현의 남자친구로서의 특권이었다.
“일단 다시 힘내서 던전 입구로 가보죠.”
“으으응··· 네···.”
던전이 진정되었으니 소멸될 것이다.
이대로 잠들었다간 큰일 난다.
난 피곤에 어리친 심지현을 깨우고 던전 입구로 향했다.
아이템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무슨 아이템인지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도 늦지 않으니까···.
쏟아지는 졸음을 무릅쓰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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