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3*
[의사소통] [교류] [개인]
<내용>
-같은 종이라도 살아온 환경에 따라 신호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그것들이 다양한 교류를 통해 통합됐을 것이다.
*성공 조건*
1. 최소 세 가지 이상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익혀야 한다.
2. 습득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서로 지식과 물건을 두 개 이상씩 교환해야 한다.
3. 상대에게 자신들의 의사소통 방식 증 한 가지 이상을 알려줘야 한다.
*실패 조건*
1. 일행이 전멸당할 경우.
*보상*
1. 이제까지 한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주의점*
1. 자기 자신을 알라.
회강은 메시지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띤다.
‘드디어 나도 이걸 하는구나.’
최초로 이걸 한 사람이 미국에서 유명한 진화 플레이어인데, 언어학자이기도 한 그는 이것을 확산 단계 이상 선택 후 성공할 경우, 말을 못 하는 장애인도 타인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것만 성공한다면 나도...’
현실에서 시작한 연습과 진화에서의 성공이 결합된다면, 숙청 후 남은 이사진들의 마지막 카드인 장애인의 꼬리표를 뗌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언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완전히 회복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회강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메인 미션 중 가장 어렵다고 불리는 데다가, 최고 난도를 수행하는 만큼, 신중하고 천천히 해야 한다.’
이 미션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일 난감한 경우가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사는 유인원이 많지 않고, 설사 만난다고 하더라도 공격적인 일행이라면 접근도 못 하고 도망쳐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습득하려면, 사전에 그것을 습득할 수 있는 관찰과 교감, 그리고 공감 능력 요소 단계가 높아야 했다.
추가로 그들과 거래할 만한 지식이나 물건이 있어야 하며, 싸움 능력도 수준급이어야 한다.
결국, 다양한 능력 지닌, 뛰어난 실력의 만능 플레이어거나,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이동을 시작한 일행들이나, 성공 가능성이 높은 미션이었다.
‘만약, 혜원이랑 어리숙한 발발이가 껴 있었다면 시작도 못 했겠지만...’
상점이 활성화되자마자, 회강은 바로 들어갔고, 거기서 그는 남혜원을 구원해 줄 물건을 찾게 된다.
“후후후.”
웃으면서 회강이 엄지를 움직였다.
-상점에서 [일행 탈퇴권]을 구매하셨습니다. [[업] 200일 차감.]
-다른 이에게 선물하려면 이마를 맞대고 넘기겠다는 선언을 마음속으로 하시면 됩니다.
-남혜원에게 [일행 탈퇴권]을 넘겼습니다.
회강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혜원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맺힌다.
‘이제 불안요소도 사라졌겠다. 달리면 되는 거다.’
그가 완전히 회복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던 중, 그의 귓가에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여긴 웬일이지.”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굳어진다.
‘최변인...’
그의 절친이자, 은인의 손자였고, 같이 성공가도를 달리다 배신한 사람이었다. 현재는 국민 사기꾼이라 불리는 중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웃고 떠들던 옛 추억이 떠오르자, 회강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미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야. 잊는 게 좋겠지’
“또, 딴생각에 빠진 모양이군. 초라한 내 꼴을 보러 온 거라면 이만 가겠-”
-자식 기일이 언젠지 알고 있나.-
그의 말에 몸을 돌리던 최변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조성미가 상상 임신을 한 거를-”
-진짜 말이야. 설마, 소양비와 배 속에 있었던 아기를 잊은 건 아니겠지.-
그의 메시지를 읽은 최변인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회강은 자신의 옆에 있는 오래된 공책 여러 개를 잡고 그 앞으로 밀었다.
-추가로 찾은 거다. 누가 권래나님 자식 아니랄까봐, 소양비도 진짜 소중한 일기장은 따로 보관해 놨더군.-
“... 나는 필요 없다. 그러니-”
-네가 죽인 게 아니라면 읽어라.-
크게 움찔한 최변인이 강회강을 노려봤다.
“내가... 으드득. 아무리 썩었어도 아이는 버리지 않는다. 게다가 밀친다는 건 정말로-”
으르렁거리는 그를 강회강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마주 보았다.
-알아.-
“음...”
-누구보다도 네가 버림받은 뒤 폭력적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와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내가 잘 알지. 난 너의 친구였으니까.-
쾅.
그가 양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놈은 내가 뭔 짓을 당해도 웃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계속 날 무시했다고!”
-정말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래!”
잠시, 소란에 다가오는 교도관에게 손을 뻗고 휘저은 회강이 메시지를 입력했다.
-그럼, 교무실에서 너와 같이 선생과 주먹다짐 한 건 뭐지? 너를 배신한 여친의 남자를 뭉개 버린 건 누구지? 너 대신 잘못을 뒤집어쓰고 할아버지에게 맞은 건 기억 안 나?-
그의 계속되는 메시지에 최변인은 아무 대답도 못 한다.
-내가 이따금씩 후회하는 게 뭔 줄 아냐. 김대식의 손을 잡고 너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너를 버린 아버지를 찾아갔어야 했다는 거다!-
“지. 지금 내 아버지라고 했냐?”
-그래, 너를 버리고 뛰쳐나가서 남을 죽인 뒤, 감옥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그 아버지 말하는 거다.-
그가 회강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 새끼 이야기를 왜 여기서 꺼내는-”
-곧, 무죄판결을 받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최변인.
“뭐?”
-아니 무조건 받을 거다. 내가 김산수에게서 그 소식을 듣고 알아봤는데, 무죄가 맞는 것 같다.-
털썩.
힘없이 자리에 앉은 그에게 회강에 메시지를 띄운다.
-너를 버린 게 아니라. 데리려오려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아버지의 연인이 비관 후 자살한 거였다. 승진에 눈에 먼 검사와 경찰이 사건 조작했고 그는 죄책감에 죄를 시인하고 무기징역을 받은 거라고 하더군.-
“그게... 사실...”
-이미 증거와 증인 모두 확보했고, 한 달 뒤에 재판이 있다. 면회도 이미 갔다 왔고, 그분과 찍은 사진도 소양비 일기장에 넣어놨으니 한번 봐라.-
“아... 그러면 날 버린 게 아니라...”
눈이 풀린 최변인의 모습에 회강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상태가 아닌 것 같군.’
회강은 양비의 일기장에 손을 올려놨다.
-소양비를 죽이지 않았다면 너는 이것을 볼 의무가 있어. 놓고 갈 테니 꼭 보고, 나중에 TS 화재 사건 날 있었던 모든 일을 내게 말해줘라. 혹은 그걸 기록해둔 게 있다면 어디다 숨겼는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아, 혹시 시계 아직도 가지고 있나?-
“시... 계?
그의 멍한 눈빛으로 회강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차고 있었던 시계. 그 시계 전에 영상 보니까 차고 있던데, 아직도 가지고 있나.-
”그거라면...“
늘어져 있던 최변인이 상체를 바로 세운다.
”너... 기억이 돌아온 거야?“
회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동안 외면하는 바람에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나? 라는 의심이 들어서, 이제 정면으로 극복해 보려고 한다. 내일 나를 건졌다고 말했던 곳도 가볼 거다.-
”그래... 네가 사라진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었지. 시계는... 내 시계진열대 제일 중앙에 있을 거다. 물론, 그 진열대가 남아 있다면-“
-네 집이랑 물건은 그대로 있다.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보관해 놓고 있으마.-
회강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본 최변인이 눈을 감는다.
”없애라... 나는 그곳으로 다시는 가지 않을 거다.“
말없이 그를 내려다본 회강의 입이 열렸다.
”그래. 이믄 간다.“
”그래...“
그렇게 둘의 만남은 조용히 끝났다.
그리고 같은 날 밤.
회강은 교도소에서 온 메일을 열어본다.
-나는 두려움에 양비를 구할 생각은커녕 도망치기에만 바빴다. 운 좋게 망할 식당 아래 커피숍 입구에서 술을 깨려고 물을 먹고 있어서 빠르게 아래로 뛰어 내려갈 수 있었지. 내려오자마자 멀어져서 너의 머리를 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대신, 커피숍 입구와 건물 입구에 설치된 CCTV 동영상은 가지고 있다. 혹시 김대식이 나를 너와 공범으로 몰까 두려워서, 그가 삭제하기 전에 몰래 복사해 놓은 건데 소양비에 대한 살인죄를 벗는 용도가 될 줄은 몰랐어.
그것의 위치는 우리가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 집에 이층 침대 천장에 있으니까 찾아봐라. 거기서 네가 원하는 답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안하다. 나중에 벌을 받고 나오면 용서를 빌겠다. 그때까지 괜한 오지랖 떨다가 죽지 마라.
”훗.“
”뭔데, 그렇게 웃어요.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뒤에서 들려온 이미소의 목소리에 회강은 급히 인터넷 창을 내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는 친구에게서 온 건데.-
”그래요? 혹시, 야동?“
-절대 아니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아니라니까!-
그들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양의가 다가왔다.
”아저씨. 진짜 야동 받았어요? 그럼 저도 같이-“
”안 돼!“
”난 대!“
두 사람이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자, 양의는 어깨를 움츠렸다.
”학교에서... 한번 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는데...“
”양의야!“
-어떤 선생이 그랬어! 누구야!-
”그건 아니고... 친구가...“
”그 친구랑 당장 헤어져!“
-맞아. 자고로 친구를 잘 사귀어야. 앞날에 먹구름이 덜 끼는 거다.-
그들을 지켜보던 남혜원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바보. 나중에 몰래 보면 되는 걸-“
”혜원아. 뭐라고?“
어느새 자신에게 집중된 세 명의 시선에, 남혜원이 입가를 씰룩였다.
”아하하. 제가 뭐라고 했나요? 저는 이만 가보겠-“
”앉아!“
-앉아라.-
혜원을 보며 양의가 입술만 움직여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을 본 혜원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양손을 치켜들었다.
”뭐! 바보라고!“
”아. 아니, 난-“
결국, 그 둘은 밤새도록 회강에게 시달리게 된다.
다음날.
노을이 지는 가운데, 회강은 고등학교 때까지 머물던 시골집 앞에서 서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십 년이 지나도록 관리하지 않아서, 집은 이곳저곳에 거미줄과 균열이 심하게 나 있었다.
딸깍. 끼이익.
문을 연 회강은 퀴퀴한 냄새가 밀려오자, 코를 막은 뒤, 걸어 들어갔다. 곳곳에 집 안으로 침범한 동물들이 남긴 흔적이 보이는 가운데, 그의 눈을 몽롱하게 만드는 물건들이 있었다.
‘저건 내가 만든 탁자고, 저건 최변인이 만든 의자. 이건 할아버지가 만든 선반에...’
과거를 추억하며 걸어가던 그는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끼릭. 끼릭.
그들이 자던 곳에 도착한 회강은 거미줄이 쳐진 문고리를 잡고 비틀었다.
‘여기는 그대로네.’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았을 뿐, 동물들의 흔적이 있는 일 층과 달리 거의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잠시 멈춰 선 채,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회강이 고개를 휘저었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야.’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온 그가 이층 침대로 걸어간다.
‘여기 위 천장에... 찾았다!’
미세하게 난 네모난 자국을 찾은 회강은 이층 침대를 밟고 왼손을 뻗는다.
툭.
생각보다 쉽게 비밀공간이 드러나고, 회강은 그 안에서 사람머리 크기의 통을 발견한다.
‘이건가.’
통 옆 부분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꺼낸 그가 아래로 내려다 놓고 뚜껑을 열었다.
딸깍.
통 안에 가득 담긴 하드디스크를 보고 회강은 눈을 번뜩였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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