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3*
개경.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합니다. 새로운 통일 한국의...”
현 대통령의 연설을 보고 있던 김산수가 입을 크게 벌린다.
“아함. 평양이랑 함경도 지역을 수복 못 했는데, 언제까지 저 말만 하고 돌아다닐 건지 모르겠습니다.”
-신의주까지 도시마다 들려서 연설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헉. 우리도 거기까지 가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남포까지만 가고, 서울로 돌아갈 겁니다.-
그의 메시지를 읽은 김산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입니다. 추워지기 전에 자식들이랑 놀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나저나 회강님은 서울로 돌아가면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저는 편학도와 함께 돌아다닐까 생각 중입니다.-
“학도랑요? 아, 가족들을 만날 때 같이 가실 생각이시군요. 그나저나, 그들이 도망가지 않을까요? 학도의 몸까지 보여줬는데, 변이체 됐다고 버린 이들이 과연 만나줄지...”
말을 흐리는 김산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회강님. 꼭 편학도를 가족과 만나게 해야겠습니까? 잘못하면 학도가 폭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저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예? 하지만, 회강님 그러다 사람이 죽으면-”
-버린 것까지는 이해합니다만, 살아 돌아온 자식을 다시 버린다면 그게 사람입니까?-
“하. 하지만-”
김산수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회강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대통령이 내려가서야 박수가 끝났고, 사람들이 회강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회강님. XX 데일리. 남성주 기사입니다.”
“저는 XX일보의...”
“회강!”
“강회강. 강회강!”
사람들과 경호원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레 바깥으로 밀려난 김산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틀린 말은 아닌데... 불안해서 안 따라 다닐 수 없게 만드시네. 후... 먼저 돌아가자...”
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천천히 회강에게서 멀어졌다.
남포시.
아직 홍수피해 복구가 되지 않아서, 임시 집무실에서 회강과 리실수등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보고 함흥시로 가달라는 겁니까?-
회강의 메시지에, 그의 앞에서 다리를 꼬고 있던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기 위성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함흥시에서 오 일 전부터 일본, 후쿠시마지역과 같은 안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가 건넨 화면을 본 회강의 얼굴은 굳어졌다.
-범위가 생각보다 크군요.-
“함흥시를 덮고 그 주변 십 킬로가 덮여있습니다.”
-여기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입니까?-
“예. 현상이 발견된 직전에 우리와의 연락이 끊어졌고, 여섯 영웅의 부하들도 가봤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눈앞에 남자의 말을 들은 회강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여섯 영웅이라. 하긴... 전쟁보단 나으니...’
-그래서 제가 필요한 거군요.-
“예. 후쿠시마처럼 꽃이 점령한 건 아닌가 의심돼서 확인하고 싶지만, 회강님과 비슷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해서 이렇게 부탁하게 됐습니다.”
“음... 대기업 팀들의 진화 단계 수준이 우리와 비등합니다. 그들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떠실지.”
그의 말에 눈앞에 사내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많은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 쪽에서-”
“마치 우리에게 제일 먼저 제안한 것처럼 말하더니, 다른 쪽에다 먼저 연락을 하셨군요. 김동수님.”
김산수의 날이 선 말에 김동수가 움찔했다.
“그게... 예의상 하는-”
상석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리실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남조선, 아니 한국 간부는 남을 대하는 자세가 원래 그렇게 불량한가?-
그의 말을 들은 김동수가 황급히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실수가 회강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이분은 우리의 자식들을 구해주신 영웅이다. 이분에게 함부로 한다는 건 우리 여섯 군부의 얼굴에 똥칠한다는 것과 같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군.-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리실수님.”
그에게 굽실거리는 김동수를 보며 회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잘못은 나에게도 했는데, 아무 말도 없군.’
회강은 몸을 일으켰다.
-리실수님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눈앞의 상대를 보니, 저희와는 진지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 회. 회강님-”
김동수가 같이 벌떡 일어났지만, 회강은 리실수와 악수를 하고 있었다.
-중재한다고는 했지만, 이리될 줄은 몰랐네, 사과하지.-
-아닙니다. 덕분엔 이들이 단순히 찔러보는 제안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 남포가 안정화 되면 부를 테니 꼭 오고. 물론, 옆에 있는 김산수도 같이 말이야.-
“고맙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빠르게 방을 나섰다.
허름한 창고 안이 보이는 가운데, 회강의 뒤로 김동수와 정부 관계자들이 뒤따라왔다.
“회강님, 다시 우리와 이야기를 해보시는-”
“남포까지 와서 일한 우리는 이제 쉬고 싶습니다.”
“아까 말은 실수를-”
“말뿐만 아니라, 행동도 크게 실수한 겁니다.”
“연배도 한참 어리고, 워낙 방송에서 많이 봐서-”
얼굴이 심하게 붉어진 김산수가 김동수에게 소리쳤다.
“이분은! 당신이 그렇게 하대할 분이 아닙니다. 한국 최고 용병대를 이끄는 수장이자, 수많은 국민을 구한 영웅입니다! 이분이 당신에게 존대한다고 해서, 당신이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의 말에 김동수를 비롯해 다른 정부 관료들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그들의 입이 열리려던 순간, 회강이 그들과 김산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하세요. 주변 이들에게 민폐입니다.-
회강이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걸 환기해주자, 김산수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잠시, 흥분했습니다.”
그에게 고개 숙인 김산수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출구 쪽으로 손짓했다.
-어서 호구들에게 가보세요. 저는 이들과 이야기를 한 후 뒤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회강님 이들과 이야기는-”
-편학도가 혼자 있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그를 혼자 두는 건 옳지 않아요. 혹여, 다른 이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김산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 걱정은 하지 마시고 가보세요.-
손까지 흔들어 그를 보내자마자, 말없이 그들을 보고 있던 김동수가 입을 열었다.
“수하가 말이 좀 험하군요.”
-휴식이 필요한데 쉬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에 보니, 김산수는 범죄 이력이 많던데, 훗날 큰 걸림돌이 될 텐데, 이번 기회에 버려야 편할 겁니다.”
-제게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럴 수 없습니다.-
회강의 대답에 김동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큼... 그건 회강님이 알아서 하시고, 이번 함흥시로 가는 건에 대해서-”
-이번엔 다른 분들에게 의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원들도 관악산 꽃을 경계하느라 바쁘고, 저 또한 서울로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일로 나라에서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이번에 도와주시면 훈장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일들을 우선 배정해-”
-죄송합니다. 이번엔 힘들겠습니다.-
회강의 메시지를 본 김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까 일은 제가 실수를 한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까 일 때문에 나라에 큰 위기를 외면하지-”
-관악산 꽃 괴물이 나타났을 때, 제 팀만 무료로 하고, 나머진 모두 정부에서 돈과 장비를 지급하셨더군요. 그것도 일차 경계선도 아니고 마지막 삼차 경계선을 선 이들까지 말이죠. 그 사실을 접한 대원들이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 사정을 잘-”
회강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담당이 아니라뇨. 모든 용병 팀 관리를 당신이 하는 걸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그의 말에 김동수가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여성이 회강에게 말했다.
“요청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챙겨줄 수-”
-제 사람을 조사했으면, 제가 이제까지 뭔 일을 했는지도 알 텐데, 저와 KS 간에 친분이 있는지 몰랐습니까? 요청하지 않았다? 그들도 정부쪽에 요청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음...”
-끝까지 거짓말이라니 실망입니다. 앞으로 당신들과 대화는 거부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보내주세요.-
그의 메시지에 정부 쪽 인사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김동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회강에게 들러붙었다.
“회강님 단순한 실수 때문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맞습니다. 조금 전 거짓말에 대해선 사죄할 테니, 맘 푸시고-”
뒤로 훌쩍 뛰어서 그들과 멀어진 회강.
-전, 안 한다면 안 합니다. 그럼, 이만.-
회강이 몸을 돌리고 출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김동수가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중국으로 끌려가고 싶으신 겁니까?”
그의 말에 우뚝 선 회강이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
-무슨 뜻이죠?-
비릿한 미소를 지은 김동수가 입을 벌렸다.
“저번 중국인들의 발표와 이번 통일에 관여한 회강님을 중국에선 무척이나 괘씸하게 여기고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핵을 떨어뜨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지요.”
그의 말에 회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중국이라...’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을 강조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이렇게 나오신다면 정부에선 공론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어찌 반응할까요? 당신을 지키라고 할까요. 아니면 희생을 요구할까요.”
“음...”
“답은 정해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김동수의 말에 회강은 부정하지 못했다.
[인간은 이기적이야.]
갑자기 들려온 환청에 회강의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입술을 깨물며 버틴 회강.
‘나도 알아. 하지만, 이제부턴 휘둘리지 않아.’
[인간은 이기적이라니까, 분명히 사람들은 널 버릴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
[그냥 함흥으로 가는 척만 해, 그러면 되잖아. 뭘 그리 어렵게 살아.]
‘지금 숙이면 계속되겠지. 그리고 그때는 내 사람들도 같이 휘말릴 거야.’
[뭐 어때, 네가 끌어주고 지켜주었잖아. 이번엔 그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그럴 거였음. 그들을 도와주지도 않았어.’
[그래서. 방법은 있어?]
‘없어.’
[멍청한 녀석. 그럼 고개 숙여! 힘이 모이고 너를 더 많은 이들이 따를 때까지!]
환청을 들은 회강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고맙다. 덕분에 깨달았어.’
[뭐? 뭐를?]
몸을 바로 세우는 회강.
‘인간처럼 살려면’
그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인간이 아닌 것들에겐’
우뚝 솟은 하나의 손가락을 본 사람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숙일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야.’
[야. 이 미친 호구야!]
‘그래 나 미쳤다. 어쩔래!’
회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 작가의말
오늘이 춘분이었네요.
어서 봄이 오길.그리고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이들도...우리 모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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