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그가 선택한 공격방법은 투창이었다.
언덕 위에서 날린 수십 개의 투창 공격에 적들은 쓰러진 시체 앞에서 웃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
손쉽게 적들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많은 인원을 쓰러뜨렸지만, 회강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죽어버렸군...’
적들이 주춤거리게 했지만, 끝내 거인을 구하진 못했다.
으드득.
회강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몇몇은 그의 번뜩이는 시선에 다리를 후들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체격이 우람한 놈들은 오히려 그에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옆에 꽂아놓은 투창을 잡아 던졌다.
그와 동시에 일렬로 언덕 위에서 늘어서 있던 다른 유인원들도 투창을 날렸다. 연달아 던지기 시작하면서, 올라오던 적들의 삼분지 일이 쓰러지자, 적들도 올라오는 것을 포기하고선 뒤로 물러난다.
“음...”
회강은 그들의 뒤에서 새롭게 나타난 무리를 보며, 얼굴은 일그러뜨렸다.
‘쓰러진 만큼 복구되었군. 거기다 추가되는 인원까지... 미션에 뜬 것보다 많은 숫자다.’
저들까지 합치면 이미 칠백은 넘는 수였다.
그러나 그들이 끝이 아니었다. 회강의 시야 끝자락에서 검은 그림자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까지 경험으로는 검은 그림자들의 정체는 같은 유인원들이 분명했다.
회강은 입술을 깨물었다.
‘투창도 이미 거의 다 소모됐는데...’
적들도 거인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부딪히면 필패임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후퇴하는 수밖에...’
회강은 상체 특히 목에 힘을 주고 입을 벌렸다.
“우아~~”
회강 전면에 위치한 나무는 물론 멀리 있던 적들도 흔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소리를 들은 일행들의 몸이 조금씩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회강은 적들에게 남은 투창을 날리고, 바로 옆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도 미쳐 다 던지지 못한 투창이 꽂혀있었는데, 회강이 오른손으로 그것을 잡고선 다시 적을 향해 날렸다.
그의 투창 공격을 적들이 모두 피했지만, 회강은 계속해서 남아있는 투창들을 상대에게 던지고 있었다.
짹짹. 짹짹.
뒤에서 들려온 새소리에, 회강은 잡고 있던 투창을 들고선 뒤로 몸을 날렸다.
“우가~~”
뒤에서 적들의 함성이 들려왔지만, 회강의 얼굴은 전보단 훨씬 나아져 있었다.
‘모두 준비를 마쳤군.’
그가 시간을 끄는 사이, 그의 일행들이 도망칠 준비를 끝낸 것이다.
회강이 순식간에 동굴 앞에 도착하고...
휘익휘익.
그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일행이 썰매나 스키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존재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왜 막아서는 건데.’
이들은 거인들에게 억압받다가 최근에 해방된 존재들로, 회강들과 협약을 한 일행이었다. 그들 대부분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눈빛과 행동에서 적대감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회강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손을 들어 올려서 무기를 든 일행들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다가가 손짓을 했다.
-어째서 막는 거지.-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다. 협약대로 물러나라.-
-언제부터 이곳이 당신들의 영역이었나, 내 기억으로는 이쪽 강변은 우리 영역이다.-
-어제부로 현실에서 넘겨받았다.-
‘현실에서? 내가 언제 이들에게 이쪽 땅을 주겠다고 한 적이 있나? 이들은 내가 강회강이란 걸 모를 텐데.’
회강이 고개를 꺄우뚱하는데, 상대편의 눈이 갑자기 커다래진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속 움직임을 본 회강이 몸을 뒤로 돌리며 양손을 뻗었다.
일본, 그리고 중국 수장과 눈이 마주친 회강, 그들의 눈동자가 떨리는 순간 회강이 거칠게 양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이필상을 비롯한 한국 일행들이 몸이 움직였다.
퍽퍽.
여러 타격음과 함께, 반항하려던 일본과 중국 무리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들을 막고 있던 유인원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회강은 기절한 일본 수장 대신 중국인 수장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끼!”
그에게 다시 달려든 수장이었지만,
퍽.
형편없이 뒤로 넘어져 버린 그였다. 회강은 발로 그의 가슴을 짓누른 채 손짓을 했다.
-어째서 배신을 했나.-
-아니다. 배신은 네가 했다.-
‘배신이라고’
회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배신한 적이 없다.-
-너는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남을 보호해줬다.-
-그러면 떠날 것이지, 왜 뒤통수를 쳤나.-
-우리가 일군 터전이다. 왜 우리가 떠나나. 수가 적은 너희들이 떠나라.-
-수가 적다고? 너희들이 더 적지 않나.-
그의 손짓에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지금은 우리가 많다.-
회강은 순간 움찔했다.
‘그래서 그들이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 거구나.’
조폭과 싸우면서 회강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삼중의 경계망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회강 일행은 많은 싸움에서 매복과 기습을 통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전과 달리 덩치가 제일 커서 세 번째 경계망의 경계를 선 거인이 당했으며, 제대로 된 대처도 못 하고 밀려오는 적들을 피해 이곳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적 중 은신이 뛰어난 이들 때문에 경계망이 뚫린 줄 알았는데...’
으드득.
모든 사정을 안 회강. 그의 앞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미션 변경*
*남쪽에서 나타난 불청객들*->*우리는 호구가 아니다. 그건 너나 해라.*
*우리는 호구가 아니다. 그건 너나 해라.*
<내용>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건 이미 당신에게 우리가 대가를 지급하면서 갚은 일이다. 우리에겐 가족들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있고, 이 넓은 대지는 오랜 기간 쓸 수 있는 풍족한 곳이다. 원래 당신에게 말하려 했지만, 자리를 오래 비우면서 말하지 못했지.
“우리는 호구가 아니다.”
그러니 더는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회강님의 밑에 있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의 수장이 회강님에게 제안을 합니다.
“내 밑으로 와라. 오면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
-회강님에게 묻겠습니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이래서 무작정 도와주면 안 되는 거다. 회강아... 그리고’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속으로 읊조린 그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손을 휘둘렀다.
퍽.
돌멩이가 중국 수장의 이마 정중앙에 박혔다.
놈의 사체로 걸어간 회강.
‘상대가 적이 되는 경우,’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진 놈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다시는 못 일어나게 밟아야 돼. 그래야...’
콱.
회강의 발이 그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회강의 시선이 부르르 떠는 외국인 무리에게 향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배신자뿐만 아니라, 너의 아군이 정신을 차리거든’
회강과 시선을 마주친 이필상 등이 눈동자를 아래로 깔았다.
그의 행동에 모두가 얼어붙어 있을 때, 회강은 일본 수장을 짓밟았다.
그리고 회강의 얼굴이 다른 일행들을 붙잡은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들을 바라보며 회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부분이 망설임 없이 손을 휘둘렀다.
퍽퍽퍽.
순식간에 제압된 자 중 반수가 죽어 나갔다.
죽지 않은 이들은 이필상이 붙잡은 사람들뿐이었다.
그가 다가서자, 남연희가 막아서지만, 회강의 손길에 힘없이 옆으로 나자빠졌다.
회강은 공포에 질린 유인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여인도.
회강에게 안겨 온 아이도.
서글피 우는 노인도.
절뚝거리며 그의 말을 잘 따랐던 청년도.
모두...
그가 휘두른 반달 돌칼에 힘없이 차가운 대지 위로 쓰러졌다.
*5*
“회강아.”
강둑에서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꺼낸 첫마디에 회강은 움찔했다.
“어째서 친구를 반병신 될 때까지 사람을 때린 거냐.”
“아시잖아요. 변인이의 여자 친구를 빼앗았어요. 어떻게 친구의 여자를...”
“후... 회강아...”
최백호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예...”
“변인이가 잘못해서 여자가 넘어간 거면-”
“제가 항상 옆에서 봤지만, 잘못한 적은 없었어요. 그 녀석은 자기 용돈을 전부 쏟아부을 정도로 그 애한테 잘해줬다고요.”
“욘석아. 네가 수련할 때 변인인 곁에 있었냐? 네가 똥 쌀 때는? 목욕할 때는?”
“안 봐도 척이죠. 녀석이 얼마나-”
퍽.
“악!”
뒤통수를 부여잡은 회강을 최백호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네가 뭐 관심법이라도 쓰는 거냐? 부처라도 되는 게야? 사람 마음과 행동은 저 강물과 같아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흐르는 법이야.”
“칫. 언제는 강물처럼 흐르라더니, 이번엔-”
퍽.
“악!”
“입 다물어라. 어디서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어.”
“할아버지도 최고령 어르신 말 자르시잖아요.”
그의 말에 최백호가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강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큼. 계속해서 말하자면, 함부로 예단해서 일을 벌이지 말라는 거다. 다행히 이번엔 내가 말려서 덜 다친 데다, 상대 부모가 이해해준 덕분에 넘어갔지만, 다음엔-”
“으아악!”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비명에 강회강과 최백호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엔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최변인이 몽둥이를 들고선 뛰어가고 있었다.
“그 새끼 죽여 버릴 거야!”
“변인아!”
“변아!”
그 둘은 그에게 뛰어갔다.
*6*
박정근 집.
그가 눈을 뜨자 본 것은 낡은 천장이었다.
“음...”
잠시 멍하니 천장을 보던 그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몸을 일으켰다.
‘왜 그 꿈이... 진화에서 벌어진 일 때문인가.’
회강은 머릿속으로 그때의 일어난 일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자신의 입을 한 손으로 막는다.
“웁. 웁”
토는 하지 않았지만, 회강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진 상태로 굳어있었다.
‘더 심한 것도 본 나인데... 왜 이러지.’
탕탕.
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속을 진정시키던 와중에, 그가 자고 있던 방문이 열렸다.
“회강님!”
남연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신발도 벗지도 않은 그녀가 회강을 보며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하실 수 있어요. 아무리 배신했다곤 하지만, 노약자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언제 뒤치기를 할지 모르는데, 그런 이들을 이끌고 도망치라는 건가. 우리 일행 중에 죽은 거인은 이제 접속도 제대로 못 하게 됐어.-
“그거야 그냥 회강님이 눈 한 번 딱 감고 고개를 숙이셨으면-”
“미친년. 지랄하고 있네.”
방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회강이 눈동자를 움직이자, 그의 시야에서 비틀린 웃음을 짓는 김산수와 안색이 어두운 유남이 보였다.
유남이 김산수의 팔을 잡았다.
“이보게 말이 심하지 않나.”
“뭔 말이 심합니까. 자식이라도 헛소리를 했으면 욕이라도 해서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설마, 이 여자가 회강님에게 한 말이 옳다고 생각한 겁니까?”
잠시 회강과 눈이 마주친 유남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건... 아닐세...”
이때 이필상이 다가오더니 회강에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을 죽인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나중에 조용히 타이르겠습니다.-
“필상씨! 왜 제가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솔직히 회강님이 무리를 비우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잖아요. 자리 비우지 않고, 우리랑 같이 미션을 진행했으면 그들이 그랬을-”
-수백이 넘는 침입자들을 그들이 불렀다.-
그의 메시지에 남연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옆에 서있던 김산수가 주저앉았다.
“왜 자꾸 북쪽이 아니라 남쪽에서 플레이어들이 오는지 궁금했는데, 그들이 불러서 그런 거였네. 온 시간 따져보면 회강님이 자리 비우기도 전부터 부르지 않고선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는 건 애초에 배신을... 쳇. 쓰레기 같은 새끼들.”
그의 투덜거림을 끝으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네...”
유남이 남연희를 끌고 사라지고, 나머지 사람들이 회강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녀의 입장에선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그것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충격적이니까요.-
김산수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전화해보니까 이미 연락처도 바뀌어 있었습니다. 완전히 돌아선 것 같은데,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오늘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묻도록 하지.-
“오늘이라면... 아! 그들이요.”
김산수의 말을 들은 모두의 얼굴이 환해지고...
-산수의 말대로 그들이 온다면 숫자와 전투력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겁니다. 그 뒤엔.-
으드득.
회강의 눈이 번뜩였다.
-후회하게 해줘야겠지요.-
모두의 몸이 움찔하고...
방안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 작가의말
이제는 계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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