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1*
상하이.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제대로 된 정보 인식도 하지 못하고 다양한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돌발 행동을 하다가 죽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주변부터 살피고 자신의 행보를 선택해야 한다.
그걸 아는 강회강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진중하게 이리저리 숨어다니면서 주변을 살피는 거였다.
그 결과, 회강은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냄과 동시에, 돌발 미션을 받게 된다.
*죄송합니다.*
-회강님, 전에 주었던 미션이 협박이라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전에 있던 미션은 자동 취소되었습니다.
*돌발 미션 발동*
*보지 못한 놈이다.*[개인] [히든]
<내용>
-회강님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군인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뒷덜미에 꽂혀 있는 것은 [진화]에서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세요.
-회강님에게 묻겠습니다. 이 미션을 해주시겠습니까?
<성공 조건>
-한 가지라도 알아내신다면 성공입니다. (현재 100% 초과 달성 중)
<수락 보상>
-당신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현지어로 변환될 것입니다.-
<성공 보상>
-[업] 1일을 소비해서 자동통역기능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의사소통] 최고 난도를 깰 경우에 무료로 변하며, 메시지가 아닌 언어로도 변환될 것입니다.)
-기존 [업] 365일 +, 새로운 사실 하나당 [업] 5일 +
<현재까지 알아낸 내용>
1. 겉은 초록색 점이지만, 그것을 도려내면 척추를 파고든 것을 알 수 있다.
2. 초록색 점이 붉은색 점으로 변한 뒤, 놈을 인간에게서 뽑아낼 경우, 인간은 죽는다.
3. 붉은색에서 검은색 점으로 변하면, 스스로 놈이 나와 뱀처럼 기어서 돌연변이 흡혈채찍덩굴에게 이동한다. 이때 놈의 끝부분은 인간의 뇌 모양이 보이는데, 이 부분이 파괴되면 바로 죽는다.
4. 놈을 뽑아낸 사람 중 대다수는 반신불수가 되며, 단기 기억상실증의 증상을 띤다.
5. 놈이 돌연변이에게 가면, 돌연변이 흡혈채찍덩굴이 혓바닥으로 먹어버리고, 그 뒤 놈이 기어 나왔던 곳 주변으로 혓바닥 등을 보내 사람이나 동물들을 자신에게 끌고 온다.
6. 놈은 어두워지고 나면 뿌리에서 분리되어 돌아다닌다. 혼자서는 단 세 시간밖에 살지 못 한다. 단, 물속을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어 빠르게 이동한다.
7. 놈은 철도 부식시킬 정도의 산성 액을 지니고 있으며, 공격 당하면 한 발을 쏘고는 죽어버린다. 단, 산성 액은 강한 밤꽃 냄새를 풍기고, 거기로 다른 놈들이 몰려온다.
*돌발 미션 성공.*
*후쿠시마 주변의 호구들 근황이 궁금합니다.*를 성공하셨습니다.
<내용>
-회강님이 알아내신 특징들이 후쿠시마 주변의 정황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거대한 꽃을 보았다는 정보를 끝으로 몇 분이 실종되었는데, 회강님 덕분에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성공 보상>
-일본 총리는 소녀상 재설치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을 것을 현재 뉴스를 통해 선포하였으며, 정식으로 한국국민들에게 사죄 인사를 드렸습니다.
-[업] 100일 +
*회강님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내용>
-회강님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회강님의 일행을 통해 도주 루트를 알려드릴 테니,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주의점>
-정확한 도주 루트가 아닐 수 있으니, 항상 신중하세요.
긴 내용을 순식간에 훑어본 그가 몸을 일으켰다.
‘갈 수 없다.’
회강은 자신의 뒤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들 모두 등에 노모나 어린아이들을 업고 있었는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회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이들 모두 홍수와 돌연변이 식물의 등장으로 상하이에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인원은 총 54명으로 하층민들이 대다수다.
그는 조심스럽게 커튼을 열었다.
오층에서 내려다본 시내는 온통 흙탕물이 가득했다.
‘거기다 홍수까지 심해져서 아예 발이 묶여 버렸어. 문제는 돌연변이 덩굴이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돌연변이 덩굴에게 향했다.
회강이 깨어나기 사흘 전까지만 해도 주변 타워의 절반만 했는데, 어느새 삼 분의 이 지점까지 덩치가 커져 있었다.
‘물살이 약해지긴 했으니... 음.’
그는 커튼을 닫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늘어선 사람들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이곳저곳 흉터가 있었는데,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평생을 요리사로 일해 온 순박한 총각이었다.
이름은 유충으로, 회강과 동갑이다. 그가 다가와 말을 하자, 회강의 앞으로 내용을 해석한 통역 메시지가 올라왔다.
-강. 식량이 떨어졌어. 바로 이동할 거야?-
-응. 물살이 그리 세지 않으니, 보트로 충분히 이동 가능해.-
그의 메시지를 읽은 유충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행이다. 이대로 죽는가 싶었는데.-
-죽지 않아.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모두 살 수 있어. 그러니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마. 말이 씨가 된다고.-
-미안. 무서운 생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그랬어.-
-괜찮아. 담부턴 그러지 않으면 되지. 움직이는 방식은 어제랑 똑같으니까. 줄 체크 좀 다시 해줘. 찢어질 것 같으면 시트라도 잘라서 보완하고. 그사이, 나는 주변 건물로 이동해서 적들이 있는지 좀 알아볼 게.-
-저기 강.-
-응? 왜.-
-언제까지 이동해야 하는 거야?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어. 좀 더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없어?-
-미안. 나도 전문가는 아니야. 군인들도 기생충들에게 당한 마당에 일반인인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는 단지, 싸움만 잘할 뿐이야.-
회강의 말에 유충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 그렇겠지. 어서 가봐. 나는 사람들이랑 여분의 줄을 만들게.-
-알았다. 수고해라.-
그의 메시지에 고개만 끄덕이더니, 유충이 그에게서 멀어졌다.
회강은 방에서 나와 복도 끝 창문으로 걸어갔다. 창문에 처져 있던 블라인드 틈을 살짝 벌린 그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을 바라본다.
‘저곳이 이 근방에서 제일 큰 마트다. 사람들이 많이 대피한 곳이라서 이동을 꺼렸지만, 이젠 저기밖엔 식량이 구할 곳이 없어.-
그는 도망자 신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들의 접촉을 줄이고자 사람들의 그림자나 기척이 없는 곳으로만 최대한 이동했었다.
’돌연변이 덩굴의 영역이 하루거리로 다가온 이상, 무리해서라도 저기서 식량을 구한 뒤, 사람들을 데리고 외곽으로 이동시켜야 해.‘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이쪽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역시 경계하는 인원들이 있어. 기생충들 때문인가?‘
군인 복장은 아니었지만, 총을 들고 외곽 복도를 지나고 있는 사람을 보던 회강은 그가 사라지자마자,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우드득.
창문을 잡고 뜯어버린 회강은 조심스럽게 옆에다 놓고선 살짝 뒤로 물러섰다.
“핫.”
쿵.
작은 기합 소리와 함께, 회강은 오 미터 거리를 순식간에 지나쳐 마트 창문 옆쪽으로 다가갔다.
콱.
반달 돌칼을 벽에 박아서 한 손으로 매달린 회강은 손을 뻗어서 창문틀을 잡는 데 성공한다.
끼익.
탁.
안으로 들어온 회강. 그는 신발을 벗고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계단 부근에서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서 머무르고 있다간 모두 죽습니다. 망원경으로 뿌리들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봤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구명보트들을 이용해서 도망을 치면-
-헛소리! 지렁이들이 튀어나와서 뱉은 것에 총까지 녹았어! 이동하다가 공격받는 순간, 구명보트에 탄 열다섯 명 전부 전멸이야. 같은 사람들을 공격한 미친놈들처럼 변할 수 있다고!-
’지렁이라면 기생충을 말하는 거겠지?‘
회강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중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십 대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오십 대의 남자였다. 둘 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젊은 사내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외쳤다.
-그렇다고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안정만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기회가 있을 때, 빠르게 움직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요. 오늘처럼 물살이 적고 비가 적게 내리는 날밖에는 없어요. 라디오에 들린 기상 예보에 따르면 내일부터는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만약, 오늘을 넘기면 이 안에 있는 사백이 넘는 사람들 모두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요!-
젊은이의 말에 사내가 콧웃음을 쳤다.
-네가 진화에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지렁이와 변절자들을 알아챈 건 나야. 내가 망원경으로 본 뿌리는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뿌리들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다른 이들을 불안에 떨게 하지 마라.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하면 너는 추방이다. 알았냐.-
사내의 말에 젊은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떠나자, 젊은 사내가 주저앉았다.
-어리석은 인간, 그것들 모두 내가 미리 알려준 것들인데... 역시 여기 사장에게 돈을 받고 물건을 지키려고 온 위선자일 뿐. 영웅이 아니었어. 벗어날 수 있는데, 고작 욕심 때문에 생존을 소홀히 하다니...-
회강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인 줄 알았는데 흥미롭군.‘
사실 회강은 혼자서 삼십이 넘는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힘에 부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데리고 가야지.‘
생각을 마친 회강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에게 걸어갔다.
회강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든 사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강회강!”
정확한 한국발음에 놀란 회강이 몸을 멈추고, 순간 주변엔 정적이 감돈다.
그때.
탕탕탕.
-젠장! 변절자다! 비상! 비상!-
“악!”
비명과 함께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황급히 몸을 일으킨 젊은 사내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다가 멈춘다. 그러곤 회강을 바라보며 외쳤다.
“도와주세요! 싸우는 자 중엔 노약자도 있습니다. 제발요!”
그의 말에 회강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탕탕탕.
쾅.
큰소리가 연달아 들리자, 두 사람은 황급히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 작가의말
20장 21장 수정은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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