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1*
띠. 띠디디. 띠띠. 철컹.
어두운 실내에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체격이 아주 좋아 보였다.
”시선을 돌려주는 것도 오늘까지라 했다. 반드시 오늘 안에 찾아내야 해.“
주변에 굵은 남성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사내는 신발을 신은 채, 실내로 들어온다.
철컥. 띠띠띠. 딸깍.
손전등 불빛에 의해, 고풍스러운 가구의 모습들이 나타났다가, 다시 검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층은 어제 다 찾아봤고, 역시 이 층 집무실에 있나.“
움직이던 불빛이 계단을 비추고, 사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걱삐걱.
2층으로 올라온 사내. 그는 거침없이 여러 방문을 지나쳐, 전자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문 앞에 멈춰 섰다.
”비밀번호가... 미령이... 생일이려나?“
띠띠띠띠. 삐삐삐삐.
-실패하셨습니다.-
”씨... 그럼 대식이 생일?“
띠띠띠띠. 삐삐삐삐.
-실패하셨습니다. 이 회 실패하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데... 아! 마녀. 마녀 생일로 해보자.“
띠띠띠띠. 삐삐. 철컥.
”됐다! 역시, 하늘은 최변인의 편이군. 하핫.“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최변인은 이곳저곳 흠집이 크게 나 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럼 어디에 있으려나.“
드르륵. 탁. 드르륵. 탁.
서랍을 열고 내부를 살펴보던 그.
덜컥덜컥.
열리지 않는 서랍을 보고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전등으로 비추자 거기엔 열쇠 구멍이 하나 있었다.
”이따위로 나를 막을 순 없지. 합.“
꽈직.
잠긴 부분이 부서지고, 서랍이 열리고 내부가 본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뭐야. 왜 아무것도 없지?“
몸을 숙여 안을 들여다보기까지 했지만, 서랍과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훼이크인가... 설마, 누가 가져간 건...“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최변인, 그가 고개를 크게 좌우로 저었다.
”아니야. 꼭 있다.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아. 그때처럼 내게 날개를 달아 줄 거다.“
중얼거리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동이 틀 무렵.
”으아아아아.“
한 남자의 절규가 온 집안을 울렸다.
*2*
처음엔 그와 정부 쪽 요원들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중국에 굴복한 정부. 이대로 그를 보내야 하는가?-
-미국도 소용없었다. 과거 핵 개발을 포기한 대통령을 원망하며...-
-전쟁보다는 희생을 택하는 국민.-
-강회강에게 가달라고 시위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알바일까? 일반인일까?-
기사들도 부정적이었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도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힘들겠지?]
[중국이 아니라고 하는 데 진짜겠어?]
[그거야 외부 시선 때문에 그런 거고. 정부가 스스로 저렇게 발표할 정도면 빼박 아니야?]
[보내줘야겠지. 나는 죽기 싫으니까.]
[그래, 한 명만 가면 되는 거잖아. 보내주고 나중에 복수하자. 회강아 미안해.]
[아!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라고 생각하세요. 유핵무죄, 무핵유죄!]
하지만, 사흘이 지났을 때, 산수를 좋아해라는 아이디를 지닌 자가 공개한 동영상이 나타나자, 여론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그 동영상에 달린 댓글부터였다.
[뭐야. 지말 안 들었다고 그런 거였어?]
[비리다! 정경유착이 또 드러났다!]
[대기업들이 눈엣가시 같은 회강은 보내라고 압박한 거 같은데.]
[근데, 이 영상 진짜일까?]
[진짜다. 지금 미국 CNN에서 증명했다. 아나운서가 회강보고 미국으로 오라고 대놓고 러브콜 보내고 있어.]
[우와, 그럼 이제까지 정부 지원금도 제대로 받지 않고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야? 지금부터 강회강을 호구 오브 호구로 인정한다.]
[나도 저렇게 중지를 내밀고 싶다. 존 멋진 듯.]
[그런데 왜 강회강은 아무런 반응도 없지? 진짜로 스스로 중국으로 가려고 했던 거야?]
[ㅠㅠ. 임아, 서해를 건너지 마오. 우리가 지켜주겠소.]
[싸우자! 같이 죽는 거다.]
[핵이 없어도 원자력 발전소는 있다. 우리가 폭파하면 너희 중국인은 잘 먹고 잘살 것 같나!]
국민의 반중 반정 감정이 뜨거워지자, 언론의 반응도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쉽게 국민은 내다 버리는 정부. 이대로 괜찮은가!-
-이번엔 촛불이 아닌 총을 들자!-
-사백 년 만에 거론된 북벌론-
-[단독] 대기업과 정부 간의 비리가 혈세를 좀먹고 있다.-
-국민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은 물러나라!-
-한번 했는데, 두 번은 못하라. 다시 불거지는 탄핵여론-
이에, 수세에 몰린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중국 쪽 인사와의 대화 내용을 들려준다.
하지만, 이는 불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 되어버린다.
[아예 우리까지 팔아먹지 그러냐!]
[너희들도 같은 국민 아니냐! 쓰레기들아!]
분노한 국민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또한, 회강에게 도움을 받은 전 북한 인사들이 항전을 선언하게 된다.
-여섯 군부의 수장 리실수 ”회강이 죽는 순간, 우리 모두 죽을 각오로 결사 항전 할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격한 반응에, 중국은 한발 물러서게 된다.
-중국의 유감 표명. ”사실은 그를 중국국민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중국에서 발표한 중국 고위 간부와 한국 기업 간의 커넥션. 사실일까?-
결국, 사면초가 상황이 된 정부는 사죄했지만, 국민은 더욱 날뛰었고, 무명인의 신고 때문에 과거 김대식이 이끌던 TS와 대기업 그리고 정부 인사 간에 성매매 비리가 공개되자, 대통령이 하야 선언을 하게 된다.
-관련 연예인 중 반이 넘게 자살시도, 다행히 회강을 비롯한 깨끗한 TS 인들이 살려.-
-김대식. 철창에서 목맨 채 발견. 다행히 목숨은 건져.-
-최변인. 관악산으로 도망치다!-
-탄핵 때도 버텼던 대기업. 이번에는 견디지 못했다.-
격동의 한 달이 지나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다가왔을 때.
모든 사건은 정리되었다.
회강 집.
”한 번만 더 만져보면 안 돼?“
”안 돼.“
”만져보자. 응?“
”어제도 계속 만졌잖아. 난 인형이 아니냐. 인간이라고.“
”미안... 난 단지 너무 부드러워서...“
양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날이 선 눈으로 보던 변학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음... 그럼 한 번만 만져라.“
”정말?“
양의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더니 아이의 손이 꽃잎을 향했다.
하지만.
”아얏!“
뒤에서 꿀밤을 때린 김산수가 사나운 눈초리로 양의를 내려다본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그랬지. 어제 혼났으면 알아들어야 할 거 아냐.“
”학도가 괜찮다고-“
”누가 네 머리를 계속 만져댄다고 생각해봐라. 그게 어디 좋은 일이니? 게다가 이 녀석은 너와 달리 더 예민하게 느낀다고 몇 번을 말해. 네 욕심에 다른 이를 피해 주지 말아라. 알았냐.“
”네... 잘못했어요.“
”오늘은 늦었으니, 옆집으로 돌아가. 이제 회강님이 돌아오시면 바로 쉬어야 하는데, 너희들이 있으면-“
철컹.
”아저씨!“
”회강님!“
두 아이가 현관에 나타난 은빛 가면을 쓴 강회강에게 달려든다.
-이주 만에 보는군. 잘 지냈나.-
”예.“
-학도는-
”저도 좋아요.“
그 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회강에게 김산수가 다가왔다.
”함흥시 일은 다행히 단순한 기상이변이라고 들었습니다.“
-예, 진화에서 미션을 주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별일 아니라서 그랬나 봅니다.-
”이주하는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중국 쪽 일도 나중에 상하이 꽃 괴물 공략에 도움을 준다는 약속을 잘 풀렸으니, 이젠 정말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게다가 진화 단계가 저를 넘어선 자들도 많아서, 한동안은 게임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양의, 학도, 이만 인사하고 가야지. 내일 학교가야 할 거 아냐.“
”예...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너희들도 잘 자라.-
“예.”
아이들이 사라지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굳은 얼굴로 변한 김산수가 회강에게 속삭였다.
“학도는 정말로 꽃 괴물과 다른 상태라는 겁니까?”
-예. 중간에 학회에 들러서 설명을 들었는데, 기생충이 몸속에 아예 없고, 꽃과 달리 관 형태의 분출구가 없답니다.-
“다행이긴 한데... 꽃 괴물에 대한 공략은 알아내기 힘들겠군요.”
-네. 그리고 최변인도 찾아내기 힘들겠죠.-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김산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정말 쥐새끼마냥 잘도 도망 다닙니다. 놈까지 잡았으면 정말 맘 편히 발 뻗고 잘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회강이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첫눈이 내리는군요.-
“눈까지 내리는 데, 놈은 어디서 숨어 지내는 걸까요. 꽉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글쎄요. 저는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창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회강의 얼굴이 비쳤다.
-조금이라도 더 지옥 같은 삶을 겪을 거 아닙니까.-
“하긴... 그게 더 좋겠습니다.”
창밖 세상이 함박눈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3*
쿵. 후두둑.
큰소리와 함께, 회강의 머리 위로 흙이 떨어져 내렸다. 왼손으로 흙을 털어낸 회강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후후, 이런 좋은 방법을 알아내다니, 이동하다가 갈대숲 지대를 만나면 편하게 지내겠구나.’
그는 벽면을 오른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자, 흙으로 발라져 있던 곳에서 갈대 줄기들이 나타났다.
‘갈대와 흙이 만나면 인위적으로 가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니, 힘들게 자연적으로 난 구멍이나, 동굴을 찾을 필요가 없었어.’
회강이 허공을 휘젓자, 눈앞에 여러 메시지가 떠올랐다.
-갈대들이 뭉쳐 있으면 강한 바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진흙이 굳으면 딱딱해집니다.
-갈대와 진흙이 섞인다면 훨씬 더 견고해집니다.
-동굴이 아닌, 스스로 서식지를 만들었습니다. 사흘 동안 포식자와 추위에서 견뎠습니다.
-새들이 땅 위에서 하는 공격은 매우 약하다.
-새들은 자신이 공격한 자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반나절만 지나도 잊어버린다.
-까마귀 독수리들의 둥지에 낳은 알은 휘파람 뱀이 제일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다.
-알을 불에 구우면 매우 좋은 영양섭취 음식이 된다.
-이곳과 관련된 지식을 열 가지 이상 습득했습니다. 새로운 지형 [습지]가 추가됩니다.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하세요.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일주일 안에 습지 지형은 벗어날 수 있겠네.’
쩝쩝.
구운 고기를 씹으면서, 그는 손을 휘저었다.
-새로운 힘 [기]에 대한 보고서. 이것을 읽으시려면 터치해주세요.-
‘이제야 이걸 읽게 되는구나.’
북한에서 수행한 미션에 대한 보상으로 원래는 한 달 전에 읽어야 했지만, 여러 일이 겹치면서 바쁘게 한 달을 보내는 바람에 미뤄졌었다.
‘새로운 힘.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실들을 알고 있을까.’
새로운 힘을 쓰는 괴물들도 있었고, 그 덕분에 살아남았기 때문일까, 회강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있었다.
‘새들이 공격이 멈출 동안... 읽어볼까?’
그가 떨리는 손으로 허공에 떠 있는 Y부분을 눌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무른다.
-변이체 몸에서 나온 돌멩이를 손에 쥐고 흡수한다는 의지를 가지면 [업]을 올릴 수 있다.
‘뭐! 업을 올릴 수 있다고!’
휘둥그레진 눈과 함께, 그가 몸을 들썩거렸다.
쿵.
“악.”
머리를 부여잡은 그가 바닥에 쓰러진다.
그는 떨리는 눈동자로 앞을 바라본다. 자신의 시야에 맞게 변형된 메시지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회강은 눈을 감았다.
‘젠장...’
그의 머릿속으로 영교와의 싸움과 중국 그리고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옥이... 다시 오려나...’
결국, 그는 그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작가의말
연참대전을 포기할 정도로 몸 상태와 함께 중요한 일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예고하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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