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흔들리는 회강의 시야에 볼록 솟아오른 턱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진화 속에서 겪는 새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의 자그마한 썰매는 턱을 점프대 삼아 날아오르게 된다.
예상한 것보다 더 강한 충격이 가해지자, 회강은 썰매를 놓고 공중에 떠오르게 된다.
‘놈이!’
회전하는 시야 속에서, 그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발을 내민 채 활강하는 녀석이 보였다.
그는 놈을 보는 순간, 회강은 자신의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러자 회전력이 빨라졌고, 그는 그것을 이용해 타이밍에 맞춰 돌을 날렸다.
딱.
많은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는 녀석의 눈 주변을 맞추는 데 성공한다.
그락그락.
녀석이 왼쪽 눈을 감자, 동체가 많이 흔들리면서 주춤거리는 바람에 그를 잡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살았- 헉.’
훙.
기쁨에 취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강한 바람이 그의 몸을 떠밀었다.
탁.
하지만, 회강은 형편없이 바닥에 처박히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는 두 팔을 벌리고 있었고, 두 다리는 자신과 떨어졌던 썰매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썰매 위에서 그는 발달한 감각으로 누워 있을 때보다 서 있는 것이 방향전환과 순간대응에 훨씬 좋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는 거인들을 맞닥뜨리게 된 회강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후웅. 쿵. 후웅 쿵.
얼어붙은 강 위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거인들이 회강에게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만 부실 뿐이었다.
결국, 회강은 얼음 몇 덩이만 맞고는 손쉽게 거인 무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우워~
거인들의 고함에 뒤돌아본 회강.
그의 시선에 회강이 아닌 거인들을 공격하는 새로운 포식자와 이에 대응해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거인들의 싸움이 보였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새로 나타난 녀석에 대해 알 기회다.’
이미 속도가 많이 줄어든 썰매 위로 엎드린 회강은 덤불 뒤로 이동한다. 혹시 모를 다른 포식자들이 있을까 두려워한 그는 눈을 그의 몸에 얹어서 위장한 뒤, 그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결과, 회강은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날개의 달린 손처럼 생긴 것은 쓰지 않았다.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주둥이로 상대를 공격한다.
-거인의 머리를 잡는 순간 부서질 정도로 발의 힘이 강하다.
-무리 사냥을 하는 까마귀 독수리와는 달리 암수 한 쌍만 같이 다닌다.
-하늘에 있을 때는 둔탁한 무기보다 날이 있는 것으로 날개를 공격하는 것만이 유일한 공략 방법이다.
-덩치가 크고 단단해서 나무에 부딪혀도 다치지 않지만, 한 번 땅으로 내려오면 쉽게 날아오르지 못한다. 이때 상대적으로 약한 두개골과 목 그리고 날개를 공략한다면 손쉽게 죽일 수 있다.
-한 쌍 중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는 원수를 갚기 위해, 집요하게 쫓아간다.
-새로운 포식자를 발견했습니다. 지속적인 관찰로 명칭이 드러납니다. 하얀긴꼬리익룡입니다.
‘익룡이라. 까마귀 독수리처럼 땅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물론 내려오게 하는 방법은 날개를 공략해서 타격을 입히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이지만. 그건 나중에 더 관찰하면 되겠지.’
그의 귓가로 거인의 고함이 들려온다.
우워~
‘거인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 걸 보니, 익룡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구나.’
거인들이 익룡 하나를 죽였지만, 그사이 반수 이상 죽어버리면서 도망을 치게 된다. 그리고 짝을 잃은 익룡이 그들을 쫓아갔다.
회강은 썰매를 움직여서 익룡의 사체로 다가갔다.
하얀빛을 띠기 시작한 반달돌칼을 잡은 회강이 주변을 둘러본다.
‘내 시야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을 때가 기회야.’
그는 반달돌칼로 익룡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먹이가 거의 떨어졌어. 동굴 속 이끼들로만 끼니를 때우기엔 거인들이 버티질 못해.’
회강의 무릎 정도로 눈이 쌓였을 때까지만 해도, 유인원 대신 거인들이 먹이를 구해줬었다. 그러다가 회강의 허리 이상이 되자, 거인들도 발이 묶여버린다.
그 뒤로 식량은 빠르게 소진되었고, 만약 이끼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이미 회강일행은 한차례 전멸했을 것이다.
‘차가운 돌로 만든 외부 공간에다 넣으면 저장이 오래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공간이 너무 협소하니...’
생각하는 와중에도 숙달된 솜씨로 익룡을 해체하던 그는 거인들의 고함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재빨리 하늘을 올려다본다.
“후.”
익룡은 없었지만, 회강은 해체한 고기를 등에다 지고는 썰매 위에다 올라탄다.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넌 뒤, 회강은 고개를 뒤로 돌린다.
그의 시야가 사체들이 죽은 곳에 머물렀다.
‘그냥 다 죽은 거면 좋겠다. 그러면 거인들이 부활하기 전에 익룡의 고기를 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는 다시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새로운 방식으로 썰매를 타는 법을 깨달았다.
-눈 위에서 물건을 나를 때도 썰매가 유용하다.
-가죽을 덧댄 기다란 판자를 양다리 밑에다 놓는 방법이 훨씬 더 안정적이다.
그는 썰매를 타고 이동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얻으며 무사히 복귀한다.
다음 날 저녁.
동굴 바깥에서 모닥불이 피워지고, 모두가 자그마한 고기를 하나씩 잡고 씹었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사천 걸음 이상 움직이면서 [이동-뛰기] [개인] [연계2] [빙하기 조건]을 자동으로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은...
...
-팔십삼 명 모두에게 눈 위에서 이동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보상> [업] 415 +
*모두 다 같이 썰매를!*[히든] 미션 성공.
<내용>
-자신의 것을 베풀기도 힘들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습득하는 것 또한 힘듭니다. 그 모든 것을 해내고 같이 움직이는 회강님을 비롯한 일행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성공보상>
-일행이 머무는 동굴에 있는 식물의 성장 속도가 증가합니다.
-일행이 짊어진 익룡의 고기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살아남은 자가 최후의 승자*[히든] 미션 성공.
<내용>
-회강님의 일행을 가장 위협했던 존재가 새로운 포식자에 의해 사라졌다. 덩달아 새로운 포식자인 익룡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그대가 이 지역의 최고 포식자임을 증명했다.
비록 다친 익룡과의 싸움이었지만, 회강님은 일행 앞에서 익룡과 싸워 승리했으며, 그들을 배불리 먹이는 데 성공했다.
<성공보상>
-최초로 익룡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전투와 관련된 요소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사천 걸음 이내에 회강님의 일행을 위협할 존재가 없습니다. 한 지역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최초입니다. 지도자 역할과 관련된 요소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색다르게 표시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지식의 방에서 바꿔주세요.)
“우끼끼”
“우끼”
서로 웃으며 고기를 뜯는 모습을 본, 회강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맺힌다.
-달궈진 돌의 온기는 오래간다.
-달궈진 돌 위에서 구운 고기의 향이 좋다.
-익룡의 고기는 부드럽고 구수한 향이 있으며 기름기가 많다.
-익룡의 고기와 이끼를 섞어 구운 뒤 먹으면 포만감이 두 배 상승한다.
-열매는 구우면 맛과 포만감이 떨어진다.
‘이제 강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게 됐어. 거기로 찾아오는 동물들도 보였으니, 사냥도 가능해.’
회강의 일행으로 들어온 거인들과 달리, 그들을 위협했던 거인들이 모두 NPC였다. 그들은 부활하지 못했고, 자연스레 회강일행이 식량과 앞으로 먹이를 구할 곳을 얻게 된 것이다.
요행이 겹쳐서 생긴 행운이었지만, 그의 말을 믿고 참고 견뎌준 일행과 회강의 노력이 없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힘든 시기 끝에 오는 이 달콤함을 이들도 알고, 더욱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는 정당한 노력으로 인해서 오는 성취와 보상 그리고 간간이 찾아오는 행운의 맛을 이들도 느꼈으면 했다.
‘그리되면 이들이 다른 이들을 해치려 들지 않을 테니까. 저 거인들처럼 과거를 후회하는 인간이 되지 않을 테니... 그건 정말이지 고통스럽거든...’
회강 자신이 겪어본 일이었기에, 웃는 유인원들 사이에 껴서 가끔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거인들의 돌발 행동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김산수도 자주 찾아와서 하는 짓이기도 하고...’
그는 포만감이 다 차자, 먹는 것을 멈추고 일어선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그는 반달돌칼을 허리춤에서 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별과 반달돌칼을 번갈아 바라본다.
‘정말 똑같은 색이네...’
낮에 회강이 익룡의 고기를 자르다가 발견했는데, 반달돌칼에 붉은빛은 모두 사라지고, 자그마한 빛 하나가 돌칼 주변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는 등에 있는 단창을 왼손으로 잡아 뽑는다. 그리고 돌칼과 비교해보았다.
‘역시 달라.’
단창에 비해 빛도 약하고 은은했지만, 반달돌칼의 절삭력은 엄청 좋았다.
깡깡.
‘단단하기까지 하고... 그러고 보면 이게 돌칼이 되기 전에는 가장 오래 쓰던 주먹도끼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그만큼 내 손에 많이 들려 있었다는 거고.’
그는 반달돌칼을 다시 들어 올렸다.
‘이다음 단계가 만약 빛이 더 늘어나는 거라면...’
별빛처럼 반짝이는 빛을 보며 회강은 환하게 웃었다.
‘예전에 보았던 은하수 같은 빛을 띄워야겠어.’
그렇게 회강의 하루는 끝이 난다.
*5*
*전체 공지*
*서로를 지켜낸 일행이여. 그대들에게 따스함이 깃들길*
<내용>
-빙하기가 시작된 이후로 일행 내에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긴 빙하기를 견뎌내신 우리 인류의 조상들처럼 그만큼 서로를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었단 뜻이겠지요. 그런 이들에게는 마땅히 큰 보상을 내려야 합니다.
<성공보상>
-빙하기 동안 그대들의 몸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냉혹한 추위에도 버틸 힘을 줄 것입니다. 일반적인 때보다 영하 십 도가 더 내려가도 모닥불만으로 버틸 수 있습니다. 이 효과는 일회성이 아닙니다.
-한 지역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일행의 경우엔 그 지역에 한해 해빙기가 더 빨리 찾아옵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색다르게 표시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지식의 방에서 바꿔주세요.)
*전체 공지*
*서로를 지키지 못한 일행이여. 그대들에게 혹한의 폭풍이 닥치리라*
<내용>
-빙하기가 시작된 이후로 반수 이상이 죽은 일행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굴었단 뜻이겠지요. 그런 이들에게는 마땅히 큰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
<실패보상>
-빙하기 동안 일정 기간 일행들을 살려낼 때까지는 서늘한 기운이 그대들에게 깃들 겁니다. 조금만 추워도 큰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효과는 일회성이 아닙니다. 현실로 회피하지 마세요.
-일행이 있는 곳엔 차갑고 거친 바람이 불어 닥칠 겁니다. 반성하세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색다르게 표시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지식의 방에서 바꿔주세요.)
*전체 공지*
*계속 내려가도 추워요.*
<내용>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무리하게 이동하는 일행들이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고, 여러 국가의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어차피 겪을 일입니다. 아래로 내려간다고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니, 십일 이내에 머물만한 곳을 찾으세요.
<보상>
-열흘 후 빙하기가 그대들을 모두 찾아갑니다.-
*전체 공지*
*빙하기는 열 달만 버티시면 됩니다.*
<내용>
-빙하기 도래 후 열 달만 버티면 끝나게 됩니다. 전체 공지를 통해 보상을 받으신 분들은 두 달이 줄어듭니다.
<보상>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색다르게 표시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지식의 방에서 바꿔주세요.)
Y대학병원.
회강은 메시지를 읽고선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음...”
‘열 달... 예상보다 훨씬 긴데, 우리야 여덟 달만 버티면 되겠지만, 남들은...’
빙하기의 추위로 인해서 과거 양의가 아팠던 것처럼, 많은 아이가 심각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부모들의 눈물을 본 회강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방송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하긴, 각박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는 있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던 회강의 입매가 싸늘하게 굳어졌다.
‘이미소...’
회강은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
그는 신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은 그녈 스치고 지나가 병실 안으로 들어선다.
“흑.”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무시한 채, 회강은 은빛 가면은 벗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다가오자, 자주 찾아온 회강과 친해진 권래나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못난 놈.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똑똑하고 착한 아이다. 고작 거짓말 한 번 한 거 가지고, 그렇게 꿍하게 굴 거냐?”
권래나의 목소리에 회강은 쓴웃음을 짓는다.
-요즘 들어서 사건에 관계된 기억은 아니지만, 조금씩 과거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예전에 엄청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면 기억이 온전히 돌아왔을 때 어찌 될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말에 권래나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그거야... 후. 그래, 예전부터 너는 많이 신중했다. 그게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믿음은 많이 갔었어.”
-제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랑 가장 친한 선배였잖니, 예전에 술자리에서 내 화려한 이혼 경력을 비꼬며 말했던 기억은 나지 않나 보지?”
권래나의 말에 회강이 말없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녀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기억났나 봐.”
-그땐 죄송했습니다. 맘 약한 양비가 연습생 생활을 제대로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우리 회사는 아니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아이들도 있어서 덜컥 겁이 나서 그랬습니다.-
“하여간 핑계 잘 대는 것도 똑같구나.”
-그런가요? 제 기억엔 핑계 대는 모습은 안 나서.-
“훗.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을 했어.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영교 무리가 부산에 있는 소식에 바로 내려간다고 하지 않았어?”
-거짓 제보로 밝혀졌습니다. 서로 같은 지역에 머물게 된 일행의 수장이, 경쟁자 하나 없애 보려고 그랬답니다.-
그의 메시지의 그녀가 눈썹을 찡그린다.
“쯧쯧. 그런 놈들이야말로 영교난 같은 놈들인데, 이번에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냈겠지?”
-예. 법이 제대로 정비가 안 돼서요.-
“의X놈들이 문제라니까. 그리고 진화는 왜 현실에서도 지도를 볼 수 있게 해서 그 사단을 만들어.”
그녀의 한탄 섞인 말에 회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진화 속에서도 범죄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점만 빼고는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큰일이야. 부자 놈들이 가난한 이들이 만든 지도를 긁어모으고 있다는데, 자칫 진화에서도 그들이 세력을 만들어서 점령하게 되면...”
그녀의 말을 들은 회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미 대기업은 자신들의 지역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사장단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아, 그나마 따뜻한 지역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사람들과 넓은 지역의 지도를 지닌 자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일반 사원들을 자르는 행위에 국민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지만...’
권래나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가 자신을 부축해주는 회강을 바라본다.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샜는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집에서 쉬고 있지.”
-양비가 찾아간 사람을 찾고 싶어서요.-
“하지만, 내가 전에 말했을 텐데, 일기장에는 너의 이름밖에는 쓰여 있지 않았다고.”
-제가 알기론 양비가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뭐하러 쓰냐고 할 때도 줄곧 써왔지. 내 친자식이었지만, 이혼한 제 애비랑 똑같아서, 일기 쓰는 걸 볼 때마다 구박을 그리했는데...”
그녀가 눈가에 차오르는 물기를 훔쳤다.
“미안해. 자네 앞에서 울 자격이 없는 것이 또 울어서.”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자식을 그리워해서 우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회강이 건네준 휴지로 권래나가 눈물을 닦았다.
“네가 그 이야기까지 꺼낸 걸 보니, 한두 달이 아닌 몇 년 동안 쓴 일기장을 원하는가 보구나.”
-예. 제 기억으로는 양비가 선물을 주고 싶을 정도로 호감을 느끼던 남자가 있었거든요. 그것도 그 일이 있기 몇 달 전쯤에요.-
그의 말에 권래나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러면 진즉에- 아, 네가 기억이 없었지.”
-죄송합니다.-
“아, 아니야. 사람을 구하다 다쳐서 그런 건데, 사과할 필요 없어. 예전에도 내가 충고했지만, 쓸데없이 사과하고 다니지 마라. 그 사기꾼 놈들처럼 엉겨 붙어서 빨아먹는 경우가 생기니까. 아무튼, 네 말을 들으니 나도 궁금해지는구나.”
-일기장을 다 보지 않으신 겁니까? 제 이름밖에는 쓰여 있지 않았다면서요.-
“그거야, 나 혼자서 그 많은 일기장을 찾을 수는 없잖니, 그래서 네 절친이자 우리 양비의 매니저 일도 했었던 최변인이랑, 우리 양비 절친인 조성미와 함께 이름을 찾았-”
그녀의 말이 점점 느려지더니 멈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몇 번이나 벌어졌다 닫힌 그녀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네가 이리 만든 게, 최변인이라고 했지?”
“예.”
“그리고 그 최변인은 조성미랑 사귀지?“
”...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바보천치였구나. 흑흑.“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회강은 묵묵히 휴지를 건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일기장의 보관된 장소를 알게 된다.
‘과연 그게 제대로 있을까.’
그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병실 문을 나섰다.
‘최변인이 가져갔을 가능성이 있지만, 권래나님이 호언장담했으니 희망을 품어 보자.’
회강은 휴대폰에다 메시지를 입력했다.
-호부, 시간 되나?-
-됩니다.-
-나와라. 밤에 같이 갈 곳이 있다.-
-예.-
‘만약, 네가 양비의 정인이었다면...’
으드득.
‘김대식은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네놈만은 무조건 부숴 버리겠다.’
서늘한 기세를 뿌리며 회강은 복도에서 사라진다.
- 작가의말
저는 오늘이 일요일 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토요일 이더군요.
하하하. 수정은 내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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