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두 시간 뒤.
탁.
“잡았다!”
자신의 손, 아니, 잎사귀 안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보며 꽃 괴물이 미소 짓는다. 그러더니 그것을 안에다 넣고 오물거렸다.
꽈직. 쩝쩝쩝.
양 볼이 벌겋게 부어오른 꽃이 애벌레를 먹는 모습을 보고 김산수는 고개를 절래 흔든다.
“학도야. 그게 그렇게도 맛있냐?”
“네. 제가 괴물이 된 후 전시됐을 때, 이 애벌레를 북한 놈들이 던져주면서 괴롭혔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 입안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 뒤로 이것을 먹는 게 유일한 제 낙이었죠. 물론, 그것도 나중에 저를 보려 찾아온 돼지 새끼가 너무 웃기게 생겨서, 놈의 면상에 뱉고 난 뒤엔 주지 않았지만요.”
“하하하. 북한의 수장인 놈에게 그 짓을 하고도 산 게 어디냐.”
“하지만... 이 꼴로 살아남은 게 과연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진화에도 접속 가능하다면서,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다음에 인간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 힘내라.”
김산수의 말에 꽃은 미소 짓지만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리장수는 강회강에게 다가간다.
-남조선 아이가 납치된 뒤에, 여기서 괴물이 됐다는 말을 진실이라고 믿으시는 겁니까?-
-거짓일 경우를 대비해 계속 감시 중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저 녀석이 이 사태의 제공자였다면 몇 군데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벽과 함정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 않습니까? 꽃이 알려줘서 우리가 무사히 지나간 곳만 열 군대가 넘는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의 메시지에 리장수의 굳은 얼굴이 살짝 풀린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그래도 녀석에게만 함정이 보이니, 좀처럼 맘이 놓이지 않네요. 아직 성정도 어린놈 같은데, 혹여나 실수하면.-
“멈춰요! 저기에도 함정이 있어요.”
앳된 아이의 목소리에 일행이 전부 멈춘다.
회강이 싱긋 웃더니, 리장수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이제 열 한 군데군요. 그럼 이번에도 제가 앞으로 가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나간 회강의 귓가로 꽃의 말이 들린다.
“한 걸음 앞을 살짝만 건드리시고 빠지면 돼요.”
-알았다.-
훅.
그가 허공을 휘젓고, 뒤로 물러나자마자, 양옆에서 기다란 창날이 튀어나왔다.
빨간색 빛이 감도는 창날을 보고 리장수는 얼굴을 찌푸린다.
-저 정도 색의 석기가 되려면 최소 일 개월은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이걸 만든 자만 구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을 텐데요. 연구소가 이리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자가 제대로 된 자라면 모를까 인성이 그른 자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겁니다. 그나저나 이쪽은 괴물들도 지나가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른 곳은 핏자국이라도 있었는데, 여기는 아무런 흔적도 없군요.-
-그야 갈래 길 중 이 길이 제일 좁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다른 세 곳을 거치고 이곳에 온 거니 다른 함정들에 죽은 괴물들 수만 생각해보면, 여기에 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입니다.-
-함정 덕분에 다른 괴물들과 싸우지 않아서, 괜찮기는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니면 끝일 수도 있지요. 우리가 걸어 다닌 곳 끝에는 넓은 방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들 모두 뼈나 사체들 외엔 아무것도 없어서 문제였지만.-
-혹여 뒤따라온 적들이 있다면 함정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동한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으니, 빨리 철거해야겠습니다.-
-그럼 제가 이쪽을 맡을 테니, 나머지 분들은 반대쪽을 잘라주세요.-
-예. 동무들 우리는 이쪽을 자르는 겁니다.-
그렇게 창들의 중간 부분을 자르기 시작한 일행,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통과할 만한 크기가 확보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정을 지나쳐 모퉁이에서 사라진다.
세 시간 뒤.
그들은 균열이 이곳저곳 난 어두운 통로를 걷고 있었다.
“그 방이 마지막이었나 봅니다.”
-그러게요. 드디어 미로에서 빠져나온 것 같군요.-
군일들을 비롯해 모두가 밝은 얼굴인 것을 본 회강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그의 앞에서 털레털레 걷고 있던 꽃이 고개를 뒤로 돌려 회강과 눈을 마주쳤다.
“저기... 회강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라.-
“제 가족이... 저를 받아 줄까요?”
그의 말에 회강뿐만 아니라, 꽃 옆에서 말동무를 해주며 걷고 있던 김산수의 얼굴까지 굳어졌다. 김산수와 회강이 눈을 마주치고, 김산수가 소리 없이 입 모양만 변화시킨다.
[되도록 상처받지 않게 말씀을]
-아니, 널 받아주지 않을 거다.-
그의 메시지를 읽은 아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회강님!”
김산수의 외침에도 회강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길어졌다.
-김산수는 단지 너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겁먹은 표정을 짓지 않았을 뿐이지, 네가 괴물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생각해봐라 김산수는 너와 대화를 하고 있을 뿐, 널 안아주거나 토닥여 주진 않잖아. 그게 뭘 의미하는지 너도 잘 알 거로 생각한다.-
그의 말에 김산수가 입을 다물고는 침울한 표정으로 변화한다.
“그렇겠죠..”
눈물을 글썽거리는 꽃을 회강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편학도, 인간 중에는 같은 인간들이 조금만 달라도 욕하고 차별하는 자들도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해, 본능에 의존하고 이성을 외면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본능, 그 본능을 억제하고 이겨낼 줄 아는 인간도 적을뿐더러, 견뎌낼 수 있는 한도가 각자 다르므로, 사람마다 김산수나 나처럼 너와 대화하기도 하지만, 우리도 그 한도가 바닥난 상황에서는 그들처럼 대응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못난 게 우리 인간들이란 동물이야.-
“저도... 북한 사람들을 보고 느끼긴 했어요. 인간과 달리, 저를 대하는 그들의 시선, 말투, 행동 모두 역겨웠죠. 저를 괴물로 만들어 놓은 이들이... 어떻게 저를... 흑흑”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꽃, 그런 꽃에게 손을 내밀던 김산수가 움찔한다. 허공에 멈춰있는 손, 그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끝내 꽃 머리 위에 올리지 못했다.
질끈 입술을 깨문 김산수,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군인들도 어느새 멈춰 서서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편학도가 울면서 입을 열었다.
“회강님... 저는 괴물이죠?”
-그럼 나는 뭐지?-
“회강님요? 회강님이야 인간이잖아요.”
-내가 인간이라고? 정말로 너는 내가 인간으로 보이는 거냐?-
“예. 인간이잖아요. 두 팔과 다리 다 있고, 얼굴 멀쩡하고, 말씀만 제대로 못 하시지 다른 인간과 다르지 않은-”
-그럼 장애인은 뭐냐.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거냐? 그러면 멀쩡한 외형을 지니고 있는 살인자나 성폭행범 등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예? 그건 아니고...”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 하는 편학도에게 회강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췄다.
-나는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면 그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워요...”
회강의 입가에 미소가 맺히더니 꽃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간단해, 네가 인간으로 생각하는 이에게 이렇게 인간으로 대우한다면 너는 인간이다. 네 모습과는 상관없이 다른 이들을 인간 대우 해주고 아끼고 같이 살아가려 한다면 그게 인간이야. 그런 의미에서 영교와 이곳에 있던 북한인들은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일 뿐, 난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
몇몇이 신음을 흘리고... 회강의 메시지는 계속됐다.
-너는 우리를 인간으로 대우하고 대화하고 웃고 떠들고 같이 이렇게 걷고 있다. 이제, 내가 너에게 묻겠다. 지금의 너는 인간이냐 괴물이냐?-
“... 인간이요.”
자그마한 편학도의 목소리를 들은 회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크개!”
그의 고함에 움찔한 편학도가 소리쳤다.
“인간이요!”
환한 웃음과 함께, 회강이 꽃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는 뉴스 등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것이다.-
“네...”
-너는 나보다 더 심할 것이다. 그리고 매번, 이대로 이성을 놓아버리고 이들을 죽일 것인지, 아니면, 참고 그들과 계속해서 살아갈 것인지를 너는 고민할 거다.-
“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나도 내 끝이 괴물일지 아니면 인간일지 몰라서 답하지 못하겠다. 단지, 이거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유지하는 한, 너는 인간이다. 그러니 너 그리고 너와 비슷한 이들을 위해서, 인간으로 살아줬으면 좋겠구나.-
그의 메시지를 읽은 아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꽃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마르고, 전등에 의해 반짝이는 편학도의 눈에 회강의 모습이 비쳤다. 편학도의 표정이 회강과 닮아가고...
“꼭... 평생, 인간으로 살게요.”
-그래, 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회강이 머리를 쓰다듬고, 편학도가 활짝 웃자, 주변에 향기로운 꽃향기가 퍼진다.
그리고...
인간 편학도를 비롯한 이들은 출구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그들의 눈앞에 맨 처음 보인 건, 바로 태극기였다.
- 작가의말
저는 괴물일까요? 인간일까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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