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6*
다행히 그들 모두 그의 병원 근처에서 숨어 산다는 것을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회강은 오늘 작전이 실행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과연 몇 명이나 찬성할까?’
현재 그의 처지가 창고에 처박힌 환자이긴 하지만, 자연사가 아닌 실종이라면 큰 이슈가 될 것이 분명했다.
‘최변인과 병원은 무조건 찾으려고 하겠지. 자칫 내가 몸이 정상이 된다면 끝장이니까.’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섬 쪽 조폭들에게 도움을 준 이들의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이 크다.
‘누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도와주려 할까.’
회강은 메시지에 부탁해서, 절대로 무리를 이끄는 수장을 구하는 미션임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순수하게 사람을 구해주려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오히려 이용만 당할 가능성도 높다.’
괜히 회강 스스로 볼모로 잡힐 경우를 염려한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니까. 최대한 조심해야 해.’
그리고 저들이 이제 자신에게 의존해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곧 자신의 의무 보호 기간도 끝나서 알려진다 하더라도 강제력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내가 수장인 걸 숨기는 게 옳아.’
그래서 강제적인 조항도 없애고, 구하겠냐는 메시지만 전달해 달라고 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돌발 미션*-
-*현실에서 호구를 구하라.*
-당신이 머무는 곳 근처에서 생명을 구해 달라 요청하는 이가 있다. 수많은 이를 구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그는 현재 환자라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그를 구하더라도 제대로 된 지원은 없다. 오히려 당신의 위치가 조폭에게 발각될 위험이 커질 수 있으니 신중한 선택을 바란다.
-그럼 묻겠다. 당신은 이름 모를 호구를 구할 것인가. (Y/N)
-참고로, 당신의 수장은 모종의 일로 참여하지 못한다.
일행들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는 덤불 안에서 무기를 손질하는 척하면서, 이리저리 눈동자를 움직여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과연 단 한 명이라도 구한다고 할까?’
[단 한 명도 없을걸. 인간은 이기적이니까.]
‘그래... 나도 알아.’
쓴웃음을 지은 채 그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음?’
그의 감은 눈앞에서 빛이 느껴졌다.
‘메시지 창이겠구나.’
회강은 눈을 뜨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없겠지...’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기대를 누그러뜨리면서, 회강은 천천히 눈꺼풀을 올렸다.
‘말도 안 돼.’
회강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눈을 비비고 앞을 다시 보았지만, 눈앞에 메시지의 내용은 똑같았다.
‘이럴 수가...’
그의 머리 위 밤하늘에선, 별똥별 무리가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7*
최변인은 액셀을 거칠게 밟는다.
부우웅.
“그래요? 어떻게든 호흡을 붙여 놓은 세요. 다 왔으니까.”
탁.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집어 던진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내가 창고에 집어넣으랬지, 죽게 내버려 두라고 했나. 한국 최고 병원 중 하나라더니 그거 이름 빨 아냐?”
으드득.
빵빵.
“비켜 이 새끼들아. 굼벵이처럼 느리게 처가고 있네.”
계속해서 경음기를 울리며 질주하던 최변인의 차가 급하게 우회전했다. 그리곤 그의 차는 시커먼 주차장 입구 속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끼익.
XX병원 마크가 새겨진 곳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선 그의 페라리가 거친 타이어 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멈췄다.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던 최변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응? 뭐야!”
뛰어간 그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의 앞에 쓰러져 있는 의사를 흔들었다.
“이봐. 정신 차리라고.”
철썩. 철썩.
뺨을 때린 효과가 있었는지,
“으음. 최변인?”
눈을 뜬 의사가 그를 알아보았다.
“그래, 나다. 최변인. 어찌 된 거야. 2분 전 통화할 때만 해도 아무문제 없었잖아.”
“잘...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순간,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쳤습니다.”
“누군가가... 헉.”
최변인은 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눈앞에 열린 문을 향해 뛰어갔다.
“...음.”
안을 들여다본 최변인은 손과 입이 천으로 묶인 두 간호사와 텅 빈 침대를 발견했다.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미치겠군. 도대체 누가. 응. 저게 뭐지?”
그는 걸어가서 침대 위에 놓여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강회강은 우리가 데려간다. 이놈이 이곳에 방치된 장면은 카메라로 찍어뒀으니 신고하지 마라. 영교?”
바스락.
쪽지를 구긴 최변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악.”
그의 비명이 지하주차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8*
덜컹거리는 차 안.
삼십 대의 남자가 뒤쪽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연다.
“유남 아저씨, 이 사람 강회강 맞죠?”
그의 말에, 앞에서 운전하고 있던 50대 남성이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 곰탱이 같은 녀석아.”
곰탱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의 광대뼈에는 일자로 난 흉터가 꿈틀거린다.
“아 씨. 저 곰 아니라니까요. 왜 자꾸 곰탱이라고-”
커다란 침을 튀겨가며 말하는 그를 본, 비슷한 연령대의 사내가 인상을 쓴다.
“환자도 있는데 입 좀 다물지.”
순간, 둘의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곰탱이라 불린 남자가 눈동자를 옆으로 돌린다.
“... 칫. 알았다.”
털썩.
투덜거리며 몸을 의자에 기대는 그였다.
조용해지자, 이번엔 맨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유남이라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연희야, 강회강 그자는 괜찮아 보이는가.”
“예. 약간 영양 상태가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새로 생긴 흉터는 없어 보여요.”
“다행이군. 이필상 자네 예전에 강회강을 본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의 말에 팔짱을 끼고 있던 사내의 고개가 뒤로 이동한다.
“예... 8년 전에 같이 영화를 찍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엑스트라여서 저자의 모든 기억이 돌아와도 떠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자가 이 꼴이 돼 있을 줄 몰랐습니다.”
“창고에 처박혀 있는 영웅이라 허허 거참. TS는 몰라도 그의 막냇자식 일을 도와준 그를 KS그룹마저 외면할 줄 몰랐어.”
“KS는 강회강님을 신경 쓸 틈이 없습니다. 지금 그룹 경영이 위태롭지 않습니까. 하지만 TS는... 어쩌면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문? 어떤 소문 말인가.”
이필상이 차창으로 시선을 돌린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의 잘못이 모두 TS에서 꾸민 짓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건 나도 들었네만. 하지만 증인들 모두 일치하지 않았는가. 설마 수십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는 건 아니겠지.”
“맞아. 나도 처음엔 이자가 그러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그들의 증언이 너무 일치하고 또...”
“최성국. 같은 말 또 할 거면 입 다물어라. 짜증 난다.”
“미... 미안.”
험상궂은 인상으로 소녀처럼 몸을 수그리는 최성국의 모습에 이필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입을 여는 이필상의 어깨 위로 기다랗고 하얀 손이 얹어졌다.
“성국씨도 많이 나아졌잖아요. 성질 내지 마시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 이어서 하죠. 만약 필상씨의 의견대로라면 그 많은 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긴데 가능할까요? 그게 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저도 남연희씨와 똑같이 생각해서, 강회강을 욕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만약 증인들 모두가 죄인이라면? 이라는 생각이요.”
그의 말을 들은, 차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반박하는 남연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아니요. 가능합니다. 당신들도 아실 겁니다. 8년 전 제가 화재 사건 때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요.”
“그거야 알지. 자네가 그때 얻은 트라우마로 공황장애가 와서 우리 섬으로 이사 오지 않았나.”
“맞아. 재미없게 놀자고 부르는데도, 숨어있기나 하고.”
“넌... 입 다물어라.”
그의 말에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려버리는 최성국이었다.
이필상이 자신의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사이, 남연희가 상체를 앞쪽으로 내밀었다.
“저는 몰랐던 사실이에요. 그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원래는... 평생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날 저는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짓밟혔습니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인간에게 밟혀서 뒤틀린 두 다리와 조금씩 다가오는 불길이 어찌나 무섭던지...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부르르 몸을 떠는 그에게 최성국과 남연희의 손이 다가가 어루만졌다.
“무리해서 이야기할 필요 없어요.”
“읍읍읍.”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남연희와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최성국의 모습에, 결국, 이필상의 굳어진 얼굴이 풀어졌다.
“괜찮습니다. 너도 그만 입 막고.”
“후아. 죽는 줄 알았다.”
“너도 참... 다시 이야기하자면, 저는 그때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더라고요. 그의 도움으로 저는 지옥에서 살아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자가 바로”
말하던 그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환자복을 입은 회강을 바라보았다.
“강회강입니다.”
“뭐! 진짜인가.”
“정말이에요?”
이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강회강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중얼거리셨지요. 어리석게도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진즉에 제가 보았던 화재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들 모두가 그렇게까지...”
“섬에 갇혀 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필성의 말에 차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의 지옥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곳에선 상식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맞아요.”
“악마보다 더한 놈들이었다.”
그 뒤로 차안은 침묵에 휩싸인다.
얼마 뒤,
“일 차로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네. 차를 버리고 이동하세나.”
“휠체어도 그새 준비했군요.”
“자네도 알지 않은가. 비록 조폭에게 잡혀있었지만, 우리 모두 각자 맡은 직업에서 한차례 이름을 날린 적 있는 사람들인걸. 게다가 강회강을 구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 더 열심히 할걸? 저 사람들 강회강 광팬 아닌가. 나도 그렇고. 허허허.”
“그럼 이동합시다.”
“예.”
그들이 나올 준비를 하는 사이, 차창 너머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 배낭을 메고 다가오고 있었다.
*9*
회강은 지금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그의 일행 모두가 미션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모두가 내 눈앞에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조폭 밑에서 같이 고생을 겪고 탈출까지 해서일까? 그들의 결속력은 그가 보기에도 엄청 끈끈해 보였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화 속 그들과 매우 유사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나저나 이들이 이곳에서 머물 줄은 몰랐네.’
회강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낡은 벽지와 갈라진 목제 가구들이 보였는데, 이곳은 회강이 김산수와 접선하기 위해 많은 돈을 주고 빌린 집이었다.
‘도망쳐 온 곳이, 내가 살던 집 근처라니. 선택지를 통해 알려주긴 했지만, 이곳에 다시 올 줄은 몰랐어.’
이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그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이유만큼 아리송한 건 없었다.
“강회강님이 우리 수장이라니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우리 강회강님은 절대로 그 싸가지 없는 사내가 아니라고.”
“맞아요. 저는 첫날 보았다니까요. 우리 불쌍한 혜원이의 은밀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욕망의 이글거리던 눈빛을요. 강회강님은 모태 솔로라고 들었어요. 게다가 여러 사람을 구한 분이 그런 음흉한 짓을 하다니요. 이분에게는 엄청난 모욕이라고요.”
“자자. 진정들 하고, 아무리 이분이 듣지 못하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집도 이분이 구하신 곳이라는데 은신처를 제공한 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싸가지... 욕망... 음흉이라니... 근데 모태 솔로라는 말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왜일까.’
회강은 게임과 현실 속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들을 때가 가슴이 제일 울렁거렸다.
‘기분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저들은 어째서 나를 구한 것일까? 그리고 언제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낼까?’
[저들도 언젠가 너를 버릴 거야. 두고 보라고.]
‘그래... 알고 있어. 이기적인 저들이 언젠가 나를 버릴 거라는 것을...’
회강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자들을 보다 눈을 감았다.
*10*
-오늘을 끝으로 돌발미션 *난 쉬운 호구 아니다.* 이 종료됩니다. 내일 자동 성공 처리되며, 마음대로 파티의 해체 및 탈퇴를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당신과 일행의 행동에 따라, 다른 돌발 미션이 발동됩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계속되는 전투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회강은 적의 머리를 밟았다.
꽈직.
조금씩 꿈틀거렸던 유인원의 몸체가 완전히 멈추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호구들과 함께 시체를 수거하는 일행들이 보였다.
‘오늘 아니면 내일...’
회강은 깊은 계곡 틈바구니로 숨기 시작한 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결론이 나겠지. 여기나 현실에서나.’
이들 모두 현실에서 그를 구해준 것을 보면 떠날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구하는데 적극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슬며시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이들이라면 나와 끝까지 가지 않을까?’
회강의 일행들에게서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구하려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에 회강의 마음속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 강회강, 네가 구해준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벌써 잊은 거야?]
환청의 말에 회강은 얼굴은 굳혔다.
‘정말로... 나와 같은 이가 없다고?’
[너와 같은 이라니? 잊은 거야? 너와 저 인간들 모두 똑같은 이기적인 인간이잖아.]
‘그건... 일단 오늘 저들의 선택을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지 말고...]
“우끼 우끼 우끼끼 우끼~~ 우~~”
회강은 환청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전투가 끝난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끼 우끼”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서 소리를 지르며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회강의 돌발 미션은 끝나가고 있었다.
- 작가의말
여러분 사람 때문에 다친 마음은 사람만이 풀 수 있습니다.
그걸 어제 찾아간 친구를 만나서 다시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ㅎㅎ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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