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울부짖다.
*12*
8층.
VIP와 간부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라서, 대리석 바닥은 기본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의자와 탁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곳에 거기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직원들이 내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주변으론 검은색 가면을 쓴 자들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평온해 보였으며, 커피 등의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지는 못했다. 특히, 넓은 대기실 구석진 곳에선 한 남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호랑이 가면을 쓴 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뭔가를 말하다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호랑이 가면을 쓴 자가 그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를 끌고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악.”
바닥에 널브러진 자를 회강이 거칠게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내가 이렇게 회복할 줄을 몰랐겠지. 안 그래. 양근악 이 쓰레기 새끼야.-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때 제 자식이 큰 병에 걸려서, 켁.”
회강은 한 손으로 양근악의 목을 움켜잡고선,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건 집 담보대출로 해결했잖아, 그것 말고 네놈이 바람피우다 꽃뱀에게 걸려서 돈이 필요했던 거 아닌가?-
“헉. 그걸 어떻게, 잠. 잠시, 손 좀 놓아- 컥.”
회강은 놈의 명치를 가격한 뒤, 놈의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뭐. 뭐하시는, 헉! 그것은!”
양근악의 눈동자에 열쇠 하나가 비쳤다.
회강은 그 열쇠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찌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기억이 모두 다 돌아와서 말이야. 최변인 그리고 김재생은 내가 가지고 있던 영상 녹화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더군. 그렇다면 그게 누구에게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너밖에 없더라고.-
“그. 그런.”
-계속 참았다면 우리도 못 찾았을 텐데. 너의 든든한 뒷배인 TS가 흔들리니까, 최변인에게 제거당할까 두려워서 못 참은 것 같은데.-
회강은 열쇠를 움켜쥐었다.
-어쨌든, 너의 표정을 보니, 보관함에 내 것이 있긴 하나 보네. 진즉에 이걸 내게 줬다면, 최변인이 해준 것 이상의 보답은 물론이고, 내게 평생 은인으로 대접받고 살았을 텐데.-
“제. 제발. 용서를- 악.”
회강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던 양근악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회강의 무릎 부분을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평생 죄인으로 살겠습니다. 그때 받은 돈, 아, 그 몇 배를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용서를 해주신다면- 컥.”
발을 휘둘러 그를 밀어낸 회강. 그의 입술이 비틀리더니,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이미 늦었다. 그럼 푹 자라고, 깨어났을 때는 지옥이 되어있을 테니까.-
“그. 그게 무슨.”
털썩.
회강이 그를 간단한 손놀림으로 기절시킨 다음, 그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방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소예궁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가 음울한 얼굴로 회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날 그렇게 쳐다봅니까.-
“저는 죽일 줄 알았습니다. 당신의 오 년을 지옥으로 만든 자 아닙니까. 간단히 영교로 몰아버리고 죽이는 방법을 취했어도 뭐라 할 자는 없었을 겁니다.”
-이자는 영교처럼 사람들을 죽이고, 연구하고, 피해자들의 피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자가 다른 자를 죽이려 했지만, 그건 법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처벌하면 충분한 죄를 치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예궁님-
“예.”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이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실이 밝혀지지 않습니까.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은 점점 사람을 극단적으로 만들지요. 예궁님은 그것에 먹혀서 이자처럼 되지 않길 바랍니다.-
“음...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이자가 나중에 회강님보다 강해진다면 어찌하시려고...”
회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힌다.
-제가 더 강해지면 됩니다. 설사 죽더라도, 저를 위해 그를 응징할 사람들과 저와 비슷한 믿음을 지닌 선량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도 저와 그런 자들에 의해서 진실을 밝힐 기회를 얻지 않았습니까. 좀 더 주변 이들을 믿으세요.-
“그런가요...”
-만약, 이자가 저를 죽였다면,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행복하게 살았을 겁니다. 당신은 그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이자는 악인이고 당신은 선인이지 않습니까.”
-저와 당신의 입장에선 우리 쪽이 선하겠지만, 이자의 입장에선 우리가 악인입니다. 이자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다른 이의 행복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겁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은 경계해야 합니다.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서 사람을 죽인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곳은 지옥일까요? 천국일까요?-
“그렇군요.. 혹시, 거인들을 살리신 것도...”
-목숨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들이 피해자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피실험자들이 거인으로 변한 사례도 있었죠.-
“아... 그러면 제가 죽인 거인 중에도...”
두 사람의 얼굴이 모두 어두워졌다.
-아직, 그들을 수용할 시설이 거의 없고, 거인이 된 상태에서 극히 일부분만 돌아왔으니까, 큰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기술이 완전해지고, 모두를 복구시킬 방법이 생기면 그때부터라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해도 될 겁니다.-
“예... 하지만. 조금은 무섭네요. 저도 나중에 괴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음...”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한 검은 가면을 쓴 자가 뛰어왔다.
“한길님이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전해달랍니다.”
“드디어...”
소예궁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그사이, 회강은 양근악을 눈앞에 사내에게 건네준다.
-잘 묶어 놓으세요. 중범죄자니 감시 잘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갑시다.-
“... 아, 예.”
두 사람이 함께 중앙계단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여섯 시간 뒤.
1층 로비.
넓고 커다란 공간. 그 안에 카메라를 든 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 앞에선 검은색 가면을 쓴 자들이 앞으로 나와서 한 명씩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한 명씩 얼굴이 드러날 때마다, 클럽마냥 로비가 반짝였다.
마지막, 일자로 흉터가 난 소예궁의 얼굴이 드러나고...
그들 모두 상체를 깊게 숙였다.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벌을 받겠다는 사람치고, 얼굴들이 모두 밝았지만,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고 욕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재진들 뒤에 말없이 서 있던 회강의 입가엔 짙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잘 해결돼서 다행이군.’
무려 네 시간에 걸친, 증거에 대한 공개와 증명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정부는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한 모든 이들을 경찰에게 바로 넘긴 상태였다.
‘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
공중파 방송이 중간에 끊긴 적이 있었지만, 이미 인터넷과 케이블을 통해 전해진 진실에 국민이 여러 정부 시설 앞으로 나와서 항의했고, 그 결과, 죄인을 자처한 저들 모두가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신들이 죄인이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이들을 선처해라.”
“힘내세요. 무조건 응원합니다.”
여러 사람의 박수 소리와 응원에, 로비 내 분위기는 훈훈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몇몇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소예궁의 눈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소예궁이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저기, 여러분께 한 가지 더 밝힐 충격적인 진실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분에게 증거를 전해 드리려고 했으나, 조금 전 그분에 대한 음해 발표를 한 무리가 있어, 혹시 바로 곤경에 처하실까 두려워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어서 보여주세요.”
“진실은 언제 어디서든 공개돼야 합니다.”
회강은 그들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사이, 소예궁이 준비된 곳에다 칩을 넣었고, 대형 모니터에서 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영상의 시작은 검은 연기로 가득한 하늘이었다.
쿵.
“아악.”
비명과 함께, 파편이 흩날린다. 검은 재와 핏줄기가 허공에 흩날리고, 사람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여기 사람이 떨어졌다.”
“근악! 도와줘!”
“알았어.”
영상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왼쪽 눈 밑에 큰 점이 있는 자와, 대머리가 유난히 반짝이는 구급대원 둘이 나타난다.
“읏차. 어때?”
“화상도 심하지만, 왼쪽 얼굴과 머리를 심하게 다쳤어. 빨리 이송해야 해. 어서 들것 가져와 난 이 사람 입안 좀 청소할게.”
“오케이.”
잠시 뒤.
“가져왔어.”
“셋에 들어서 옮기는 거다. 하나둘 셋!”
“읏차.”
“빨리 가자.”
“응.”
불타고 있던 TS 건물이 멀어지고, 흔들리는 들것에 고정이 풀렸는지, 갑자기 옆으로 틀어졌다.
그들 앞에 세워져 있는 차들이 지나가고, 구급차 내부가 나타난다.
“이 사람 강회강 아냐? 이 정도로 큰 덩치를 지닌 남자는 그밖에 없잖아”
“에이, 그의 절친이 이자와 비슷하지 않아? 누구였더라, 최씨인건 확실한데...”
“아니야, 반쪽 얼굴을 봐봐, 강회강이 맞잖아.”
“아, 그러네. 내 쪽은 흉해서 몰라봤어.”
“쯧쯧. 안 됐어. 사람 구하고 떨어진 것 보니, 인성도 TV에서 보던 것처럼 올바른 사람 같은데...”
“그러면 뭐해.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병신 짓 한 거지.”
“아니, 김재생, 너는 진급 누락 된 것을 왜 이분에게 푸는데. 전에도 너의 그 투덜거림 때문에 나까지 징계 먹은 것 잊어먹었어? 그만 지껄여 이번에도 문제시되면 난 외면할 거야.”
“쳇. 알았다. 근데 근악이 너 돈 좀 있냐?”
그리고...
“그래? 뭐 나중에 돌려줄 때 물어보지 뭐. 그럼 이건 내 주머니에다 넣고-”
라는 말과 함께, 영상은 끊겼다.
영상이 끝나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대한 로비 여러 곳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 사람들 TS 기자회견 때 나온 사람들 아냐?”
“속보다 속보.”
“방송 봤지? 관련인들 집이랑 회사 모든 곳에다 사람 뿌려! 어서!”
“이건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다!”
“너 아까 TS 기자회견 가서 찍은 거 다 삭제해! 개새끼들 내가 어떻게든 매장한다.”
“어떡하지, 난 이미 기사 올렸는데.”
“빨리 내려! 그가 바로 고소하면 우리 그냥 감방이야.”
“아 시발. TS 새끼들 때문에 우리만 피해 보게 생겼잖아.”
“사실 확인을 안 한 우리도 잘못이지. 어서 빨리 삭제하고 사과문 띄우자.”
회강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인 그가 휴대폰 액정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의 팀원인 유의명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회강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박정근 님의 자식을 친 놈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우연히 그의 아내의 지인이 일기장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답니다. 놈의 정체는 사람을 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연쇄 살인마였는데, 집에 의뢰인들이랑 증거들이...-
또 진동이 느껴지고 다른 메시지가 도착한다.
-저 왕류입니다. 박정근님이 주신 영상을 살펴보았는데, 거기에 뜻밖에 단서가 있었습니다. 그것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면, 저들이 저 영상을 부정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아...”
회강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그의 머릿속에선 많은 일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일어났을 때의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
달걀과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 속에 웅크린 자신.
모든 것을 주어도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
불구가 된 자신을 놀리는 이들.
한 사람 몫을 하고자 밤을 새워가며 근무했던 나날들.
너무 절망스러워 자살을 생각했을 때.
그러다 만난 진화.
나아지는 자신과 소중한 이들의 만남.
끔찍한 영교와의 싸움.
괴상해지는 세상에 불안해지던 나.
과거와 현재에 괴리에 흔들리던 자신.
그리고...
드디어 진실이 드러난 오늘.
회강의 볼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물방울이 되고...
“으아아”
그는 울부짖었다.
- 작가의말
갑자기 추워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옷 잘입고 몸조리 잘하세요.이럴때 몸조리 잘해야 합니다. 안 그럼... 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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