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다른 이도 힘을 쓴다.
전신에 느껴지는 고통에 회강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아들이면 견뎌라!]
갑자기 그의 귓가에 들려온 환청에 회강의 정신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사이, 삼 미터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적이 기다란 여러 개의 팔을 이용해서 돌멩이를 줍고 있었다.
‘저건!’
회강은 머릿속으로 조금 전 공격을 떠올렸다.
순간 회전 속도를 올려서 수십 개의 팔이 내던진 돌멩이들은 하나하나는 약했지만, 총알보다 더 강한 공격들이었다. 게다가 빨간 돌멩이들이라서 총알과 달리 피부를 뚫고 들어가기 때문에 회강의 기도 많이 소비하게 된다.
‘이제 한계다. 두 번은 버티지 못해. 그렇다면 공격만이 답이다!’
결심을 굳히자마자, 회강은 살짝 무릎을 구부린다.
”합!“
기합과 함께 회강의 몸이 순식간에 놈의 전면에 도달하고, 놈의 상체에 반달 돌칼을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먼지구름 때문에 회강을 보지 못했는지, 놈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순식간에 놈의 팔들이 잘려나갔다.
”크악.“
놈의 비명을 듣고, 얼굴을 찌푸린 회강은 오른쪽 벽을 타고 돌아서 등 뒤를 점하는 데 성공한다.
‘이제 끝이다.’
반달 돌칼이 놈의 뒷머리 부분에 닿으려는 순간, 등 뒤에 달려있던 팔들이 움직이더니 놈의 머리를 감쌌다.
투둑. 퍽퍽.
”큭.“
팔만 자르고 공격에 실패한 회강의 배에 놈의 팔 두 개가 타격하면서, 회강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휘청거리게 된다.
”크라락.“
틈이 생기가, 놈의 몸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오더니, 팔 네 개가 회강의 심장과 머리에 다가갔다.
‘젠장’
회강은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려고 했지만, 회강의 몸놀림에 뒤처지지 않는 속도로 적의 팔들이 움직여서 그의 행동반경을 좁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뒤가 아니라 옆을 쳤어야-’
퍽.
세 개의 팔을 피했지만, 한 개의 팔이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회강의 몸이 오른쪽 벽에 날아가 부딪힌다.
”윽.“
그가 일어서는 사이, 적의 팔들이 회강에게 다가왔다.
”죽어라!“
골을 울리는 외침에 일으키려던 회강은 다시 쓰러진다.
‘이렇게 죽을 수 없어!’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일어나려는 회강에게 다가오던 손들. 그 손들을 보며 회강이 절망스런 표정을 짓는 순간, 먼지구름을 뚫고 호파람과 호돌이 들이 나타났다.
휘익. 크앙.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호구들의 강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과 적이 부딪히게 된다.
쿵.
서로가 한 걸음씩 밀려나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컹컹. 휙.
”미물! 죽어!“
동굴이 흔들릴 정도로 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호파람이 휘두르는 꼬리를 적이 뒤로 물러나 피하면, 호돌이 둘이 거인의 다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거인이 호돌이 들을 공격하면 호파람이 꼬리를 이용해 옆구리나 뒤를 노리면서 싸움은 길어지게 된다.
그사이, 회강은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놈이 눈이 없는데, 어떻게 저들의 공격을 피하는 거지? 소리 진동 모든 게 불확실한 데도 너무 정확히 막거나 피하고 있어. 일반적인 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볼 방법이 있는 건가.’
타개책을 찾기 위해 집중하는 회강의 눈에 자연스레 은빛이 옅게 서리게 된다. 그러자, 회강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검은색 띠는 뭐지?’
적의 근처엔 검은색 띠 두 개가 있었는데, 그것은 적의 두 눈에서 빠져 나와서 천장과 적의 등 쪽 벽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선을 따라서 시선을 이동한 회강의 눈이 동그래진다.
‘저건! 내가 봤던 구멍이잖아! 그래 눈. 내가 계속해서 눈이 저 안에 있는 걸 보았었지. 저기에 놈의 눈이 있는 거야.’
회강은 돌멩이를 움켜잡고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지금 공격해봤자, 놈의 반응속도는 매우 빨라서 피할 수 있으니까, 호파람이랑 내가 겹칠 때를 기다려서- 지금이다!’
훙.
회강이 날린 돌멩이가 호파람의 머리 윗부분을 스치고 지나가 천창에 박혀 들어갔다.
퍽.
”으악!“
‘됐다!’
검은색 선이 끊어짐과 동시에, 놈이 한쪽 눈을 부여잡았다.
움직임이 멈추자, 호파람과 호돌이 들의 공격이 성공하게 된다.
콰직. 투둑.
호파람에 의해 적의 목이 반 정도 뜯어졌고, 호돌이 둘이 집중적으로 물어뜯은 왼쪽 무릎이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적은 왼쪽으로 넘어지게 된다.
‘끝났나.’
잘린 팔들과 목에서 많은 양의 피가 세어 나왔고, 이 분 정도 지나자 꿈틀거리던 놈의 몸도 멈추게 된다.
‘방심은 금물이야.’
벽에 몸을 기댄 회강은 입을 오므렸다.
휙휙휙.
그의 신호에 호파람과 호돌이가 회강의 곁으로 돌아왔다.
”회강님!“
김산수는 비틀거리며 회강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예. 견딜만합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다음부턴 제 앞을 막지 마세요. 최대한 회강님 몸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서 다른 한 명이라도 더 살지 않겠습니까.“
-막을 수 있어서 한 겁니다.-
”거짓말은 그만 하세요. 막을 수 있다는 분이 돌연변이 거인보다 약해 보이는 주먹 공격에 비틀거리십니까.“
-그건.-
메시지를 입력하다가 회강은 다가오는 리장수를 발견한다.
-아무튼, 지금 제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김산수는 말없이 회강의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리장수님 회강님이 피곤하시다고 합니다. 이분은 쉬게 나두고 우리가 거인을 살펴보러 갑시다.“
-아. 네. 알겠습니다. 회강님 푹 쉬세요.-
김산수에게 이끌려 리장수가 멀어지자, 회강은 반개된 눈으로 거인에게 집중했다. 다시 그의 눈에 빛이 휩싸이고...
‘검은색이 완전히 끊겼다. 죽은 게 확실해. 설사 살아 있더라도, 우리 군인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어. 그나저나 우려했던 상황 중 하나가 나타났군.’
회강은 검은색 빛이 둘러싼 팔에 의해 큰 충격을 받았던 조금 전의 장면을 떠올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저놈만 특별히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괴물들 전체가 그럴까... 최소한 꽃 괴물은 나와 같은 힘을 쓸 줄 아는 이의 지식을 흡수한다면 쓸 수는 있겠군. 진화 속에서 사슴도 그랬고... 새로운 힘을 모두가 쓸 수 있게 된다라...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김산수가 언급한 공격을 원래 회강은 충분히 막을 만한 힘을 남겨두고 있었다. 삼 등급 거인의 공격에 맞게 힘을 배분했다가 예상외의 타격에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회강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신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피멍이 든 자신의 배 부위를 본 회강은 얼굴을 찡그린다.
‘조금만 힘이 약했어도, 피멍에서 끝나지 않고 내장이 터져 죽었겠는걸... 앞으로 괴물들 혹은 인간들과 싸울 때 더욱 조심해야겠어.’
”회강님 놈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김산수의 말을 듣자마자, 회강의 시야가 흐릿해져 갔다.
‘이런... 힘 배분도... 더 신경을 써야.’
회강의 의식은 푹신한 호파람의 피부를 느끼며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9*
귀여운 남자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누구지?’
회강이 궁금해하는 가운데, 아이가 살짝 풀이 죽은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형아, 사실은 엄마가 이리로 데려오라고 시켰어.]
[... 그렇구나.]
[형아 표정이 이상해. 어디 아파?]
‘내 표정이 이상하다고?’
그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지만, 그의 팔을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안 움직여지지? 그리고 시야는 왜 갑자기 흐려지는 건데.’
이때, 굳은살이 받혀 있지만 앳된 피부가 보이는 손이 아이의 머리 위로 올라와 쓰다듬기 시작한다.
‘저건... 내 손이 아닌데?’
[아니야. 그냥 슬퍼서 그래. 너와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됐네.]
[왜? 형아 어디 가?]
아이의 물음에 시야가 위아래로 흔들리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이동한다. 거기엔 검은색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과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흔들리는 시야. 이내 빠르게 이리저리 시야가 움직이고, 곳곳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후.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정은 끊고 살았어야 했는데...]
[형아?]
[네 엄마가 왔어.]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다시 한 번 더 손이 나타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여기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숨어있어. 내가 네 엄마를 피해 도망칠 테니까, 큰 소리 다음에 조용해지면 무조건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거야. 알았지?]
[응.]
손에 새끼를 거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꼭 아래로 가야 해.]
[응 형아.]
[그럼 간다. 잘 있어.]
[응.]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나무 및 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시야가 높아진다. 그리고 한 여인과 눈을 마주친다.
[잡아!]
뛰어오는 남자들을 피해 몸을 돌렸는지, 시야는 짙은 어둠이 깔린 숲속으로 향했다.
[민아. 내 몫만큼 행복해라...]
‘민? 그게 누구지?’
회강과는 별개로 이 시야의 주인공은 숲을 헤치고 가고 있었다.
[잡아!]
[물건을 찾기 전까지 죽이지 마!]
[절대 주지 않아. 절대로.]
뛰던 와중에 손이 나타나더니 은빛 시계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회강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저건 최변인이 가지고 있던 거잖아. 저게 왜! 이 손에. 헉.’
갑자기 시야가 왼쪽으로 홱 돌아가더니, 낭떠러지가 눈앞에 들어왔다.
[악!]
비명과 함께 나무가 확대되더니, 시야는 어둠에 빠지고...
‘이번에도 그 녀석이 보였...’
회강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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