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6*
한 시간 뒤.
왕류의 안내로 봉현 경찰서에 부근에 도착한 회강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칠 층 높이의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기생충들이 이곳저곳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곳까지 덩굴 기생충들이 점령했는데.-
-예. 변절자들도 없는 것을 보니, 소식이 끊겼을 당시에 당한 것 같습니다.-
-만약, 후퇴했다면 어디로 갔을 것 같나.-
-음. 오는 동안 큰 무리가 보이지 않은 걸 보면 금산 쪽으로 후퇴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아예 항주로 가지는 않았을까?-
-거기도 여기만큼이나 피해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무리해서 사람들을 데리고 거기로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금산에 큰 대피소가 하나 더 있으니 거기로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거기로 이동하지.-
-예. 여기서 금산이면 저쪽입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본 회강은 입을 오므렸다.
휙휙.
휘파람 소리에 기생충을 먹고 있던 뱀이 회강을 바라봤다.
회강은 크게 손을 휘두르자, 휘파람 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촤아악.
심하게 출렁거리는 물살을 가르며 이동하던 중, 왼쪽 건물 창가에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가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자, 쭉 당겨진 시야에서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이구나!’
휙.
회강은 휘파람과 함께, 뱀을 움직여 십 층짜리 건물에 다가선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본다.
거기엔 이십 대 청년이 그를 향해 입술을 들썩이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기생충들이 공격하고 있어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데, 해석되다니. 뭔가 진화에게 이용당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가자!’
그는 바로 몸을 날려 뱀 등 위로 올라탄다.
와장창.
바로 돌멩이를 날려 창문을 깨트림과 동시에 웅크린 회강이 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탁.
무사히 착지한 회강은 곧장, 방패를 들고 기생충들을 막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그들과 부딪히기 직전, 회강이 점프했다.
훙.
-헉-
-뭐야!-
‘우선 다섯 마리부터!’
기생충 무리 위에서 회강이 몸을 회전시켰다.
삭삭.
반달 돌칼과 빠르게 회전하는 회강의 몸놀림에 의해서 기생충들의 머리들이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나버렸다.
착지하기 직전, 독주머니를 밟지 않기 위해, 회강은 한 발만 내디뎠다. 마치 학이 서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한 그가 무릎을 굽혀 날아올랐다.
퍽퍽.
그가 있던 자리에 기생충들이 몸을 부딪치고선 꿈틀거리는 사이, 회강은 몸을 반전시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수가 많아. 복도에 거의 가득 찼다.’
복도에 수십 마리에 기생충들이 바글거리며 회강이 있는 곳을 기어오고 있었다.
‘한꺼번에 덤비면 골치 아프니까, 최대한 빨리 두세 마리씩 처리하자.’
마음 굳히자, 그의 다리 부분에 은은한 빛이 감돈다.
쿵.
천장을 박찬 회강은 바로 아래로 내리꽂히듯 몸을 날렸다.
꽈직.
정확히 두 놈의 머리를 밟아 터뜨린 회강은 앞으로 나갔다.
꽈직꽈직꽈직
계속해서 머리만 밟으며 나아가는 회강. 간혹 기생충들이 튀어 오르면 반달 돌칼로 머리를 베어버렸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기생충들이 정리되고, 복도 끝까지 나아간 회강이 계단에서 추가로 올라오는 기생충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맨 처음 그가 들어왔던 곳으로 뛰어갔다.
‘한번 온 곳은 무조건 다시 온다. 어서 이들을 데리고 도망가야 해.’
회강이 들어섰을 때, 마침 왕류가 뱀의 등을 타고 창문으로 넘어온다.
-강형. 저를 놓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저길 바라. 기생충 무리 보이지? 도와달라고 해서 황급히 이 안으로 뛰어들어간 거야. 그리고 내가 위험한 곳에 약한 너를 데리고 들어가겠냐―
순간, 멍한 얼굴이 됐던 왕류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음... 뭐라 반박을 못 하겠네요. 그나저나-
그가, 기생충 무리를 가리켰다.
-저렇게 많은 무리가 온 거면, 이곳으로 계속 보낼 텐데. 어떡하실 작정이십니까?-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그동안 나는 이곳에 남은 기생충 무리가 있는지 싹 돌아봐야겠어. 아, 변절자도 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창문에 붙어 있어라. 여차하면 그냥 바깥으로 점프해. 뱀이 알아서 구해줄 거야.-
변절자라는 말이 나오고부터 얼굴이 어두워진 왕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이들과 의논해서 같이 이동할 방법을 찾아볼게요. 회강님도 조심하세요.-
그렇게 그들의 대화가 끝나고, 회강이 몸을 돌리자. 그의 앞에는 회강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던 청년과 사십 대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이 회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사람의 인사와 함께, 뒤에 서 있던 사람들도 회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들은 회강의 얼굴이 살짝 움찔했다.
‘이들 일본인인데?’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그들의 행색이 이곳 주민들 복장이 아니라 화려한 옷차림을 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기다란 칼을 지닌 자도 있으니...’
그의 등 뒤로 왕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형, 아무래도 제가 건물을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요.-
그의 말에 회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아, 이 건물엔 저희밖에 없습니다.-
눈앞 젊은 청녀의 입에서 어눌하지만, 중국어가 튀어나오자. 이번엔 왕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저희 말을 할 줄 아시는군요.-
-예. 상하이 타워에서 근무하던 은행원이거든요.-
‘마침 잘 됐군.’
회강은 왕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둘러봐야겠다. 그럼 부탁해.-
-예. 예? 형님. 형님!-
그의 부름을 무시한 회강. 그는 서둘러 그곳에서 벗어났다.
‘미안 고생 좀 해라.’
그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어제부터 머리가 좀 아파서 말야. 무리하면 또 쓰러질 것 같거든...’
고등학생 때부터의 기억이 돌아왔지만, 두통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었다.
‘진화에서... 사람들은 괜찮게 지내고 있을까?’
계속되는 위기로 인해서, 회강은 좀처럼 진화에 접속할 기회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새로 합류한 경호원들이 잘 지켜줘야 할 텐데... 그리고...’
그가 진화 속 일행을 걱정하면서,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본다.
한 층씩 차례대로 점검하고 위로 올라가던 회강.
부스럭.
‘음?’
그가 들려온 곳에 고개를 돌린다.
‘저긴 비상계단인데...’
문이 열린 곳으로 회강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반달 돌칼을 쥔 채, 조심스레 그곳으로 다가간 회강은 귀를 기울인데.
“후우~~ 후우~~”
‘작지만 인간의 숨소리다.’
그는 조금씩 몸을 낮추었다. 그러자, 열린 문 아래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바로 문 뒤군. 변절자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그건 확인해 보면 알겠지 바로 이렇게!’
캉. 캉.
크게 휘둘러진 회강의 손에 잡혀있던 반달 돌칼이 철제문을 대각선으로 잘라버렸다.
쿵.
윗부분을 거칠게 회강이 왼손으로 밀자, 드러난 곳을 내려다본 회강은 한 사람과 시선을 마주친다.
‘아이?’
머리를 뒤로 묶은 초등학생 또래의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약간 야윈 아이가 부르르 몸을 떨면서 처량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회강은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아이가 숙주가 됐을 수도 있어.’
기생충은 주로 어른들을 숙주로 삼지만, 죽음에 다다르기 직전에는 아이도 가리지 않고 파고 들어간다.
‘가까이서 튀어나온 놈들은 나도 위험해.’
그는 다가가는 대신 메시지를 띄운다.
-너는 누구냐?-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에 움찔한 것도 잠시, 아이의 굳어진 얼굴이 살짝 풀렸다.
-저는 오가와 린이라고 해요.-
-나는 강이라고만 불러라. 그러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이곳에 숨어있는 것이냐. 사람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아래층이라는 말부터 린의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가 절대로 아래로 내려 가지 말랬어요.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고 내려가면 나쁜 일을 당한다고 했어요.-
-엄마는 어디에 계신 거니?-
-어제 먹을 것을 찾아오겠다고 아빠랑 비상계단 아래로 내려가고선 오지 않았어요.-
‘어제라... 그렇다면 둘 중 하나구나. 이 아이가 변절자던가. 아니면 지금 아래에 있는 자들이...’
회강의 얼굴이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아래에 있는 자들이 나쁜 사람들이란 뜻이 된다. 정말 네 엄마에게 그렇게 들은 거 맞니?-
-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내 말에 순순히 대답하는 거지? 내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제 친구가 그랬어요. 가족을 구해주신 은인이라고 메시지를 허공에 띄우는 신기한 마법을 부린다고... 아저씨가 그 사람 맞죠?-
-맞는데... 혹시 그 아이 이름이 뭔지 아니?-
-와타나베 유토요.-
이름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듬성듬성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와타나베 이 장난꾸러기 녀석. 나중에 통신이 되는 즉시, 혼 좀 내야겠어.’
-혹시, 그 이야기를 부모님이나 다른 이들에게 한 건 아니지?-
-네?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다른 아이들에게도 자랑하고 다니던데요?-
“아...”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호텔로 돌아가야... 아참. 제일 중요한 걸 물어보지 못했구나.’
-언제 그 얘기를 들은 거지?-
-음... 제가 여기서 화상채팅으로 들었으니까... 일주일 전이요-
회강은 입술을 깨문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겠는-’
휙휙.
비상계단 창문을 통해 들려온 휘파람 소리에 회강은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가려던 그는 멈칫한다.
‘아이가 있었지... 아무리 정확한 이야기를 해줬더라도 초기 변절자도 유려한 말투로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어.’
그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야위긴 했지만, 큰 상처를 입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기생충이 파고드는 곳은 총 세 곳, 입, 명치, 그리고 항문이다. 파고든 곳에 점이 남는데, 입안은 확인해도 알 길이 없고, 명치는 주로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항문을 확인할 수도 없으니...’
-미안한데, 창문을 내다봐야 하거든. 잠시 아래로 내려가 주면 안 되겠니?-
그의 부탁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가 몸을 힘겹게 일으키더니, 휘청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빠르게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기생충 무리!’
수백의 달하는 기생충 무리가 휘파람 뱀 주변으로 몰려 있었다.
그는 뱀의 몸 이곳저곳에서 상처가 난 것을 보자마자, 눈을 번뜩이더니 아래로 몸을 날렸다.
‘어디서 감히 내 친구를!’
첨벙.
엄청난 물보라와 이어진 충격파에 뱀과 기생충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특히, 체중이 가벼운 축에 속하는 기생충 중 일부는 위로 날아올랐다.
탁탁탁. 쩝쩝.
뱀이 튀어 오른 기생충들을 잽싸게 입에 넣었다. 그사이, 회강은 온몸에 은은한 빛을 띤 채 다가오는 기생충 무리를 거침없이 베어버렸다.
회강이 입을 오므렸다.
휘~~익.
그러자, 뱀이 갑자기 고개를 수면 아래로 처박았고, 휘파람 뱀의 머리를 밝고 선 채로 회강이 물 위로 솟구쳐 올라온다.
촤악. 삭삭.
뱀의 머리 위에서 허공에 뜬 기생충들을 베어버린 회강은 보트 위로 몸을 날렸다.
심하게 흔들리는 보트가 일으킨 진동을 느끼고 다가와 몸을 날리는 기생충들에게 그는 쉴 틈 없이 반달 돌칼을 휘두른다.
보트 위로 수많은 기생충의 사체가 쌓였지만, 회강의 얼굴은 펴지지 못했다. 계속해서 다가오는 기생충 무리가 보인 것이다.
‘너무 많은데...’
-사방에서 오는 기생충 수가 수천은 넘어 보입니다. 우리가 포위당한 것 같으니, 어서 위로 피하세요. 좁은 통로에서 막아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읽은 회강이 입술을 깨물었다.
‘위에서 떨어져 내린 충격음에 오는 건가... 하지만,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튼 이만 위로 올라가자.’
회강은 보트를 강하게 박차고 날아올랐다.
뱀의 머리 위로 올라간 회강이 손으로 뱀의 오른쪽 눈 윗부분을 살살 쳤다. 그 행동을 한 직후, 회강이 움찔한다.
‘아차, 나도 모르게 우리 호파람에게 했던 짓과 똑같은 신호를-’
“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뱀의 행동에 회강이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걸 아는 거지. 설마, 이것도?’
그가 뱀의 머리가 사 층 창문에 다가가자 콧잔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뱀이 돌연 창문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잽싸게 몸을 뛰어서, 오 층 난간을 붙잡은 회강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두꺼운 뱀의 몸체가 커다란 창문 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그의 턱이 크게 벌어졌다.
‘어떻게 이것도 아는 거야. 이건 일주일이 넘게 노력해서 정한 약속된 행동인데... 그럼 내가 지금 만난 저 녀석이 호파람?’
-강형 뭐해? 어디 다쳤어? 형 형!-
-아. 올라간다. 비켜라.-
안으로 들어온 그. 그는 전면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왕류와 회강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온 왕류가 회강의 몸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괜찮은 거 맞지? 갑자기 형이 떨어지는 모습을 얼마나-
-류야-
-응? 왜?-
-너는 저자들이 사람으로 보이냐.-
그의 말에 왕류의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헉.”
왕류의 눈동자에 비친 곳에는 흐릿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아악!”
-형!-
왕류의 외침과 함께, 회강은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반달 돌칼을 겨누었다.
그때.
휙!
갑자기 뱀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회강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군청색의 뱀의 몸체가 그들을 모두 휘감아버렸다.
뱀과 회강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회강의 입에서 한 단어가 터져 나왔다.
“너구나!”
- 작가의말
과식 과음 조심하시고, 안전운전 하세요 ^^
건강하고 즐거운 설날 연휴 지내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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