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일주일 뒤.
제주도 서귀포시.
김산수가 회강의 머리 위를 보며 눈을 반짝인다.
”참새들이 이렇게 귀여울 줄은 몰랐습니다. 이강구랑 서장미가 호구 찾으러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저도 어서 빨리 확산 난이도 이상 선택해서 깨야겠어요.“
그의 말에 미소를 지은 회강이 손바닥을 펼치자, 회강 머리 위에 있던 참새 두 마리가 그의 손바닥 위로 내려와서 쫑알거린다.
짹짹.
-그래도 현실에서 호구의 위치를 알고 싶으면 교감이랑 공감 단계를 끝까지 올려야 합니다. 안 그럼, 현실에선 위치가 표시 안 되고, 결국 그들처럼 호구들이 죽을까 봐 걱정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근데, 교감이랑 공감이 잘 안 오르던데... 오르려면 결국 호구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굳이 호구가 아니더라도 진화가 달리 된 이들과 잘 지내면 자연스레 오릅니다. 물론,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해요. 안 그럼, 인간들은 뜻밖에 그런 쪽으론 예민해서 나중에 당신을 거부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되면 오히려 접근한 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저는 좀 오래 걸리겠네요. 거인들을 볼 때마다 아내의 몰골이 떠올라서 저는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어차피 호구들을 지킬 힘도 키워야 하니, 차근차근 도전해 나가세요.-
회강의 메시지를 읽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회강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빈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말 타는 곳이 있군요. 오늘은 저기까지만 가고, 내일은 제주도 왼쪽으로 돌죠.-
”저... 회강님.“
-예.-
”여기서 호잉이까지 찾고 외국으로 가신다고 했는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호돌이 들이 혹시 시베리아에 있나요?“
”아... 그게...“
회강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김산수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지금 회강님을 죽인다고 한 자들이 있는 중국입니까?“
”음...“
”아니면 최근 삼 등급 괴물들이 떼 지어 나타난 일본?“
”...“
”제가 알기론 호구들이 있을 만한 곳이라곤, 중국, 러시아, 일본밖에 없는데... 그 외에는, 헉.“
그가 눈을 부릅떴다.
”설마... 북한은 아니죠?“
-죄송해요.-
털썩.
김산수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 여보...“
삼일 뒤.
백령도 인근 해상.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김산수는 물에 팅팅 부은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으... 회강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북한 쪽에서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들이 우릴 속인 건 아닐까요?“
-이미 북한 곳곳에서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건 세계 전체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중 제일 화력이 집중된 평양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곳의 군부가 각각 한국, 중국, 러시아 쪽으로 들어갈 움직임을 취하고 있죠. 그중 한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는 남포와 그 밑을 관장하는 리실수라는 사람이 정부를 통해 직접 저에게 요청한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계속 언어장애인 행세만 하면서 괴물들만 때려잡으면 됩니다. 그 후에 대가로 억류된 외국인 연구가 한 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그 와중에 평양에 잠입해서 호돌이 들을 데려오는 건 당연한 거고요.-
”순순히 그들이 협조할지. 막상 잡아놓고 회강님을 협박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의 의뢰는 진화에서 중개한 돌발 미션입니다. 그리고 북한말도 알아서 진화 쪽에서 해석한 뒤, 우리만 볼 수 있는 메시지 형태로 띄워줄 겁니다.-
그의 메시지에 김산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즉에 그 말씀을 하셨다면 제가 걱정을- 헉.“
갑자기 파도가 그의 전신을 쳤다.
”켁켁.“
회강이 물을 마셔서 허리를 굽힌 김산수의 등을 두드려줬다.
-집중하세요, 만약 파도에 바다 안으로 들어가면 호파람도 못 구해줍니다.-
”예. 알겠- 우왁.“
철썩.
더 거센 파도를 맞은 김산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뺨 맞은 사람마냥 이리저리 붉은 자국이 심하게 난 그의 모습을 본 회강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피었다가 사라졌다.
딸랑딸랑.
갑자기, 북쪽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회강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걸 보니, 기다리던 상대가 왔습니다. 이동할 테니, 꽉 잡으세요.-
”네.“
휘익휘익.
거센 비바람을 뚫고 그들 앞에 나타난 작은 어선을 향해, 호파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 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상대 쪽에서 길쭉한 얼굴과 몸매의 날카로운 사십 대로 보이는 장교 하나가 회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장교의 어눌한 한국말을 듣자마자, 회강은 김산수의 목덜미를 잡고 바로 호파람 등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악!“
쿵.
출렁출렁.
상대 쪽에서 고함이 들려오는 순간, 회강과 김산수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오른다.
-조심하세요. 이 배는 오래된 거라 잘못하면 침몰합니다.-
-죄송합니다.-
-반갑습니다. 리실수동무의 부하 감간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진화에게 돌발미션을 받고 온 강회강, 이쪽은 제 동료 김산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눈인사와 함께 자기소개가 끝나자, 장교가 손으로 한곳을 가리킨다.
-곧장 남포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선장실에 들어가셔서 준비된 군복으로 갈아입어 주세요.-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군요.-
그의 메시지에 장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드득.
”평양의 종간나...“
-평양의 노비 새끼들이 우리에게 들어올 식량은 물론이고, 함경북도에서 생산된 탄약들도 죄다 독점한 상태라서 힘듭니다. 핵미사일이 있는 함북 쪽과 평양만 꽉 잡고 있으면 자기들은 산다 이거지요.-
-그러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편입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돼지 새끼가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 우리 자식들을 죄다 평양에다 잡아 놓았습니다. 자식들이랑 인간답게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들이 죽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음...“
출렁.
”왁.“
김산수와 다른 이들이 갑판을 부여잡는 사이, 회강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선장실로 걸어갔다.
-우선 파도가 심해지니 이동부터 합시다.-
-알겠습니다. 장순동무 출발시켜.-
감간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배는 출발하고...
호파람이 그들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시간 뒤.
남포시 외곽.
허름한 군용 창고 안은 주민들에 의해서 시끄러웠다.
-음식 좀 주세요.-
-동무들 제발 주세요. 제 아이가 죽어갑니다.-
-아이가 떨고 있어요. 제발 담요를 주세요.-
질척거리는 바닥을 걸으며 그들의 모습을 보던 회강이 입술을 깨문다.
‘돈을 무기개발에 주로 처발랐으니, 십 년이 넘도록 계속 일어나는 홍수를 대비 못 하는 거 아냐. 거기다 지만 잘 먹고... 더러운 돼지 새끼.’
한국에서 뉴스로만 접했지, 이렇게 눈으로 직접 참상을 보니, 남쪽에서 태어난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만약 북한에서 그 꼴이었다면... 배급도 못 받고 죽었겠지. 장애인에게는 식량조차 주지도 않는 곳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주요 생산시설이나 군부대가 있는 곳을 제외하곤, 아예 식량 배급마저 끊긴 상황에 부닥쳤다는 것을 확인한 회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최소한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는 사라져야 하는데, 가만, 그러고 보니, 북한은 나라가 아니라 테러단체가 점령한 곳으로 생각하는 게 맞지? 그리고...’
그가 깊은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있던 곳을 지나쳐서, 그나마 나은 행색을 한 이들과 군인들이 움직이는 장소에 도착한다.
맨 앞에서 회강일행을 이끌고 있던 감간수가 멈췄다.
-이 문 너머에 리실수님이 계십니다. 강회강님 혼자만 들어가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산수님은 이분을 따라가서 먼저 쉬세요.-
그의 메시지에 김산수가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여기에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편히 쉬지 못할 것 같아서요. 주변이... 좀 그렇잖아요.-
그의 말에 회강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바닥만 나무로 깔린 곳 위로 많은 수의 군인들이 자고 있었고, 악취는 여전했으며, 이곳저곳에 군용장비가 널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저기에 앉아 계세요. 나중에 같이 이동하죠.-
-예.-
김산수가 그가 가리킨 곳으로 가서 앉자, 회강은 감간수를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리실수님 호랑이 동무가 왔습니다.-
-그래. 들여보내라.-
-예.-
-들어가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안쪽 공간은 깔끔하게 정리된 집무실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그는 산도적처럼 수염을 기른 건장한 체구의 오십 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웃으며 회강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민다.
-동무가 남한에서 제일 유명한 강회강이군. 반갑네.-
-반갑습니다.-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해주시에서 나타난 괴물들을 막아달라는 거였지만, 홍수 덕분에 놈들이 평양으로 몰려갔어. 남은 놈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우리 자랑스러운 인민들로 충분하네. 그래서 의뢰내용을 변경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내용을 보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당연하지. 잠시만 기다려주게. 나이가 많아서 내가 좀 느려.-
-아닙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돌발 미션 *동무, 우리도 호구라우*의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
*동무, 우리도 호구라우* [진화 중재]
<내용>
-동북아시아 최빈국이자, 가장 인권이 부실한 곳인 북한 남포에서 회강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평양에 붙잡힌 이들을 구하고자, 오래전부터 평양을 제외한 여섯 곳의 군부와 연합해 자신들의 자식들을 빼내 올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일어난 대홍수로 평양으로 괴물들이 몰리면서 그들의 내부의 틈이 벌어졌고, 이때가 유일하게 자식들을 구해올 타이밍이라고 여긴 그들은 그동안 준비해온 작전을 실행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회강님의 호구인 호파람을 보고 색다른 작전을 떠올렸고, 그것엔 회강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절반 이상 탈출시킨다면, 여섯 군부 모두 한국에 바로 편입한다는 선언을 하겠어.“
-회강님, 그들의 요청에 수락하시겠습니까?(Y/N)
<성공 보상>
1. 함경북도와 평양을 제외한 전 지역의 한국 평화 편입.
2. 회강님의 행동에 따라, [요소 숙련도]의 상승.
3. 진화는 테러집단의 축소를 환영합니다. 평양에 들어서는 순간, 호구들은 알아서 회강님을 찾아가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더 위험한 일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김산수를 떼놓고 왔어야 했어.’
원래는 제주도에서 겁만 살짝 주고, 혼자서만 이동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김산수가 다른 일행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려오게 된다.
‘그리고... 허한 마음에 허락한 것도 있지.’
회강의 위치가 바뀌자, 그의 주변 이들의 행동이 모두 바뀌었다. 어떤 이는 더욱더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오거나 멀어졌다.
예민한 회강으로선 그런 모습들이 너무 낯설어서, 그의 마음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던 와중에, 양의와 김산수 둘만 전과 다름없이 행동하면서 그들에게 맘이 쏠렸고, 그게 제주도에서 그를 데리고 이곳까지 오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생각하던 와중에 회강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나를 제일 괴롭히던 청소부가 이제는 제일 믿을 만한 이 중 하나가 됐구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갑자기 왜 그리 웃는 거지?-
-죄송합니다. 잠시, 제 동료와 대화를 나눈 뒤, 결정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일단 보내야겠어. 이번 일은 그가 빠져야 돼.’
-보안이 필요한 일이니, 이 안에서 한다면 허락하겠네.-
-알겠습니다.-
회강은 뒤에 있는 문을 열어 김산수를 찾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김산수와 눈이 마주친다. 그가 손짓하자, 김산수가 뛰어온다.
그사이, 문 옆에 서 있던 감간수가 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중요한 일로 김산수와 상의하고자 합니다. 리실수님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의 메시지를 읽은 감간수의 눈동자가 안으로 향하더니, 옆으로 물러선다.
-김산수님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회강은 김산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번 일에 대한 미션 내용을 보여주었다.
-위험한 일이군요.-
-그래서 김산수님은 이 일에서 빠져 주셔야겠습니다.-
-안 됩니다.-
-이번 일은 당신을 지켜 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
-회강님, 사람은 뒤를 지켜주는 이가 있어야 제대로 일을 하는 법입니다. 게다가 지금 이들이 처한 상황으론 저를 다시 그곳으로 데려가긴 힘들 겁니다. 게다가, 주민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위험한 이곳에서 혼자 억류되어 있느니, 그냥 회강님을 따라서 거기로 가는 게 훨씬 더 안전합니다.-
김산수의 메시지를 읽은 회강의 머릿속에 아까 전 군인들에게 애원하던 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산수님의 말이 맞다. 통제 사회에서 그리 큰 목소리로 군인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한계라는 뜻이야. 만약 내가 없을 때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후...“
-알겠습니다. 그럼, 산수님도 데려가겠습니다.-
-예.-
상의가 끝나자마자, 회강은 바로 허공에 손을 올렸다.
-수락하셨습니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자마자, 리실수의 얼굴이 환해진다.
”하하하하.“
-고맙군. 회강동무. 아니지, 이제 나도 한국 국민이 될 텐데. 회강씨라고 해야겠어.-
-완전히 수락한 건 아닙니다. 작전을 듣고 나서 실행할지 말지를 결정할 겁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우선 작전명부터 말하겠네. 작전명은-
그가 벽으로 가더니, 덮여 있던 천을 잡고 옆으로 걷었다.
거기엔 평양과 남포시의 지형도가 있었는데, 빨간색 화살표가 대동강 위에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평양을 향해 있었다.
-바로 평양 상륙작전이네.-
”평양...“
-과거 맥아더가 쓴 전술이지. 어떤가? 느낌이 좋지?-
그의 말에, 회강과 산수, 두 사람이 쓴웃음을 지었다.
- 작가의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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