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회강과 마주친 괴물은 마치 영화에서 나온 늑대 발톱마냥 길쭉한 손톱을 회강에게 휘둘렀다.
휙.
간단히 고개를 숙여 피한 그가, 반달돌칼을 좌에서 우로 휘젓는다. 그러자, 괴물 가슴에 대각선의 선이 생겼다가 사라지더니, 이내 붉은색 핏물이 뿜어져 나온다.
핏물은 회강이 지나간 장소에 흩뿌려지고,
질퍽질퍽
뒤에선 싸움에 참여한 이들에게 밟혔다.
왼쪽으로 피한 회강은 바로 눈앞에 나타난 팔뚝만 한 덩굴 공격에 앞으로 쓰러진다.
바로 머리 위로 스치는 두 개의 덩굴.
회강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순간 그의 전신이 빛을 뿜었다.
쾅.
일반인이 보면 마치 순간이동한 것처럼, 순식간에 괴물의 옆에 도착한 회강이 반달돌칼을 휘두른다.
”크라라.“
두 팔이 잘리자, 덩굴 모양으로 변한 혓바닥을 내밀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은 뒤에서 달려든 병사가 창으로 처리한다.
그사이, 다시 앞으로 나아간 회강은 몸을 회전시켰다.
”하압“
기합과 함께 앞으로 내디딘 왼발이 닿은 돌바닥이 움푹 팸과 동시에 그의 오른팔이 휘둘러졌다.
훙훙훙.
맹렬히 회전하며 앞으로 날아간 반달돌칼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뛰어오는 일 등급의 괴물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 있던 거인의 머리에 박힌다.
천천히 쓰러지는 거인을 배경으로 중상을 입은 늑대 두 마리를 제외한 다섯 마리가 회강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비친다.
크앙.
동시에 세 마리가 점프를 통해, 세 방향에서 회강에게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홱홱.
이때, 회강의 양옆에서, 은빛 선이 스치고 지나간다.
회강이 가운데 있는 한 놈을 주먹도끼를 찍는 사이, 호돌이 두 마리가 각기 한 마리씩 늑대들을 물더니, 바로 벽에다 패대기쳐버린다.
꽈직.
호돌이 들의 공격에 두 마리의 늑대가 양쪽 벽면에 박혀 버렸다. 그 뒤에 도착한 호파람이 중상이 된 늑대들을 삼키는 가운데, 전방의 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회강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뒤에는 그의 일행 전부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모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회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회강의 물음에, 김산수가 움찔하더니, 호돌이 들을 가리켰다.
”혹시 호구들입니까?“
-예. 산수님이 귀여워해 주던 호돌이 들이 이 녀석들입니다.-
그의 말에 김산수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진화 보다... 더 크군요. 게다가 그 정도 움직임에 공격력이면 삼 등급 아닙니까.“
-둘이면 모르겠지만, 혼자면 밀릴 겁니다. 돌연변이는 이 녀석들보다 반사 능력이 훨씬 더 좋거든요.-
”그렇군요... 하하하. 저는 돌연변이를 만나는 순간 도망쳐야겠습니다.“
-그럴 바엔 죽기 살기로 싸우세요. 김산수님 달리기로는 그냥 죽을 겁니다.-
”크음...“
김산수가 얼굴을 붉히고, 그 옆에 있던 리장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호파람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는데, 지금 녀석들의 행동을 보니, 호구들이 현실에도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그가 보고 있는 곳엔, 피 묻은 혓바닥으로 회강의 전실을 핥고 있는 은빛 늑대들이 있었다. 약간 얼굴을 찌푸린 회강이 녀석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저는 거짓말을 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나중에, 제 이름이 걸린 공식적인 정보 발표는 믿으셔도 됩니다.-
리장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나중이라... 그래요. 살아남으면 볼 수 있겠습니다.-
-꼭 살아남을 겁니다. 맘에 걸렸던 호구들도 저를 찾아왔고, 미션도 완료했으니, 곧 북한에 대한 압력이 올 겁니다. 우리는 그들이 혼란스러워할 틈을 이용해서 여기를 빠져나가면 됩니다.-
-문이라도 닫으면 좋겠지만, 무리겠지요.-
리장수의 말에 회강의 얼굴이 굳어진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 생각은 없습니다.-
그의 메시지에 리장수가 크게 움찔한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회강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말을 막은 다음, 괴물들을 가리켰다.
-희생한다고 해도, 이들이 만약 적들이 일부러 보낸 거라면, 퇴로가 있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아니면, 전에 영교 때처럼 사고가 난 건 아닐까요?“
-김산수님의 말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퇴로를 막으면 안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꽃 괴물이 아래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시면 모두 수긍하실 겁니다.-
”아...“
그의 메시지를 읽은 북한 쪽 사람들의 굳어있던 얼굴이 살짝 풀린다.
짝짝.
손뼉을 친 리장수,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뒤에 묶어놓은 인질들이 우리 정보를 알려 줄 수 있으니까, 일부는 데려오세요. 나머진 사체들을 한곳에 모아놓습니다.-
”예.“
군인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리장수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고, 가만히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던 회강의 입술이 살짝 뒤틀렸다.
-김산수님 그가 수상쩍군요.-
그의 메시지에 김산수의 얼굴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한 시간 뒤.
회강은 땀을 많이 흘리며 축 늘어져 있는 리장수에게 다가가 물통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생각보다 잘 싸우시던데, 예술인 아니셨습니까?-
그의 말에 리장수가 쓴웃음을 짓는다.
-아버지가 고위 간부라서, 어릴 때부터 군사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물론, 다른 북한 아이들도 체격만 좋다면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습니다. 나머진 자원을 캐거나 시설 정비만 하다가 군 생활을 마칩니다. 저도 원래는 오 년은 더 근무해야 했는데, 운 좋게 큰 형이 아주 잘해줘서 제게 기회가 찾아왔죠.-
그가 말하는 사이, 회강은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엔 수많은 흉터가 있었는데, 그것을 본 회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굳은살 흔적을 보면 아직도 수련하고 있다. 단순한 몸풀기로 생긴 건 아니야. 예술이 진짜일까? 아니면 단순한 연막? 음... 알 수 없지.’
아래로 내려가던 와중에서, 회강들은 수차례 괴물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때마다, 회강이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자연스레 북한 군인들과 교대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 리장수가 뛰어난 전투 실력을 발휘한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삼백여 미터가 넘는 이 긴 계단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김산수에게 항상 그와 떨어져 있으라고 해놨으니... 나만 조심하면 되겠군.’
회강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상의 사내 앞에다 메시지를 띄웠다.
-이익한님, 이 앞이 세 갈래 길인데, 어디로 가야 출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의 말에 구석에 앉아있던 이익한이 벌떡 일어서더니, 한 방향을 가리켰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곳이, 남포로 향하는 곳입니다. 배를 타고 중국으로 도망치기 위한 도주로라고 들었습니다. 정 가운데는 평양 북쪽으로 넘어가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이 연구소가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 연구소 너머에 개성으로 가는 통로가 있고요.-
-예. 정확히는 연구소가 그 길 중간에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듣기론 벽 양옆을 부숴서 미로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자기 연구원들도 제대로 통과 못 할 만큼 통과하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익한의 옆에서 호돌이 들에게 기대어 쉬고 있던 김산수가 상체를 일으킨다.
”그러면 우선은 남포로 이동해야겠습니다. 아직은 싸울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적들이 괴물들을 연이어 보낸다면 우리도 나중엔 견디지 못할 테니까요.“
김산수의 말에 리장수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김산수를 노려보았다.
-안 됩니다. 남포시 방향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이미 위쪽에서 우리를 파악해서 그쪽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럴 바엔 저들이 예측하지 못할 방향인 평양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쪽도 지키고 있으면 최악입니다. 차라리 남포로 가다가 적들을 만난다면“
-적들이 비슷한 시간 간격으로 우리에게 괴물을 보낸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게다가 나타나는 적들의 규모와 힘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적들이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일행 모두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만약 카메라고, 그로 인해 저의 신원을 파악했다면, 분명히 그들은 남포로 가는 통로를 막았을 겁니다.-
-하지만-
회강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두 사람 모두 조용히 하세요. 두 의견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틀립니다.-
”예? 그럼 어디로 가신다는 겁니까?“
회강은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을 본 모두의 눈이 동그래진다.
”저. 저기는...“
-저는 개성 방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아니, 그곳으로 무조건 이동합니다.-
그의 말에 김산수와 리장수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회강님!“
”강동무!“
하지만, 회강의 시선은 그들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돌발 미션 발동*
*우리를 죽여주세요.* [특수]
<내용>
-회강님은 사체들을 처리하다가, 여러 부위에서 다양한 문체의 글씨들을 발견했습니다.
”죽여줘.“ ”살기 괴로워.“ ”더는 살고 싶지 않아.“
특히 마지막에 그나마 얼굴이 정상이었던 괴물의 속삭임
”우리를 죽여줘“
에 진화는 회강님에게 미션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성공 조건>
1. 개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난 모든 괴물을 죽여야 합니다.
2. 연구소를 최대한 많이 파괴해 주세요.
<성공 보상>
1. [업] 365일 +
2. 다른 이들이 알아낸 새로운 힘에 대한 모든 지식을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3. 그 외로 달성한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조건 보상>
1. 회강님의 [업] 365일을 주신다면, 미션이 끝날 때까지, 연구원 및 괴물들을 제외한 당신과 일행에게 수십 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강제로 진화에 접속시키겠습니다. 미션을 성공한다면, 회강님이 저에게 맡긴 [업]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주의점>
1. 자신을 알라.
2. 거부해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신중히 선택해 주세요.
회강의 손이 올라가고...
-수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우리 호...-
김산수와 리장수가 의견을 표하기도 전에 회강이 반달 돌칼을 들어 올리더니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거센 고함이 통로 내부를 뒤흔들었다.
”우워워~~“
- 작가의말
으랏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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