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자극.
낮 중 평균적으로 제일 온도가 높은 세 시에 회강이 집 밖으로 나섰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이 소리쳤다.
”회강님. 제 자식을 살려주세요.“
”많은 이들을 구해주신 회강님의 자비심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자비를!“
그사이, 대문 앞에 마련된 기자회견자리에 선 그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TS와 번개를 이끄는 강회강이라고 합니다.-
”회강님 사랑해요.“
”마석을 무조건 베풀지 마세요.“
”어떤 미친 새끼가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작은 마석 하나에 최소 백만 원이 넘는 걸 공짜로 달라고 하는 건 정상이냐!“
”네가 자식이 있어. 있으면 말을-“
”능력이 없는 새끼가 목청은 높아서-“
”네놈 뒤져 볼래!“
”그래 죽여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보자. 왜 쫄 리냐! 죽여, 죽이라고!“
싸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경찰들이 나타나 그들을 갈라놨다.
”그만 하세요.“
”싸우시면 안 됩니다..“
시간이 흘러 진정된 분위기 속에서 회강은 발표를 시작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에게 마석은 없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본 순간, 사위가 적막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나운 눈길이 그에게 쏠린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관악산에서 제일 많은 변이체가 나온 거로 알고 있다. 거짓말하지 마라!“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해라.“
”뻔뻔하다.“
”더러운 새끼!“
”죽어라!“
몇몇은 돌멩이까지 던졌고, 그것을 간단한 몸놀림으로 피한 회강이 계속해서 메시지를 입력했다.
-그 이유는 진짜 변이를 늦춰주는지 실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실험의 내용은 여러 군데 배치된 모니터에 나오는 영상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틀어주세요.-
영상이 틀어지고, 몇몇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가운데, 소란은 진정되었다.
잠시 뒤.
”뭐야, 결론은 현재까지는 쓸모없다는 거잖아?“
”그러네...“
”흑흑. 밤새 소리치느라 진화도 못 했는데...“
”아들아... 아비가 미안하다.“
”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일었지만, 매서운 목소리도 많았다.
”지들 밥그릇 싸움에 우리 국민을 움직여!“
”개자식들!“
”도대체 언론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뭐한 거냐!“
”이제부터 관련 기업들 제품은 사지 않아!“
”강회강도 잘못이 있어. 진즉에 우리에게 알렸다면 좋았잖아.“
”맞아. 결국, 역공격할 욕심에 국민들의 소중한 하루를 날린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무단으로 임상 실험하는 건 불법이지 않나.“
”혹시 강회강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맞아. 지 돌 다 꿀꺽하고 주기 싫어서 영상 조작을 했을 수 있잖아.“
”아무리 강회강이 미쳤어도 그렇게까지 하겠냐.“
”미친놈이 어디 한 둘이야? 충분히 가능성 있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회강은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그는 옆에서 달려온 김산수에게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여기 기업에 돈을 받고 일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분들에게 경고하겠습니다. 직원과 함께 확인한 결과, 바람잡이 역할을 한 사람들이, 최소 열 분이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것도 오로지 이 안으로 들어온 자들만 따졌을 때 말한 겁니다. 우리 TS 측은 사람들을 고용해 정보수집중이며, 미리 TS에 가서 반성문 및 사죄 영상을 찍지 않는다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겁니다. 다시 한 번 더 알려드립니다. 여기에...-
삽시간에 강회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사라지더니, 삼 분의 일에 해당하는 일반 시민이 급히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리 썰렁 해진 거야.“
”크크크. 시위알바는 들어봤어도 이딴 건 처음 보네.“
”봐봐. 강회강을 욕하는 인간들 정상이 아니라고 했지?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저딴 알바는 왜 하는 건데.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사정이면 몰라. 옷도 멀쩡하게 입은 자들이 쯧쯧.“
주변이 고요해지자, 회강은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내부단속을 못 해서 진심으로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이것으로 마석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넘도록 극렬하게 들끓어 올랐던 강회강 마석 논란은 고작 이십 분이란 짧은 시간 만에 끝나고 만다.
-고작 개인의 팀도 나온 결론을 기업들이 몰랐을까?-
-아직 제대로 된 연구는 진행하지 못 한 상태, 마석 처분은 금물.-
-언제나 카운터펀치만 날리는 강회강, 그는 왜 먼저공격하지 않는가.-
-피실험자들의 회복까지 챙겨준 강회강, 그는 보살이다.-
휴대폰으로 뉴스 제목을 보고 있던 회강이 눈을 누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양의가 쪼르르 달려와 회강의 목과 어깨를 주무른다.
-고맙다.-
”헤헤.“
둘이 서로 마주 보며 웃는 가운데, 이미소가 나타났다.
”양의야. 집에 가야지.“
”오늘만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요?“
”안 돼. 여기 있는 게임기로 밤새워 놀려고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절대 안 되니까. 빨리 옷 입어.“
”선생님~“
아이가 조르는 모습에 회강이 그녀 앞에 메시지를 띄웠다.
-오늘만 여기서 자고 가게 해도 되잖아.-
”안 돼요. 저번에 회강님이 양의랑 같이 밤새워 논 거 제가 모를 줄 알아요.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으신 분이...“
갑자기 이미소가 말을 흐리고, 양의가 조용히 자신의 옷을 집어 들었다.
”아저씨, 다음에 같이 놀아요.“
-그래. 다음에 내가 괜찮아지면 같이 놀자꾸나.-
”저기, 방금 한 말은-“
-괜찮아. 이제 곧 열한 신데, 빨리 집으로 가라. 이러다 자정되면 큰일이잖아.-
”예...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얼음길 조심해.-
”네.“
”예.“
띠띠띠. 딸깍. 쿵.
그들이 나가고, 그의 입가에 맺혀있던 미소가 사라진다.
”음...“
가만히 자신의 입가를 만진 그.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던 그가, 테이블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부스럭.
테이블 위로 올라온 오른손에는 전에 혜원이 가져온 글자판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역. 그억. 기윽. 그윽“
어눌한 발음의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5*
[닥치지 못 해!]
갑자기 그의 귓속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에 회강은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앞엔 단 한 번도 보지 못 한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이 보였다.
‘뭐야. 난 분명 말을 연습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철썩.
번쩍이는 시야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든 그에게 여인이 소리쳤다.
[네놈의 말투는 항상 그년을 떠올리게 한다고 몇 번을 말해!]
[죄-]
철썩.
[닥쳐! 닥쳐! 닥쳐!]
광기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그녀의 행동에 겁먹기는커녕 회강은 마음속으로 분노가 들끓었다.
‘이 여자가 진짜! 응?’
회강은 삿대질을 하는 여인의 손가락을 잡아 비틀고 싶었는데, 그의 맘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 뭐야. 설마 이거...’
[꺼져! 당장 이곳에서 나가!]
그가 당황한 사이,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의 시야와 몸이 화려한 방문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을 나서고, 그 앞에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진열대 안 거울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딸깍.
어두운 복도를 걷기 시작한 그.
갑자기 그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형~ 나왔어.]
‘이 녀석은...’
자신보다 어린 아이. 그 아이는 그와 인연이 있는 자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왜 남궁민에게 물어보지 않은 거지?’
그와 관련된 꿈을 여러 번 꾸었지만, 기회가 있었음에도 회강은 물어보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가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아이와 눈을 마주친 그의 입에서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아버지랑 여행은 잘 갔다 왔니.]
[응. 아빠가 나 비행기도 태워주고 맛난 것도 많이 사줬어. 잠깐, 내가 형 꺼도 사왔는데...]
메고 있던 노란색 병아리 가방을 벗은 아이가, 안에서 은빛 시계를 꺼냈다.
[자, 내가 고른 거야.]
[민아, 정말 네가 이걸 골랐다고? 네가 어떻게 형이 시계를 좋아한다는 걸 알지? 말해준 적이 없는데, 거짓말한 거 아니야?]
그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그... 그게 사실은 아빠가 말해줘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 손이 나타나 머리를 쓰다듬는다.
[고마워. 소중히 보관하마.]
[헤헤...]
이내 밝은 모습을 찾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씻고 밥 먹으러 가야지. 형이 씻겨주마.]
[응!]
둘이서 같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건장한 체격의 이십 대 후반의 남성이 나타났다. 약간 여성스러운 얼굴의 남성이었는데, 정장 차림으로 한 채 그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속도 좋은 놈. 어머니를 죽인-]
[형. 민이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뭐! 이 새끼가-]
[어머니 일은 모두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저는 그날 형님이 어디 있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실 텐데요. 지금이라도 사실 집을 지키고 있었던 건, 제가 아니라 약혼녀 몰래 사귄 여자 마약하고 침대 위에서 뒹굴던 형이었다고-]
[그 입 다물어라. 역겨운 새끼, 진짜 원인이 뭔지 알면서 그딴 소리나 하고 너나 아버지나 더러운 짐승이야. 짐승.]
[형은... 아니에요?]
[뭐!]
사내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때.
[뭐 하는 거냐. 설마, 민이를 앞에 두고 싸우는 건 아니겠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야가 빠르게 뒤쪽으로 돌아갔고, 앞에 나타난 사십 대 남성의 얼굴을 본 회강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남. 남성현!’
KS 그룹 총수인 사내, 그 사내를 회강은 꿈속에서 두 번째로 본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아, 아버지라니!’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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