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9*
하루 뒤.
TS 본사 회장실.
작은 얼굴, 오뚝한 코,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커다란 눈.
미인의 조건을 모두 갖춘 얼굴을 한 김미령의 얼굴을 김대식이 빤히 쳐다보았다.
“너도 네 어미처럼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그의 말에 김미령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그러는 아버지의 행동은 엄마와 다른가요? 약자를 억압하고, 돈과 인맥만 중요시하며, 나아가 선량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행동 등이 엄마랑 너무 똑같아요. 특히 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자식을 가지고 그 짓을 시키다니... 더러워.”
그녀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건...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힌다.
“훗. 과거 TS에 있을 때도 그랬나요? 제가 알기론 그때는 성역처럼 접촉 자체도 힘들었다고 제가 취재한 사람들이 말해주더라고요. 근데 사고가 일어난 뒤 일 년이 지난 뒤부터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때가 회강 오빠의 모든 주식이 완전하게 넘어온 뒤였지요?”
“음...”
그녀의 비릿한 미소를 바라보던 그가 눈을 감아버렸다.
“용서를 비세요.”
“그럴 수 없다.”
“그가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 용서를 비는 게, 아버지와 저, 그리고 이 TS 모두가 살 방법이에요.”
“그의 성격을 모르지 않을 텐데. 녀석에게 적은 죽여야만 하는 존재다.”
“그거야 모르는 사람들과의 일이고요. 그가 한 번이라도 매정하게 지인들을 내치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겉으론 매정해도 뒤로 봐주는 거 아빠도 알잖아요.”
“후... 미령아...”
그가 눈을 뜨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인이라도 용서가 없는 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 마리의 맹수였다. 차라리 지금의 모습이 과거부터 있었다면 용서를 빌었겠지만... 그는 우리가 용서를 빈다고 해도 용서해 줄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너와 맺어질 인연도 아니고...”
“아빠!”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제가 그를 좋아해서 오빠에게 용서 빌라는 줄 아세요? 우리는 죄인이에요. 도덕, 법 등등 그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우리는 죄인이고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요!”
말을 마친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허공을 스치는 그의 손, 그가 황급히 소리쳤다.
“미령아! 어디 가려는 거냐.”
잠시 멈춰선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경찰서요.”
“가지-”
“막으면, 죽을 거야. 어차피 난 예전에 죽었어야 했다는 건 아빠도 잘 알잖아.”
“미령아...”
김대식은 뻗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아빠, 미안. 나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그럼 가볼게.”
김대식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를 본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아빠는 엄마완 달라. 그럼 이제-”
쾅.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최변인이 벌겋게 변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김미령이 입을 여는 순간, 최변인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읍읍.”
“변인 무슨 짓이냐! 어서 내 딸에게서 손을 떼라. 안 그럼-”
“안 그러엄! 내가 지옥으로 가게 생겼는데, 그렇게 만들 사람을 놓아주겠습니까. 저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아니, 저뿐만이 아니죠. 제 아내, 변호인단 등등 지옥으로 갈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들이 지금 이야기를 들었다면 가만있을까요?”
“자네도 방벽 사건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지 않은가. 최대한 막아봤지만, 소용이 없어. 지금이라도 모든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그 일로 우리가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증거도 증인도 모두 경찰이 확보했다고 들었어. 방법이 없다고 들었-”
“그들이 지금 신뢰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이미 그들은 연이은 영교와 관련된 사건 등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있습니다. 증거와 증인? 모두 조작됐다고 하면 됩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그가 있지 않습니까.”
“그? 그가 누군가.”
최변인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가고...
“누구긴요. 우리의 영원한 호구, 강회강이 있지 않습니까. 저번처럼 법무팀과 함께 문서만 조작하면 되잖아요.”
“읍. 읍읍.”
“그리고 김미령 너!”
강회강이란 말이 들리자마자, 반항하기 시작한 김미령을 최변인이 노려보았다.
“너도 더러운 년이잖아. 그것도 자기 어미를 죽인 패륜아. 맞지?”
그의 말에 김미령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비릿한 미소와 함께 최변인이 이죽거렸다.
“북한산에서 네가 사모님을 미는 모습을 본 목격자를 내가 알고 있거든. 시신을 끌고 가는 너와 아비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가지고 있다고.”
“자. 자. 자네.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요. 김대식 회장님이 과거엔 너무 맘이 약하셨잖아요. 그걸 아는 저로선 하루하루가 불안해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실종사건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오르더니.”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큭큭. 사정설명은 됐고, 살인은 최소 십 년이지, 만약 네가 함부로 방벽 사건에 대해서 떠들면 네 아비는 물론이고 너까지 들어가는 거야. 거기에 강회강 관련한 대국민 사기 사건까지 더하면 어휴, 평생 교도소에서 썩어야 할 텐데...”
최변인의 말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반항이 줄어들더니,
“김미령님. 그럴 각오는 돼 있으신가?”
그의 질문에 그녀는 눈을 감고 만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들으셨군.”
그녀의 얼굴에서 손을 뗀 그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미령의 어깨에다 손을 올렸다. 그러고선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살인자님. 나랑 똑같은 주제에 역겹게 구시지 마시고 이제는 쥐죽은 듯 사세요.”
“크윽.”
말없이 그를 노려보는 그녀를 보며 그가 싱긋 웃었다.
“잘 알아들은 것 같네. 역시 회장님 따님답다니까.”
“자네... 그만하게.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낮게 깔린 김대식의 말에 최변인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네. 회장님 말씀에 따르죠. 아, 북한산 관련 사진을 증명해야 나중에 뒤통수치지 않을 테니까. 있다가 보내드릴게요.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서 보낼 수 없거든요. 조금 뒤에 은퇴한 법무팀원들이 오면 바로 회의 열릴 테니까, 그때까지 쉬고 계세요.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가 고개 숙여다 핀 뒤, 회장실을 나갔다.
털썩.
동시에 두 모녀가 주저앉았다.
흑흑흑.
흐느끼는 김미령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김대식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여우를 범으로 만들었구나...”
*10*
같은 날 저녁.
회강 집, 거실.
-거기로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왜요. 다시 존대해주기로 하니까. 제 말을 흘려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회강이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자, 김산수가 겁먹은 자라마냥 움츠러들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회강님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다 걸리면 최변인에게 저에게 대한 중요 정보라도 넘기시려고요.-
“헉. 절대로 그럴 일 없습니다. 이제는 자식들의 목숨이 날아가도 배반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두 손을 모으고 애원하는 그의 모습에 회강은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주무른다.
-저는 당신이 처음 봤을 때의 어리숙한 놈이 아닙니다. 이 정도 계략 따위는 예측할 수 있어요. 그러니 다시는 독단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네...”
-가보세요.-
“그럼 쉬십쇼.”
김산수가 몸을 돌렸다.
축 늘어진 채 걸어가던 그의 앞에 갑자기 메시지가 뜬다.
-그리고 걸리면 그냥 불어버리고 일단 살아남으세요. 괜히 죽어서 자식들 울게 하지 말고.-
그의 메시지를 읽은 김산수의 뒷모습이 부르르 떨린다.
“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작게 중얼거린 김산수가 사라지자, 그의 옆에서 케익을 먹고 있던 왕류가 접시를 내려놓고선 회강을 바라본다.
-형님,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준 사람에게 너무 타박하시는 거 아닙니까. 추측만 하는 것과 정보를 가지고 대응하는 건 천지 차이임을 아시잖아요.-
-그러다가 진짜로 걸려서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냐. 칭찬은 과정까지 잘했을 때 하는 거야. 성과만 보고 칭찬하면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주입할 수 있어. 그런 자들의 조직은 언젠가 제풀에 넘어지게 마련이지.-
그의 메시지를 읽은 왕류가 입을 벌린 채 회강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날 처다봐.-
-상태가 얼마나 안 좋았으면, 이런 분이 그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나 싶어서요. 아쉽네요. 깨어나고 나서, 조기에 대응만 잘했어도 그렇게 사시진 않았을 텐데...-
-나도 그건 참 아쉬워.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현재 너를 볼 일은 없었겠지. 어쩌면 나도 김대식과 최변인처럼 됐을지도 몰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정신 빼놓고 있으면 어느새 잡아먹힌 채 나오질 못하게 되거든.-
-맞아요... 어제 상하이 시민들에게 돌팔매질 당해서 사망한 대은, 아니, 대명 호텔 주인도 맨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하다가 어느 순간 변해 있었다고 막내아들이 말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영웅이 되고자 했던 욕심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했으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왕류의 어깨에 회강이 손을 올렸다.
-너는 인간을 믿은 죄밖에 없다. 그런 자들을 제어할 수 없는 현 사회가 문제지, 사람을 믿고서 노력한 자가 문제가 아니야.-
-크윽... 예...-
왕류는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은 다음, 자신 앞에 있던 서류를 회강에게 내밀었다.
-이게 관악산에서 나타난 꽃에 관해서 외부에 공개할 정보입니다. 한번 보시고 틀린 부분이나 애매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알았다.-
회강이 받아들자, 왕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김산수님을 데리고 유의명님에게 가서 역공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 좀 나누다 오겠습니다.-
-김산수씨 좀 잘 달래주고, 유의명님은 김대식에 대한 실망이 많이 커서 흥분한 상태니 잘 고려해서 듣고, 또-
-형님이나 진정하시고 그것에만 집중해 주세요. TS와 관련해서 제일 냉정한 사람은 바로 저니까요. 오케이?-
“훗. 오게이.”
회강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도 마주 웃다가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회강은 서류로 고개를 돌렸다.
“음... 어드보자...”
서류가 온통 한문으로 쓰여 있었지만, 그가 보자마자 그의 눈앞에 해석된 문서 내용이 떠올랐다.
[개 꽃에 대한 보고서]
<형태>
1. 높이 : 19m
2. 최대 뿌리 길이 : 37m
3. 꽃 중앙 : 개
...
<상하이에 나타난 인간 꽃과 비교>
1. 오분의 일 정도 작다.
2. 방벽 주변에 출몰하는 기생체 들의 숫자도 덩치에 비례해서 나오는지 오십 마리 내외다.
3. 숙주들의 행동들이 상하이와 달리 충동적인 경향을 띤다. 또한, 점점 진행될수록 네발로 걸어 움직이려고 해서, 공격해 오더라도 쉽게 잡을 수 있다. 단, 생각 외로 피부가 단단하고 순간 반응 속도가 상하이 것보다 빨라서, 놈들과 거리를 벌린 뒤, 창이나 돌멩이를 던져서 잡는 걸 추천한다.
...
<종합>
1. 꽃 중앙에 나타난 모습에 따라, 숙주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2. 둘 다 성장하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서, 흡혈덩굴 괴물이 보이면, 바로 없애서 조기에 막아야 한다.
3. 하지만, 주변을 완벽하게 제어할 자신이 있고, 주기적으로 동물을 밀어 넣을 수 있다면, 제 일차 방벽지로 만들 수 있다.
...
*진화가 회강님에게 묻습니다.*
<내용>
-이 정보를 무료로 공개할 의향이 있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Y/N)
“잘 만들읏군. 오케이.”
회강이 Y를 누르고...
-고맙습니다. 오늘 접속할 때 전체 공지로 알리겠습니다.-
손을 휘저어 메시지를 사라지게 한 그는 흐트러진 서류를 정리했다. 그가 설거지하기 위해 테이블 위에 있는 접시를 들어 올리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김산수가 뛰어들어왔다.
그의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회강님! 찾았습니다. 드디어 찾았어요!”
-진정하시고 뭘 찾았는지 말하-
“증거요. 회강님이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증거! 그것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달그락.
순간 아래로 떨어질 뻔한 접시를 잡아챈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게 사실입니까.-
“예. 중국집 놈이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까, 이제까지 가지 않았던 장소로 움직이더군요.”
다시 테이블 위에 접시를 놓은 강회강, 그가 현관문으로 움직였다.
-일단, 움직입시다. 장소는 알고 있죠.-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그들은 집 밖으로 사라졌다.
- 작가의말
건강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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