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달빛 아래 산속에서.
회강을 비롯한 유인원들 모두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이제 이곳만 지나가면 된다.‘
그는 식은땀을 훔친 뒤, 오른쪽으로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삼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거인들이 뭉쳐서 자고 있었다. 걸린다면 피해 없이 지나가기는 그른 상황이라서 회강은 일행에게 최대한 숨죽이며 이동하라고 말해둔 상황이었다.
’바람의 방향도 우리 쪽으로 불고 있고 아이들도 이미 수면 열매를 먹여서 재운 상태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무 문제없이-‘
”쿨럭. 쿨럭.“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기침 소리에 그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뒤돌아보니,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은 유인원이 보였다.
그가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한 뒤, 다시 거인 쪽을 바라본다.
’움직임이 없어. 다행히 걸리지 않은 모양이군.‘
회강이 손짓을 하자, 일행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지나가자, 회강은 그들의 뒤를 따라 이동하고, 무사히 거인 서식지를 지나는 데 성공한다.
”후.“
’이제 이 강만 건너면 끝이다.‘
이십여 걸음 정도 되는 폭을 지닌 강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이미 강물에 위험한 물고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의 일행들은 덩굴을 구해서 서로를 묶은 상태로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회강이 발을 먼저 담그고, 나머지 인원이 삼 열 종대로 회강의 뒤를 따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차가운 강물을 헤치며 걷다가 멈춰 선다.
’응? 저게 뭐지?‘
건너편에서 덤불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형체는 유인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 뒤로 다수의 그림자가 나타나자, 회강은 불길함을 느끼곤 손짓으로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강물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촘촘히 몰려 있는 바람에 회강의 신호를 보지 못한 뒷 행렬과 중간 무리가 엉키면서 난리가 난다.
”우끼~“
”우끼끼“
소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검은 그림자들의 정체가 달빛 아래 드러난다.
그들 모두, 회강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키와 거대한 몸집을 지닌, 같은 인간들을 먹고 변이한 놈들인 거인이었다.
그들의 수는 이십이 넘어 보였는데, 그들을 발견한 회강 일행 모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우워~
뒤에서도 비슷한 숫자의 거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두 거인 무리가 회강 일행을 사이에 두고 서서 가슴을 두드렸다.
쿵쿵.
회강은 앞뒤를 살펴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추운 곳에 있기에는 아이들의 상태가 좋지 못해서, 무리해서 산을 넘고 자리를 잡으려 했는데,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강 위라서 내가 활약하기 힘들어. 오늘... 전멸을 각오해야겠군.‘
회강이 눈을 번뜩이며 주먹도끼를 잡는 순간,
우워.
고함을 지르며 그의 앞쪽에 있는 거인 무리가 달려들었다.
모두가 굳은 얼굴로 무기를 치켜들었지만,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거인들이 그들이 아닌 뒤편에 있는 같은 종에게 달려든 것이다.
우워~
퍽퍽.
서로 싸우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회강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이 유일한 기회 다 어서 도망치자.‘
”우끼 우끼기“
회강이 일행에게 고함을 지르자, 혼란스러웠던 그들 모두 제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우워~
싸우는 거인들을 뒤로한 채, 모두 강을 건너는 데 성공한 회강 일행은 황급히 발걸음을 놀려 숲 안으로 사라졌다.
삼일 뒤. 분지 절벽지대.
회강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참 난감하네.‘
그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한 곳으로 바라본다.
거기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거인들이 있었다.
*돌발 미션 발동*
*우리도 호구였어요.*
-이들은 영교에게 끌려간 인원들입니다. 강회강님의 활약으로 풀려났지만, 실험의 부작용으로 그들의 외형은 이미 약간 변한 상태죠. 그 결과 진화 속에선 완전한 거인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바람에, 쫓아온 다른 거인들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거인들이 있었고, 힘겹게 그들과 싸우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팔에 흉터를 보고 강회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강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의 시선이 옆으로 이동했다. 거기엔 불안한 시선으로 거인들을 바라보는 일행이 있었다.
’저들이 과연 찬성할까?‘
모두가 지낼만한 동굴들이 늘어선 곳을 발견하면서, 회강은 이곳에 머무르길 원하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인 들은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길 원하고 있었는데, 회강이 보기엔 미션을 수행하지 않는 이상, 빠르게 올라가지 않는 걷기 요소 숙련도를 생각해봤을 땐, 내려가다가 쫓아오는 먹구름과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이 나은데...‘
하루 동안 회강이 설득을 했지만, 이미 가지 않겠다면 탈퇴를 하겠다고 선언한 두 무리였다.
그는 이필상을 필두로 한 한국 플레이어들을 바라본다.
’이들도 간신히 설득했는데, 거인들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떠나버리지 않을까.‘
회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 곧 해가 떠오르겠구나, 그 전에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남을지 떠날지. 그리고 거인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예전 같았으면, 아무생각 없이 정에 이끌려 이들과 함께 움직였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모두 제 갈 길 가게 마련이다. 서로의 구속해서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단, 자신들의 선택을 하게끔 놔두는 것이 났겠지.‘
그는 손을 휘저어 돌발 미션을 거부했다.
그러자 거인들의 어깨가 축 처진다.
우우.
하지만, 회강은 곧바로 미션을 하나 만들어 거인들에게 보여준다.
*돌발 미션 발동*
*현실에서 증명해라.*
-강회강님이 당신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라고 한다. 만약 거짓이라면 물러나고, 그게 아니라면 현실에서 TS 본사 앞으로 찾아와라. 일일이 조사를 마친 뒤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당신은 그의 의견에 따르겠는가.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미션을 만든 뒤, 회강일행 앞에다 띄웠다.
*돌발 미션 발동*
*떠날 자들은 떠나라*
-강회강님은 이미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그의 넓은 아량으로 그동안 가르쳐준 지식에 대한 값을 받지 않고 놓아주기로 했다. 만약 떠나고 싶다면 지금 떠나야 할 것이다.
당신은 그를 떠나겠는가.
미션 내용을 읽은 플레이어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것도 잠시, 주변인들과 손짓 몸짓으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팔짱을 낀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회강은 몸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그사이 호구들과 같이 먹을 만한 식량 탐색이나 시작해야겠다.‘
그는 호구들과 함께 숲 안으로 사라진다.
해가 떠올라 가운데까지 반 정도 도달했을 때,
부스럭.
회강은 발걸음을 놀려 자신이 묶는 동굴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그의 앞에는 모든 이들이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의 미션을 거인들이 수락했습니다.
-당신의 미션을 본 일행이 떠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8*
SXX 방송국. 대기실.
강회강은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견된 장소 총 26곳.
-피해자 2501명. 사망자 314명. 부상자 2187명.
-영교 관련자 516명.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관련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처벌받게 될 예정입니다. 나중에 따로 관련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장물아비는 잡았지만, 등록되지 않은 물건들이 대다수라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만약 일주일 내로 찾지 못한다면 자료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그러니...
회강은 오정복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한 다음, 몸을 일으켰다.
’역시 배후에 있는 녀석들은 꼭꼭 숨어버렸군.‘
그가 일어서자 옆에 있던 윤명수가 다가왔다.
”회강님 이제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일정은 모두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만 집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기... 강회강님.“
-예?-
그가 회강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인들을 받아들이셨다고 들었습니다. 피해자들이지만 제가 듣기론 언제든지 거인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해서요. 오늘 방송에서 몇 분이 혹시 회강님이 그들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건 아닌지 의혹을 제기했잖아요. 문제는 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댓글로 그런 의혹을-“
-괜찮습니다. 그들은 피해자가 분명하다는 건, 여러 증거 동영상으로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의혹이 심해지기 전에 공개해서 무마할 생각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그렇다면야 다행입니다만, 그것마저도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차라리 거인들을 내치-“
-그만. 그들을 내치려고 했으면, 저는 방송에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나저나 제가 알아보라고 한 집주인은 찾아내셨습니까?-
”그게... 회강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집을 반값에 팔고선 도망쳤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회강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기 잘못은 알고 있었나 보군.‘
-그래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자는 제가 살짝 방송에서 이름만 공개해도 잡힐 것 같으니, 윤 팀장님은 스케줄 관리에 신경 써주시면 되겠습니다.-
”공개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테러당한 병원에 관련된 사람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공격받을지도 모릅니다. 자칫 죽을 수도 있어요.“
-그 전에 알아서 경찰에 자수해야지요. 제가 그런 자들 사정까지 봐줄 이유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윤팀장님.-
”예... 그렇긴 합니다만-“
윤명수가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뒤에서 한 사내가 다가오면서 무산되고 만다.
”이봐. 당신 강회강 맞지?“
회강은 거친 남자 목소리에 몸을 왼쪽으로 돌린다.
그 앞에는 유명한 록커인 김호호가 껌을 씹고 불량스럽게 서 있었다.
-맞습니다만. 김호호씨가 제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그게. 갑자기 내게 미션이 하나 떴는데, 그게 너에게 찾아가라네.“
’응? 그게 무슨 소리지. 미션이 나를 찾아오라고 했다고?‘
회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에게 물어보려는 순간, 김호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회강에게 묻겠다. 소리는 왜 있을까?“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도 몰라.“
”...“
세 사람 모두 침묵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 작가의말
수정은 못하고 올립니다.
내일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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