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6*
회강은 전신에 큰 고통을 느꼈다.
‘크. 도대체 무슨 일이지. 쓰러진 다음에 당한 건가.’
그는 움직여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전신에 고통만 느껴질 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몸 전체가 움직였고, 그 때문에 고통과 함께 고개가 꺾이면서 회강의 눈이 살짝 떠졌다.
‘여 여긴!’
회강의 희미한 시야 사이로, 구급차 내부와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한 양근악과 김재생이 보였다.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경련 일으키잖아! 가기 전에 죽으면 우리 책임이란 말이야!”
“그만하고 어서 몸이나 잡아. 이러다 더 큰일 난다고!”
“알았어. 나는 상체를 잡을 테니, 너는 발을 잡아.”
“오케이.”
‘내가 또 과거 기억을...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바깥 상황이 걱정되는 가운데, 그들의 대화 내용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후. 이제 진정 됐나 보다. 근데 재생아 너 이게 뭔지 아냐?”
“뭐?”
“내가 상체를 잡고 있다가 굴러떨어져서 집은 건데 강회강꺼 같아.”
“오~ 뭔가 좋아 보인다. 렌즈가 있는 거 보니까, 카메라 같은 거 같은데?”
회강의 시선에 작고 네모난 흰색 기계가 보였다.
‘저건 실시간 영상 녹화기기 아냐.’
경찰들이나 자신의 일상을 녹화할 필요성을 느낀 이들이 차고 있는 거로 2010년대부터 상용화된 녹화 기기였다.
회강은 과거 중요한 계약 때문에 항상 차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 양근악이 저자가 뭔가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선 그 겁쟁이가 최변인과 만날 이유가 없지. 진즉에 최변인의 잔혹성을 알고선 숨었을 테니까.’
양근악이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게 손을 옮겼다.
“그래? 뭐 나중에 돌려줄 때 물어보지 뭐. 그럼 이건 내 주머니에다 넣고-”
덜컹.
“크악.”
“아 시발! 또 경련이야. 병원까지 몇 분 남았어!”
“삼 분!”
“젠장!
고통과 함께 회강의 시야가 흐려졌다.
‘나중에 김재생을 만나면...’
그리고 그의 의식은 어둠 속에 잠겨들었다.
*7*
82층.
회강은 눈뜨자마자 윤상수에게 메시지를 띄운다.
-얼마나 지났습니까?-
”아 회강님 깨어나셨군요. 지금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 기억이 돌아오면서 생긴 증상이었습니다.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원래부터 회강님의 상태를 알고 온 겁니다. 게다가 잠시 지체된 덕분에 우리에게 놈들의 목적을 알 수 있는 시간과 더불어 상황이 더 좋게 됐으니 괜찮습니다.“
-목적이랑 기회라고요?-
”예. 제가 귀가 밝은 대원들과 함께 내려갔는데, 놈들의 목적이 보석과 무기명 채권이었습니다. 액수가 무려 우리 돈으로 사 조가 넘더군요.“
”사 조요?“
”네 사 조. 해석해준 김혜림씨를 비롯한 우리 모두 회강님처럼 놀랐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윤상수의 설명에 의하면, 놈들은 그 층에 새로 입주한 일본계 은행이 있는데, 거기를 털기 위해 제일 사람이 없는 날을 선택해서 건물을 점거했다.
회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천 명이 넘는 인원이 가담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 목숨을 걸 이유가 되겠지요. 그런데 기회라는 건 뭡니까?-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윤상수 옆에 있던 이철민이었다.
”놈들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싸워요? 어떤 이유 때문에요?-
”그건 모르지만, 두 패로 나뉘어서 싸우고 있는데, 추측하기로는 삼합회 무리와 그 외로 갈라진 것 같습니다.“
-분배금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서로 대치 중인 겁니까?-
”삼십 분 전까지 서로 싸우다가 백 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그 뒤에 인질들을 사이에 두고 육십일 층은 삼합회가, 육십삼 층엔 그 외 무리들이 자리 잡아서 대치중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세한 사항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61층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인질들이나 무리의 위치는 알지 못할 텐데요.-
”그게...“
이철민이 살짝 윤상수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윤상수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연다.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무전기와 도청기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로봇도 없는 거로 아는데, 어떻게 그 안에다가 넣으신 겁니까?-
그의 메시지를 읽은 윤상수가 잠시 말을 못 하다가 회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서, 김혜림씨에게 부탁을-“
퍽.
”상수야!“
이철민이 뒤로 나뒹군 윤상수에게 달려갔다.
회강은 몸을 일으킨 뒤, 일그러진 얼굴과 함께 삿대질한다.
-미쳤어! 아무리 사람을 구하는 게 중요해도 그렇지, 사람을 그 지옥 안으로 집어넣어? 만약 그 사람이 죽으면 어떡할 건데 어!-
오철동이 급히 회강에게 다가온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반대했지만, 김혜림씨가 워낙 의지가 강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바깥에서 정부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있었고, 그녀가 자신은 끔찍한 일을 당해도 상관없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내부 사정을 알려주겠다고-“
퍽.
-결과가 아무리 중요해도, 과정이 글러 먹으면, 그건 실패한 겁니다. 우리가 영교 관악 지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 우리의 행동과 그때 우리가 잠시 방황했을 때의 행동이 틀릴까요? 아니요. 똑같습니다. 그때의 추했던 우리와 다를 바 없단 말입니다!-
회강의 메시지에 윤상수를 비롯한 세 명 모두 움찔했다.
특히, 가운데서 코피를 흘리고 있던 윤상수는 크게 낙담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야 만다.
”죄송합니다... 그걸 잊었군요. 우리 대원들 목숨을 우선하다보니 그리 됐습니다. 예전엔 우리들 목숨이야 사람들 구하는 대가로 충분하다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을 이끌다보니... 저도 팔이 안으로 굽더군요.“
그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철동이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며 일어선다.
”저는 회강님이 이해가 안 됩니다.“
”철동아!“
”동아 가만있어!“
”제가 회강님을 비롯한 대원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짜증 나는지 모르실 겁니다. 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우리 같은 이들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일반인들도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회강님은 영교 토벌전 때 합류한 인사들을 보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음...“
”그리고 우리만 사람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줄 아십니까? 일반인들도 가지고 있어요. 그들도 우리처럼 사람을 구하고 싶어 합니다. 단지 싸울 줄 모르고 겁이 많을 뿐이지, 윤상수 형을 봐보세요. 저보다 싸움 더럽게 못합니다. 아니, 더러운 정도가 아니라 그냥 세 명이 저에게 덤벼도 못 이길걸요?“
그의 말에 윤상수가 코피를 닦으며 벌떡 일어섰다.
”야! 그건 아니다. 세 명이 뭐냐 세 명이. 두 명 정도면 되지.“
”아닙니다. 제가 싸움 견적 잘 보는 거 아시죠? 세 명입니다. 세 명. 그것도 윤상수 형이 무기 들고 있을 땝니다.“
”이 자식이! 어디 한 번 내 무기에 당해봐라.“
윤상수가 무기를 잡고 휘두르자, 그의 양팔을 잡은 오철동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이렇게 간단히 제압되는 윤상수형이 기계나 전자장비로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는 저보단 훨씬 뛰어납니다. 저는 아예 기계치라서 그런 일은 못 한단 말입니다. 형! 그만해 발길질도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왜 그래 추잡스럽게“
”뭐 추잡!“
이리저리 윤상수가 움직이면, 오철동이 요리조리 그의 양팔을 잡고 흔들어서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그 모습이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 술사 같다는 생각이 든 회강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풋.“
그러자, 다른 이들도 웃기 시작하면서, 어두웠던 장내 분위기가 풀린다.
그사이, 오철동은 꿋꿋이 자기가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저는 그래서 김혜림씨의 행동을 말리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는 굳은 결의와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우리보다 싸움 실력이 없고, 용기도 없어도, 우리와 똑같은 전사라고 생각하니까요.“
오철동의 말을 들은 회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과거의 양의를 구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그의 말이 맞아.’
회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오철동님의 말이 맞는군요. 하지만, 그녀는 전문 훈련을 받은 대원이 아니란 사실을 잊으신 것 같군요. 만약 그녀가 도청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적이 알게 된다면 우리가 오히려 역공작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다 그녀까지 생각한다면 끔찍하군요.-
”그걸 알려줬는데도 가겠다고 했습니다. 보내주지 않으면 난리를 피우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다음부턴 함부로 민간인을 넣지 마세요. 또 이와 같은 일을 한순간, 바로 우리 팀에서 나가셔야 할 겁니다.-
”예.“
”죄송합니다.“
사과로 김혜림에 대한 언쟁은 마무리되고, 강회강이 다른 메시지를 작성해 허공에 띄운다.
-그녀에게 연락은 언제 왔었습니까.-
이철민이 그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기 보시면 오 분 전에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들이 두 패로 갈라져 싸움. 백 명 정도 죽음. 삼합회는 아래층 나머진 위층. 가운데 62층 인질, 02:52-
‘생각보다. 짧고 굵게 잘 썼군.’
-이쪽에 경험도 없는 사람치고는 간략하게 잘 썼군요.-
”예. 그래서 저도 메시지를 보곤 상당히 놀랐습니다. 거기다 사진까지 보내줘서 내부 상황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조작이 끝나자, 회강의 눈에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과 무기를 든 이들이 보였다.
‘거인이 되기 직전의 이다. 그리고 의외로 삼합회가 아닌 자들도 덩치가 커, 어쩌면 여기로 오기 전에 한국 대사관 측에서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어.’
[영교 지부를 조사하던 와중에, 중국 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검찰 측 이야기론 지리산 영교 지부를 만든 인간들이 중국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경찰들을 이곳으로 파견해 조사 중입니다.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회강이 영교 지부에 갇혀있던 그의 자식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인사하러 온 대사관 직원이 증언을 떠올리던 회강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삼합회 감시자 아래로 사라짐. 아래층 큰 소리 남. 머리가 아픔. 돌연보다 더 큼. 긴급.-
메시지를 읽고 눈을 부릅뜬 회강에게 대원 한 명이 뛰어왔다.
”회강님 심상치 않은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습니다. 제가 전에 들은 돌연변이보다-“
쿠르릉.
갑자기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리자, 회강을 비롯한 사람들 모두 몸을 낮춰 균형을 잡았다.
”이게 무슨 진동입니까? 지진이라도 납답니까?“
”잠깐, 내가 창가로 가보지.-“
쿠르릉.
다시 거센 진동이 느껴지고, 잠시 멈춰선 이철민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창문을 내다본 그가 소리쳤다.
”회강님 이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층이 이상합니다.“
그의 외침에 회강은 빠르게 다가갔다.
”저기. 이상한 것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철민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회강의 눈이 동그래진다.
‘저건, 사람 팔 같은데. 왜 저리 크지. 내가 잘못 본 거가?’
그의 시선 끝에는 마천루 중간에 튀어나온 사람 모양의 팔이 있었다.
‘내 몸통보다 더 두꺼워 보이는- 휘두른다!’
거대한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쿠르릉.
사람보다 훨씬 큰 파편들과 함께 몇 사람들이 같이 지상으로 추락한다.
”헉.“
”음...“
지이잉.
진동이 다시 울리고, 회강은 휴대폰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올라가고 싶은데, 사람들이 막아요. 비상계단 쪽이 막혔고, 엘리베이터도 고장 났어요. 너무 무서워요. 제발 와주세요.-
쿠르릉.
그가 보던 와중에 거센 진동이 또 느껴졌다.
”놈의 팔이 사라졌습니다. 검은 연기도 보이는 게, 불도 난 것 같습니다.“
회강은 그에게 휴대폰을 돌려줬다.
-우선 그녀에게 최대한 진동에서 멀어지라고 하세요. 사람들을 이끌고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전해주고요.-
”알겠습니다.“
그가 다급하게 메시지를 작성하는 사이, 회강은 다른 대원들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모두 이동 준비. 돌연변이보다 더 커다란 거인이 나타났습니다.-
”더 크다고요?“
-팔뚝 두께가 제 몸통보다 두꺼웠습니다. 덩치는 돌연변이보다 최소 1.5배는 더 큰 것 같아요.-
”헉.“
”젠장.“
”그놈들 사진 볼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더니만. 제기랄.“
-우선 장비 체크부터 하고, 좁은 사다리 통로는 이 중에서 제일 요소 단계가 높은 저와 오철동님만 갑니다. 나머진 윤상수님을 중심으로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만나는 적들을 없애라. 적들이 반으로 갈려서 거인급은 15명밖에 되지 않으니, 충분할 거야.-
”알겠습니다.“
‘혼자서도 거인을 잡는 사람들이니 괜찮겠지.’
모두 파괴와 인간으로의 길로 들어선 이라는 호칭을 얻은 이들이었다. 싸움 실력은 이미 영교 잔당과의 전투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철동님은 저를 따라오세요. 저희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서 놈을 유인 또는 죽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회강은 몸을 돌려 사다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끼이익.
통로의 작은 문이 열리고 시커먼 통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회강은 손을 뻗어 사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자.’
지이익.
봉을 잡고 미끄러지기 시작한 그는 검은 동공 속으로 사라졌다.
- 작가의말
역시 세상일은 제 맘대로 되지 않는군요.
수정을 예정일에 하지 못했고, 오늘도 ...너무 피곤해서 눈이 절로 감기네요.내일 병원 갔다오고나서 수정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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