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에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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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에덴3
새하얗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에덴동산의 녹색 색채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SF적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걸까?
이상하다. 난 긴장감의 칼날 위에 서 있어야 했다.
이곳에서 루시퍼에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답답한 마음조차 없다.
경외감 정도만이 이 공간을 휘감아 돌아 나와 마중할 뿐이다.
글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이모탈 시티에서 많은 영화를 봤다. 한정된 공간에서 헌터들의 위락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영화, 게임, 오락 등은 그곳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즐기는 요소 중 하나다.
나는 특히 영화를 좋아했는데 헌터 아카데미 시절부터 하루에 한두 편은 챙겨 봤을 정도였다.
사실 그때 본 영화가 지금까지 도움이 됐다고 말할 정도다. 지구와 전혀 다른 새로운 행성의 지성체. 그들과의 조우, 과학력 등 정신적으로 충격적인 환경에 무던히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영화가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떤 영화라고 딱 집어 말할 순 없어도 이곳이 마치 우주선 내부와 같다는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허공에 펼쳐진 홀로그램들은 상상 이상의 비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걱정도 잊은 채 이곳을 천천히 구경했다.
태양계의 형상이 허공에 떠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리곤 다른 확인할 수 없는 항성계의 홀로그램 이미지와 더불어 천사어로 쓰여 있는 화면, 다른 기계 장치들이 무질서하게 깔려 있었다.
함부로 손대기 힘든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언노운이 있었다면 당장 접속해 보라고 했을 텐데.
여기 분위기가 우주선 메인 함장의 운항지휘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종 행성 지도하며 여러문구가 떠 있는 상황판 등을 보면 말이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생명 활동 징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ITB에서 록사니엘을 꺼냈다.
'여긴 어디지?'
'갈라짐의 장소이다. 우리는 그렇게 불렀어.'
'무얼 하는 곳이지?'
'에덴에 머무르는 천사들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어. 그 일을 끝내고 여기 모여서 기록을 남기지. 일종의 기록실인 셈이야.'
'그럼 혹시 4678번 자료는 어떻게 찾지?'
'4678번? 여긴 기록실이고 자료는 자료실에서 찾아야지.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건 상관없는데 단 한 곳만은 안 돼.'
'어떤 곳?'
'그분이 쉬시는 곳. 그분이 머무시는 곳. 그곳은 절대로 들어가선 안 돼.'
그분이란 야훼를 지칭하는 것일 테지. 타락 천사가 된 록사니엘이 두려워할 정도면 야훼가 이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난 야훼가 있었던 공간에 있는 것이다. 그제야 이곳에 야훼의 손길이 머물렀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초월자다. 초월자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성향이었을까? 천사가 절대선인데 야훼의 성정도 절대선일까?
'이것저것 건드려 봐도 문제없겠지? 혹시 여섯 네필림이 봉인된 곳을 알고 있나? 아님. 짐작할 만한 곳이라도?'
'글쎄 내가 여기 안 와 본 지 얼마나 됐을 것 같아? 다른 천사가 없는 걸로 봐서 루시퍼가 여길 침입했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변했을지는 루시퍼밖에 모르겠지.'
'생텀 의회에 시선으로 본다면 이곳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텐데? 이곳이 쉽게 루시퍼에 털리다니 좀 이해가 안 돼.'
'생텀 그 바보들은 무조건 만장일치를 원해 그것으로 인해 항상 한발 늦게 움직이지 다 자업자득이지. 야, 난 이제 쉬어야겠어. 이곳의 신성력은 블레싱 글로리를 뚫고 들어온다고.'
'마지막인데 질문인데 루시퍼는 어떻게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지? 신성력 천지인데?'
'아, 내가 아니라 곧 그가 설명해 줄거야. 네가 들어온 것은 이미 확인했을 테니.'
'그? 누구를 말하는 거지? 생명체 반응은 없는데?'
'조금 있으면 알게 돼. 기다려 봐. 이제 날 다른 차원에 넣어줘.'
확실히 블레싱 글로리는 이곳의 신성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신성력을 흡수하는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배터리 충전 쪽이라는 표현이 맞겠지. ITB에 다시 수납했다.
이때부터 야훼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야훼가 만든 곳, 야훼의 숨결과 손길이 닿았던 곳이라는 생각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두려움이 아니라 뭐랄까? 인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월체의 존재를 실감해서일까?
에덴이란 곳이 정말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 것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구조물에 손을 대어 보였다. 표면은 매우 매끄럽다. 재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여기가 기록실이라고 했지?
천사어는 시냅스에 기억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 록사니엘이 말했던 그는 누구인가?
내가 온 것을 이미 확인했을 거라고? 하긴 세운드라가 출입 허가 요청이라는 의미이니 출입 허가를 해 준 상대가 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오울라이커에는 관리자 플랙터가 있었다. 마치 AI처럼 수억 년을 넘어 스스로 오울라이커를 관리해 왔다. 아니 관리자를 넘어 스스로 주인인 초월자의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포른의 몸을 내가 받을 수 있었다.
이곳에도 그와 같은 관리자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만약 눈앞에 있는 이 시설물들이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면 인공 지능 정도는 우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야훼도 이 많은 시설물을 혼자 관리할 수 없을 테니 분명 종합적으로 에덴을 통제할 존재가 있을 것이다.
록사니엘이 그라고 칭한 것. 루시퍼가 이곳을 어떻게 점거했는지 몰라도 다른 천사가 전혀 없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걱정은 사치다. 번민도 필요가 없다. 시간은 항상 나의 편이다.
천년만년 내가 뭘 하던 밖의 시간은 몇 초 단위로 흐르겠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에덴의 구조도를 입수하는 것이다. 이곳이 기록실이라면 자료는 차고 넘치겠지.
남은 것은 탐험이다.
이것저것 눈에 걸리는 것은 죄다 건드려 보았다.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은 무한대에 가까우므로 중복을 피할 수 있게 죄다 기억했다.
시간은 차고 넘친다. 에덴 전부를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 싶었다.
왼손은 안 되지만 오른손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화면 전환은 위로 반대면 아래로 손동작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했다.
"에덴의 구조도, 설계도, 지형도?"
허공에 대고 천사어로 외쳐 보기도 했다. 소리에는 반응이 일절 없었다.
갈라짐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문은 모두 38개다. 일단 눈으로 확인한 것만 그렇고 다른 숨겨진 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
문에는 표식이 전혀 없다. 온통 새 하얀색뿐. 이거 완전 흰색에 광적인 집착을 가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오울라이커의 실험실은 짙은 회색빛이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온 이래 흰색 외에 다른 색상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단 홀로그램에는 색상이 부여 되어 있었다. 뚜렷한 색상은 아니고 이것 또한 하얀색인데 단지 밝기 차이와 음영의 차이로 가시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정신 없이 기록을 살폈다.
서전 임펙트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루시퍼가 어떻게 이곳을 손에 넣었는지.
이곳의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여섯 네필림의 봉인은 어디에 있는지.
태고신의 조각이 있는 자료실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많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 자신조차 감각이 서지 않는다. 시냅스에서 초 단위로 정확히 수를 세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 온 지 사흘이 지났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아낸 거라곤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몇 개 은하수 관련 자료. 생명이 있는 행성 몇 개에 대한 보고서 별의 생성과 나이 분석 기록지.
별별 것이 다 있었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다 쓰잘머리 없는 것들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자료를 검색하는 기능을 발견하면 딱 좋은데 이곳 시스템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시스템의 기본 구조다. 내가 확인한 바로 여기 자료는 모두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즉 한 홀로그램에서 다른 홀로그램의 정보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 철저한 분리식 구조다.
그런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여기 홀로그램은 55개다.
물론 전부 다 조사해 봤다. 대충 우주와 관련된 것 또는 생명체의 구조도도 있고 별의별 내용이 다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 일도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지만 갈라짐의 장소라는 의미를 봐서는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헷갈리지 않게 각 38개의 문 위치를 기억하고 첫 번째 문으로 들어갔다.
내가 처음 들어가는 문이라서 첫 번째이지 이게 몇 번째 인지 번호는 매겨져 있지 않았다.
그냥 부딪쳐 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들어온 즉시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판단이 섰다. 아니 설 수밖에 없었다. 좌우로 나열된 투명한 유리 속 그러니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서 포르말린 용액 속에 담긴 생명체 표본이 좌우 벽에 쭉 나열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뭔가 실험이 이루어졌을 것 같은 구조물이 놓여 있고 즉 병원의 수술실 같은 느낌이긴 한데 메스나 가위 이따위는 없고 최첨단 장치가 장착되어 있을 것 같은 베드와 복잡하게 연결된 구조 장치가 달려 있었다.
'하, 언노운이 있었더라면 분석하기 딱 좋은데···.'
내가 아무리 거대한 시냅스를 가지고 있더라고 없는 지식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표본은 원숭이부터 유인원까지 다양하다. 시각으로 들어온 개수는 180개 정도다.
먼저 본 에덴의 짐승 또한 모두 지구에 실제 생존했던 것들이기에 여기 표본도 지구에 실제 생존했던 생명체일 거다.
"아, 그렇군. 맞아. 생각났다."
나는 중앙의 베드를 쓰다듬어 봤다.
낙오자의 원혼이 가득 담긴 머리 내가 메타킷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
메타킷의 기억 속에 있던 그가 실험당했던 침대가 바로 이 침대인 것을 알아냈다.
시냅스에 저장된 기억이라 오류는 없다. 확실히 그때 메타킷이 실험당했던 침대다.
-삐삐빅
여기 들어와서 처음으로 듣는 내 목소리 외의 소리다.
살짝 놀라 침대에 댔던 손을 뺐다.
침대 위 홀로그램이 갑자기 나타나며 이미지가 떠 올랐다.
이미지는 내 손바닥 모양으로 옆에 보니 천사어로 뭔가 떠올랐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아담의 DNA를 가진 외계 생물 정도.
다른 초월자의 보디. 생물학적 균형을 벗어난 규격 외품.
생체역학적 구조가 아님. 표본 불가. 처리 확정.
꽤 시건방진 분석이라고 생각했다.
표본은 살아 있지는 않았다. 어떤 것은 원초적인 해부학적 외형을 하고 있었다.
즉 속 내부 장기가 완전히 드러나 있는 상태다.
모두 액체 같은 것에 담겨 있었는데 어떤 액체인지 알수 없다. 표본에는 이름이나 명칭, 넘버 등 어떤 마킹도 없었다.
표본을 쭉 다 보고 있다가 가장 인간과 흡사한 표본 앞에 멈췄다.
온몸에 털이 덮인 유인원이긴 하지만 외형은 인간과 같았고 무엇보다 얼굴이 완전히 유인원을 벗어나 있었다.
털만 없다면 그냥 인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여긴 야훼의 생체 실험실이라고 판단 된다.
내가 들어온 입구와 반대편에는 다른 출구가 또 있었다.
갈림길도 되돌아 와 다른 곳으로 가든지 또 다른 저 출구를 통해 나가 보든지 선택해야 했다.
생각보다 이곳은 상당히 복잡한 구도라고 감이 딱 왔다.
그냥 발길 가는 데로 가보자. 아마 이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세운드라"
-스스슷
출입 허가 요청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문은 열린다. 하긴 이제 몇 번이나 돌아봤다고.
복도.
처음에 왔던 복도와 구조가 같고 그때 그곳에도 많은 문이 있었다.
이곳도 똑같은 구조다. 처음에는 어라? 처음으로 되돌아왔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냅스에 지도를 그리려면 순차적으로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길 헤매기 딱 좋은 구조였다.
복도와 이어지는 가장 첫 번째 문을 열었다.
바다 밑
수많은 물고기가 바글바글 모여 있다.
신기하게 물은 전혀 몸에 닿지 않았다. 중력도 이상 없고 수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곳이 관찰자가 확인차 들어오는 곳이라 생각했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해서 과연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겠니?"
아마 근래 들어 가장 깜짝 놀란 것 같다. 나는 즉시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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