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악마
태고의 악마
루시퍼는 이미 예측했을 것이다.
어전 회의가 끝나면 칠죄종이 어떻게 움직일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겠지.
물론 위리놈의 배신은 예외일 테지만.
네포라이어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재밌는 루트이다.
루시퍼의 이목을 잠시 묶어 두기 위해서다.
사망 확률이 뜬 다음 미래가 다 오픈되었다는 것을 상기 해 보자.
물론 수많은 다중 차원이지만 내가 선택할 정확한 행동 지침은 이미 서 있는 셈이 된다.
네포라이어스 말로는 카시아식스 은하계라고 했다.
"지독하군."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이질적인 에너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독특한 에너지 파동이다.
"차원 균열의 에너지는 지옥의 것과 묘하게 다른 데?"
"이곳 또한 생명체의 오랜 감정이 한 곳에 뭉쳐 집착된 형태입니다. 게헤나의 그곳과는 또 다른 지옥인 셈이죠."
우주의 틈.
시커먼 공간을 번개 줄기처럼 가르는 균열.
보라색 빛을 내는 이 찬란한 아름다움이 악의 근원이라니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준비되셨습니까?"
"항상."
"균열 속으로 모시겠습니다."
네포라이어스의 시커먼 소맷자락 속에서 기이한 지팡이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지팡이를 휘젓자 갑자기 균열이 점점 커졌다.
그건 우리가 균열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공간 도약인가 보군.'
찬란한 보라색의 이글거림은 불길보다 더 뜨거웠다.
"인간의 몸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너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잖아. 주종 관계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걸."
"그럼 입장하겠습니다."
심연
깊고 깊은 심연 속이다.
다만 밝고 화려한 심연이다. 이 보라색 에너지 덩어리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동화.
몇 번이나 리허설했었다.
"음, 제가 설명해 드린 대로 잘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빨리 적응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네포라이어스는 놀랍다는 감정을 비쳤다.
평범한 인간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은 침습 당하고 육체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
수많은 감정이 짓눌린 곳이다. 인간의 영혼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상상 이상 잔혹한 곳이다.
"그럼, 전 안내만···."
"알았어. 이제는 오롯이 내 몫이니까. 넌 그만 나가봐도 돼."
"지켜보고 싶으나 감히 그들의 힘을 전 견딜 수 없으니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들을 제압하셨다면 저를 다시 소환해 주시면 됩니다."
네포라이어스는 사라졌다. 정확히는 균열 밖으로 나간 것이겠지만.
'준비됐어. 생각보다 동화는 쉬운데?'
【동화율 89% 90% 계속 상승 중. 이미 한계 수치를 돌파했습니다. 리허설 때 보다 훨씬 발전된 수치입니다】
'확장하자.'
ITB에서 세 개의 가면을 꺼냈다.
두근거리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수도 없이 언노운과 리허설을 반복했었다.
성공한 다른 차원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 정말 컸다.
사망 확률이 카운터 시작되면서 다른 차원의 정보가 싹 다 오픈됐다는 것이 신의 한 수일지도 아니면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운명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곳의 중력은 제멋대로다. 중력에 휩쓸리지 않게 적당한 공간을 찾아 균열 에너지와 동화하면 그런대로 우주 유형하듯이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태고의 악마를 통제하지 못했을 시 놈들이 현 차원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두 번째 첫 번째가 될 확률은 이젠 거의 없다. 이건 루시퍼를 속이기 위한, 즉 사망 확률을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 가면을 삼각형으로 배치한 뒤 아스트랄계와 연결된 시냅스를 꺼냈다.
공간이 갈라지고 초거대 시냅스가 모습을 보였다. 우리 태양의 힘과 능력을 갖춘 별을 압축해 달 크기만 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현실계에서 이 짓을 했다가는 엄청난 사념파가 우주 공간으로 복사될 것이며 날개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아스트랄계를 연다는 것은 그곳의 사념파가 현실계로 방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미칠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차원의 내가 수천 번 죽어가며 터득한 묘수이다. 당연히 태고의 악마를 제대로 소환해 내지 못해 죽임을 당한 나는 수천 번도 넘는다.
이곳의 에너지 밀도가 엄청나서 아스트랄계를 열었지만, 사념파의 방사를 효과적으로 밀어내고 있다.
염사!
강력한 싸이킥 파워를 세 가면에 투과했다.
과거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접촉이 있었고 그의 사념이 시냅스를 오염 시켰다. 즉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권능이 시냅스에 옮겨붙었고 나는 그것을 증폭시켜 시냅스 전체를 감쌌다.
-팟
세 가면이 빛이 났다. 그리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들.
세 마리 태고의 악마.
"복종하라!"
강력한 사념파를 쏘아 보냈다.
'준비해.'
【증폭 시작. 에테르 소비 –29,078,780.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시냅스에서 뿜어지는 사념파는 엄청난 광기 그 자체다. 봉인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원념이 스며든 파괴적인 에너지 덩어리는 효과적인 무기다.
세 마리의 악마를 보면서 경외심을 떠나 자칫 잘못하면 소멸한다는 생각에 시냅스에 초 집중했다.
과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불러들여 시냅스를 오염 시킨 것이 신의 한 수라는 사실.
그건 다른 차원에서 실행 오류를 겪고 얻어낸 값진 데이터들의 결과물이다.
"실로 장관이로구나. 이놈들이 태고의 악마."
다른 차원의 정보로 이미 이들의 모습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직접 보니 그 위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루시퍼가 걱정할 만하군. 대단해. 엄청난 놈들이다."
흔들린다.
내가 잠시 잡생각을 하자 에너지가 출렁거린다.
생각을 접고 시냅스에 집중했다.
【태고의 악마와 동화율 20% 상당히 좋은 출발입니다】
-그오오오오
놈들이 꿈틀대며 힘을 방출한다.
아니 이런 무식한 놈들을 어떻게 저 작은 가면에 가둬 둘 수 있었던 것일까?
새삼 루시퍼가 지옥의 제왕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녀석들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힘에 눌려 잠시 가만히 있는 것이지 오랜 기간 봉인되었다가 방금 풀려났다.
천천히 힘을 방출하기 시작한다. 이걸 견디어 내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된다.
물론 방법은 이미 준비해 왔다.
다른 차원에서 성공했던 그 루트 그대로 따라 가면 되는 간단한 상황이지만 0.1초라도 실수하면 그걸로 끝이다.
세 마리 태고의 악마는 거대한 힘을 방출한다. 눈앞의 주인을 무시하면서 말이다.
"멈추라고 했다."
물론 공기 등 매질이 없어 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 단지 사념파로 녀석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동화율 80%.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저희 위치를 포착한 것 같습니다】
'후후, 정확하네. 80%가 리미트인데 알아서 찾아와 주는 것을 보니 루프 대로군.'
과거 다른 차원에서 세 악마와 동화율 80%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그 이후 다른 차원의 나는 이 방법을 사용했다.
진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불러내 시냅스에 접속하는 것으로.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지만 이미 결과를 내 손에 잡고 하는 일이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그오오오오
-캬아아아아
머릿속으로 엄청난 사념파가 전해 온다. 녀석들이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접촉했습니다】
시냅스에 커다란 눈깔이 하나 불쑥 튀어나왔다.
"으으. 지독한 원념이다."
시냅스와 연결되어 있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원념이 그대로 느껴졌다.
【동화율 상승 중. 90% 92%···.】
"견뎌야 해. 조금만 버티면 된다."
"감히 티끌도 안 되는 조각 따위가!"
눈알은 점점 커진다. 시냅스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동화율 100% 태고의 악마와 완벽히 동화되었습니다】
"추방한다."
시냅스의 모든 싸이킥 파워를 일시로 방출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사념을 떨쳐 냈다.
놈은 다시 어둠 속으로 튕겨 나갔다.
난 재빨리 열린 아스트랄계를 닫았다.
'성공했나?'
【현재 동화율 100%를 유지 하고 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와, 시냅스가 완전히 다 찼다. 저놈들의 사념파는 시냅스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연옥에서 왜 시냅스를 만들어야 했었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시냅스 없이는 태고의 악마가 뿜어내는 사념파를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세 개의 가면은 수습했다. 혹시나 모를 때를 대비해야 한다. 저들의 힘을 견디는 봉인체다. 아마 이 가면은 평범한 가면이 아닌 고대신 아니면 태고신의 물건일 것이다.
태고의 악마는 공간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순수한 악.
단지 이 말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왼쪽으로 돌아봐."
세 마리는 천천히 왼쪽으로 돈다.
완벽한 통제다.
첫째 모르모로스. 태고의 불을 몸에 두른 존재. 불타오르는 거인의 외형이다.
그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지구가 한주먹에 잡히는 크기다.
모든 자연 원소를 다루는 능력이 있으며 그 힘은 별과 같다.
둘째 스카기버. 파괴 신의 망령이라 일컬어 지는 거대한 파괴의 포스를 뿜어내는 망령의 존재다. 모르모로스의 덩치가 워낙 커서 스카기버는 모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에 내려서면 머리가 구름에 닿을 정도는 된다.
셋째 제이가르. 세 마리중에 가장 순종적이며 변화와 조화의 상징이다. 이놈은 전형적인 모습이라 눈에 확 들어왔다. 머리는 동양의 용과 비슷했고 몸체는 완벽한 뱀의 형상을 가졌다.
변화와 조화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화된 표현이고 녀석도 순수한 악이다.
도덕 개념이 아예 없고 본능도 없다. 그냥 악이다.
태고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창조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냥 순수한 악의 덩어리다. 이 세 마리를 제어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냅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명령 하나에 태양계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아니라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녀석들은 완전히 지배하던가···.
내겐 본신을 찾기 전에는 어림없는 일이다.
'왔다. 녀석들도 냄새를 맡았어.'
【카오스의 악마입니다】
'알고 있어. 저놈들 몸풀기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
그 오랜 시간 봉인되었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원념이 엄청나게 쌓였을 텐데.
감정은 일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색, 무취의 감정이다. 아니 감정이 없다는 표현이 맞겠지.
균열의 흐름을 타고 악마가 모습을 보였다.
시답잖은 것들. 예전 7고리에서 봤던 악마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져 보인다.
7고리에서 상대했던 용 중 바드락은 태고의 불꽃을 쏘아 냈었다.
잠든 거인의 언덕에서 싸웠던 악마가 이들보다 배는 강력했다.
태고의 악마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힘을 가늠해 볼수 있을 정도가 됐으면 좋겠는데···.
순수한 악이 어떤 것인지 무엇보다 잘 알고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모르모로스 카오스의 악마를 소멸시켜라."
지시를 내릴 때는 정확하게 딱 부러지게 내려야 한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주변 환경까지 싹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지시 대명사도 정확히 카오스의 악마로 표현해야지 대충 저들을~ 저것들을~ 했다가는 주변에 움직이는 것은 모두 공격한다.
모르모로스는 불타는 거인이라 정확한 형체가 없다. 그 불꽃은 태양의 코로나보다 더 뜨겁고 절대 꺼지지 않는 태고의 불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초월자조차 끌 수 없는 불이다.
모르모로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서 강력한 화염이 이 밀도 높은 균열의 에너지를 뚫고 날아갔다.
마치 화염방사기를 휘두르는 거인 같았다.
잠시 불꽃의 축제가 멈췄을 때 살아남은 것은 없었다.
카오스의 악마는 깨끗이 소멸했다. 하긴 본대가 아닌 주변에 어슬렁거리다가 태고의 악마가 뿜어내는 마성에 이끌린 부나방에 불과한 녀석들이다.
'어때 유지는 잘 되어가?'
【동기화는 문제없습니다】
'그럼, 일단 성공이란 말이지?'
-휘리릭
제이가르가 다가온다.
-슈수숙
몸체가 갑자기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져 버렸다.
물론 거리 때문인 착시고, 금방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 크기로 변했다. 제이가르의 돌발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명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이 왜 저리는 거지?'
-팟
제이가르는 뱀과 같은 형태로 나를 향해 쏘아져 왔다.
"멈 춰!"
시냅스의 강력한 사념파를 먹인 외침이었다. 그러나 제이가르는 멈추지 않았다.
순간 신경이 날카롭게 솟구쳤고 상상할 수 없는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차라락
제이가르는 허벅지부터 내 몸을 칭칭 휘감아 올랐다.
"멈! 춰!"
다시 한번 강력한 사념파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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