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에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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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에덴4
놀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는 거다. 늘 적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상태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이렇게 불쑥 나타나나니까 아무리 나라도.
새하얀 의복···. 의복이라고 하기엔 다소 난해한 스타일이다. 그냥 보자기에 목구멍만 내놓고 덮어쓴 것과 같으니까.
흰 가운을 걸친 이 사내는 눈에 익다.
그래 바로 그 사람이다.
메타킷의 눈에 비친 수염 난 셈족의 사내.
야훼 곁에 머물며 모든 것을 지휘 감독한 사내. 실제 메타킷의 생체 실험을 주도한 사내이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키도 나보다 작은 170cm 정도다. 얼굴은 수염 외에는 피부가 매끈하고 희고 깔끔하다. 셈족 외형과 두상을 그대로 간직한 얼굴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도 놀란다는 이 말이렷다.
짧은 순간의 판단이지만 녀석은 묘했다.
천사는 절대 아니다. 신성력은 아예 없다. 그렇다고 인간의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다.
녀석은 뭐란 말인가?
말똥말똥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내리치더니 콧방귀를 날린다.
"사람이 물었으면 즉시 대답해야지 박자가 늦는구먼."
"관리자?'
"그럼, 여기 나 말고 누가 있겠어?"
다가가 손을 잡았다.
물컹한 감촉, 홀로그램은 아니다.
"무슨 짓이야? 손 놔."
손을 놓고 보니 왠지 뭔가 싶기도 하다. 이거 완전 유기체 아냐? 그런데도 인간은 아니네?
"할 말이 참 많은 데···."
"알아. 그 맘 잘 알지. 따라와."
"어디로 갈 건데?"
"여기 서서 이야기할래? 정신 사납게."
난 그제야 이 친구가 한국어로 대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 기본 언어를 한국어로 파악한 모양이다. 하긴 살아온 나날을 보면 한국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긴 하지만···.
그를 따라 걸었다. 희한한 친구다. 나는 중력을 느끼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과 닿는 소리가 났지만, 녀석은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마치 무중력 공간을 걷는 것처럼.
유기체가 맞나? 인간의 내용물을 가지고 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 온 거야?
에덴의 관리자겠지?
난 녀석에게 질문할 것을 미리 머릿속으로 쏟아 냈다.
그래도 녀석이 가는 길은 모두 기억했다.
문이 열리고 주변 풍경이 변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내가 해야 할 목표와 루시퍼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 날지 그 생각뿐이었다.
"여기야."
사내는 문 앞에 멈춰 손으로 가리켰다.
"들어가지?"
"물론."
스륵 문이 저절로 열린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세운드라라고 외친 적이 없었다.
영화관?
아주 눈에 익은 장소다. 대형 스크린과 그 옆에 장식된 스피커 시스템 2층 구조이며 죽 늘어선 관객을 위한 편안한 의자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영화관이라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앉지."
사내는 가리키는 대로 수많은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뭐, 먹고 싶어? 팝콘? 음료수는?"
"됐어."
"입이 심심하잖아?"
사내는 바로 앞 허공에 손을 쑥 넣었다가 뺐는데 나올 때는 팝콘과 콜라가 손에 들려 있었다.
"자, 받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달콤한 버터 향이 확 풍기는 팝콘은 감칠맛으로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먹으라고 주는 거 안 먹으면 이상한 건가?
"그럼, 시작 해 보자고 고고."
갑자기 주변 조명이 훅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물론 이 정도 어둠은 어둠도 아니지만.
스크린에 영상이 떠오르고 사내 그러니까 내 옆에 사내가 화면에 툭 튀어나왔다.
"안녕, 난 야훼의 창조물이자 에덴의 관리자 데오릭스라고 해."
-바스락, 바스락
자신을 데오릭스라고 소개한 데오릭스는 팝콘 상자를 열고 팝콘을 씹기 시작했다.
"궁금한 것이 참 많다는 거 알아. 여긴 어디인지 알지? 맞아! 바로 에덴이라고. 자 그럼 이제부터 에덴을 소개할게.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
난 데오릭스가 뭣 때문에 이런 쇼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처음 만났는데 대뜸 영화관?
"자, 여긴 에덴의 근본인 에덴의 동산이야. 거대한 차원은 지구의 모든 생태 생물을 수용할 수 있지."
데오릭스의 설명은 계속됐다. 마치 내가 물어야 할 답을 모두 쏟아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한눈을 팔지 않도록 기억했다. 알고 싶었던 에덴의 구조가 소개란 명목으로 다 까발려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원하는 장소를 드디어 찾았다.
태고신과 고대신의 조각이나 파편 또는 무형의 잔존 사념을 저장해 놓은 곳.
저장소의 위치도 파악됐다.
그곳은 야훼가 온 우주를 떠돌며 수집한 기념품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시냅스를 활용해 갈라짐의 장소에서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노선을 파악해 놓았다.
데오릭스는 내게 알려 주려고 이 짓을 하는 건가?
화면에는 수많은 천사가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데오릭스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나치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이건 과거에 에덴이 활성화되었을 때의 상황 같다. 물론 조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천사는 무한한 일꾼이다. 그들은 야훼의 명령으로 오랫동안 지구의 생명체를 관찰하고 수집하고 생태계를 보호했다.
공룡이 멸종한 그때의 진실을 난 다 볼수 있었다. 세상이 포유류의 세상으로 바뀌고 인류가 등장하고 실험은 계속됐다.
보면 진화의 큰 틀을 깨는 것은 없다. 단지 그 이상의 예를 들면 한 종을 멸종시키는 것 따위의 행위를 수도 없이 반복할 뿐.
실험체는 다시 지구로 보내져 자연 적응력을 테스트 받기고 했고 그들이 번식하여 또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 오랜 시간을 에덴은 묵묵히 기다려 온 것이다. 우리말로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과 네안데르탈인의 등장은 어느 날 갑자기 땅속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실험체 몇몇 개체가 자연 적응력을 보였고 종족 번식에 성공했다.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
네안데르탈인은 지능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스트랄계와의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걸 보안 활동해서 만들어진 것이 호모 사피엔스. 그 개체 중에 추리고 추려서 20개체가 실험실에 들어갔다.
알다시피 첫 번째 실험체가 바로 메타킷이었다. 메타킷에는 많은 유전적 실험이 자행되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지르는 비명에 반응하는 천사는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서 생명의 존귀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실험체는 그냥 실험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괴이한 장면이 지나가고 마침내 아담이 탄생했다.
갑자기 영상 화면이 너무 밝아서 주변 사물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데오릭스가 어깨를 툭 쳤다.
"미안 주인님이 나오시는 장면은 너무 광량이 많아서 카메라로 담을 수 없었거든. 이해하고 봐."
녀석은 분명 야훼를 그분이나 신이나 하느님이라 지칭하지 않고 주인님이라고 말했다.
"여기부턴 좀 시끄러울 거야."
나는 찬란한 빛무리에 아름답고 우아한 날개를 가진 천사 한 명을 보았다.
단지 다른 천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데 혼자만 서 있었기 때문에 눈에 확 들어왔다.
"루시퍼."
나도 모르게 말했고 데오릭스는 손뼉을 딱 쳤다.
그 이후 타락 천사들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생텀 의회에서 척살 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선악의 전쟁은 무자비할 정도로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고 몇 개의 은하계가 박살이 났다.
타락한 천사들은 게헤나를 더욱 비옥하게 살찌웠고 그들 노력으로 게헤나는 생텀 의회에 버금가는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도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다 들어 있었다. 궁창이 무너지고 지구는 수몰되었다.
한가지 안 사실은 대홍수 이후 노아만 살아남았나? 그와 함께 배에 탄 동물들만?
아니다. 지구상엔 이미 실험체의 자연환경 적응 일환으로 내보내진 인류가 번성하고 있었다.
홍수 때문에 많은 인간이 죽었던 것은 사실이나 노아 외에 지구 곳곳에는 생존한 인류는 많았다.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
노아는 실험체 그러니까 아담의 직계 자손으로서 야훼의 관심을 받은 것뿐이다. 웃기는 것은 또 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성서를 만든 민족이라고 해서 그들이 아담의 직계 자손일까? 우습게도 아니다.
유대인은 아담 라인과 노아 라인과도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살아남아 있긴 하지만 너무 많은 유전자가 섞여 버려 솔직히 유의미한 사실이 되었다.
전 지구적으로 인류가 번성하면서 그 유전자는 대부분 희석되거나 변질되었다. 순수한 실험체에서 만들어진 DNA는 진화 과정상 돌연변이에 대부분 변질돼 버렸다.
그건 그렇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아담과 이브가 뇌 활성화 물질을 마시면서 유전자 변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야훼가 에덴을 떠난 것은 정확히 나와 있다. 모세의 출애굽기 이후다. 가나안 땅으로 유대인을 빼내고 철기가 완전히 인간 사회에 퍼져 나가며 문명이 과학을 받아들이면서다.
노아 세대 이후 궁창이 무너지고 급격히 아스트랄계의 힘을 상실했다. 야훼는 미련 없이 에덴을 떠났다.
그는 또 다른 곳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떠난 것이다.
에덴은 홀로 남겨졌다. 야훼가 떠난 빈집은 데오릭스가 관리했다.
한 편의 성서 영화를 관람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먹었는지 내 손에 들려진 팝콘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인류는 철기 시대를 지나 거대 문명을 이룩했고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속칭 말하는 4대 문명의 틀을 기준으로 해서 번영의 시대에 이르렀다.
수많은 전쟁과 다툼. 인류의 발전은 죄다 전쟁뿐이다. 역사 그 자체가 전쟁뿐이라고 시위하듯 영상은 계속 굵직굵직한 전쟁사를 상영했다.
왜 저렇게 싸울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안 싸우면 안 되나?
지겹다. 너무 싸우네.
인류의 번영은 싸움과 전쟁뿐이지 다른 설명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싸우고 또 싸우고 끊임없이 싸운다.
지겨울 만도 할 텐데 계속 싸우다 보니 1차 세계 대전이 나왔고 곧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이대로 두면 3차 세계 대전이 벌어질 건데 이번 건은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시나리오로 갈 확률이 높다."
새하얀 원탁에 둘러앉은 천사들이 회의한다.
저 원탁은 눈에 익다. 에덴을 소개할 때 지나쳤던 것인데 영상을 머릿속에 각인하고 있었기에 기억할 수 있었다.
고로 회의가 이루어진 곳은 생텀 의회가 있는 성력이 아닌 에덴이란걸 알수 있었다.
그러니 영상에 녹음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개입하여 인류를 구해야 하는지 투표를 시행한다."
이쪽은 늘 그렇듯이 만장일치제다.
천사는 얼굴이 없다. 그냥 새하얀 빛으로만 보이기 때문에 입고 있는 복식이나 외형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데 대천사는 인간형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나마 구분할 수 있었다.
원탁에 모인 천사는 모든 천사를 대표하는 대천사 7명이다.
전쟁에 신물이 난 천사는 인류 멸족의 전쟁을 막고자 투표하는 것이다.
인류를 구할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
질문은 '구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미카엘이 말했다.
하나, 둘 손을 든다. 미카엘 본인도 손을 들었다. 다섯, 여섯. 그리고 마지막 한 천사.
모두의 시선이 그 천사에 쏠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메타트론."
"맞아."
"접때 의장은 미카엘이 아니라 메타트론이었지?"
"맞아."
메타트론 대천사와는 다른 부류의 천사다. 언제나 야훼 곁에 머물려 그분의 말씀을 기록했던 천사다.
천사 중 가장 거대하며 지구 대지에 서면 머리가 대기권을 뚫고 궁창에 닿았다고 하며 천사들의 제사장, 생텀 의회 최고 의장직을 맡고 있던 천사다.
야훼가 지구를 발견하고 에덴을 건설할 때 가장 큰 공훈을 세운 것이 메타트론, 케무엘, 나타니엘, 루시엘이다.
메타트론은 특히 루시엘과 아주 친했다. 루시엘 그렇다 루시퍼다.
과거 미국에서 자드키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 내용 중 이런 것이 있다.
'생각해 보게. 이 행성의 주된 주인은 바로 인간이네. 이 행성에서 나고 자라고 죽은 인간의 영혼이 몇 명이라고 생각하나? 밤하늘 별처럼 셀 수 없을 정도네. 그들은 모두 이 행성의 가이아와 함께 숨 쉬고 살아오고 있었네. 적어도 메타트론이 그런 짓을 하기 전까지 말일세.'
자드키엘은 정확히 메타트론이 저지른 짓이 무슨 짓인지 명명하진 않았다. 당시 엘리시움 광석과 에테르 이야기 중이었다.
즉 인간 영혼인 에테르를 엘리시움 광석으로 만든 장본인이 메타트론이었기에 서전 임펙트를 일으킨 장본인이 메타트론이라고 짐작했었다.
영상은 중요한 분기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알고 싶었던 서전 임펙트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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