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탈 시티의 천사들
이모탈 시티의 천사들
마인의 번식.
남자는 문제없다. 자드키엘이 여성에 집중한 것도 난자를 생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과연 이 사람이 한때 천사였나 싶을 정도로 악독한 실험을 자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쩔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희생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가 회색의 가디언으로 불렸던 이유, 인류를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밤 자기 손에 희생된 여인들을 위해 기도한다.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일까?
생텀 의회처럼 마인을 악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확실히 악이었다. 살인 본능에 지배당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모두 죽였으니까.
하지만 인류는 그것을 극복했다.
물론 내 역할이 큰 벽을 넘게 해 줬지만.
지금은 마인의 몸을 가지고도 순수한 영혼 그 자체로 삶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다.
신인류.
악도 선도 아닌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가진 인류다.
자드키엘은 잔뜩 기대감 서린 눈빛으로 응시했다.
마치 맛있는 과자를 바라는 아이의 눈빛이다.
"이사벨 리치몬드는 살아 있습니다. 임신이 가능한 유일한 마인이죠."
"그렇다네. 인간이 낳은 유일한 성공 개체네."
"그녀의 DNA를 연구한다면 마인의 번식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뜻은?"
나더러 자신의 계획에 동참해 달라는 소리다.
다른 차원에서 나도 이 문제 때문에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장점만 나열했지만, 단점도 무섭다.
인간 수명 극대화는 이 작은 행성을 금방 포식할 것이다.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의회에서 반대표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의회는 마인을 타락한 존재로 취급하고 소멸하여야 한다고 믿으니까.
인간은 투쟁의 생물이다.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의 예시가 마인의 세계를 똑바로 보여줬다.
힘이 있으면 권력의 탐하게 되고 이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마인의 전쟁은 행성을 좀 먹고 파괴할 것이다.
인간 사회에 절대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종족이다.
위정자들은 어디서건 끓어 넘친다.
마인에 있어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은 꿈같은 이야기다.
난 여기 사회에 관여하지 않는 방관자의 입장이어야 한다.
내 결정 하나로 이 행성과 주민의 운명이 바뀔 상황임을, 신중은 기본양념에 환경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어찌 보면 생텀 의회의 결정은 인간을 위한 가장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천사의 의무.
인간을 보호하려는 그 신념이 만든 지구 치환 계획.
인간은 더 나은 환경에서 원래의 삶을 이어가겠지. 몸과 영혼 모두가 순수한 채로 말이다.
내가 의회의 결정을 따르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미래의 언노운도 나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겠습니다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녀를 내 곁에 있게 해 주게."
"만약 의회가 이 일을 알게 되면 그녀를 최우선 순위에 둘 겁니다. 지금은 안전하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차원의 나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냈다는 걸 알고 있다.
"에덴의 실험실은 생명체의 DNA를 구성하고 연구하던 곳입니다. 인류가 가지지 못한 월등한 과학이 그곳에 있습니다. 이사벨의 DNA에서 돌연변이 인자를 추출해 활성화하면 다른 마인도 임신할 수 있는 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드키엘은 입을 닫았다.
현실적으로 가망이 거의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하, 전 에덴에 들어갈 겁니다."
"에덴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들어갈 방법까지 마련해 놨습니다."
"오, 그렇다면 정말 다행한 일일세."
"그런데 자드키엘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옳다는 것보다는 믿음일세. 인간을 구하고자 하는 믿음일세."
"음, 만약 그렇게 구한 마인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파괴한다면요?"
"그들 운명은 그들 스스로가 개척하는 것이지. 난 다리는 놔줄 일꾼에 불과하다네."
어찌 보면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으나 자드키엘을 탓할 수는 없다.
"만약 성공한다면 신인류가 이 땅 위에 떳떳이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일세."
자드키엘과 대화를 더 나누고 교황청을 빠져나왔다.
자드키엘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차원의 정보를 조합해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야 한다.
내가 갈 길은 정해져 있다.
현재 선택은 세 가지로 나눠진 상태다.
그 선택에 인간의 운명이 완전히 바뀐다. 이 무겁고 막중한 선택을 위해 과연···.
교황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다봤다.
회색빛 연기가 꽉 찬 저녁놀이 더욱더 침울해 보인다.
이 행성의 생명 호흡은 점점 끊어져 가고 있다.
이제 곧 모든 걸 선택해야 할 지평선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문득 내 옷을 내려다봤다. 균열의 워프 속 잔재가 아지랑이처럼 이글이글거리며 피어올라 오고 있었다.
담배 맛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나는 곧 죽을 거다. 할 수 있는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해 최대한 정보를 모아 놓는 것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루시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본신을 찾지 않고서는 이 행성을 지켜 낼 수도, 자드키엘의 계획을 도울 수도 없다.
에덴은 내게 묘지나 마찬가지다. 루시퍼 계획의 종착역인 것을 알면서도 가지 않을 수 없다.
루시퍼에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어나 볼까?
지구 치환은 앞으로 50년 남았다. 자드키엘은 마인을 우주선으로 피신시킬 생각이다.
네크로폴리스, 이모탈 시티의 사람을 대피시키고 보호해 치환된 지구로 내려와 새 삶의 터전을 건설한다면?
굳이 본신을 찾을 필요도 없으니, 에덴으로 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단 한 번도, 그 어떤 것도 성공한 사례가 아예 없으니 말이다.
에덴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루시퍼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말이다.
그것은 지구 치환 계획에 반드시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생텀 의회가 지구 치환 계획을 멈추고 돌아가는 것이다.
즉 현 지구를 악마에게 양보하는 것. 말이 되겠냐고.
이모탈 시티에는 세 명의 천사가 있다. 워프에서 12년이나 있었으니 그동안 의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세 명의 천사는 조사대로 파견된 것일 거다. 과거 소돔과 고모라에 파견된 천사처럼 말이다.
이모탈 시티로 가는 방법은 신중해야 한다. 루시퍼에 들키면 곤란하니까. 칠죄종의 낙인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지문 보듯이 본다.
개 목줄에 단단히 옭매인 강아지와 다른바가 없다.
다크 로드를 사용하면 흔적이 바로 남기에 일단 대기권 밖으로 날아올랐다.
왓처 앞에 복제물을 하나 세워 놓고 빠르게 수직 낙하했다.
다행히 이모탈 시티에는 악마가 한 마리도 없다. 다행스러운 이야기다.
내가 의회에 이모탈 시티 존재를 내비친 것은 효율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의 자료를 검토해서 가장 효율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언노운도 마찬가지였다.
의회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이번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것도 내 결정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주 엄청난···.
과거 부산이라 불렸던 이모탈 시티의 해운대는 멋지게 복구되어 있었다. 과거 카피너는 평범한 사람에 속했다. 길드에서 효율성을 높이고자 카피너를 싹 다 마인으로 만들었다.
카피너의 복제 효율이 수십 배로 증가하자 남해와 전라도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부산 내 도시의 복구 계획도 탄력을 받았다.
기자재를 마음대로 카피해 낼수 있고 그 성능 또한 원자재와 똑같다.
해운대는 화려한 네온사인을 뿜어내고 있다.
많은 가계가 손님으로 메어 터졌다. 사대 길드는 이모탈 시티 내 부의 평준화를 이뤄냈다.
고생하며 일하지 않은 일반 사람에게도 헌터와 같이 넉넉한 월급을 줬다.
이 모든 것이 마인화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동안 부족했던 환경에 마인이 투입됨으로써 싹 다 해결되었다. 던전에서는 넘치도록 재화가 쏟아졌고 던전 공략은 더는 헌터의 고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모탈 시티도 이제 마인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마인화를 금지해서 지금도 데모가 거세다.
평범한 사람은 죽음을 불사하고 피켓을 들고 난리를 피운다. 마인이 되면 수명이 열 배 늘어난다.
이건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다. 자드키엘의 신인류라는 소리는 이들에겐 꿈이 아닌 현실이다.
-스륵
사람을 인지해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이모탈 시티의 전기 공급은 에테르 발전소에서 한다.
엘리시움 광석에서 추출한 에테르를 소비하여 발전기를 돌린다.
그것이 과거 인간 영혼의 결정체라는 걸 이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익숙한 걸음으로 세 사람이 마주한 탁자에 끼어들었다.
"뭘, 그렇게 당황하십니까? 어차피 합석하려고 왔습니다. 저 모르십니까? 의회에 소문이 많이 났을 텐데?"
의회라는 말에 세 명은 흠칫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아줌마 여기 주문요."
세 명의 천사는 낙지볶음에 폭탄 달걀, 시원한 오뎅 국물을 테이블 위에 받아놓고 있었다.
"일행 오셨나 보네."
이 아줌마는 평범한 인간이다.
"여기 낙지 추가하고 대선 몇 병만 주이소. 이런 안주에 술 없으모 섭섭하지요."
"당연하지예."
세 명의 천사는 말이 없다.
"여기 음식은 권능 냄새가 심하게 날 건데 잘도 드시네요."
젓가락질도 꼼지락꼼지락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아, 진짜 이 천사들 의심병 도지셨나? 사우리엘. 아스도엘, 라자리엘."
"엇!"
"놀라는 척하기는···."
세 천사는 내가 자신들의 이름을 정확히 맞추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 세 사람은 인간 몸에 빙의한 것이 아닌 블러싱 글로리를 착용하고 있다.
여차하면 무력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세 사람 눈동자의 움직임이 당황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세분은 여기 얼마 동안 있으셨소?"
"누구신가?"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40대 아저씨의 외모다. 딱 이런 술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상적인 외모다. 너무 평범해 몇 번 스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이름은 아라곤인데 원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조각이고 그러니까 퉁쳐서 네필림이라고 하면 되지."
"불경한 것."
"죄스러운 것." "에, 에, 에. 여기서 싸우자는 소리는 아니죠?"
세 명은 경계심을 잔뜩 띄운다. 물론 천사는 감정이 없지만 블레싱 글로리를 착용한 이상 현지 생명체에 거의 100퍼센트 동화해서 자잘한 감정 표현까지 문제없다.
"의회는 뭐라고 합디까? 이곳 사람들 구할 가치가 있다고 합니까?"
아예 뼛속을 후리는 직설적인 질문이다.
다양한 답이 나올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 이 차원에서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세 명의 천사는 말이 없다. 그 사이 아주머니께서 대선과 낙지를 추가해 주었다.
세 명에게 술잔을 따랐다.
"한잔하면서 이야기합시다."
블레싱 글로리를 입었기 때문에 카피너로 복제한 제품을 먹어도 괜찮다. 작은 권능이라도 블레싱 글로리가 다 소멸시킬 테니까.
"아니 술 받아놓고 뭐 하는 겁니까? 한잔씩 합시다. 자. 자."
내가 억지로 술잔을 들어 권하자, 이들도 마다하지 못하고 술잔을 부딪쳐 줬다.
"하하, 천사와 한 테이블에서 술 마실 줄 상상은 했겠습니까?"
한잔 들이켰다.
"캬, 좋다. 뭐합니까? 음식 차려 놓고 제사만 지내는 것도 아니고?"
마지못해 세 사람은 술을 마셨다.
서로서로 불편한 자리다. 문제 일으킬 수도 없고 또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이들도 함부로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람이 꽉 찬 이곳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까 내 물음에 누가 답해 주겠습니까?"
"···."
"어차피 알게 될 거 말 못 할 것도 아니잖습니까?"
소주가 쓴지 깨작깨작한다. 낙지도 시켜 놓고 거의 몇 점 먹지도 않았다.
"참 내 이런 곳에 와서 뭘 서로 눈치 보고 그래요? 감사 나왔으면 감사답게 인간 사는 모습도 직접 경험해 보고 그래야지. 올 저녁값은 내가 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드십시오. 이거 대접입니다? 천사께 대접하는 음식이라고요. 그러니 여러분은 사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대접한 음식이 아니잖아? 불경한 네필림이 대접한 음식을 어떻게 먹나?"
"천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쩨쩨해졌습니까? 제가 여길 다 때려 부순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야기 좀 하자는 데···. 쩝. 너무들 하시네."
세 사람은 동시에 술잔을 틀어넣는다.
"캬, 좋지요? 안주로 낙지 한 점들 하시고."
그제야 세 명의 천사는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블레싱 글로리를 착용했기에 미각은 인간과 똑같이 느낄 수 있다.
대접, 자고로 천사는 인간의 대접을 거부할 수 없다. 아무리 작고 볼품없은 음식이라도 대접은 받아들인다.
-탁
빈 술잔을 내려놓은 천사 한 명이 말했다.
"여기 오염된 곳이다. 오염된 인간은 구제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의회 방침이네"
"그렇지 않은 인간도 많지 않습니까? 과거 소돔에서 롯을 구한 것은 야훼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비하면 이곳엔 의인이 넘쳐납니다. 어찌 우리를 소돔과 고모라 취급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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