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야생
쏴아아······.
하필 이날은 비가 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던 네 사람은 그런 비를 맞으며 사력을 다해 싸웠다.
쾅!!
처음 전투는 포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의 연이은 전투로 지친 몸을 쉬고 있던 네 사람은, 갑자기 일어난 폭발음에 놀라 일어났다.
“뭐야?!”
“건물이 흔들리고 있어!!”
와장창!!
일행은 일제히 무장을 하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예 창문을 열지도 않고 깨버리며 뛰어내린 네 사람.
지금의 네 사람은 내공으로 전신을 가드하고 있는 터라 그런 유리조각으로는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수한 돌연변이였다.
우글우글······.
딱 봐도 엄청난 수의 돌연변이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곤충형 돌연변이, 동물형 돌연변이, 심지어 식물형 돌연변이도 있었다.
마치 파리지옥이나 끈끈이주걱 같은 놈들도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놈들이 존재하는 것인지 일행을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시작된 전투. 서로간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이건 애초에 죽이러 온 놈들의 눈빛이다. 거기에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네 사람과 거의 수백에 달하는 돌연변이들은 싸움을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왔던 돌연변이들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정예. 과장 좀 보태서 한명 한명이 삐에로 급이었다. 물론 삐에로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센 놈은 정확히 세 명이다.
패러사이트, 아이스, 그리고 왕. 세 돌연변이는 대놓고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네 명을 보고 있었다.
“저놈들이 우두머리인가?”
“저것들만 처리하면 이제는 자유가 될 것 같군.”
“그 전에 사망해서 육신으로부터 자유가 될 것 같은데?”
두리와 너이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지난번의 갈등, 그리고 그동안 쌓여왔던 자잘한 갈등들이 폭발하여 잠시 소원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지난번 삐에로를 격퇴하고 잠이 들었는데 자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수백의 돌연변이가 쳐들어온 것이다. 일행은 비몽사몽한 와중에 미친 듯이 싸웠다.
“죽음의 독가루!!”
화악!!
나방 같이 생긴 돌연변이가 날아다니며 이상한 가루를 내뿜었다. 그걸 잠깐 들이마시기만 했는데도 어지러워진 네 사람.
“마시지마, 인분이다!!”
인분(鱗粉)은 나비나 나방의 날개나 몸 표면을 덮고 있는 아주 작은 가루로, 비늘 모양의 분비물이었다.
비늘가루라고도 하는데, 워낙 미세한데다 독한 냄새가 나서 단순히 이걸 마시기만 해도 호흡기 질환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독이 있는, 말 그대로 독나방도 있는데, 이런 독나방이 아니더라도 아시아에서 곡물을 먹고 자라는 쌀벌레, 일명 화랑곡나방은 심지어 포장지까지 뚫고 들어가 알을 깠다.
그러니 엄청나게 혐오스러운 생물. 게다가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나비와 달리 이쪽은 대놓고 보기에도 혐오스럽다.
그런 사람만한 거대한 나방이 온천지에 인분을 날리며 다녔는데, 심지어 같은 돌연변이들도 고통스러워했다.
“아, 그만해 이 자식아!!”
“눈 따갑잖아!!”
개중에서도 인분을 뒤집어 쓴데다 약한 돌연변이들 몇 놈이 불만을 표시했는데, 나방 돌연변이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날아다녔다.
“뭐야, 저거 X맨인가?”
“그냥 놔두면 오히려 도움되는 거 아냐?”
일행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국 처리하기로 했다. 날아다는 것도 너무 거슬리고 인분이 휘날려서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진짜로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전투 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호흡기로 들어갈 수도 있는 인분을 그냥 들이마실 수는 없다. 무호흡 전투도 한계가 있지.
결국 하나가 처리했다.
“삼매진화!!!”
콰아앙!!!
하나의 손에서 불길이 뻗어나가 공중의 나방 돌연변이를 직격했다. 그러자 불에 탄 채 바닥으로 추락하는 나방. 그런데 떨어진 나방을 다른 돌연변이들이 마구 밟고 지나갔다.
불을 꺼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에잉, 망할 개새끼!!”
“도움이 하나도 안돼요!!”
그렇게 좀 전까지 자신들의 동료였던 자를 무참히 밟아 뇌수가 터질 정도로 곤죽을 만들어놨는데, 돌연변이들 특유의 포악한 성미를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동료의식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다음엔 이 방아깨비 맨이시다!!”
펄쩍!!
갑자기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도약하여 먼 거리에서 날아왔다. 이름대로 방아깨비 돌연변이.
“이놈들은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그렇지 나방이나 방아깨비를 먹은 건가??”
“음, 사람 먹은 것보다는 그나마 나을지도······.”
두리와 서이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뭘 먹었든 어쨌든 돌연변이 조직 라운더스의 일원으로서 아무 죄 없는 네 사람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들 돌연변이의 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먹으려고 하면 돌연변이 개나 고양이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한때는 같은 사람이었던 자들을 공격하는 돌연변이들.
그리고 일행도 그쪽이 먼저 덤벼 와서 상대하는 것이지 딱히 돌연변이 그 자체에 악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행도 내공이라는 힘을 쓴다고는 하는데 그건 일행이 붙인 이름이지 실제론 돌연변이로 인한 파워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일행도 그저 인간의 모습을 한 돌연변이일수도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일행은 자신들은 순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힘은 인간의 힘을 넘어선 어떻게 보면 돌연변이의 파워다.
그리고 하필 전쟁 전엔 이런 게 없었는데 갑자기 핵전쟁 이후에 생겨났다는 점에서 이것도 진짜 돌연변이일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저 돌연변이들은 딱 봐도 흉측하게 생겼고 아예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이해버린데다가, 심지어 식인까지 한다면 다만 이 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이고 식인을 하지 않으며 그래도 나름 자신들만의 정의를 지키고 산다는 점이 다르다.
저들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잊어버리고 마구잡이로 생물들을 공격했지만, 인간이든 돌연변이든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두리 일행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구치소 출신의 범죄자 집단은 모두 죽여 버렸고, 돌연변이지만 온화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김창남과는 사이좋게 지냈다.
일행은 자신들만의 기준을 정하고 철저하게 그걸 지키는 중이었다. 상대방이 나한테 엿같이 하면 나도 엿같이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한테 잘해주면 똑같이 잘해준다.
함무라비 법전과 비슷했는데 사실 법과 질서가 없는 이 세계에서는 그것마저 엄청 대단한 것이었다.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힘을 마구잡이로 행사하지 않다니.
지금 이들 정도면 지하 도시로 돌아가서 그곳 사람들을 지배하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이들은 그런 생각 따윈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설프게 지하 도시로 돌아가다가 추적당하면 그곳 사람들이 몰살당하기에 돌아가지 못한 것뿐이었다. 만약 그것만 아니었으면 당장 돌아가고 싶은 것이 네 사람의 심리였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일행은 돌진해오는 방아깨비 인간을 피했는데, 방아깨비 인간은 자기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변에 있던 건물에 들이박았다.
쾅!!
“이것들 개그맨인가?”
“야, 적당히 상대하면서 병원에서 멀어져.”
이 병원은 그들의 집이다. 게다가 아직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어설프게나마 살아있어서 온수목욕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다른 곳은 몰라도 병원이 망가지면 곤란하다.
그들은 병원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해서 전장을 바꿀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건물에 처박힌 방아깨비 인간을 누군가 덮쳤다.
우직!!
그리고 먹기 시작했는데 일행은 경악했다. 아까 전 그 나방 인간처럼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도 아닌데 다른 돌연변이가 덮친 것이다.
“뭐, 뭐야??”
우직! 우지직!!
방아깨비 인간을 덮친 자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건 사마귀 인간이었다.
“염병할······.”
“설마설마 했지만······.”
서이와 너이는 혀를 찼다. 사실 방아깨비를 먹는다면 그 정도밖엔 없다. 방아깨비는 메뚜기과 곤충들 중에서도 가장 큰 생물. 이것보다 큰 건 잠자리나 대벌레정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큰 게 사마귀인데 당연히 사마귀의 주식은 이런 메뚜기과 곤충.
그런데 죽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은 동료를 잡아먹는다는 것이 일행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너무 심한 거 아냐?!”
캉!!
두리의 곡괭이와 사마귀 인간의 팔이 부딪쳤다. 그런데 나는 금속음.
곤충은 뼈가 없는 대신 키틴질이라는 물질이 뼈를 대신하여 외골격을 형성하는데, 조그마한 벌레도 사람 손을 물어뜯어 피가 나게 할 수 있었다.
이건 새우도 마찬가진데 아무튼 이런 사마귀가 거대한 인간 급이 되자 그 위협은 차원이 달라졌다.
캉! 캉!
곡괭이와 팔이 부딪칠 때마다 불쾌한 금속성의 소리가 났다.
‘씁, 사마귀가 인간 급으로 커지면 이런 수준이 되는구나!!’
두리는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지금 상대하고 있는 이 사마귀는 모양만 사마귀지 사실상 인간의 지능을 가진 사마귀이므로 거의 맹수 급이었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곰이나 사자를 상대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사마귀는 앞발을 뻗어 목표를 공격하는데 반응속도가 무려 0.2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간들 중 가장 빠른 무하마드 알리가 최전성기 때 3초 동안 열한방의 펀치를 꽂아 넣었는데, 이를 단순히 계산하면 0.27초당 한방씩 때렸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사마귀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는 것.
무하마드 알리가 역대 인간들 중에서 제일 빠른지, 혹은 그게 알리의 최고 속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단순히 생각해봐도 사마귀가 엄청나게 빠른 건 분명했다.
한편 거대화된 이 인간 크기의 사마귀는 미친 듯이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미처 피하지 못하고 베이는 두리.
써걱!
팔을 교차할 때마다 두리의 몸에 생채기가 늘어갔다.
“도와줄게!!”
“아니야, 넌 오지 마!”
두리는 도와준다는 너이를 제지했는데 너이와 이런 스피드 타입 돌연변이는 상성이 최악이었다.
그나마 두리나 되니까 어느 정도 상대하고 있는 것이지, 무거운 오함마를 들고 상대하면 바로 딱 찢어발겨지기 좋다.
차라리 이런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그냥 무기를 버리고 맨손으로 상대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그런 걸 알면서도 버리기는 힘들다.
무기는 나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인데 그걸 버리고 적수공권으로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두리가 버티고 있는데 갑자기 의외의 사태가 생겼다.
우직!!
“??”
아까도 들렸던 익숙한 소리가 들리자 두리는 잠시 멈칫했는데, 두리를 공격하던 사마귀 인간도 멈춰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으깬 어느 존재. 그건 암사마귀였다.
이곳은 거의 야생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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