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등장
돌연변이 고양이가 쥐 고기를 갖다 주면서 일행의 식량 사정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가만히 앉아서 받은 쥐 고기를 가공만 해도 될 정도.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먹고 살아도 되나······.”
“마치 핵전쟁 이후의 세계가 아닌 것 같아.”
일행은 돌연변이 쥐 고기를 가공하며 그런 말을 했다. 물론 쥐 고기 몇 개 얻었다고 팔자가 휙 피는 건 아닌데, 그래도 식량 사정이 상당히 나아졌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안심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식이란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이제 일행은 설령 옷을 안 입고 바깥에서 자도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보통 내공이 극에 이르면 더위와 추위를 막고 독이나 기타 이물질의 침입으로부터도 몸을 지켜준다는데, 그 정도 경지는 아니더라도 내공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런 보호하는 힘이 강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로인해 일행의 몸에는 필터가 생겨서 방사능 물질 같은 것도 대부분 걸러지는 상황.
물론 일행은 몰랐다. 다만 그렇지 않을까 하고 짐작만 하는 상황.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지상에서 생활한지도 꽤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하에서 방사능도 덜할 고기를 먹을 때보다 훨씬 더 그 음식이나 공기 등 측면에서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텐데, 지금도 딱히 문제가 없는 걸 보면 내공이 그런 방사능을 막아주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행은 몰랐는데, 이 돌연변이 개와 고양이를 살려준 것은 일행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어느 날 자신들을 잡아끄는 이 개를 따라 산책을 나갔는데, 개를 따라간 일행은 경악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개들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 돌연변이 개.
“뭐야, 이것들?!”
“함정인가?!”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돌연변이 개들의 소굴로 데려가자, 순간 일행은 자신들이 구해준 이 개가 감금 상태에서 풀려나기 위해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이 개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일행은 알았다. 이 돌연변이 개가 자신들을 친구들에게 데리고 간 것을.
그 증거로 처음에 자신들을 보고 으르렁거리던 개들은, 반대로 자신들이 구해준 개가 으르렁거리자 단번에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이 개가 이 개들의 우두머리인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름을 안 지어놓으니 헷갈린다. 기르든 안 기르든 일단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이름을 지어놓자.”
그런 너이의 제안에 의해 일행은 자신들이 구해준 이 돌연변이 개에게 똘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돌연변이 고양이에게는 미미. 아마 그 돌연변이 고양이와 가까이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가까이 한다면 그런 이름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아님 한번 씩 언급할 때마다 그렇게 부르든가. 이름이란 매우 중요하다. 그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 그러자 일행도 똘이의 으르렁거림에 의해 얌전해진 다른 개들에게 장난삼아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 왼쪽부터 근혜, 명박이, 기춘이, 병우, 순실이.”
“야!”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건 개에 대한 모욕이지!!”
“아, 그런가?”
너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2016년 이후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국정 농단 사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 도저히 그 한국 근현대사 등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행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두 초등학생이었지만 초등학교 사회책에도 이 사건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돼있었던 상황.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무려 6년 동안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도 이 기억이 매우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아무튼 근혜나 명박이라는 이름이 개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에 너이는 다시 고민해서 이름을 지었다.
“그럼 똘똘이라는 이름은 어떨까? 똘이, 똘똘이. 똘 자 돌림으로 말이야.”
“지금 장난해?”
“장난하세요??”
서이는 물론이고, 하나까지 서슬이 퍼래진 채 따지고 들자 너이는 뭔가 주눅이 들었다.
“왜, 왜 그래······.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은 건데.”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지었나보군요.”
그도 그럴 것이 똘똘이는 개 이름으로 지을 법 하기는 한데 다른 이상한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서 쓰기가 좀 애매했다.
원래는 똘똘하다는 뜻의 단어로 너이는 썼을 테지만 분명히 다른 뜻이 있는 상황. 그러니 여자들이 반대했다. 아무튼 이름 짓기에 난항을 겪고 있는데, 조용히 있던 두리가 나섰다.
“그럼 다간은 어떨까?”
“뭐??”
“왼쪽부터 순서대로 엑스카이저, 파이버드, 다간, 마이트가인, 제이데커, 골드란, 다그온, 가오가이가, 어때?”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너 또, 니가 아는 만화에서 나온 이름들이지?”
너이와 서이의 지적에 두리가 뜨끔했다.
“어, 어때, 이름만 좋으면 됐지!!”
“하나도 안 좋거든!!”
“니들 용자 시리즈 무시하냐??”
용자 시리즈는 파이버드(썬가드)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방영된 상당히 인기 작품들이었다.
특수촬영물 중에서도 바이오맨이나 플래시맨 같은 슈퍼전대 시리즈가 그 대표 격이라면, 로봇 물에는 용자 시리즈가 있다고 해야 하나??
물론 특촬물에는 가면라이더 시리즈도 있고 로봇물에도 건담이나 마징가 등의 시리즈가 그 유서 깊은 계보를 자랑하고 있다지만, 비교적 뒤늦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용자 시리즈는 상당한 팬이 있었다.
그래서 시리즈 제작이 중단된 20년 후에도 슈퍼로봇대전이라는 로봇들이 등장하는 게임에도 나오기도 하고.
아무튼 용자 시리즈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일행의 말에, 두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이건 어때? 왼쪽부터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비전,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이럼 됐냐?”
“그건 마블 작품의 영웅들이잖아!!”
“누가 마블 작품의 영웅들을 개 이름으로 붙이냐!!”
이번엔 일행이 발끈했다. 마블의 영웅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란 이름으로 영화화가 되어서 기존의 배트맨이나 슈퍼맨 등의 DC 작품의 히어로들은 물론, 전 세계 영화 수입의 탑을 차지하고 있던 스타워즈 시리즈도 물리친 희대의 시리즈였다.
서이나 너이들도 지금 전쟁이 일어나서 영화를 못보고 있는 것이지 그런 마블 영화의 팬이었는데 그런 걸 개 이름으로 붙이자고 하니 열 받은 것이다.
“그럴 바에는 배트맨이나 슈퍼맨 같은 이름을 붙이라고! 아님 플래시맨이나 아쿠아맨 등 뭐 많잖아??”
“아쿠아맨은 뭐 그렇다 치고 배트맨이나 슈퍼맨 같은 이름을 붙이라니 그 둘도 참 퇴물 취급이구나······.”
뭔가 서글퍼져서 두리는 말을 잃었다. 두리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지금 인기 있는 아이언맨이나 토르 같은 애들이 오히려 듣보잡 취급이었고, 그에 비해 슈퍼맨이나 배트맨의 인지도가 훨씬 높았을 때가 있었다.
슈퍼맨은 수없이 작품이 나온 유서 깊은 시리즈였고, 배트맨은 호불호는 갈리지만 역시나 많은 작품들이 나왔고 그렇다는 건 당연히 인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었다.
마블 영화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시빌 워로 대립하면서도 힘을 합치듯이, DC 세계에서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이런 관계에 가깝다.
아이언맨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비브라늄 방패로 캡틴 아메리카가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을 갈기듯이, 배트맨도 슈퍼맨의 고향 행성의 광물인 크립토나이트로 슈퍼맨을 조진다.
아무튼 이 슈퍼맨이나 배트맨이나 배트맨은 다크나이트 트릴로지라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명작 시리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작품들이 별로라서 망했고, 슈퍼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맨 오브 스틸까지는 그래도 나름 호평도 있었지만 이후 작품들이 손익분기점도 못 넘어서 그야말로 망한 상황.
그러니 이야기라는 게 참으로 어렵다. 누구나 아는 검증된 유서 깊은 캐릭터를 썼는데도 작품이 한순간에 망하고 캐릭터 평가마저 떨어지며 경쟁사의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작품들이 승승장구하니.
아무튼 두리는 어깨를 으쓱하고, 이름을 짓는 걸 포기했다.
“야, 그냥 이름 짓지 말자. 우리가 얘들 데리고 살 거냐. 이 똘이도 계속 데리고 살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데 그냥 내버려두자. 그것보다 우리가 신경 써야 될 문제가 한둘이 아니야.”
“음, 그건 그렇지.”
“근데 어쩌다가 이 얘기로 빠졌더라??”
뜨끔!! 이건 다 너이가 새로 만난 개들의 이름을 똘똘이 같은 식으로 짓자고 해서 일어난 참사였다.
그로인해 두리가 용자 시리즈의 로봇 이름을 붙인다든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웅들 이름을 붙이자고 한 상황.
그런데 자주 볼 일도 없는 이런 개들한테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정말로 없기도 하고, 설령 지어준다고 해도 일행들 스스로가 헷갈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개들은 돌연변이가 되어 다들 덩치가 커지고 털이 벗겨져서 언뜻 보기엔 그 개체가 구분이 안 되었다. 그러니 헷갈리는 상황.
그런데 개들하고 놀던 하나는 뭔가 발견했다.
“엇, 저기, 그 돌연변이 고양이에요!!”
“뭐야, 미미라고?!”
개들과 놀던 일행은 화들짝 놀자 뒤로 돌아보았다. 그러자 처음엔 몰랐는데, 상당히 먼 곳에서 그 미미가 조용히 일행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저 스토커 자식.”
“아무리 고양이라고는 하지만 조용히 말없이 따라오니까 뭔가 좀 무섭네.”
일행은 부르르 떨었다. 이래서 요물. 과연 고양이는 요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계속해서 쥐 고기를 갖다 주는 걸 보면 일행에게 적의는 없는 듯 한데, 그렇게 멀리서 조용히 보고 있은까 상당히 무서웠다.
“역시 고양이는 요물이야, 으.”
“야, 아무튼 쥐 고기 고맙다!! 잘 먹을게!!”
두리가 손을 흔들자 물끄러미 일행을 바라보던 미미는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마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그런 생물이니까.
사람의 상식으로 이 고양이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원래 고양이는 개보다 더 이해하기가 힘들고, 당최 종잡을 수가 없는 생물이었다. 그러니 변덕스러운 생물의 대명사 하면 고양이가 떠오르는 것.
그런데 돌연변이 고양이와 개와 좋게 일을 마무리한 일행들 앞에 다른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이 발소리의 정체는 돌연변이 락. 삐에로에게 떠밀려 일행을 노리는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게다가 락은 혼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돌연변이들을 거느리고 다가오는 상황.
물론 이는 삐에로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락에겐 이런 능력이 없다.
“저기, 급하게 부하로 돌연변이들 좀 만들어주시면 안됩니까??”
“왜, 혼자 가기는 불안한 거냐?? 쓸모없는 놈.”
삐에로는 한숨을 내쉬고 마지못해 근처 인간들을 습격해 돌연변이로 만들었다.
원래 지하에 숨어있었다면 그리 쉽게 발견하진 못했을 텐데, 이 인간들은 막 지상으로 올라온 상태였다.
그리고 올라오자마자 돌연변이화. 지하에 길들여진 연약한 인간들은 돌연변이들을 못 이긴다. 물론 지상에 있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원래 이 지하로 향한 인간들 자체가 돌연변이들을 피해 숨어들어간 것이다.
그러니 결국 마찬가지.
“자아, 준비는 되었다. 이제 네놈들도 돌연변이가 될 시간이다!”
우하하하하하!! 하고 락은 웃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