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살아있는 제초기
이튿날 일행은 모두 거점인 병원 근처에서 산책을 나섰다. 이는 마음이 싱숭생숭했기 때문.
지상에 올라오고 나서 별의 별 돌연변이를 다 만났다. 개에 인간, 그리고 그런 돌연변이도 자기들끼리 잡아먹어서 생긴 포식형에 서로 합쳐져서 생긴 융합형, 그리고 그런 융합형 돌연변이를 만들고 조종하는 삐에로의 기생충.
그 외에 메기인간 같은 것도 있었고 얼마나 많은 돌연변이들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예 그런 돌연변이들이 모여 있다는 조직 라운더스. 이제 그들이 일행을 노릴 것은 분명했는데, 가까스로 융합형 돌연변이와 그를 사주한 삐에로는 쫓아냈지만 그 삐에로 역시 조직의 일개 하수인이라는 것을 안 이상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덤으로 하늘은 방사능 낙진으로 만들어진 잿빛 구름으로 가득한 상황.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일행은 위험을 감수하고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걸어 다녔다. 원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밖에는 안 나오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방사성 낙진들이 오존층을 파괴하고 그로 인해 강해진 자외선이 피부암과 돌연변이를 유발하기 때문.
공기 중에는 바람을 타고 방사능 물질들이 떠돌아다니고, 식량을 찾는 것이 아니면 지상에 나올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런데 일행은 돌아다니다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자, 잠깐, 이거 뭐냐??”
“실화냐??”
두리와 너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서이와 하나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발견한 것은 사루비아.
길거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붉은 꽃이다. 보통 이 꽃에서는 달콤한 꿀을 빨아먹을 수 있는데, 어지간한 꽃에서는 다 꿀을 모을 수 있지만 이 사루비아는 사람이 빨아도 바로 그 단맛이 느껴질 만큼 상당히 단맛이 강하다.
물론 꽝을 뽑을 때도 많다. 단맛이 느껴지지 않거나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우.
잘은 모르지만 어쩌면 선객이 다녀갔거나 아직 그로인해 꿀이 모이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행이 놀란 것은 단순히 사루비아를 발견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사루비아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었다.
꽃 크기가 거의 호박잎 정도? 게다가 사루비아는 한 줄기에 한 송이만 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송이가 동시에 핀다. 보통 한 줄기에 30송이 이상이 피는데 사루비아는 원래 그 꽃이 넓적한 것이 아니라 길고 좁으므로 이렇게 여러 송이가 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루비아가 방사능 돌연변이로 인해 커지자 30송이 이상의 꽃송이가 핀 이 사루비아는 엄청나게 거대해졌다.
거의 깃털을 활짝 펼친 공작이나 사자의 갈기가 생각날 정도. 그 정도로 크다.
그런데 울긋불긋한 이 거대한 사루비아들이 피어있는 화단을 보면서, 일행은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건가?’
이게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핵전쟁 이후의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먹을거리다.
솔직히 집이야 정 안되면 땅이라도 파든가 지하 도시로 돌아가면 되고 길거리에 널린 게 폐건물이었다.
주인을 잃은 빈 건물들. 아마도 그 주인들은 지금쯤 죽었거나 지하 도시로 피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집과는 달리 방사능의 오염이 걱정되는 이 사루비아.
한번쯤 먹어보고 싶다. 그 안에 감춰진 꿀을 가득. 그런데 뭔가가 찝찝한 상황.
이건 방사능 때문이다. 이 정도로 커졌으면 분명 방사능을 잔뜩 머금고 돌연변이가 됐을 게 뻔한데 그 달콤한 꿀을 먹고 싶다.
감미로운 음식을 먹은 지 대체 몇 년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는 상황. 일행은 아직 다들 어리다.
그리고 단 음식은 한 번씩 먹지 않으면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 정도의 중독성.
지하도시의 번데기나 버섯, 가끔씩 먹는 돼지고기만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사람의 혀는 다양한 맛을 원한다. 결국 일행은 유혹에 꺾였다.
“머, 먹어도 별 일 없겠지??”
“그럼, 어차피 우리는 내공이 있잖아. 그치, 하나야?”
“네, 부, 분명 별 일 없을 거예요, 하하.”
그 침착하고 냉정한 하나조차 꿀의 유혹에 이기지 못했다. 단맛이란 남자들도 좋아하지만 여자들은 더 좋아한다. 그러한 단것의 마력. 결국 일행은 손을 댔다.
꿀꺽!!
고작 사루비아 하나 빨았을 뿐인데 엄청나게 농후한 감미가 느껴졌다. 뭐지, 이건? 꿀단지인가?
마치 전쟁 전에 접할 수 있었던 꿀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 꿀을 잔뜩 머금은 사루비아는 실로 달콤하고도 텁텁하지 않게 그 단맛을 자아냈다. 그러한 꿀의 향연.
사실 이런 사루비아만큼 인간이 아무런 가공도 없이 그 단맛을 볼 수 있는 식물도 드물다.
일행은 허겁지겁 사루비아 꽃을 빨았다.
“뭐야, 이거, 마이쪙!!”
파오후, 쿰척쿰척! 몇 년 만에 맛 본 단맛은 일행의 이성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뭐지, 이거? 마약이라도 들어있는 건가?’
일행이 죄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의 마력이었다. 물론 마약 성분은 없다. 다만 몇 년 만에 감미를 맛보자 완전히 넋이 나간 상황.
6.25이후 미군으로부터 껌이나 초콜렛을 받은 아이들은 그 단맛에 환장하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미군 트럭을 따라다니며 구걸한 것은 덤. 그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픈 역사.
그런데 지금 두리 일행의 기분이 그와 비슷하다. 몇 년 만에 맛본 감미에 환장을 한 상황.
제 정신이 아니다. 단 맛을 오랜만에 맛본 육체가 미친 듯이 그 꿀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원래 육체란 욕구를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그 반동이 커지는 법. 지금 네 명은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육체가 맘대로 꽃을 빨아들인다. 버틸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동안 꿀을 빨아들인 네 명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꿀만 빨아서 배가 부를 정도가 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렷을 정도.
네 사람의 배는 당분으로 가득했다. 개미 중에 이렇게 당분을 가득 저장하고 있는 꿀단지 개미라는 생물이 있다는데 그 모습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네 사람은 지금 그저 한 마리의 꿀단지 개미일 뿐이었다. 그 정도로 배가 빵빵하다.
“저기, 이러다 우리 죽는 거 아냐??”
“왜요, 갑자기 너무 단 걸 많이 먹어서요?”
“응.”
너이는 급작스런 당분의 섭취를 걱정했다. 실제로 과도한 당분의 섭취는 그닥 좋지 않다.
면역력에 이상이 오고 이로인해 치매나 당뇨, 심장병, 우울증을 불러온다는 말도 있다. 아토피나 건성 피부 역시 포함.
게다가 그런 병이 아니더라도 혈당치가 급격히 오르면 식은땀이 흐르고 갑자기 수면욕이 급증할 수 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틸 수 없는 졸음. 그래서 과도한 당분 섭취는 좋지 않다. 운전이나 일을 한다면 더욱. 물론 지금은 딱히 운전할 일이 없지만.
네 사람은 그런 지식까지는 없어서 그 부작용을 몰랐지만 그보다 다른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거, 꿀을 한번 모아볼까요?”
“꿀을?”
“네, 이대로 놔두면 꽃이 지거나 벌들이 꿀을 먹을 수도 있는데 가만히 놔두는 건 아까울 것 같아요.”
“흠, 과연······.”
꿀을 모으는 건 좋은 생각이다. 여차할 땐 식량으로 쓸 수가 있고 당분은 식료품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기든 채소든 강한 당분이나 염분으로 재워두면 미생물 번식이 억제돼 그 유통기한이 현저히 늘어난다.
그렇게 만든 음식들이 바로 장아찌나 젓갈 같은 것이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초콜렛이나 젤리, 사탕, 과자 같은 것은 그 유통기한이 상당히 길다. 방부제를 넣지 않아도 당분이 알아서 부패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설탕이나 기타 잡다한 감미료가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꿀은 그 유통기한이 이론상 거의 무한하다고 한다. 수천 년이 지나도 멀쩡하다는 꿀. 반대로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서늘하고 적당한 온도의 장소에서 보관했는데 몇 년이 지나서 그 꿀이 상했다면 그 꿀은 가짜라는 뜻이다. 그러한 판별법. 꿀의 당분이 살균 작용을 일으킨다. 썩지 않는 자정작용.
이렇게 꿀을 모아두면 식료품의 유통기한 향상도 일으킬 수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에너지원. 탄수화물은 인체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영양소 중 하나다. 다이어트 등을 위해 과도하게 그 섭취를 제한하면 오히려 힘이 없어지고 기운이 나지 않아 건강이 안 좋아진다.
물론 핵전쟁 이후의 세계에서는 다이어트란 개념이 없지만. 먹을 것도 없는데 다이어트를 하면 그냥 죽는다. 만약 다이어트를 한다면 그것은 자발적 다이어트가 아니라 상황에 의한 타의적 다이어트다. 즉 식량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굶는 것이란 말.
일행은 열심히 꿀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등에 맨 비단 주머니에는 항상 용기나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싸움이 일어나면 주머니를 벗고 싸운다.
비단 주머니나 안에 든 물건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그런데 한창 열심히 꿀을 모으던 두리는 갑자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야······.”
“응?”
“네?”
꿀을 모으다 말고 입을 연 두리의 말에 일행이 모두 돌아보았다. 일행은 지금 미친 듯이 꿀을 짜는 중이었다. 돌연변이로 인해 거대화된 사루비아 꽃송이 안엔 얼마나 꿀이 많은지 그저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도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야말로 꿀 빠는 상황.
이런 게 바로 노다지다. 솔직히 말해서 이젠 금보다 통조림이나 이런 꿀이 더 귀할 것이다.
일행은 완전히 노다지를 만난 상황. 그런데 두리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꽃이 많은데······ 과연 벌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자 일행은 모두 얼어붙었다. 싸늘하다. 심장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그런 갑작스런 전율. 꽃이 이렇게 크다는 것은 일행이 맛본 것처럼 꿀도 많고 그런 꿀을 먹는 생물이 번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 어떤 생물의 개체는 그 먹이가 풍부할수록 수도 많아지고 덩치도 커진다.
그로 인한 결과. 그런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을 반증하듯, 갑자기 어디서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붕! 부우웅!!!
처음에 일행은 무슨 제초기 돌리는 소리인줄 알았다. 모터 출력을 최대로 하고 마치 잔디를 깎는 듯한 소리.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일행이 돌아보니 그곳에서는 무수한 벌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크기도 장난이 아닌 상황. 마치 사람 머리통만한 벌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일행은 경악하며 꿀을 모으던 용기도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꿀이고 뭐고 걸리면 바로 죽는다.
그 정도의 두려움. 한두 마리도 아니고 거의 수십, 수백 마리의 그런 벌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제, 젠장, 튀어!!!”
“으아악!!!”
일행은 죄다 비명을 지르며 튀었다. 이 벌들은 돌연변이보다도 무섭다. 돌연변이라 해도 삐에로쯤의 지성이 있는 존재면 대화가 통하지만 이 벌들은 대화가 안 통한다. 순수한 본능의 생물. 그야말로 킬러 비(killer bee)다!!
“으악!”
“으아악!!!”
원래 꿀벌은 이렇게 난폭하지 않지만 아마 돌연변이가 되면서 저 벌들도 거칠어진 것 같았다. 일행은 들고 있던 물건이고 뭐고 모조리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뛰었다. 잡히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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