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속마음
아무튼 이렇게 개고기를 간신히 다 먹은 네 사람은, 어쨌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주로 채소나 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위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탈이 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두리 일행이 지금 이 개고기를 먹고 무사할 확률은 드물었다.
그나마 수육이나 탕으로 요리한 것이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기름기가 흐르는 구이로 요리해버리니 아마 더욱 그런 현상은 심할 것이다.
개고기는 상대적으로 다른 고기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고기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의 몇 년 만에 먹는 고기를 이렇게 많이 먹고 무사할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돌연변이로 인해 가뜩이나 커진 개 한 마리를 비록 내장이나 가죽은 먹지 않았다지만 통째로 먹어버리니 후일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미쳤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두리 일행에게 소녀는 안심하라는 듯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서 뭔가 걱정되시나요? 괜찮아요. 내공은 여러분들의 내장기관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입니다.”
“음, 그 말을 들으니 안심되기는 한데 내공이 무슨 무안단물도 아니고 그렇게 만병의 치료제 같이 얘기하면······.”
“어머, 내공은 실제 그 정도의 효과는 하는 물건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죠. 애초에 내공은 불로장생을 목표로 하다 인간이 발견한 것이니까요. 물론 만능은 아니에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위장이나 신체기관 보호 정도의 능력은 당연히 있죠. 애초에 내공이란 재생에너지의 집합체이니까요.”
두리는 ‘그렇군.’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네 이름은 뭐야?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네. 어떻게 보면 제일 처음 물어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러게?”
“어쩌다보니 타이밍을 놓쳤네.”
그렇게 두리 일행 세 사람은 겸연쩍은 듯 허허허 웃었는데, 실제로 돌연변이 개들을 상대하고 마을에서 같이 나온 일행들이 죽고 소녀와 만나면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이제 고기도 먹고 배도 적당히 부르면서 긴장이 늦춰지자 문득 생각난 것인데,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괜찮아요. 저도 말하다보니 자기 소개할 타이밍을 놓쳤으니까요. 제 이름은 하나에요. 한자가 아니라 순 우리말 한글이죠.”
“뭐?”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의아해하는 두리를 제외하고 서이와 너이는 갑자기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역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두리가 뒤늦게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아, 얘 이름은 서이고, 얘 이름은 너이거든. 말하자면 우린 하나, 두리, 서이, 너이가 되는 셈이지.”
“네?! 하하하하하하!!!”
뒤늦게 사정을 알아챈 하나가 박장대소를 했다.
우연도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에?! 거짓말?! 구라죠?!”
“아니야, 구라는 무슨. 우린 어릴 때부터 이미 같이 옆집에 살았었어. 실제로 부모님들이 그러다 친해져서 이름을 비슷하게 지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이름도 순 우리말인 건 똑같애. 말하자면 너랑 우리는 이름이 비슷하게 지어진 것이지.”
“하하!”
소녀는 한참을 웃더니 겨우 배를 잡고 웃음을 멈췄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엔 눈물마저 맺혀있었다.
“그나저나 참으로 우연이네요. 아까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두리 오빠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응? 우리가 말했었어?”
“네, 아까 추궁과혈을 할 때요. ‘두리에게서 떨어져!’ ‘두리가 죽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때 이름을 듣고서 알았죠.”
“어, 우리가 그랬었나? 흠흠.”
“미안해, 그때는 워낙 긴장해서.”
“아니요, 그럴 수도 있죠. 애초에 그 일은 제가 멋대로 추궁과혈을 하면서 생긴 일이니까요. 사전에 설명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러질 않았으니 오해받아도 마땅했죠. 다시 한 번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꾸벅 고개를 숙이는 하나를 보고 서이나 너이 역시 절레절레 손사래를 쳤다.
“아냐, 우리가 미안하지. 좋은 마음에 해주려는 일이었는데 뭣도 모르고 심하게 말했으니까 말이야.”
“다시 한 번 미안해.”
그렇게 서로가 사과를 하다 계속해서 그러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그 일은 이쯤 해두기로 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가장 중요한 화제를 하나가 꺼내자 두리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음··· 솔직히 말해서 우린 지하도시에서 지상을 탐색하고 각종 정보를 입수하거나 다른 생존자들과의 연락망을 만들기 위해 이 지상으로 파견되었어. 하지만 아까 나타난 저 돌연변이 개들 때문에 다른 일행들이 모조리 죽고 이제는 우리끼리 이 임무를 해나가야 하지.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좀 불안해.”
그렇게 말하고 어두워지는 두리의 표정에, 서이와 너이의 표정 역시 덩달아 어두워졌다.
비록 그리 맛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고기도 먹고 하나를 만나서 내공이라는 행운도 얻었고, 잠시나마 이름에 대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며 현실을 잊고 웃음보라도 터트렸는데 막상 자신들의 임무를 생각하니 표정이 어두워진 것이다.
게다가 미리 자원해서 지상 임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던 두리와 달리, 서이와 너이는 반쯤 충동적으로 지원한 것이라 아직 마음의 정리가 완벽하지 않았다.
막상 두리 혼자 내보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서로 상의하다 갑자기 출발 당일 날 뛰쳐나온 것인데, 그러한 상태니 당연히 불안하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막상 상상만 하다 갑자기 본 지상의 상태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전쟁 전이라면 설령 유기견이라도 인간을 덮친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는데, 이러한 돌연변이 개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인간을 덮쳐왔던 것이다.
만일 하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지금도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러한 상황을 다시 떠올리니 모골이 송연해졌던 것이다.
아까 전까지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린 서이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사실을 예리하게 눈치 챈 하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면 어떨까요? 저 역시 지금은 혼자고 딱히 갈 데는 없어요. 어차피 갈 것이라면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당분간 여러분의 내공을 성장시키는 것도 봐주고 싶고 말이죠.”
“그렇게 해주겠어?”
“정말 고마워!!!”
서이와 너이가 그 순간 하나의 손을 덥썩 잡고 흔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당연히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불안한 이 지상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먼저 하나가 같이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두리를 포함해 서이와 너이 역시 속마음으로는 하나에게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뭔가 좀 미안해서 말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돌연변이 개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게다가 내공이라는 큰 선물까지 주었는데 그렇게 권유를 해버리면 뭔가 반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하나의 성격상, 분명히 그렇게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말을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세 사람이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미처 말은 못하고 그저 넌지시 그러한 자신들의 상황을 담아 얘기한 것인데 그러한 상황을 눈치 챈 하나가 먼저 말을 꺼내준 것이다.
말하자면 대표로 그러한 말을 한 두리는 물론이고 서이와 너이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싸움에 능숙한 하나가 자신들과 같이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하나가 그것을 알아채고 자신이 먼저 두리 일행의 마음이 편하게 제안을 해준 것이다.
사실상 동행이라고 해도 단순한 일행이 아니라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까처럼 세 사람은 하나에게 신세를 지고 때로는 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미안해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인데 하나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감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지금 세 사람은 앞으로 무조건 하나의 말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상태였다.
비록 말은 꺼내지 않았어도 이미 이 지상에서 몇 년을 혼자서 버텨낸 하나는 생존 경쟁의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각종 돌연변이나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겪어보았을 터인데 그러한 하나의 경험과 무력은 일행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지금 세 사람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하나가 합류해준다니 훨씬 걱정이 덜 되네!”
“앞으론 뭐든 말만하라구! 옆에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아뇨, 여러분 그렇게 부담 주셔도······.”
순식간에 걱정을 다 덜어놓은 듯한 서이와 너이를 보고 하나는 뭔가 부담이 되는 듯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고 진실하게 말했다.
“좋아요, 여러분. 여러분이 그렇게 따라주신다니 저로서는 걱정할 게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동안 저 혼자 이 지상에서 살아남았고 여러분들보다 경험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가능하면 앞으로 제 말에 잘 따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다고 해서 제 멋대로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언제나 여러분들과 상의를 할 테니까요!”
“그야 당연하지!”
“우리만 믿으라구!!!”
호언장담하는 서이와 너이를 보며 하나는 물론이고 두리도 웃었다.
이렇게 개고기를 다 먹은 네 사람은, 오늘은 날도 늦었고 특히나 두리 등 세 사람은 오늘 처음 지상으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일찍 쉬기로 했다.
두리 일행의 사정을 고려한 하나가 일찍 쉬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죠. 게다가 지금 저희는 방금 막 개들을 사냥하고 그 고기를 구워먹은 터라 바로 막 나가면 다른 개들의 표적이 될 수 있어요. 다들 아시죠? 개들이 냄새에 민감한거?”
그 말에 두리 등 세 사람은 다들 동의했는데, 괜히 어슬렁어슬렁 병원 밖으로 나갔다가 분노한 돌연변이들에게 뜯어 먹히는 것은 사양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개들은 돌연변이가 되면서 더더욱 냄새에 민감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지상의 인간들이 하나둘 사냥을 당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일찌감치 병원 침대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누웠는데, 날씨가 워낙 추워서 저마다 각 층을 뒤져 담요를 잔뜩 들고 왔다.
이러한 지상은 지하보다 훨씬 더 추워서, 바람의 흐름이 거의 없는 지하에 비해 지상은 엄청나게 추웠던 것이다.
계절도 계절이고 무엇보다 추위나 더위란 기온 이외에도 습도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두리는 누워서 창문 밖으로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손을 머리 뒤에 받친 채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서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자?”
“응, 자고 있어.”
“···아직 안자네···.”
“······.”
“나 말이야, 갑자기 지상으로 나올 때는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와 보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그러지 않았다면 그대로 평생 그 지하 도시에서 갇혀 살 수도 있었을 거 아니야? 정말 다행으로 생각해.”
“그건 니가 아직 안 죽어봐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
“······!!! 맞아···. 그래서 미안해···.”
서이의 말에 갑자기 자신을 따라 뛰쳐나온 서이와 너이에 대한 화가 다시 한 번 떠올라서, 두리는 무심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니가 아직 안 죽어봐서 그렇다는 두리의 말도, 말투가 퉁명스러워서 그렇지 말 자체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만약 하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을 비롯해서 서이와 너이 역시 죽은 목숨이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니 막상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퉁명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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