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산 넘어 산
“사, 사람 살려!!!”
부와아아앙!!!
마치 16기통 엔진이 풀 파워로 전개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벌들이 쫓아왔다.
사람 머리통만한 벌들이 몇 백 마리나 쫓아오는 상황. 일행은 공포에 질렸다.
이 공포는 돌연변이들을 상대하는 것과 비할 바가 못 된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무섭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생물들의 습격. 사실 두리 일행이 꿀을 따던 화단은 이 벌들의 영역이었다.
원래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벌들도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꿀을 채집했는데 오늘 꿀을 빨러왔더니 웬 낯선 인간들이 꿀을 건드리고 있었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원래 자연의 꿀에 주인이 어디 있겠냐 만은 꿀은 벌들의 주식이다. 실제론 꿀이 아니라 설탕도 먹고 그래서 벌에겐 설탕물을 주고 그 벌들이 생산하는 꿀을 날름하는 양봉 방식도 있었는데, 이때 설탕물에 색소를 타서 주면 벌들이 또 그 색소가 들어간 설탕물을 꿀로 바꿨다.
이러한 자연의 신비. 실제로 그 벌들이 꿀을 모은 꽃에 따라 꿀의 색도 달라진다.
그런데 그런 자연의 신비는 둘째 치고 미친 벌들이 날아오는 상황. 공포다.
원래 특별히 벌독에 알레르기가 없다면 2000마리 이상의 벌에게 쏘여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머리나 목 등에 맞으면 조금 얘기가 다르다. 머리나 목에는 신경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고 목이고 마치 맞으면 죽을 것만 같은 예감.
이것은 확신에 가깝다. 두리 일행은 내공을 익히면서 그 감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이 벌들도 돌연변이로 거대화되면서 그 독의 양이나 독성이 엄청나게 증가했을 것이다.
돌연변이화는 그 생물의 크기를 키우고 그 생물의 무기를 엄청나게 강화한다.
그러니 독을 무기로 삼는 벌들은 그 침의 위력이나 독이 엄청나게 증가했을 것은 당연한 일.
만약 독이 시원찮더라도 이렇게 사람 머리통만한 벌들에게 수백, 수천발이 쏘이면 아무리 강한 네 사람이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벌꿀 오소리도 아니고.
벌꿀 오소리는 봉독은 물론 뱀독에도 면역력이 있어 물리거나 쏘여도 잠시 자고 일어나 다시 그 벌집이나 뱀들을 조진다는데, 아무리 내공이 강해도 사람 몸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도주하는 건 당연한 일.
“어, 어떻게 하지?!”
“일단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
“오케이!!”
네 사람은 모든 내공을 발휘하여 미친 듯이 뛰었다. 다른 돌연변이들을 상대할 때도 이 정도로 뛰었을까? 등 뒤에선 16기통 엔진을 울리며 람보르기니, 아니 벌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소리만 들으면 마치 그런 고출력 스포츠카가 달려온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 부딪쳤을 때의 위력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일행은 허공답보를 활용해 건물 벽과 공기를 밟으며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다 나중엔 아예 날아가게 된 일행.
부와앙!!!
이 소리는 벌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벌들도 이런 소리를 내고 있기는 한데, 지금 이 소리는 네 사람이 나는 소리다.
어기비행술. 네 사람은 정말로 날고 있었다.
원래 허공답보를 비롯한 신법은 순간순간 내공으로 그 공기를 강화해 압축된 공기를 밟고 뛰는 기술이다. 허공에 고정돼있는 벽돌을 만드는 것과 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술인줄 알 상황.
그런데 이 어기비행술은 내공을 이용해 완전히 날아가는 기술이었다. 둘 중 어느 기술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한발 한발 공기를 밟으며 나아가야하는 허공답보와 달리, 어기비행술은 말 그대로 공중에서 날아가기 때문에 그 속도가 비교도 안 되었다.
콰앙!!!
네 사람은 지금 제트기였다. 인간제트기. 양발에서 뿜어져 나온 내공이 추진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양손에서 내뿜는 내공으로 자세를 제어한다. 마치 아이언맨, 아이언맨과 같다.
원래 비행에 사용해야할 리펄서 건으로 공격을 하는 아이언맨. 그런데 이 네 사람은 내공이라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비행을 하고 자세를 제어한다.
그야말로 만능. 만능의 에너지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그런 상태에서 공격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그리고 지금 네 사람은 그런 공격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다.
그저 미친 듯이 날아갈 뿐. 벌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네 사람의 집념이 신기술을 만들었다.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위대한 창조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감탄했다는 듯이 박수를 짝짝 치며 말하고 있으면 네 사람은 욕을 내뱉을 것이다. 그 정도의 위기. 위기감이었다.
결국 일행은 미친 듯이 날아 얼마 전 돌연변이 메기인간을 봤던 호수공원에 도착했다.
네 사람이 서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이 공원으로 온 까닭은 하나였다.
‘물로 뛰어들자!!’
이것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벌의 공격을 피하는 방식이다.
건물 안으로 피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이 벌들 정도의 크기가 되면 단체로 부딪쳐서 유리창 깨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그 정도는 딱 보면 안다. 일행이 헤쳐 온 수라장이 한둘도 아니고.
싸운다는 것은 단순히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판단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힘이 약한 자들도 강한 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처럼.
다윗은 슬링으로 돌을 날려 골리앗의 머리통을 박살낸 다음 그 칼을 뺏아 목을 벴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다윗의 영웅적인 모습과는 달리, 일행은 그저 미친 듯이 도망칠 뿐이었다.
상대는 자연. 거스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대적하는 것도 무슨 돌연변이 개나 고양이 같은 경우에나 해당하는 것이지, 만약 돌연변이 개라도 몇 십, 몇 백 마리가 덤비면 이들은 당연히 도망갈 것이다.
똑같은 수가 덤빈다면 차라리 개나 고양이보다 인간이 더 상대하기 편하다. 그 정도의 전투력.
일행은 결국 호수로 뛰어드는데 성공했다.
풍덩!!!
이 호수는 방사능 물질이 가득해 딱 봐도 시커멓고 예의 그 메기인간 같은 돌연변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일행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꿀벌의 위협이 컸기 때문.
원래 꿀벌은 먼저 사람을 잘 쏘지 않지만 영역을 침범당하거나 개중에는 사나운 종들도 있어서 말벌이 아닌데도 덤비는 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사나운 주제에 그 값을 한다고 꿀 생산량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인간의 입장에선 쓸모없는 놈들. 양봉에는 적합하지 않다.
한반도의 양봉 역사는 고구려 주몽 때부터 중국에서 전해져 왔다고 하니 무려 그 역사가 2천년이 넘었다. 이걸 또 백제가 일본에 전했다는데, 그런 역사는 물론이고 꿀이란 인간에게 익숙한 물건이기 때문에 두리 일행도 당연히 그 꿀을 먹고 싶다.
저 꿀벌들의 본거지인 벌집에 모여 있는 꿀은 아까 일행이 빤 사루비아의 꿀보다 엄청나게 더 달달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루비아 같은 꽃 안에 들어있는 당분은 꿀이 아니다. 자당이라고 하지.
그런 자당을 벌이 먹었다가 토해내는 과정에서 효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꿀이다.
그런데 그런 꿀도 목숨이 있어야 빠는 법. 꿀 빨려다가 진짜로 지옥을 맛볼 수가 있다.
그 정도로 위험한 돌연변이 벌 상대하기. 일행은 목숨 아까운 줄을 알았다.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먹고 싶은 물건은 아니다. 아무리 그 꿀이 달더라도.
왜애애애앵!!!
마찬가지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벌들이 떠나갔다. 잠시 일행을 쫓기 위해 호수 주변을 얼씬거렸지만 아무리 돌연변이 벌이라도 헤엄은 못 친다.
폭격기가 잠수를 못하듯이. 그건 엄밀히 말해서 그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가 되도 넘을 수 없는 선이란 게 있었다. 그런 한계.
물속에서 잠시 머물고 있다가 바깥이 조용해지자 네 사람은 일제히 뛰쳐나왔다.
“푸학!”
“푸하학!!!”
“야, 갔냐?!”
너이가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물속에서 숨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 하마터면 벌에 쏘여서 죽는 것이 아니라 숨 참다가 죽을 뻔.
보통 해녀들은 최소 2분은 숨을 참는다고 하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추운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해산물을 건지며 도로 올라오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힘들었고 정조도 자신의 밥상에 올라오는 전복을 그렇게 해녀들이 힘들게 딴다는 사실을 알자 전복 올리는 걸 금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네 사람이 잠수한 시간은 5분. 무려 5분이었다.
원래 내공이란 게 호흡법을 통해 공기 중에 있는 에너지를 단전에 축적한 것이기 때문에, 내공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그 폐활량도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었다.
물론 네 사람은 지금 그 물속에서 해산물을 건지거나 수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벌들에게 쏘이지 않기 위해 버티려고 물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었으므로 상당히 그 소모가 컸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초장시간 잠수를 한 건 덤. 이러면 보통의 인간은 산소가 돌지 않아 뇌가 손상된다. 흔히 말하는 뇌사상태. 그러나 네 사람의 초인적인 폐활량은 그 사태를 방지했다. 이제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이들이 돌연변이 같다. 인간 맞나?
그러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라서 네 사람은 튀어나오자마자 바로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헉, 헉!!!”
게다가 지금은 3월이라 겨울. 비교적 날씨가 포근해지고 봄이 오고 있다지만 물속은 아직도 춥다. 그래서 특히나 두리와 너이는 신체에 변화가 온 상황.
“아우, 랄부 떨렷!!”
“야!!”
두리가 몸을 부르르 떠는 너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자기들끼리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서이나 하나가 있는 상황.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서이면 몰라도 하나는 아직 조금이라도 더 어리고 어색한 사람. 비록 동생이라고 해도 가릴 건 가려야했다.
조심해야 하는 그 언행. 그런데 하나가 먼저 웃으며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공기를 풀어주었다.
“괜찮아요, 그건. 생리현상이잖아요? 원래 그래서 남자들은 해녀일도 못한다던데요?”
그렇다. 고환이라는 정소가 몸 밖으로 나와 있는 남자는 물일을 하기에 적합하지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건 아닌데 아무래도 그런 페널티가 있으므로 여자에 비해서는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전쟁 전의 한국에도 해녀학교가 있고 그중에는 남자 해녀를 꿈꾸는 수강생도 있었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한다면 해남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이 호수는 방사능만 가득하고 게다가 또 메기인간 같은 돌연변이 괴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일행은 벌 소리가 사라지자 바로 나왔다. 그로인해 걸린 시간이 5분.
“개 같은 벌 새끼들, 덕분에 죽을 뻔했잖아!!!”
“개 같은 거냐, 벌 같은 거냐, 하나만 택해라.”
침을 퉤, 뱉으며 자신들을 따라온 벌들을 욕하는 너이를 보고 두리는 웃으며 뭐라고 했는데, 그런 두리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뭐야, 왜 그래?”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두리가 보던 방향을 보던 너이도 마찬가지. 그곳에는 개가 있었다. 돌연변이 개. 그런데 그동안 보던 개와는 그 크기가 다르다. 마치 호랑이. 아니 사자?
아무튼 엄청나게 크다. 원래 지금까지 봤던 돌연변이 개도 크기 했는데, 그 크기는 늑대 정도였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 큰 개? 그런 건 군용견이나 사냥견, 도사견 중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이 개는 차원이 달랐다.
“오, 쉣······.”
욕을 하며 시선을 떼지 않는 너이였는데, 그런 너이는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서이가 얼어있었다. 처음엔 자기들이 본 그 개를 보고 경직된 건 줄 알았는데, 곧 너이는 다른 것을 발견했다. 서이가 보는 방향에 돌연변이 고양이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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