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카밍 시그널
눈을 감은 두리와 다른 일행의 공격이 이 돌연변이 개와 고양이를 맞춘 건 우연이 아니었다.
흔히 무협소설이나 판타지소설 등에서 궁지에 몰린 주인공들이 눈을 감고 그 위기를 타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허구가 아니었다.
설명하려면 복잡한데, 인간의 눈은 오히려 오징어의 눈보다 그 성능이 못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오징어랑 비교가 되니 좀 그런거지, 원래 인간의 신체는 다른 동물들보다 대부분 못하다.
4km밖에 있는 생물의 움직임도 감지한다는 타조의 시력, 사람의 15배에 달하는 청력을 가졌다는 나방, 개보다도 나은 후각능력을 가졌다는 코끼리,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은 무엇이냐? 바로 미각과 지능이다.
인간은 지능을 통해 허약한 신체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영장에 이르렀고,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조리법을 만들었다. 원숭이 뇌와 구더기 치즈, 삭힌 청어 등 온갖 기괴한 식재료를 먹는 인간의 식탐은 금기까지도 추구한다. 그것이 바로 식인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인간의 눈은 그 성능이 떨어졌는데, 시력도 낮으면서 각종 병은 다 걸리고 그 효율도 좋지 못하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뇌의 기능을 1/5이상 차지한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와 같이.
컴퓨터를 켜두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운영체제를 가동시켜야 하므로 CPU나 램, 하드디스크의 일정 부분을 이용해야 한다.
마치 그것과 같은 부하. 그것처럼 인간의 눈도 단순히 집중하지 않고 그저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뇌에 일정 부분 부하를 가져오고, 집중하면 그 부담이 더 커진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다면 감는다면 그 부담이 줄어든다. 이러한 발상에서 나온 공격.
실제로 피곤할 때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피로가 엄청나게 줄어든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부담이 크기 때문. 빛은 인간에게 활력을 주지만 그런 인간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빛이 닿지 않는 어둠뿐이다.
원래는 두려워야할 할 어둠만이 인간에게 안식을 줄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다. 어둠은 단순히 공포의 영역이 아니라 휴식과 평온의 공간이라는 역할도 있었다.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이 있다. 빛과 어둠. 빛만으로도 안 되고 어둠만으로도 안 된다.
양쪽이 모두 있어야 인간을 충족시킬 수 있다. 네 사람은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여 공격을 가격했다.
퍼벅!
깨갱!!!
아까까지와는 달리 엄청나게 잘 맞는다. 이는 네 사람이 단순히 눈을 감아서가 아니라 내공으로 사방 몇 미터에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레이더. 진을 친 내공은 그 안에 들어온 물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그 반향을 네 사람에게 다시 전해주었다.
마치 잠수함의 음파탐지기와 같다. 박쥐가 사용하는 반향정위. 박쥐는 이 반향정위를 통해 초음파를 내뿜어 그 반향으로 주변을 파악하고 먹이를 사냥한다. 일행의 행동은 이와 같다.
그런데 이것도 일행이 어느 정도 실력이 되니까 할 수 있는 것이지, 실력도 없는데 어설프게 따라하면 딱 죽기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눈 감고 직진도 제대로 못한다.
이는 인간의 감각이 형편없고 시각이나 다른 감각으로 보정을 하기 때문.
하지만 내공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공격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이 두 돌연변이의 공격을 피하고 심지어 반격하기까지 했다.
뻑!!
“이제 되겠는데??”
“응, 할 만해졌어!!”
두리와 서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이 하는 공격은 그냥 평범한 공격도 아니라 무려 손목공격이었다. 손목을 어떤 무술에서는 구정이라고 하는데, 이때 이 구정으로 때리는 공격을 구수라고 한다. 원래 손목을 나타내는 한자는 腕(팔뚝 완)자 이므로 왜 완정이나 완권이 아닌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손목 공격으로 네 사람은 돌연변이 개와 고양이를 두들겨 팼다.
퍼벅, 퍼버버버버벅!!!
깨갱!
깽!!!
그러자 개와 고양이가 짖고 난리가 났다. 원래 이렇게 개나 고양이를 패는 건 애완동물을 훈육시킬 때 금지된 방법이 아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알면 기겁을 하겠지만 애초에 이것들은 애완동물도 아니다. 사람을 덮치는 돌연변이들.
원래 반려견 훈련사 중에는 이런 폭력적인 방법을 절대 쓰지 않고 되도록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았는데, 이것이 바로 카밍 시그널 방식이었다.
그런데 카밍 시그널 방식의 문제점은, 바로 이미 사나워진 개들을 통제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즉 카밍 시그널 방식은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거나 어느 정도 약한 문제를 보이는 개들을 다룰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수시로 사람을 물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개들을 이런 유화적인 방법으로 다루기는 힘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돈까지 뜯는 일진 양아치들을 어떻게 교화하느냐와 비슷한데, 실제로는 팬다고 해서 고쳐먹는 것도 아니고 좋게좋게 대화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안될 놈은 안 된다. 그러한 사람의 본성. 그런데 사실 개나 사람이나 비슷했다.
패든, 말로 하든 안 될 놈은 안 되고, 될 놈은 실로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교화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로 해서 풀릴 것 같으면 살인은 왜 일어나고 교도소나 구치소는 왜 필요하단 말인가? 구치소에서 몇 십 년을 썩다가 나와도 바로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도 있다.
그래서 카밍 시그널 방식이 무조건 옳다, 기존의 알파독 이론이 옳다 이런 것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주장이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유명한 강형욱 조련사가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이 유럽 식 카밍 시그널 훈련 방식을 한국에 최초로 전한 전문가였기 때문이었다.
이런데 이 방법은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네 사람은, 이런 카밍 시그널 방식이나 알파독 방식도 아닌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개 다루는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퍼벅, 퍼버벅!
깨갱, 깨개갱!!!
네 사람이 패기 시작하자 이 고양이와 개는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이제 감을 잡은 네 사람이 패자 이 고양이와 개는 미처 도망가지도 못하고, 반격하지도 못했다.
원래 이 네 사람도 전쟁 전에 애완동물을 키워보았고 동물을 좋아하지만 먼저 사람에게 덤비는 동물들에게는 가차 없다. 특히나 돌연변이라면. 귀엽기나 하면 모르겠는데, 심지어 귀 옆에 이상한 아가미 같은 게 달려있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일행은 이제야 알았다. 이건 호흡기관이다. 아가미 같은 진짜 호흡기관.
원래 아가미는 물속에서 생활하는 생물들의 호흡기관인데, 그로인해 당연히 물속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돌연변이들의 아가미 같은 부분이 물속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것과 유사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움직일 때마다 거기서 마치 증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4월. 아직도 날씨가 쌀쌀해서 밤에는 입김을 내뿜으면 수증기가 대놓고 눈에 보일 정도로 발생했다. 게다가 지금은 핵겨울이 발생해서 기온이 전쟁 전보다 더 내려갔으므로 그런 현상이 더 심했다. 그로인한 영향.
사람도 춥거나 비, 혹은 눈 오는 날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운동하면 몸에서 김이 난다.
그런데 개는 땀샘이 없으므로 체온조절을 혀를 헥헥거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마 이 아가미 같은 추가호흡기관은, 그런 과도한 신체운동으로 인한 열을 식히고 호흡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돌연변이가 되어 덩치도 커지고 근육량도 늘어났는데 기존의 폐의 크기와 호흡량으로는, 땀샘도 없는 개로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 이런 아가미 같은 추가호흡기관이 발생하지 않은 돌연변이들은 열등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 돌연변이들은 상당히 진화한 개체. 같은 돌연변이라도 그 급이 다르다.
심지어 두리 일행도 내공에 의해 보조를 받기 때문에 외면상으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실제로는 폐활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로인해 폐도 커졌다.
애초에 폐활량은 훈련에 의해 조금 늘릴 수는 있지만 폐의 크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폐가 크면 그 폐활량도 크다. 무슨 병같은 게 있지 않은 이상.
그러니 두리 일행의 폐와 폐활량이 엄청나게 큰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사실 이건 내공을 익히지 않아도 전쟁 전의 운동선수들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두리 일행은 내공을 익힌 지도 얼마 안됐고 아직 어려서 그 신체기관이 다 커지지 않았으므로 그런 프로 운동선수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오히려 그런 나이에 프로 선수 급의 폐활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는 전적으로 내공의 덕분이었다. 물론 매일 밤 열심히 수련한 네 사람의 노력덕분도 있지만.
매일 밤 수련한 네 사람의 내공은 일개 미성년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커졌다. 이는 몇 번의 사력을 다한 싸움과 기연 때문에 그러한 것.
하나 역시 다른 세 사람에게 내공을 전수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세 사람의 자질은 최상권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도 더.
자신은 그 동안 몇 년간의 수련을 통해 간신히 어느 정도의 강함을 쌓았는데, 이들은 그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막대한 수련을 쌓았다.
그것은 거의 이제 자신과 비견될 정도. 물론 다른 세 사람은 겉으로는 안 그래보여도 겸손하기 때문에 하나가 그렇게 말하면 부정하겠지만, 실제로 사실이었다.
‘이제 곧 추월당할지도 모르겠군.’
하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 세 사람의 일행으로서 짐이 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같이 가기 위해서는 자신도 뭔가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로인한 손목공격. 원래 손목은 각종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는 장소이기 때문에 무공에서는 급소로 지정되어 있었고, 가능하면 적들의 공격에게서 피해야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그 이름도 혈도 상 천구읍(天狗泣)이라 불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狗)자는 개 구자이다. 왜 손목에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무의식적으로 하나를 시작으로 네 사람은 그런 손목 공격으로 이 돌연변이 개와 고양이를 가격했다.
손목 공격이 흔히 보여 지지 않아서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손목 역시 엄연한 관절이었다.
흔히 팔꿈치나, 무릎, 발뒤꿈치 같은 관절 부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생각해보면, 이 손목 공격 역시 대충 위력이 짐작 갈 것이다. 물론 이 손목은 같은 관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했는데, 이는 손목과 팔이 연결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슷하게 무릎은 허벅지와 종아리가 연결된 부분이지만, 인체의 하중을 버티는 하체의 특성상 그 내구도가 엄청나게 높다. 반대로 손목은 연약한 부분.
하지만 내공으로 보호된 손목은 마치 쇠몽둥이처럼 개와 고양이를 가격했다.
퍼버벅!!!
그리고 그렇게 손목을 구부리고 치니 이것은 마치. 당랑권. 당랑권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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