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갈등
군중들이 조용히 한 것을 확인한 남자는 마무리로 덧붙였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일을 하시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돌연변이들을 겁내는 것보다 우리들에겐 절대적으로 식량이 부족하오. 곰팡이 핀 번데기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평생 그것만 먹고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오. 다들 고기 한 점이라도 먹고 싶으면 열심히 돼지를 키우고 그 먹이가 되는 버섯과 번데기를 만드시오. 그게 우리가 살 길이오.”
“의회는!”
죽은 선발대원의 시신을 안고 뒤돌아서려던 남자는 누군가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다.
“의회는 어떻게 할 작정이오? 무슨 대책은 있소?”
“그걸 정하기 위해 내가 내려온 것이오. 이제 돌아가서 상황을 전하고 대책을 강구할거요. 그때까지 각자 맡은 자리를 지키면서 기다리시오. 그러면 해답은 나올 테니.”
“돌연변이들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요?”
그 물음에 남자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면서 뭘 물어보는 것이오? 싸우다 죽든지, 혹은 살든지. 결과는 그 둘 중 하나일 뿐이오.”
남자의 대답에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남자는 선발대원의 시체를 안고 유유히 사라졌다.
“······.”
두리와 서이, 너이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당연히 버섯 번데기 탕은 다 식어 빠져서 평소 안 그래도 나던 흙 맛이 더욱 심하게 나고 있었다.
원래 음식이란 건 완전히 차갑거나 완전히 뜨거울 때보다 미지근할 때가 제일 맛이 없었는데, 난방의 한계가 있었지만 나름 지열에다 주방의 열기로 인해 어설프게 난방이 되는 식당은 음식이 완전히 식지도 않고 미지근한 맛을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던 것이다.
두리는 밥을 먹고 자신의 토굴로 돌아가 누워있었다.
손으로 깍지를 끼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데 물론 하늘이 막힌 이곳에서는 별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누워있는 두리의 눈에는 딴 생각을 하느라 토굴로 막힌 하늘이 아니라 다른 것이 보이고 있었다.
“흠······.”
광물을 캐는 일을 하는 두리에게 있어 지상을 탐사하는 일은 두려움과 동시에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광물을 캐는 일도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지상 탐색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광물을 캐다보면 지반이 붕괴돼서 깔려 죽는 일도 있고 운 좋게 살아남아도 흙 속에 생매장되는 일도 있었지만 지상은 아예 돌연변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 능력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피만 탐하는 그 짐승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오직 예전의 자신처럼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생물들의 피를 빠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식욕뿐이었다.
물론 그리고 그런 돌연변이들에게 걸리면 피 뿐만이 아니라 고기 하나, 뼛조각 하나 남아나지 못했다.
“후우······.”
그런 돌연변이들에게 맞서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두리는 갑자기 전쟁 전의 생활이 그리워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학교를 나가고, 재미없는 수업을 듣고, 방과 후 친구들과 게임 한 판을 하던 모든 것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 꿈꿀 수도 없어졌다.
따뜻한 물은커녕 방사능에 지나치게 오염되지 않았는지 걱정해야 했고 학교가 아니라 지금 아이들은 돼지를 기르고 버섯을 키우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들러서 했던 게임은 이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했던 게임들이 돌아가던 서버는 이제 핵전쟁의 폐허 속에 묻혀있을 것이다.
두리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토굴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두리 씨 방 맞나요?”
두리가 나가보니 이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서있었다.
“네, 제가 맞는데요.”
자신이 누워있던 토굴이 과연 방인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어쨌든 문맥상 그 방이라는 게 자신의 토굴을 가리키는 것 같아 두리는 나간 것이었다. 그런 두리에게 남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잠시 시간되십니까?”
“네? 아, 예.”
남자가 왜 찾아왔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던 두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계속 말을 들었다.
“아까 광장에서 선발대가 전멸한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네, 들었죠.”
“소식을 아신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새로운 선발대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
그 소리에 두리는 잠시 졸리던 기분마저 날아가고 말끔히 정신이 들었다.
머리가 벼락을 맞은 듯 얼떨떨해서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긴 말하지 않고 묻겠습니다. 선발대원에 자원할 생각이 있습니까?”
“······.”
“갑자기 이런 말을 들어서 당황스러우시겠죠. 하지만 지금 바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은 언제든지 하셔도 됩니다. 사실 지상요원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다음 번 탐사대를 내보낼 작정입니다.”
“······왜 제가 선택된 거죠?”
“아시다시피 이 지하의 구성원은 불과 수백 명이 채 안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귀중한 지상요원을 선발하는 것은 신중해야만 하는 일이죠. 우리도 그렇게 귀중한 지상요원들을 딱히 소모하듯 낭비하려고 선발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지상요원이기 이전에 같은 도시의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이 점점 없어지면 결국 이 지하도시는 붕괴되고 말겁니다. 그래서 지상요원은 보통 채광 등 힘쓰는 일을 자주 하는 사람들 중에서 능력이나 적성, 인성을 고려해서 뽑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지상에 나가서 극한의 시련을 겪다보면 마음이 무너질 수가 있죠. 사실 지하에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지상에서 갑자기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건 없을 겁니다. 그 정도로 지상은 힘드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지상요원을 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까 들으셨죠? 돌연변이들에게 이상 징후가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의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히 지하에 파묻혀서 사는 것은 오히려 그리 안전한 일만은 아닙니다. 두리 님도 아시겠죠? 지하에 처박혀 있는다고 돌연변이들로부터 공격을 안 받는 건 아니라는 걸.”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남자의 말대로 지하에 꼭꼭 숨어 있는다고 해서 무조건 돌연변이들로부터 안전한 건 아니었다.
알음알음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돌연변이들의 습격으로 인해 지하에서 그대로 생매장된 마을 사람들도 있다고 했는데, 이런 것도 다 사실 지상으로 나가선 선발대원들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타 도시와 교류할 기회도 없고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봐도 확실히 지상요원은 필요한 자리였다.
그런데 분명히 그런 자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기 싫다고 해서 안하는 것은 뭔가 이기적인 생각으로 두리는 느껴졌다. 잠시 생각을 하던 두리는 결국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할게요.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으로 어깨를 꾹 잡아주었다.
“야, 김두리!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가 뭘.”
“아무 말도 안하고 선발대원에 지원했잖아! 왜 그랬어!”
“내가 꼭 너희들한테 말해야 돼?”
“!!!”
갑작스레 도시 광장에 나붙은 공고를 보고 놀라 달려온 서이와 너이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제일 처음 놀란 것은 그들이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 두리가 아무 말도 안하고 갑자기 선발대원에 지원한 것이었고,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그런 이유를 물으러 온 그들에게 갑자기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두리의 모습이었다.
“야, 김두리! 너 미쳤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미치긴 뭘 미쳐. 전부터 생각했던 거야. 더 이상 묻지 말고 돌아가.”
“뭐라고?”
“돌아가!”
드물게 성질을 내는 두리를 보며 서이와 너이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세 사람이 의지할 것은 서로 밖에 없었다.
서이와 너이는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두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서이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너 같은 건··· 이제 친구도 아니야.”
“그걸 이제 알았어?”
토굴에 처박힌 채 뒤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히 대꾸하는 두리의 모습에 서이는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너 같은 건 몰라 이제, 가버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마!”
“안 그래도 그럴 거야!”
오열하며 뛰쳐나가는 서이를 뒤로 하고 두리는 등을 돌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두리 역시 감정의 격동은 어쩔 수 없었는지 조용히 등을 떨고 있었다.
그런 두리에게 너이는 조용히 말했다.
“일부러 그런거지? 정을 뗄려고?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무슨 소리야.”
“웃기지 좀 마 이 새끼야.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서이는 속여도 나는 못 속여.”
“······.”
“서이도 당황해서 그렇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로 알아차릴 거야. 넌 실수한 거야. 우리 중 아무도 넌 속일 수 없어.”
두리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두리를 쳐다보던 너이는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 않았다.
“뭐하는거야?”
“뭘 하긴. 잠시 앉아서 쉴려고 그러지.”
“가, 임마!”
“내 맘이야.”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주머니에서 꺼낸 번데기를 주섬주섬 챙겨먹는 너이를 보고 두리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것들은 남매가 쌍으로······.”
“뭐야? 서이도 이래?”
“알면서 뭘 물어?”
“그런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번데기를 집어먹는 너이를 보고 두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너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물오물, 내가 한번 맞춰볼까? 넌 아마 의회에서 선발대원을 모집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결정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먼저 찾아가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니 성격상 제의가 왔는데 거절까진 하지 못했을 거야. 꼭 필요한 자리라는 걸 알면서도 거절할 정도로 네 성격은 모질지 못하거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히 아픈 곳도 없는데 채광이라는 일을 하면서 거절하지는 못했을 거야. 내 말이 맞냐?”
“······.”
“맞나보군. 그럼 계속하지. 그런데 막상 수락해보니 우리들이 걸렸던 거야. 아무리 그래도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단칼에 정리하기는 힘들었겠지. 그래서 넌 서이한테 그렇게 막 대한거야. 맞아?”
“······.”
“이것도 맞나보군. 그럼 난 간다. 이해는 하지만 니 행동엔 실망했어. 다신 보지말자.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 말을 끝으로 너이도 떠나갔다. 두리는 조용히 자신의 토굴 안에서 숨죽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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