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니 정동혁!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니 정동혁!
사방은 침묵보다 더 고요했다.
주변을 부유하는 태고의 악마는 대상을 놓쳐 분을 못 삭이는 듯했다.
'다크 로드가 되지 않아.'
왜인지 이유는 모른다. 게헤나로 들어가는 다크 로드는 장소, 시간 관계 없이 작동해야 한다. 심지어 다른 차원에서도 작동되는 것이 다크 로드다.
다크 로드를 관리하는 악마는 메피스토펠레스.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메피스토가 직접 다크 로드에 제재를 가했거나 교차로 악마 집회소에서 내 라인을 죽여 놨다든가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ITB에 접근할 수 없다. 아스펠 전이 구슬을 꺼내려 했지만, 반응이 없다.
몸이 바뀐 탓인가? 원래 포른의 몸은 어떻게 된 건지···.
망망대해에 홀로 항해하는 작은 돛단배가 된 기분이다.
거대한 몸. 이건 누가 봐도 분명 데우스 엑스 마키나 본체다.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이다. 이 몸에 맞는 옷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흉물스러운 그것은 내가 수놈인 것을 말해준다.
홀딱 벗겨진 몸을 매만져 보았다. 피부는 검고 고무처럼 질겼다. 생각보다 딱딱하지는 않았다.
에덴에서 본 혁련광의 본체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딱딱했었다.
그들은 자신의 본체를 잘 찾았을까? 어떻게 하든 지구로 귀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살았다.
난 살아 있다.
난 정동혁이다.
다시 한번 실감하는 부분이다.
죽지 않았다. 죽임을 당할 확률 100%를 뚫었다.
후~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아 거대한 몸이 실제로 와닿지 않는다.
권능도 신성력도 충만했다. 끓어 넘치기 직전인 뚝배기 속 된장찌개처럼 풍부한 진미를 뿌려대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원래대로 가야 할 노선을 비튼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지.
루시퍼는 위리놈과 한패였다. 위리놈은 마치 자신이 루시퍼를 제치고 왕좌를 노리는 것처럼 연기했다.
에덴의 4678번 자료 태고신 마릴론의 조각을 원했다. 난 그 마지막 순간에 4678번이 아닌 그 옆 4679번 자료인 투명한 젤리를 선택했다.
루시퍼의 망할 푸념을 들어 보면 태고신 자마돈은 분열했고 분열한 조각에서 태어난 고대신이 마릴론이다.
거짓된 여왕의 티아라는 태고신 자마돈의 두개골 뼈로 만들어진 물건이고 마릴론의 조각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자마돈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루시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제어하기 위해 태고신과 고대신의 유물을 이용하려 했다.
문제는 투명한 젤리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흡수될 때 느낀 것은 그 투명 젤리 같은 것이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 직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황해했고 내게 무슨 짓을 하느냐고 반문했었다.
그것은 그 투명한 젤리가 어떤 작용을 한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나라는 것.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그 투명 젤리가 무엇이며 이런 결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다.
살아 있다는 그 뿌듯한 충만감에 취해 양반다리를 한 체 어느 우주 한 곳에 붕붕 떠 있었다.
본체도 찾았고 내 정신도 그대로다.
이게 정말 꿈이라고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일을 해냈다. 나 스스로가 뿌듯하다.
다크 로드가 작동하지 않아도, ITB에 접속이 안 되어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굉장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나 스스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언노운?'
'레이?'
둘 다 답이 없다. 언노운은 내가 심연으로 빨려가기 전 탈출 했나? 이미 가망이 없다는 걸로 판단하고? 레이는?
어? 그러고 보니 그림자가 없다. 아무리 시꺼먼 우주지만 그림자 유무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림자가 없다. 그건 천사와 같다. 천사는 빛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악마는 당연히 그림자가 있다. 내 쪽은 천사의 영향인지 그림자가 없다. 그럼, 레이는 어떻게 된 걸까?
이 정보를 언노운이 꼭 알았으면 좋겠는데 다음 회차의 내게 전해줄···.
아니지! 아직 끝이 아니다. 나는 살아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비틀어질 텐데?
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다. 정확히 정동혁이다.
태고의 악마는 내 주변을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빨리 다음 명령을 내려 달라는 듯 시위하는 것 같다.
동서남북 상하좌우 아래위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아무리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할지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몸에선 모든 감촉이 느껴진다. 피부에 털 하나하나까지 모든 감각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전체를 시험했다.
그래비티 포스를 비롯한 차원 에너지 기술도 완벽히 구사됐고 권능 쪽 기술은 물론 기가스 시더까지 막힘이 없었다.
그리고 탱그리의 힘까지 쭉 거침없이 시전해 봤다. 이곳에는 프라미어 메테리얼도 풍부했다.
그리고 되도록 사용을 금하는 금단의 기술.
그레이트 볼텍스. 솔라버스트, 플라즈마 코어도 가뿐히 사용할 수 있었다.
플라즈마 코어로 인공 태양을 만들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지름 1km짜리 작은 인공 태양이지만 우주 표준 시간으로 100년 정도 탄다.
이전에는 이만한 인공 태양을 만드는데 우주 표준 시간으로 1시간 정도 걸렸었다. 지금은 단 3초에 인공 태양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당연히 크기가 클수록 만드는 시간은 비례한다.
빛이 나오자, 몸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피부가 검다. 심연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검은 피부인지는 파악이 안 된다.
머리카락도 길었고 무엇보다 길고 뾰족한 뿔이 돋아나 있었다. 이거 완전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대로의 본체다.
시냅스를 통해 정보를 되짚었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탈출 방법도 찾아야 했다.
지옥의 장군. 능력치를 보면 태양계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사념파를 방출할 수 있고 지옥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다크 로드는 기본이고 지옥의 터널이라는 마의 게이트도 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곳에서는 응답하지 않는다.
루시퍼. 아마 내 존재가 잘못됨을 알고 게헤나로 들어올 방법을 모조리 차단할 것일 테지.
저도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외치지 않았나? 칠죄종부터 루시퍼까지 게헤나를 싹 다 조져 버리겠노라고.
그건 절대 빈말이 아니다. 아니라면 루시퍼가 도망칠 이유가 없을 테니. 과거에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제하지 못했고 데엑마가 실제 선악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이라고 해도 빈말이 아니다.
루시퍼는 그동안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제할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다. 긴 여정 끝에 결실을 보나 했더니 나란 존재가 그걸 뒤엎어 버린 것이다.
천사가 지구 치환 계획을 진행했을 때 루시퍼는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놈의 생각은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데엑마만 부활시켜 제어할 수 있다면 충분히 생텀 의회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즉 내가 루시퍼가 생각한 최후의 수단이자 마지막 무기였던 셈이다.
수포가 된 이상 놈은 자구책을 마련하겠지?
그때 어전 회의 때 칠죄종이 모두 단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란 존재 아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들을 뭉치게 했던 요소가 사라졌으니 각자도생한다. 그것이 악마의 특징이다.
일단 움직여 봤다.
무지막지한 빠르기로 우주를 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빛의 반 정도 속도로 난다고 쳐도 의미가 없다.
태고의 악마는 날 잘 쫓아 왔다. 녀석들에게서 확실한 충성심이 느껴진다. 적어도 이전의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충성심이다.
여기가 어느 우주일까? 에덴에서 심연으로 들어갔다. 같은 출구니까 분명히 에덴으로 나와야 정상이다.
루시퍼의 계획인가? 데오릭스의 장난인가?
데오릭스를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녀석이 상영한 영상은 모두 조작된 거란 말인가? 어떤 부분이 진실이고 어떤 부분이 거짓인지 판단이 안 된다.
녀석은 무엇 때문에 루시퍼와 손을 잡은 것일까? 서전 임펙트를 일으킨 장본인이 메타트론이 맞긴 맞는가?
다시 오리무중이 된 기분이다. 처음 출발선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절망보다는 살아 있다는 걸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우주 공간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크게 웃어도 보고 자유형 포즈로 헤엄치는 흉내도 내 보고 슈퍼맨 포즈로 날아도 보았다.
완전 벌거숭이라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지금 그게 문제냐?
죽다 살아난 기분이 어떤 건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죽음 직전까지 가서 부활한 거란 말이다.
그것도 엄청난 힘과 육체를 가진 체로. 사실 조금 너무 과하긴 한데···.
음, 가만 이러면 미아인데. 어느 이름 모를 우주 한편에서 탈출 방법도 모르고.
다크 로드가 안 되면 어떻게 ITB라도.
혹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흡수되면서 포른 세포와 ITB, 언노운도 함께 녹아 버렸나?
당연히 이어링도 없다. 이 거대한 몸은 키만 해도 100m는 넘어가는 것 같으니까.
미국 뉴욕항에 있는 자유 여신상 총 높이가 93m인데 이건 기단부와 받침대 포함 높이고 실제로 여신상 발가락에서 머리까지는 46미터다. 즉 자유 여신상 두 배 이상의 크기이다.
뭐, 그렇다는 거고. 능력도 확실히 인간일 때와는 레벨 자체가 달랐다. 루시퍼를 향해 쏜 쿼크-플라즈마 정도면 작은 행성은 가루로 만들 수 있는 파워다.
자투스 행성에서 행서 파괴자 칭호를 이미 얻었지만, 지금은 행성 하나 정도는 간단히 빠개 버릴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언노운은 정말 간 걸까?
데쓰로그는 소환됐지만, 사역마는 전혀 반응이 없다.
바퀴도 개구리도 다른 사역마도 아예 반응이 없다.
이제 할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본 것 같다.
ITB가 훼손되지 않았다면 몸 안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포른의 세포는 다른 세포와 융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효용성이 높다. 그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융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ITB도 어느 지점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몸속 어디에 있는지 느낌이 없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생체 조직은 이미 네필림의 유전적 유기체 구조를 넘어섰다고 들었다.
도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이런 돌연변이가 된 것은 태고신의 조각 몇 개를 처먹어서 그렇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다.
태고의 악마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따르는 이유도 태고신의 조각을 먹어서겠지. 피부가 완전히 시커먼 이유도 그 이유고.
투명한 젤리 그놈은 도대체 뭐였지? 그것도 태고신의 유물인가? 그 때문에 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확증을 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ITB에서 아스펠 전이 구슬만 꺼낼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인데. 환장하겠군.
슬슬 살아났다는 환희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제 그 기분은 만족한 만큼 즐겼다.
다시 원래 그 지점으로 돌아왔다. 만약 그곳이 루시퍼가 세팅한 곳이라면 뭔가 조처하러 올지도 모른다. 즉 다시 확인차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게헤나와 시간 차이가 나서 조금은 여유롭게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해 볼 거 다 해 보면서 이 몸에 적응도를 높여나갔다.
미아가 됐다고 해서 옛날만큼 답답하거나 졸리는 건 없다. 마음이 우주가 된 것처럼 그냥 편안했다. 세상이 내 세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과연.
내 예상이 적중했다.
공간의 일그러짐이 느껴졌다. 예전의 나라면 언노운이 발견해서 알려줬겠지만.
한 마리, 두 마리 연이어 악마가 등장했다.
나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양반다리를 하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루시퍼다. 열세 번째로 루시퍼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두 명 더 나타나서 15마리가 되었다.
권능의 강도가 허섭스레기 악마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최소 장군 이상급의 최정예 악마들이다.
"준비해."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각자 능력껏 원인을 파악해."
루시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다 된 밥상을 앞에 두고 먹지 못하는 꼴이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 내 명령을 들어라."
루시퍼가 쓴 왕관이 밝은 빛무리를 뿌리며 빛이 났다.
거짓된 여왕의 티아라.
이 태고신의 아티펙트는 루시퍼의 권능과 어우러져 밝은 빛을 냈다.
루시퍼의 불타는 듯한 붉은 두 눈은 증오와 광기로 충혈되어 있었다. 그간 숨 막히게 진행해 온 계획의 결과물이 이런 것이라니! 절대 믿고 싶지 않겠지.
지금껏 자신이 맞닥뜨린 모든 존재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에 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루시퍼는 지금 매우 흥분했고 긴장했다.
그 때문에 루시퍼는 자신이 준 책 속의 기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저들이 보고 있는 나는 복제물이다. 진짜 나는 몇 겹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친 공복감. 도대체 왜 갑자기 배가 고파진 거지?
이 정신 없을 공복감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고파. 진짜 배고파.'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