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 기이한 저택 (1)
크로아탄 제국.
명실상부한 이 그라이암 대륙의 최강대국.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두개의 공국을 거느리고 있는 강력한 국가다.
영토 크기만으로는 대륙의 개척이 된 북방지역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다른 여타 왕국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인 즉 그 크기에 비해 실속이 없는 편이기는 했다.
그 역시 대륙 최대 규모의 산맥인 캬르한 산맥을 영토 끝에 걸치고 있으나 그 외의 영토 대부분이 비옥한 평야인 전통의 강국 로세하이안 왕국과 비교해볼 때,
이곳 크로아탄 제국은 전체적으로 산악지형이 많은데다가 기후가 열악한 편이고 토지도 척박한 편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곡물 산출량이나 인구수 등에서 영토 규모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게다가 영토 북부 끝자락, 즉 그라이암 대륙이라 명명되는 영토를 벗어난 부분을 넘어서 거주하는 수많은 야만족들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영토가 넓은 탓에 그들, ‘야그투’ 라고 명명되는 북방의 야만족들로부터 방위해야할 범위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그러나 어디까지나 크로아탄 제국이 최강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영토 크기 덕분이 아니다.
척박한 환경과 야만족들의 끝없는 위협 때문에 국가의 기풍 자체가 매우 호전적이며 진취적인 것으로 유명하며, 국민성도 더없이 강건하여 그런 와중에서도 끊임없는 영토의 개척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철광산과 금광 등 탄광을 찾아 끊임없이 각종 오지와 험지를 탐험하는 개척광부집단과, 새로운 땅을 찾아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를 기름긴 농지로 개간해내는 개척농부집단의 포기를 모르는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전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런 강건한 기상과 척박한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크로아탄 제국에는 매우 뛰어난 전사들이 많다.
로세하이안이 기사도를 숭상한다면 크로아탄은 그보다 강력한 전사를 숭상하는 숭무(崇武)의 국가이며, 이런 기풍은 국가의 모든 부문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통 왕을 보좌하며 나라를 운영하는 행정실무 관료가 큰 권력을 쥐는 여타 왕국들과는 달리, 크로아탄의 대귀족들은 거의 전부가 무장출신이며 또한 실제로 북부 야만족들과의 전선에서의 복무경력이 없으면 중앙귀족으로 대우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휘하 기사들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우스갯소리로 남부의 용병길드에서 쟁쟁하게 이름을 날리던 용병도 북부로 오면 그저 보통정도로 쳐준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산악지형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탄의 기병대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한다. 북부지방에서 명마와 준마가 굉장히 많이 생산되는데다가, 일반 병력들보다 월등히 많은 철을 요구하는 마갑(馬甲)이나 마상무기들을 충분히 감당할만한 철광석이 산출되기 때문인데ㅡ
이를 대표하는 집단이 바로 ‘레드 스페츠나츠’, 흔히 검붉은 폭풍이라 사람들에게 명명되는 크로아탄의 정예 기병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다크문 헬리오스를 제치고 대륙 4대 무력조직의 필두로 평가하곤 하는 괴물 같은 집단으로, 그들이 상징과도 같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전장을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야말로 피의 폭풍이 몰아친다고 하는데 그 강력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전해진다.
몬스터들조차 식량으로 삼아 생으로 뜯어먹는다는, 흉폭하기가 휴머노이드 몬스터들보다도 더하다고 알려진 저 먼 북방의 야만족 야그투들마저도 그들 부대가 나타나면 공포에 떤다고 할 정도로.
그리고 마찬가지로 대륙 4대 무력조직으로 불리는 ‘우드스톡’ 이라는 특수궁사부대도 있다. 그야말로 한명 한명이 신궁이라 불릴만한 자들만 모여 있다는 야전궁사대인데.. 중장거리에서의 순간 살상력과 전투력으로는 오히려 레드 스페츠나츠보다도 위력적이라 한다. 뭐, 궁사대니까 그건 어느 정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놀랍게도 대륙 4대 무력조직 중의 두개가 이 크로아탄 제국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일반 기사단이나 정규군도 더없이 정예하다고 하니 바로 이런 강력한 군사력이야 말로 크로아탄이 대륙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나라야.”
일단 지나쳐온 마을들이나 기본적인 국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편이다.
음, 분명히 험하고 황량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나 같은 전사 나부랭이한테 크로아탄 제국은 꽤 의미가 있는 곳이다. 전사로써의 강함으로 대우받고 강함을 중시하는 기풍, 그런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예를 들자면.. 이곳이라고 신분적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고, 아니 오히려 황실인만큼 왕실보다도 더 엄격한 구분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실력이 있으면 평민이라고 무턱대고 무시당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명확한 한계는 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농노들은 여전히 가혹한 취급을 받고 있으며 평민들에게 무슨 권리같은게 있는 건 아니니까. 실력을 쌓거나 발휘할 기회가 월등히 적은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일단 천상 전사에 여행자인 나한텐 이런 분위기가 상당히 편하다.
자유롭다고 표현해야 할까? 나정도 체격에 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면 마을 등에서 거북해하기보단 오히려 환영하는 느낌이 강하다.
심지어 얼마전엔 어느 작은 지방 귀족가에서 근처를 지나는 나를 친히 초대해서 대련을 요청한 적도 있다. 로세하이안이나 다른 왕국에서는 꿈도 못꿀 일이다.
게다가 원래 영토가 매우 넓고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곳곳에 미개척지, 즉 모험가들이 도전할만한 모험과 탐험의 장소들이 많다. 나같이 여행자지만 한편으론 모험가를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는 사람에겐 꽤나 흥미가 돋워지는 일이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부분이 썩 맘에 든다. 계절조차도 이제 한여름이기 때문에 이 북방지역을 여행하기에는 딱 좋은 시기다. 그래.. 다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돈이 없단 말이지..”
나는 맥 빠지는 한숨과 동시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역시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난 센더와 헤어진 이래로 쭉 빈곤함에 시달려온 것이다.
혼자 풍류있게 대륙 여행이라.. 멋들어지게 보일지는 몰라도 그런 여행이나 모험도 돈이 없으면 비참해지는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모험가야말로 정말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유랑마차 등을 이용하는 집시들이 아닌 이상 정해진 거주지도 없이 돌아다닌다는게 돈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 어느 정도 품위와 편리를 유지하면서 다니자면 더더욱.
돈을 벌면 안 되냐고? 당연히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계속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용병길드가 무슨 작은 산골마을에까지 일일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아니며, 또 이미 자리를 잡은 길드 연합체인만큼 갑자기 나타난 떠돌이인 나한테 호락호락 좋은 일거리를 줄 리가 없다.
일종의 텃세일수도 있지만 또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자기들 소속의 실력 있는 용병들도 있는데 굳이 정체도 실력도 불확실한 나를 쓸 이유가 없으니까.
게다가 내가 완전히 전업 용병으로 나설 것도 아니니 맡을 수 있는 일도 한정되어 있고, 있다고 해도 그건 대부분 매우 장기간이 소모되거나 혹은 아주 하찮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음, 이야기책을 보면 꼭 모험가들이 어떤 마을에 들르면 무언가 곤경에 처한 마을 사람들이 ‘전사님, 이것을 좀 처리해주시면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이러던데 말이야.
그래서 그걸 받아들이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괴물 한 마리가 덤벼들 테고, 모험가는 그걸 멋지게 퇴치하지.
그리고 그걸 본 마을에서 가장 아리따운 아가씨가 볼을 붉게 물들이며 밤중에 몰래 찾아와 물레방앗간에서 뜨거운 감사의 키스를.. 에헤헤헷! ..아, 이게 아니라.
아무튼 그런 일거리들이 꼭 생기던데 말이야. 왜 난 그런 것도 없지? 응?
“쳇.. 돈이 없어서 문제라니 정말 한심한데.”
나는 허공에다 대고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나도 바보가 아니니 내 실력이라면 뭔가 일거리만 있으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이곳 크로아탄에서라면.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거리를 찾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이야기책 속에서처럼 지방의 작은 마을 몇 군데 들른다고 거기서 돈이 될 만한 무슨 사건을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이 있어봤자 동네 아저씨들끼리 술에 취해서 싸우는 거나 말리는 정도지.
그리고 사실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나는 정식 용병이 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좀 전에 말했듯이 용병길드의 문제도 있고, 현재의 그라이암 대륙의 경제적 상황 상 용병일은 결국 귀족 같은 자들에게 빌붙는 직업인 것이다. 그들의 청탁이나 들어주며 대신 지저분하거나 거친 일들을 처리해주는 셈이니까.
그래도 당장 돈이 필요한 이상 용병 일을 하기는 하겠지만 아예 정식으로 소속되는 건 내키지 않는다.
쓸데없는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용병일은 할 거라지만 정식 용병이 되기는 싫다니. 객기인건 알지만 그래도 싫은걸 어쩌겠는가?
..하여튼 그런 방식이 싫어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있긴 하다. 결국 이곳 크로아탄에서 용병들이 나름 큰돈을 벌 수 있으며 가장 수요가 많은 일거리인, 정식으로 국가의 용병고용을 통해 북부의 야그투들과의 전선으로 나가는 것.
그러나 난 꿈 많은 여행자 청년이다. 나의 이 섬세한 감정은 그런 험악한 전쟁터에 맞지 않는다. ..진짜라고.
“어디, 딱 한탕 빨리 해결해서 목독이 떡 들어오는 일거리 없을까?”
내가 들어도 딱 패가망신하기 좋을 것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크로아탄의 중남부의 중심에 자리 잡은 대도시, ‘테시온’ 을 향해서.
일단 거기서 어떤 식으로든 여행자금을 마련해야한다. 좋든 싫든 나는 만약에 대비해 이단심판회가 잠잠해질 때까지,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 때까지는 한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되는 입장이고, 또 여행과 모험을 계속하고 싶으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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