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검은 삭월과 황금 왕녀 (1)
잠시 동안이지만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한 우리는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친 후 다시 탁자에 둘러앉았다. 라이센더 왕자, 아니 센더는 외모만큼이나 호방하고 경쾌한 성격임을 식사 자리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덕분에 우리 셋은 어느세 어색함 없이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제 교황청이고 뭐고는 잠시 잊고, 다크문 헬리오스의 일에만 집중하면 될 터. 나는 식기가 치워진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치고는 센더에게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자, 그래서 다크문의 본거지는 어디에 있지?”
“하하하하, 나 역시 정보를 듣는 즉시 알아보려 백방으로 애썼지. 하지만 몰라.”
“......”
밝게 웃으며 말하던 센더는 나와 공주의 엄청난 시선을 받자 어색하게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긴 머리카락을 다듬기 시작했다. ..장난치나?
“아직 모르는 거야. 아직. 라샤크, 너무 노려보지 말라고.”
센더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서서 방구석에 있던 자신의 짐 꾸러미를 뒤적여 뭔가를 꺼내고는 다시 탁자로 돌아왔다.
그는 손에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손수건 같은 걸로 조심스레 쌓여진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탁자위에 그것을 살짝 올려놓더니 펼쳐 보였다.
뭐지? 난 호기심을 드러내며 시선을 집중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주먹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의 검은색 구슬이었다. 아니, 보석인가? 자세히 보니 그냥 볼품없이 거무튀튀한게 아니라 영롱한 빛을 내는 특이한 칠흑색이었다. 센더는 그것을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다크문 헬리오스는 참으로 용의주도한 자들이더군. 그 정도의 유명세와 오랜 존속기간을 감안하면 정보가 있을 법도 하다 여겼는데, 직접 찾아보니 도무지 생각처럼 정보가 모이지 않았어. 뭐, 덕분에 교황청도 고생중일 테니 그것은 잘된 일이지만.”
공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공주 역시도 아인도르프 후작가에서 출발할 당시만 해도 정보를 모으는 건 어떻게든 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던 모양이었으니까.
확실히 하나의 규모 있는 조직을 이루고 있다면, 그 위치가 세상에 노출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아무리 산중에 꼭꼭 숨어있더라도 일단 규모 있는 단체라면 기본적으로 필수불가결하게 상당한 량의 물자가 오가야 할 테고, 또 외부와 접촉이 아예 없는 은둔자들의 모임도 아니니 어쨌든 사람도 오고 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그 꼬리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최소한 그 근방의 마을이나 도시 정도라면 어느 산중에 어떤 이상한 집단이 모여 있다더라~ 어디 근처에 알 수 없는 자들이 종종 나타나더라~ 이 정도의 정보는 퍼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다크문은 그런 상식을 깨뜨리고 있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하길래 그런 것이 가능한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금방 깨달았지. 나 같은 제3자가 단기간에 다크문을 찾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걸.”
“뭐?”
“하하하, 걱정 마.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으니까. 내 쪽에서 그들을 찾는 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다크문 헬리오스에서 날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센더는 그렇게 말하고는 탁자위에 놓아 둔 검은 구슬을 들어 올렸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그들의 표적이 될 수는 없지. 난 할 일이 많은데다가 또 다크문의 어쌔신들이 표적을 암살하려는 와중에 협상 같은 걸 해주리라 기대하긴 힘들어.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차에 난 이런 생각을 떠올렸네. 그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일단 이곳 차펠린 어딘가에 그들의 ‘눈’ 이 있다는 건 불을 보듯 당연한 일. 그러니 다크문이 필요로 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 눈이 내게 먼저 접촉해올 가능성이 높다 라고.”
“그럼 그 물건이?”
“그래. 이건 평범한 구슬이 아니라 ‘아이가우저의 눈’ 이라고 하는 물건이거든.”
오! 아이가우저의 눈이라니.. ..그게 뭐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자신만만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던 센더는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가 있느냐는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젠장. 산골 촌놈인 내가 보석 같은 걸 어떻게 알아? 내가 투덜거리자 잠자코 듣고 있던 공주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아이가우저의 눈은 과거 몇 백 년 전의 전설적인 어쌔신이자 현재까지도 역대 최고의 다크문 헬리오스의 어쌔신으로 평가받는 ‘로지웰 아이가우저’ 의 유명한 마법도구 중의 하나라고.
물론 로지웰 아이가우저라면 나조차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귀신조차 울고갈만한 은신과 잠입의 귀재이자 상대가 누구든 암살을 하는데 결코 칼을 두 번 이상 휘두르지 않는다는 이상한 철학으로 유명했던 자이다.
뭐, 실제로도 그가 암살을 시도해 일격으로 죽이지 못한 상대는 다름 아닌 황금왕 하이델의 후손이자 로세하이안의 건국자인 피아이란 국왕뿐이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어쌔신이었으리라 능히 짐작이 된다. 그러니 각종 이야기들이나 야사들 속에서 쉬지않고 오르내리는 것일테고.
“그러니까 다크문에서 그 물건을 얻기 위해 사람을 보낼 거란 소리군. 위험하진 않을까?”
“천만에. 자네도 다크문의 어쌔신을 보았다면 알겠지만, 그들은 단순한 암살자집단이 아니야. 암살에 있어서의 도구나 무기의 사용은 악랄할 정도로 그 수단을 가리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또한 진정으로 무(武)의 수행에 매달리는 아주 특이한 집단이지."
“무를 추구한다라..”
"하하하하, ‘암살’ 이라는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기이하게 뒤틀린 점은 있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그들만큼이나 순수하게 무와 강함을 추구하는 무력단체는 없네. 그만큼 자신들의 조직과, 암살자라는 것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진 집단이란 말이지.”
분명, 다크문 헬리오스는 센더의 말 그대로의 조직이다. 실제 대륙 4대 무력조직이니, 그에 준하는 유명한 무력단체니 하는 것들을 봐도 그 전부가 특정 국가에 소속되어 그 목적에 맞추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다크문 헬리오스만은 예외다. 별다른 지원도 받지 않고, 혹은 받지 못한 채로 어쌔신으로써의 혹독한 수련을 거듭하며 세상의 음지 속에서 그저 살아가는 집단인 것이다. 즉, 의미는 달라도 나름대로 순수한 무골들이 주축을 이루는 집단일 수밖에 없다.
실제 나와 마주쳤던 어쌔신들만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는가? 자신의 조직을 밝히며 당당히 날 협박하는 녀석도 있었고, 또 공주를 공격할 때도 굳이 두 어쌔신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죽여 버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한명이서도 공주를 처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일 테지만, 보통의 암살자들은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센더는 그들이 어쌔신들의 살아있는 전설인 아이가우저가 사용하던 도구를 원하는 마음도, 결국은 그들의 그 특유의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만큼 무턱대고 그 도구를 가지고 있는 자를 죽이고 빼앗겠다는 식으로는 나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힘으로 빼앗으려 들지는 몰라도 그전에 최소한 어느 정도의 접촉은 해올 것이라는 것.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난 얼마 전에야 이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 즉시 아주 조금씩 소문을 퍼뜨렸다네. 몇몇 상단들 사이에 구매자를 찾는다는 식으로 소문을 내어놓았으니 아마 오래지 않아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다크문에서 접촉을 시도해올 거라 예상하고 있어.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지만.”
“좋은 생각이오. 확실히 그쪽에서 먼저 찾아오지 않는 한 그들을 찾는 건 요원한 일인 것 같소.”
공주의 말처럼 나 역시 센더가 마련해둔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설령 일이 틀어지더라도 어차피 뭘 하든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법.
게다가 우리 셋이 함께 있으면 어쌔신 한 둘 정도에 쉬이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직 센더라는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로써도 승리를 쉬이 장담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하하핫, 그러니 당분간은 그저 기다리는 일만 남은 셈이지. 조급해 할 필요가 없어. 아, 그리고 두 사람은 암살 대상이 되어있다고 했으니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변장을 해줘. 설마 우리와 자네들의 일을 연관 지어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알겠소.”
공주야 이미 변장을 한 마당이니 약간만 더 손을 보면 될 테지만 난 어쩌지?
음.. 어쨌든 이 센더란 녀석도 정말 겉보기엔 그저 실없이 웃기만 하는 사람좋은 한량처럼 보이면서도 이래저래 빈틈이 없다. 교황청에 반기를 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이니리만큼 오죽하겠느냐 만은 말이야.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