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신경쓰이는 동행 (2)
다크문 헬리오스. 그 이름도 찬란하지만 그 누구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최강의 암살자 집단. 이들에게 붙는 수식어나 관용어가 한 둘이 아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은 의뢰를 실패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조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방해물이 있다면 방해물을 가루로 만들어버려서라도 제거하고, 방해자가 있다면 그 방해자를 모조리 죽이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의뢰를 완수하고야 마는 놈들. 거기에 덧붙여 의뢰 중 자신들에게 깊이 연관 된 자들을 살려두는 법도 없는 그야말로 ‘암살자’ 로써의 어마어마한 프라이드와 ‘안 되면 되게 한다.’ 는 식의 막무가내 정신까지 갖추고 있는 골치 아픈 존재들인 것이다.
지금 공주는 그런 그들의 암살 표적이 되어 있는 중이고 이미 한번 운 좋게 그들로부터 도망친 상황. 로세하이안 왕국이라는 강대국의 왕권다툼 문제가 촉발되어 있으니 다크문 헬리오스로써도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려고 하겠지만, 그들이 일단 받은 의뢰가 순순히 실패로 돌아가게 놓아 둘리가 만무 한만큼 언제가 되었든 또 부딪히게 될게 뻔하다.
“남말할 때는 아니지..”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자면, 나 역시도 지난 번에 너무 눈에 띄어버린 덕택에 이미 다크문 헬리오스의 어쌔신을 셋이나 죽인 그야말로 그들의 블랙리스트의 정점에 올라 있을 것이 분명한 입장이다.
울던 아이도 그치게 한다는 지옥에서 올라온 암살자들을 죽인 자로 척살대상에 올랐다라.. 어떤면으론 참 영광스럽다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아무 대책 없이 내가 공주의 그늘에서 털레털레 떨어져 나와서 ‘헤헷~ 다시 여행이다, 룰루랄라.’ 이러고 돌아다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여행코스를 황천길로 바꾸게 될 거다.
그래서 내가 이 불편한 귀족가 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떠나겠다고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겁먹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 난 내가 착실히 쌓아올린 실력에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전사인만큼 그들과의 전투 같은 것이 두렵지는 않다. 이미 세 번이나 부딪혀본 결과 그들보다 내가 밀릴 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고.
하지만 나도 분명히 죽는 것은 두렵다. 그들 둘, 셋, 다섯, 혹은 그 이상이 한꺼번에 날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내가 드래곤도 아니고 무슨 수로 버텨내겠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정말 방심하고 있을 때나 지쳐있을 때 슥 지나가면서 쿡하고 심장을 쑤시면 그걸로 끝이다.
아, 물론 단순히 죽음만을 피하는 것이라면 내게도 충분히 방법은 있다. 이곳을 나가는 즉시 추적을 최대한 떨쳐내며 잠적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난 신통하게도 두 곳이나 귀신같이 잠적할 곳을 안다.
하나는 캬르한 산맥. 이 산맥 안에서라면, 농담이 아니라 다크문의 어쌔신이 아니라 다크문의 어쌔신 마스터의 증조 할아버지(?)가 와도 하나도 걱정되지 않을 거다. 그 험준한 산 속에서 날 제대로 추적할 수 있는 놈이 있을 리 없고 또 추적해 오더라도 요령껏 전부 각개격파 해버릴 자신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침묵의 숲. 카르한 산맥보다 거리가 멀고 요정들에게 신세를 져야 한다는 문제는 있지만, 일단 들어가 버리면 푸른 날개 요정족의 마법적인 보호를 받으니 인간은 누구도 날 쫓아올 수 없다.
그러면 왜 죽을까봐 겁을 내냐고? 당연하잖은가, 난 여행을 계속하고 싶단 말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쌔신에게 쫓겨서 처량하게 잠적이라니, 그런 짓만은 절대 사양이다.
“나도 그렇지만 라샤크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르미엘르 공주는 차분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 후작가에 도착한 후, 일주일쯤 전까지만 해도 그게 전부 자신 때문이라며 미안해하던 그녀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한일이었다고 설득한 후부터는 그녀는 일체 그런 쪽으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한 가지 대책을 세웠어. 이대로 언제 그들이 찾아올지 모른 채로 두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
“그렇다네. 다크문 헬리오스라면 아무리 경계를 한다 해도 도무지 안심할 수 없지. 지금이야 내가 늘 공주전하를 내 보호범위 안에 두고 있다만, 충분할지 걱정인데다가 그게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본격적인 정쟁이 시작되면 더욱 더 말이네.”
주책스럽게 웃던 아인도르프 후작도 금새 신중한 표정이 되어 말을 덧붙였다. 이 호방한 노장도 공주의 목숨을 노리는 다크문 헬리오스만은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는 모양이다.
“무슨 대책이죠?”
사실 나도 그 동안 수도 없이 고민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 궁리해 봐도 딱히 대책이 없었기에 이러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그들과 담판을 짓는 거야.”
엥..? 공주의 짧은 대답에 난 어리둥절해져서 다시 되물었다.
“누구랑요?”
“그들, 다크문 헬리오스.”
“뭘 한다고요?”
“좀 전에 담판을 짓는다고 말했는데 말이지.”
“잠깐, 그러니까 누가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아?”
“아하, 그러니까 공주님이 다크문 헬리오스에게 '부디 내 암살을 하지 말아주시오~.' 이렇게 담판을 짓는다고요?”
“대략 맞아.”
“공주님 바보?”
“......”
아인도르프 후작은 이번엔 아예 강건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공주는 헛기침을 좀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반응을 보고 아인도르프 후작은 아예 탁자를 탕탕 치며 잠시 동안 웃어젖히더니 곧 내게 말했다.
“뭐, 나도 처음엔 그렇게 말했었네만, 도무지 고집을 꺾을 수가 없더군.”
“..물론 그렇게 단순한 담판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 라샤크. 난 그들을 설득해 내 암살을 의뢰한 자에 대한 증거물까지 얻어낼 생각이니까.”
이어진 공주의 간략한 설명에 따르면 지금의 정쟁에서 공주측은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는 상태라고 한다. 서로의 주장이야 팽팽하다지만, 어차피 정식 계승권이 암묵적으로 왕자 측에 있는 이상 공주 측에서는 팽팽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공주는 현 사태를 돌파할 방법으로써 다크문 헬리오스와 거래를 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암살 의뢰를 취소시켜 공주 자신과 나의 생명의 위협도 해결하고, 동시에 그 의뢰를 한자와 ㅡ벨쥬드 공작으로 추정되는ㅡ 다크문 헬리오스의 계약이 이루어진 증거까지도 얻어내겠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런 증거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공주 측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게 말이 돼요? 다크문 정도 되는 조직이 일단 받은 의뢰를 그리 쉽게 취소해줄지도 의문인데, 아예 일전의 의뢰자에 대한 정보까지 넘기라니.. 그리 쉬울까요? 또 대가는 무엇을 주고? 만약에 거절당하면 그 자리에서 공주님은 죽을 텐데? 아니, 애초에 만날 수나 있나?”
내 의문은 매우 합당한 것이었지만 공주는 그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명 위험한 시도인건 사실이지만 난 반드시 이 일을 성공시킬 생각이야.”
“.....”
암만 봐도 턱도 없는 소리 같았지만, 한편으론 신기하게도 어쩐지 공주가 저렇게까지 딱 잘라 말하자 나조차도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음, 역시 공주의 힘이란 말인가, 이게? 뭐, 그건 확실히 모르겠다만 사실 다른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피해 다닐 문제도 아니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그럼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공주님이 이곳을 벗어나는 것부터 무진장 위험하지 않나요. 또 난 잘은 모르지만서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 공주님이 자리를 비워도 될까 싶기도 하고. 게다가 그 정도 거래면 다크문 헬리오스의 그랜드 마스터는 만나야 할 텐데, 어디 있는지는 알고요?”
내 이어지는 지적에도 공주는 여전히 침착하게 하나씩 손을 꼽아 보이며 대답했다.
“다크문 헬리오스의 거점의 정확한 위치는 누구도 모른다고 하지만, 일단 그들이 ‘아르칸 8국 연합’의 영토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하니 일단 그곳에 가서 직접 찾아봐야지. 그리고 지금은 정쟁이 직접적으로 대결이 벌어지는 국면도 아니고 도리어 소강기이니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정도는 후작이 알아서 해줄 테고. 안전 문제에 대해서라면, 라샤크 네가 있으니 정체만 확실히 숨긴다면 문제없어.”
“......”
믿어주는 건 고맙긴 한데.. 하아. 걱정이군. 하긴 나로서도 내 생명과 앞으로의 삶이 달린 문제이니리만큼 남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 그래서 어차피 직접 움직여야 할 만할 일이지만 공주는 나와는 입장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러지 말고 편지를 써줘요. 내가 혼자 잘 숨어서 찾아보고 또 거래도 해볼 테니까.”
“이런 중대한 거래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라샤크는 외교경험이 없을 테고, 또 편지로는 부족해.”
칼로 자르듯 단언하는 공주의 눈에서는 일말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건 도저히 말릴 수 없겠군. 문득 아인도르프 후작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 역시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당연히 공주 측의 사람들은 이 일을 나보다도 훨씬 더 결사 반대 했었겠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알아서 사지로 기어들어가겠다니 나라도 입에 거품 물며 말렸을 테니까. 그런데도 먹히지 않았다는 건 공주의 고집을 꺽을 수 없다는 의미.
하아, 결국 공주를 호위하며 우리 둘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다크문 헬리오스의 본거지로 제 발로 찾아가야 한단 말이지? 공주는 나름의 계획이 있는 모양이지만, 정말 눈앞이 깜깜해 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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