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의
저승의 악마 회의. 사회를 맡은 고참악마가 진지한 얼굴로 서두를 뗐다.
“최근 저희 이미지가 너무 만만하게 변한 거 같습니다. 이에 악마의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하니, 각자 의견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폭식의 악마가 순살 치킨을 들고 소리쳤다.
“더 편한 음식을! 인류에게 뼈 없는 생선을! 달콤한 초콜릿을 베풀어 배부르고 나태하게 만듭시다!”
“좋은 의견입니다. 당장 시행하도록 하지요.”
이에 질세라, 평소 폭식의 악마와 라이벌 관계였던 나태의 악마가 손을 들었다.
“식후땡과 점심 음주만큼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건 얼마 없지. 담배는 마약이고, 술은 귀신이 들린다는 캠페인을 하는 건 어떤가?”
“으음, 과연 폭식과 나태. 듣는 제가 두려울 정도로 훌륭한 발상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예산안을 짜 사신님께 제출하도록 하죠.”
“저요, 저요!”
“네. 다음으로 색욕의 악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지금 인류는 섹스할 시간이 너무 적습니다! 그러니까 정욕을 발산하는 법도 모르는 동정들이 늘어나고 있다고요! 정치인을 협박해서 노동시간을 줄이도록 하면 저들은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색정을 탐할 겁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호오, 굉장히 체계적이군요. 마치 한참 전부터 세운 계획 같아요.”
고참악마의 칭찬에 색욕의 악마는 콧대를 높여 보였다.
“당연하죠. 최고의 섹스는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나오는 법이니까.”
“백지장이 점점 채워지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각 분야 최고의 악마들이 모였기 때문일까요. 음? 오만의 악마. 아이디어를 내고 싶으신가요?”
“뭐어? 흥! 착각하지 말아라 네놈들. 참석해달라고 사정하니까 왔을 뿐이야.”
오만의 악마는 망토를 휘감은 채 홱 돌아섰다.
하지만 고참악마는 그가 누구보다 상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만의 악마는 쌀쌀맞은 게 아니라, 그저 새침한 성격에 부끄럼을 타기에 가시 돋친 어법으로 자신을 방어할 뿐이었다.
이해심 많은 고참악마가 상냥한 눈을 한 채 계속 바라보자, 오만의 악마는 뒤로 돌아선 채 말했다.
“그, 그렇지만 요즘 인간들은 마음에 안 들어. 툭하면 자살해서 지옥에 떨어질 생각만 하더군. 지옥은 리조트가 아니라고! 그래서 말인데, 녀석들이 포기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는 만큼의 일감을 계속 쥐여주면 어떨까?”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게 어떻게 인간을 괴롭히는 거죠?”
“정말로 모르겠나? 흥! 어쩔 수 없네! 이 몸이 특별히 가르쳐주지.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받은 녀석은 그냥 주저앉거나 과로사하지만, 아슬아슬하게나마 일을 해내는 놈은 그러지 않아. 욕을 하면 하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과연! 지옥보다 더 끔찍한 지상에서 한계까지 머물게 하겠다는 거군요.”
“그런 거지. 자세한 건 멋대로들 생각하라고.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멋대로 시드는 꽃밭에 물고문하러 갈 시간이거든.”
오만의 악마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퇴장한 이후, 고참악마는 모두의 의견을 종합해 발표했다.
“그러면 회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계획을 위해 사악한 계획을 악마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인류를 괴롭히기 위해 식량을 증산하고, 흡연과 음주를 금하게 할 것이며, 정계를 협박해 노동시간을 감축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수행 가능한 역할을 지속해서 부여할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사신님께 제출해 빠른 시일 내에 승인받도록 하죠. 인류에게 고통을! 악마에게 영광 있으라!”
***
며칠 후. 악마들의 이미지 개선 프로젝트와 예산안을 받아든 사신은 옥좌의 백골을 긁적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한 곳은 드높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었다.
“Hey bro. 난데. 잘 지냈나? 다른 게 아니고, 요즘 천국에 자리 좀 있나 해서. 응. 몇 놈 올려보내려고. 얘네들은 천국에 더 어울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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