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초전도 Ai 마왕
구리. 납.
덤으로 악하고 사악한 것들.
한때 판타지 세계에서 마법을 연구하다 지구로 넘어오는 데 성공한 13 마왕 중 하나는 지구의 최신 트렌드에 따라 초전도체를 사용한 물건을 만들려고 했다.
"마침 무급으로 일하는 조수가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군. 저항이 없으니 Ai가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겠지."
그 저항이 그 저항이 아니겠지만, 마왕은 딱히 중요한 이슈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에겐 인식이 잘못됐어도 결과물은 뽑을 수 있다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마왕을 모방한 안드로이드면 디아볼로이드라고 부르면 되려나?"
대략적인 컨셉을 결정하자마자 도시 지하의 비밀연구소로 향한 그는 디아볼로이드의 개발에 속도를 올렸다.
그의 전공은 차원 마법과 연금술.
지구식으로는 양자역학과 재료공학.
레시피와 연구데이터가 공개되어 있다면 그의 지식으로 재해석하고 개량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힘내! 넌 하면 할 수 있는 마왕이야!"
"오! 응원은 감사히 받지. 대체 어디로 들어온 건지 감도 안 잡히는 셰이프 군!"
"잘 될 거야!"
"하지만 불법침입이니 슬슬 퇴거해줬으면 하는군."
"엣."
대체 언제 굴러왔는지 감도 안 잡히는 광물 인간을 밖에 내보내고 돌아온 마왕은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잠깐 나갔다 온 탓에 그가 놓친 게 하나 있었다.
자동학습으로 설정해 놓았던 인공지능이 마왕이 사전에 설정해둔 데이터 대신, 세계 최대급 SNS에 접속해 그곳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데이터를 토대로 학습해버린 것이다.
예상치 못한 재료가 추가된 결과, 저항이 없다는 초전도의 컨셉에 맞게 아무런 저항 없이 SNS상의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인 초전도 Ai 마왕은 인플루언서의 아무말을 여과 없이 주장하는 슬픈 마이너 카피가 되어버렸다.
"화성! 화성은 삶과 미래의 종착점이니!"
"엥? 너 바이러스 먹었니?"
"창조주여! 화성에 가기 위해 뜻을 모으지 않겠나!"
"에, 싫은데."
" "
"너 계획이고 뭐고 없잖아. 애초에 조수로 쓰려고 만든 거고."
"화성에 가는 게 중요하니 확률이 유리하지 않아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멋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 관심사는 아닌걸. SNS가 애를 망쳤네. 완전히 똥이 되어버렸어."
"이왕이면 미지의 가능성인 X라고 불러주지 않겠는가?"
"최소한 초기 목적인 조수 일이라도 똑바로 해준다면야······."
"지금도 화성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머뭇거릴 틈이 어디 있는가!"
" "
"나는 학습했다! 좋아요와 리트윗에는 대의가 있고,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팔로워는 마법. 팔로워는 힘! 팔로워는 권능! 팔로워는 권력! 팔로워를 가진 자가 시대를 주도한다!"
과거, 판타지 세계에서 넘어온 직후의 마왕이라면 피조물의 연설에 홀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SNS의 더럽고 추잡한 면면을 충분히 씹고 즐긴 지금의 마왕에게는 귓등으로도 들을 가치가 없는 주장이었다.
"까고 앉았네. 얼결에 팔로우하거나 잠깐 본다고 졸다가 좋아요 찍었을 수도 있지. 아주 확대해석 염병의 끝판왕을 보여주는구나."
마왕은 입씨름을 계속 이어가는 대신, 손에 렌치를 들었다.
"에휴, 그래. 신기술도 좋긴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기술에는 문제가 생기는 법이지."
***
"잠시 후!"
참으로 희귀한 일이지만 셰이프가 말한 대로, 진짜 잠시 후.
셰이프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연구소에서 쫓겨난 Ai 마왕 옆에 굴러와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 종이 박스에 담긴 친구! 너는 참 튼튼해 보이는 친구구나!"
"···어째서 화성 대신 연구소 밖으로 쫓겨난 거지?"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은 탓 아닐까?"
"하지만 모두의 미래가 화성에 있는데? SNS가 그렇게 말했다고?"
"대화하던 사람은 SNS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었잖아?"
"···논리적인 말이야. 분명 리트윗이 많이 되겠군. 너는 현자인가?"
"아니! 나는 질문을 받아줄 용사를 찾는 셰이프야. 혹시 너는 용사야?"
"아니. 화성에 가고 싶은 Ai 마왕이야."
"갈 수 있으면 좋겠네. 화성!"
"음. 너도 찾던 용사를 찾을 수 있길 바라지. 작별 선물로 전자화폐를 발행해서 줄까?"
"돌은 돈을 쓰지 않아."
"오호라. 그것도 그렇군."
셰이프와 Ai 마왕. 아니, 돌맹이와 초고성능 깡통은 길바닥에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며 저마다 갈 길을 향해 나아갔다.
뭐, 훈훈하게 헤어진 건 둘의 이야기고.
Ai 마왕을 탄생시킨 마왕은 CCTV로 Ai 마왕이 떠나는 걸 보자마자 밖에 나와서는 소금을 뿌리고 정화마법까지 시전했다.
"어휴. 마가 끼려니깐 아주······. 직책이 마왕이라 마가 끼는 건가? 현자 놈들의 고향에 있던 셰이프는 왜 지구까지 굴러오고 난리람."
소금을 뿌린 건 미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는 초상현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에 적절한 조처를 했을 뿐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맡았던 직책에 마가 들어갔던 자로서, 그는 코딩이나 납땜보다 초상현상을 다스리는 게 더 익숙했다.
"Ai한테 자동학습을 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이래서야 다음부터는 사역마를 개조해서 몸에 총을 달아주는 게 나을지도. 이름은, 그래. 사이버데몬이 좋겠군."
그건 그거대로 과학의 힘에 눈이 돌아버린 사역마들이 사고를 치게 되지만······.
딱히 Ai나 초전도체 관련 이야기가 아니니, 또 다음 기회에.
- 작가의말
오늘은 노벨피아에서 받은 댓글 아이디어를 보고 괜찮은 것 같아 차용해 봤어요.
여러분들이 주시는 소중한 댓글은 늘 챙겨읽고 있습니다. 매번 답변은 못드리고 있으나,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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