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강도 2
한적한 곳에서 유유자적한 카페 겸 잡화상을 운영하던 그의 가게에 무장한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탈리호!"
"햣하! 손님 받아라. 상인 양반!"
"우리가 든 칼이 무섭다면 얌전히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우선은 차라도 한 잔 내오실까!"
목에 예리한 칼이 드리워졌지만, 상인은 그들을 침착하게 자리로 안내했다.
무장 괴한들은 자리에 앉아서도 여전히 특유의 살기를 흩뿌렸다. 외견에서부터 타고난 험악함과 거칠게 살아온 성품은 쉽게 갈무리되는 게 아니었다.
"이봐 상인 양반, 재미없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상인은 곧바로 선반에 있던 단검을 집어 들었다.
위협에 참지 못하고 손님을 쫓아내기로 한 걸까?
그게 아니었다. 상인은 단검과 자동으로 가열되는 마법 주전자, 컵을 들고 저글링을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물건을 동시에 컨트롤하는 뛰어난 리듬, 파워, 집중력이 모두 동원되어야 하는 기예였다.
괴한들이 넋을 잃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칠 즈음엔 잘 끓여진 차와 쿠키가 그들 앞에 놓였다.
"어이어이, 제법이로군!"
"hmm, yummy!"
"성실한 접대를 받았으니 성실하게 털어가 드려야겠구만!"
잠깐의 휴식을 마친 괴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비 배낭을 열어 선반이란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거칠게 쓸어 담고, 들어가지 않는 물건은 그대로 마차에 던져 넣었다.
상인의 가게에 남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창고 안에 있던 원숭이 손의 모조품까지 포함해 모조리 다 무장 괴한들의 마차로 옮겨졌다.
일행 중 마지막까지 가게에 남았던 괴한은 자신이 메고 있던 배낭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큭큭큭. 실로 적절한 품질의 물건과 쇼였다. 만족스러웠으니 목숨은 사 가지 않도록 하지. 이건 대금이다. 잔돈은 필요 없으니 가지도록!"
괴한들이 처음과 마찬가지로 폭풍처럼 사라진 뒤, 상인은 배낭을 뒤집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거기에는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튜버경이 억지로 화폐개혁을 시도했다가 역풍만 잔뜩 맞고 실패해 해외 교역에서나 통용되는 화폐인 원화까지 들어있었다.
대충 헤아린 뒤, 상인은 장부에 오늘의 매상을 적었다.
상인 활동 중 역대 최대급의 매상이었고, 소진된 물건을 전부 보충해도 다섯 번은 더 보충할 수 있었다.
험하게 살아온 무장 괴한들은 무례하고 교양이 없었지만, 최소한 부족한 교양을 보충할 돈을 가졌던 것이다.
"사람으로선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지만, 상인으로선 네 번 정도는 더 와주면 좋겠군."
- 작가의말
‘멍청한 판타지 모음집 1~300’의 144화 ‘강도’편의 셀프 패러디를 해봤습니다.
"패러디의 극한이란...나 자신을 패러디하는 것이다."
"아하. 저흰 그걸 자기복제라고 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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