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암살 2: 멧돼지 암살자의 공포
법망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사기 계약으로 수많은 사람을 착취해온 악덕 상인의 얼굴은 초조했다.
원인은 얼마 전에 받은 편지 때문이었다.
― 닷새 후 저녁, 돌진적 암살로 귀공의 목숨을 암살하겠사오니,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 멧돼지 암살자 배상(拜上).
정직하고 예의 바르지만, 내용이 무례한 편지였다. 최상급 편지지에 편백나무 향기가 나는 잉크를 사용한 것이, 짜증 날 정도로 상인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필체도 알아보기 쉽고 세련된 달필.
무엇하나 트집 잡을 게 없는 완벽한 편지였다.
뭐, 암살예고라는 치명적인 에러가 있었지만.
"으으, 대비는 완벽하게 했어. 하수도란 하수도는 전부 막았고, 창문이며 곳곳에 함정을 세팅해뒀단 말이다. 심지어 내 침대에도 함정을 설치했다고."
이외에도 변장해서 침입할 수 없게끔 모든 사용인을 일시적으로 내보냈다.
현재 이 저택에 있는 건 악덕 상인 혼자.
물론 경비는 제대로 하고 있다. 마당부터 울타리 밖까지 악덕 상인이 고용한 용병들로 철통같은 경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였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멧돼지 암살자, 일명 '멧살자'는 절대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면 암살을 걸어오는 정직한 암살자.
키는 3미터에 체중은 970킬로그램.
밀고 들어온다면 철갑으로 무장한 군마가 끄는 전차가 돌격해 오는 것과 같으리라.
"아니 시발. 정면 암살이 대체 뭔데. 정면 암살이. 암살이 아니라 군대 최전선에 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대협곡의 거대요새라거나."
만약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면 락페스티벌에 열광한 팬들이 헤드뱅잉을 하듯이 그의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이는 암살 클랜 그랜드 마스터 제피 쉐도우리버까지 포함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반대로 암살에 맞지 않은 멧살자이기에 대책을 강구하기는 쉬웠다. 한번 암살할 때마다 온갖 기물을 부수고 소란을 피우는 만큼, 그가 애용하는 무기나 자주 활용하는 잠입플랜 등을 충분히 연구했다.
그리고 악덕 상인은 습득한 정보와 자신의 '무기'를 어떻게 써야 효과적인지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암살이 다 뭐냐. 나한텐 돈이 있다고!"
그는 예고된 암살일을 회피하기 위해 말 그대로 돈을 퍼부었다. 저택 외벽을 강화했고, 하수도는 봉쇄뿐만 아니라 식인 악어를 풀어놓았다.
그뿐이랴. 창문에는 방어마법 술식을 걸고 철판을 덧댔으며, 복도에는 쥐덫과 곰 덫, 멧돼지 덫을 적절히 배치했다.
침실로 이어지는 문고리에는 발열 마법을 걸어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덩이처럼 뜨겁게 했고, 바로 아래에는 미스릴로 만든 마름쇠를 뿌려놓았다.
그의 침실로 이어지는 길은 현재 왕궁에서 여왕의 침소나 보물창고로 이어지는 길과 좋은 승부가 될 만큼 철저히 요새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미터에 달하는 거대 멧돼지가 사냥감의 취향까지 분석해서 정중하게 죽이러 오겠다고 예고장을 보냈는데 무서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앗, 혹시 공간을 찢고 허공에서 나타나면 어쩌지? 공간 마법 대응은 안 했는데!"
멧살자를 향한 병적인 두려움과 집착은 현실적이라거나 집요하다는 영역을 넘어, 망상과 헛소리의 영역에 도달했다.
공간을 찢고 암살을 한다는 건 현자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악덕 상인 머릿속의 멧살자는 이미 주먹질 한 번으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폭발을 일으키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 그래! 나도 무장을 해야겠어. 복도에 장식용으로 배치한 갑옷이 있었지?"
적어도 투구라도 쓰고 있으면 마음이 놓이겠지.
악덕 상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으로 향했다.
그렇다.
밟는 즉시 가시가 발을 파고들 미스릴 마름쇠가 뿌려진 문 앞으로 말이다.
푸욱.
"으기야아아악!"
끔찍한 통증에 펄쩍 뛰어오른 악덕 상인은 투실투실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일단 문고리를 붙들었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발열 마법으로 불덩이 같은 열을 품은 문고리를 맨손으로 붙들었다.
"꺄아아악!"
얼결에 문고리를 돌려 목적대로 복도로 나왔지만, 그게 특히 최악이었다.
바닥에 깔린 건 온갖 종류의 덫.
운동신경이 떨어지고 이미 두 가지 함정에 당한 악덕 상인이 발레리나 같은 멋진 동작으로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찰칵. 철컥. 철컹!
"아얏! 으악! 끄악!"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고통의 연속에 상인은 갑옷을 포기하고 침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건 침대. 몹시도 폭신해 보이는, 오리털을 가득 채워 몹시 따뜻한 침대.
저기 누워서 편안해진 자세로 덫을 해제하자.
기절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방침을 정한 악덕 상인은 남은 기력을 끌어모아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폭신한 이불과 매트릭스 위에 몸을 맡긴 뒤에 깨달았다.
이 침대 기둥 위에는 2톤에 달하는 암석 낙하 함정이 준비되어 있고, 진짜 잠자리는 침대 아래였다는 사실을.
"오우. 썅."
아무리 고통에 절인 피클 같은 상태의 악덕 상인이라 해도 이다음에 뭐가 어떤 결과가 올 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
잠시 후.
"암사아아아알! 돌진적 암살의 시간이다! 멧돼지 암살자. 약속한 대로 이곳에 등장!"
암살자의 정도에 따라 사전에 파악해둔 저택의 비밀통로를 일직선으로 달려온 멧살자는 비밀 벽을 부수며 침실에 들어섰다.
"···오우."
그리고 발견한 건, 돌에 깔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악덕 상인.
"암. 살. 실···. 패. 크윽. 설마 자멸할 줄이야."
이미 죽은 대상까지 암살할 재주는 그에게 없었다. 멧살자는 풀이 죽어서는 부서진 비밀통로를 따라 터덜거리며 사라졌다.
***
그렇게 악덕 상인이 죽고 며칠 후.
멧살자가 임무에 실패했다는 보고서를 받은 암살 클랜의 그랜드 마스터, 제피 쉐도우리버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목표 죽었잖아. 평소처럼 뭐 쓸데없는 거 부수지도 않았고. 이건 사실상 성공 아냐?"
제피는 서류 하나를 꺼내 내용을 채우고, 도장을 찍었다.
멧살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라는 지령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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