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퇴마소녀 2
"크하하하! 어리석은 녀석! 납과 구리를 소지한 교수를 불에 태워 죽이려 하다니! 덕분에 나는 초전도맨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어리석으니까 논문 심사가 반려되는 거다!"
"그렇다고 10번이 넘게 반려한 네놈에겐 사람의 마음이 없어!"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교수와 대학원생이 학위와 목숨을 건 초능력 배틀을 벌이고.
"길가에서 수상한 걸 들고 다니는군. 잠깐 검문 검색을 해야겠어."
"이거 코스프레라고! 망할! 왜 미친놈 때문에 우리까지 덤터기를 써야 하는데!"
"칼이잖아! 흉기를 소지했으니 체포다!"
"그러니까 날도 없는 코스프레 소품이라고 새끼야!"
대국적으로 위도 노리지 못하는 겁많은 관심병자들이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반인을 공격한 탓에 멀쩡한 코스플레이어가 연행되고.
"요즘 애들은 너무 곱게 자라서 조금만 더워도 징징댄다니까."
"니 애미도 38도에 6시간 있으면 바삭하게 구워지지 않겠어요?"
애들이 더위에 쓰러지든 말든 자기 자존심부터 세우기 위해 서로 멱살이나 잡는 어른들이 넘쳐나는 어느 여름날.
에어컨 없는 시원한 여름이란 말이 덕담이나 농담으로 쓰이지 못하게 된 시대에, 한 여고생이 거대 IT 기업의 건물로 들어갔다.
***
"오, 왔구나! 택시비 얼마 나왔어? 오늘은 마음껏 놀다 가렴. 얼마가 됐든 삼촌이 다 내줄게!"
"흐응. 평소엔 사람을 비행기에서 던져대면서 하는 말이 고작 그거?"
"쉬, 쉬잇! '그쪽' 얘기를 이런 장소에서 하면 어떡해!"
"그럼 성의를 보여봐요. 성의를."
여고생의 삼촌은 IT 대기업에 다닌다지만, 사실 그 실체는 밤마다 이매망량을 사냥하는 퇴마사.
경마에 거액을 날린 걸 들킨 탓에 한동안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그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분명 눈에 보이는 코드는 멀쩡한데, 버그가 끝도 없이 발견된 탓에 작업이 크게 늦어져 버린 것이다.
퇴마사를 위한 위장 신분이라지만 지금은 경마로 날린 돈을 메꾸기 위한 귀중한 생명줄.
적당히 숨기는 것도 무리다.
그가 위장 신분으로 이 회사를 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가 속한 퇴마 집단이 운영하는지라, 퇴마사라면 누구나 그가 무슨 작업을 얼마만큼 했는지 조회할 수 있었다.
오컬트도 퇴마도 머리가 좋아야 맥을 이을 수 있는 시대였다.
돈 간수도 못 하면서 일도 못 한 결과가 구박이나 집에서 쫓겨나는 정도면 차라리 버틸 만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엔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평가가 떨어지면 본가에 불려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된다는 선택지가 따로 있었다.
그것만은 싫었다.
그에겐 아직 걸어보고 싶은 희망(경마)이 있었으니까.
"크윽. 필요한 지출이라는 건가······!"
결국 그는 포기하고 여고생에게 사례금이 두둑이 들어간 흰 봉투를 건네줬다.
"그, 그래. 이번 월급으로 경마에서 크게 벌면 메꾸지 못할 액수도 아니니까. 후후.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게 이런 거겠지······."
잃은 돈은 크게 이기면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다.
본전도 못 건지고 매번 지는 도박중독자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사고방식이었다.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있기만 해도 도움이 돼?"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이젠 오컬트의 힘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디버깅 같은 거 절대로 무리라고!"
"프로그래머가 코딩에 미신을 믿다니. 어지간히 벼랑 끝이라는 건 이해했어."
나야 돈 받았으니까 상관없지만.
여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삼촌의 뒤에서 아이스커피 빨대를 입에 문 채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촌과 달리 특별히 퇴마 조직에 소속되었거나 수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천적으로 어마어마한 영력을 보유해 일대의 모든 사악함을 밀어버리는 특수한 체질의 여고생.
미신이 프로그래밍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이나, 그녀가 있는 이상 사무실은 어떤 악도 다가올 수 없는 완전한 성역이었다.
***
"30분 후!"
어디에나 있는 광물 인간인 셰이프가 사무실 화분 위에서 작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3시간 후.
"해, 해냈다! 버그가 없어! 등대지기처럼 사무실에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고!"
"어? 진짜?"
"역시 코딩은 오컬트의 영역이었던 거야!"
"이게 왜 되는 건데······."
"나야 모르지!"
이런 사람이 코딩한 프로그램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여고생은 이전보다 불신이 깊어진 눈으로 삼촌을 바라봤다.
그리고 두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난데없이 회사에 여고생을 불러내 돈 봉투를 주면서 옆에 앉아있게 한 게 어떤 눈으로 비칠지 말이다.
그는 바란 대로 본가에 소환되지 않았지만, 집에서 오해가 풀릴 때까지 회사 내에서 숙식하는 처지가 되었다.
- 작가의말
솔직히 윗부분, 특히 흉기 파트는 없어도 되는 부분이 맞습니다.
'이런 일은 현실이 아니라 소설에서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썼었는데요.
올리고 나서 좀 있으니 내일 코믹월드가 기동대 배치된 채로 진행된다는 공지가 떴네요.
작중에서 언급했듯이 왜 미친놈 때문에 우리까지 고생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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