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서큐버스
"다음 분에게 들어오라고 전해주세요."
면접관을 맡은 서큐버스는 다소 진이 빠진 목소리로 고블린에게 다음 지원자를 불러달라 부탁했다.
그녀도 서큐버스가 세간에서 어떤 인식인지는 안다.
꿈의 세계 유흥 관련으로 가장 유명한 종족.
인큐버스와 함께 미남미녀 하면 반드시 꼽히는 게 아주 싫지는 않았다. 어쨌든 칭찬을 들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회사는 식품업체다.
사람들이 흔히 아는 '정기를 빼앗는 몽마'는 몽마계의 아이돌 같은 위치로, 엔터테인먼트 최상위의 사업이다.
꿈의 세계의 어장에서 양식된 물고기와 맥에게서 짜낸 우유를 생산해 신선할 때 유통하는 사업과 유흥업은 거리가 멀었다.
제대로 된 식사만 할 수 있다면 사람을 쥐어짜서 빼내는 정기 같은 건 필수가 아니었다. 잘 쳐줘야 비타민이나 영양제 정도다.
식품산업에 종사하는 그녀 같은 서큐버스에겐 '서큐버스는 음란하다'라는 인식이 곤란한 경우가 더 많았다.
"서큐버스하고 일할 수 있다고 하면 하나같이 야한 꿈만 꿔버리니. 골치 아프네."
콘크리트 정글에 호밀을 뿌린다고 호밀밭이 되지는 않는다. 방사능 오염수가 방류된 바다에는 정상적인 물고기가 없다.
그건 개돼지가 아닌 다음에야 숨 쉬듯 당연하게 아는 상식.
심지어 개돼지마저도 자기가 아프면 뭔가 잘못된 걸 알고 경계하는 법이다.
꿈의 세계의 식품 생산도 이와 같다.
어장에서 물고기를 양식하려면 망망대해를 여행하는 넓은 포부를 가진 사람의 꿈이.
맥이 안심하고 꿈을 뜯어먹으려면 악몽과 거리가 먼 평온한 삶을 사는 사람의 꿈이 필요하다.
서큐버스가 면접으로 뽑으려는 건 이렇게 자신들의 니즈에 맞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면접관이 서큐버스라는 사실을 듣고 음험한 상상이나 편견, 혐오감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리 스펙이 좋고 자신을 잘 꾸며도 채용할 의미가 없었다.
이런 고민거리를 안은 채 계속 기다리고 있자니, 살이 뒤룩뒤룩찐 더벅머리의 사내가 면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량한 두발에 후줄근한 복장.
안경에는 기름때가 껴서 앞이 보이는지도 의문이고, 수염은 덥수룩.
턱에도 살이 붙어 목의 경계가 희미하다.
사람의 세계라면 다가가 말을 걸기도 싫어질 만한 타입.
비단에 꽃을 더한다 해서 금상첨화라 한다면, 사내는 그 표현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서큐버스도 사람과 똑같은 심미안을 가졌을까?
아니. 다르다.
'어라. 이 사람, 제법 내 취향이잖아?'
겉모습만 보고 헐뜯는 건 미의식도 경험도 얄팍하기에 저지르는 만행.
꿈을 통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심리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본 면접관은 지방이란 진흙 속에 파묻힌 진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의 취향이 살찐 타입인 탓도 있었지만 말이다.
'헛! 정신차려야지. 정사와 사무는 구분하는 게 당연하잖아?'
지원자의 엉망진창인 외관 안에 숨겨진 잠재력에 잠시 한눈을 팔았던 면접관은 심호흡과 함께 평정을 되찾고, 본격적인 면접을 시작했다.
"우선, 여기가 서큐버스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건 알고 지원했나요?"
"네,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으셨는지 듣고 싶은데요."
음흉한 사심이 섞여 성욕이 드러나는 대답이라면 즉시 아웃.
지금까지 수많은 지원자가 허니트랩이 숨겨진 이 질문에 당했다.
"자, 잠만 자도 돈을 버는 꿈의 직장이 있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이노센트······!"
면접관은 저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감탄사를 흘렸다.
어쩜 이리도 순수한 나태함이란 말인가!
다른 회사의 면접장이었으면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져!'라면서 서류를 집어 던졌으리라.
'최근에 칠대죄의 악마들이 모조리 가장 높은 땅으로 발령 났다고 들었는데, 그중에서 나태만 인간으로 환생한 걸까?'
물욕을 가졌으면서 나태함이 성욕보다 앞선다는 건, 서큐버스 식품회사 한정으로 최고의 인재였다!
이미 이 시점에서 채용을 결정한 채, 면접관은 좀 더 수위 높은 공격을 감행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블라우스의 제일 윗단추를 거칠게 풀어서 복부로 이어지는 깊고 어두운 곡선을 드러낸 채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번엔 회식 자리에 갔다고 가정해보죠. 당신의 여상사는 거나하게 취한 채 이런 모습으로 당신에게 접근했습니다. 이때 당신은······."
"저, 저기. 회식 장소는 어디인가요?"
"···회식 장소가 중요한가요?"
"네."
좀 강적이네.
면접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가 길고 매끈한 다리를 과시하듯 앞으로 기울였다. 조금 전이 요염함을 30% 개방한 상태였다면, 지금은 50%였다.
"회식 장소는 고깃집인 거로 하죠."
"부, 뷔페인가요? 아니면 비용 관련은······."
"···전액 회사 부담. 최고급 한우에 준하는 1등급 맥 고기를 파는 고급 고깃집이랍니다."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요염함을 70%까지 개방한 그녀는 그의 기름진 턱살에 손가락을 파묻으며 애태우는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자리에서 촉촉한 눈길로 같이 돌아가자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 여상사는 혹시 몸이 아, 아주 안 좋은 상태인 건가요?"
"···그저 외로울 뿐이라면?"
"그렇다면 저는 고깃집에 남겠습니다."
"엥."
즉답.
그 단호함에는 재판장에서 판결을 내리는 대법관과 같은 근엄함이 있었다.
고깃집이 예시였으니, 고기 대법관이리라.
"어, 어째서?"
"당연한 겁니다! 고기가 무제한인데!"
"하, 하지만 여상사하고 썸을 탈 수 있는 기회인데?"
"고기가 앞에 있는데 그게 중요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말더듬이 있는 처음과 달리 아주 또렷하고 분명한 주장이 돌아왔다.
"고기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요?"
"그거야 당연히 사람이죠. 만일 그 여상사가 정말로 상태가 안 좋다면 사람으로서 바래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직후, 그는 진심으로 풀 죽은 얼굴을 한 채 덧붙였다.
"···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나가는 건 정말 아쉽지만요."
성욕에 현혹되지 않고, 사리사욕에 충실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까지.
이를 목격한 면접관의 볼에 홍조가 드러났다. 심박수가 늘어나고, 어떠한 욕구가 심장보다 깊은 곳에서 싹텄다.
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싶어졌다.
고기보다 자신을 먼저 바라보게 만들고.
이 수컷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면 정복감이 엄청날 것이라 확신했다.
꿈의 세계에서 유흥 관련으로 유명하며, 가장 뛰어난 수렵종족이기도 한 서큐버스는 눈앞의 고깃덩이를 향해 연심에 가까운 사냥혼을 불태웠다.
그는 면접에 합격한 게 아니다.
그녀의 사냥감으로 마킹되어 회사라는 사냥터에 끌려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그 두툼한 손가락에 결혼반지가 끼워진 뒤일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서큐버스가 운영하는 회사는 대부분 사내 연애가 허용되어 있었다.
- 작가의말
그야말로 망상에서나 존재할 꿈 같은 직장이네요.
뭐, 서큐버스가 운영하니 꿈 같은 것도 당연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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