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소환
소환술 경연대회가 열리자 많은 마법사가 참가해 저마다 소환술 기량을 선보이고, 소환수와의 유대를 뽐냈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 그룹에 다양한 과제를 제시했다.
동시 소환이나 거대화······. 때로는 유대를 확인하기 위한 댄스도 과제로 올라왔다.
그렇게 갖가지 볼거리로 충분히 뜨거웠던 경연대회도 어느덧 결승.
대회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려면 어떤 과제를 제시해야 할까. 심사위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마지막은 역시 화려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단 물량을 보이는 건 제외합시다. 작년 결승처럼 되면 대참사에요."
"자기가 소환한 파리 여왕과 결혼한 사람 말이죠. 전 그때 심사위원이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소환 기량하고 유대 하나는 정말 뛰어났는데······."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작년에 심사위원이었던 마법사들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우승 퍼포먼스와 우승 인터뷰가 최악이었지."
"비겁한 반칙이나 뇌물을 썼다거나?"
"구시대의 소환 마법진을 똥 닦는 데 썼다가, 치질 때문에 흘러나온 피로 계약했다는 이야기가 우승 소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거기서 사랑이 싹터서 결혼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로맨틱하고?"
"···녜?"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불행히도 작년에 참가한 마법사들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다 우승한 기념이라면서 자식들을 일제히 소환했지."
"파리 여왕과 소환사의 자식이라면······."
올해 처음 참가한 심사위원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사고를 정지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파리 여왕에게 어울리는 표현으로 하자면······. 변기에 쏟아낸 대변.
어느 쪽이든 되돌릴 수 없다.
한번 배설한 내용물은 물을 내리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음이니!
"그날, 한창 식사 중이던 파리 인간 8천 7백 마리가 회장에 나타났다네."
"아, 아아아······. 으아아아아······."
듣기만 해도, 상상만 해도 아득해지는 광경이었다.
타락의 정점인 파리 여왕의 자식들이 무엇을 먹고 있었을까. 그 손에 묻어있던 황갈색 점액의 정체는 무엇이었는가.
"그,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번 대회가 열린 거죠?"
"관객 전원에게 기억 소거 마법을 썼다네."
"동의 없이?"
"전원에게 동의받고."
" "
"그 뭐냐. 아무래도 잊고 싶은 순간이었겠지. 그런 장면은."
"확실히, 공감되는 이야기네요."
신참 심사위원은 주저 없이 완드를 꺼내 자기 머리에 겨누고 기억 소거 마법을 시전했다. 섬세한 마음이 부서지기 전에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쏟아진 물은 손으로 다시 담을 수 없지만, 마법은 물이 쏟아지기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다.
당시 현장 증인으로서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야 했던 고참 심사위원들은 그녀가 진심으로 부러웠지만, 질책하지는 않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건 그들이었다.
"어, 어라? 저희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었죠? 맞다. 결승 과제 정해야 하잖아요. 나 왜 완드를 들고 있지? 설마, 나 기억 소거 마법 썼어요? 내가 나한테?"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또 자기 머리에 한 방 쏘고 싶은 게 아니면 더 묻지 말게나."
고참 심사위원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결승 과제를 정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확실히 그렇네요. 으음, 여기서는 심플하면서 화려하게, 강력한 파괴력을 과제로 삼는 게 어떨까요?"
"힘의 과제인가. 나쁘지 않겠군."
과제가 발표되자 첫 번째 소환사는 동방 제국 지방의 용을 소환해냈다. 인류왕국과 순수왕국 지역과 달리 뱀처럼 긴 몸을 한 용은 구름과 안개를 두른 채 허공을 돌다, 포효 한 번으로 천장에 균열을 일으켰다.
12인의 심사위원이 평가한 총점은 모두 합쳐 116점.
파괴력은 충분했으나 소환술식의 최적화 실패로 인해 주어진 소환 시간을 초과한 게 감점 요인이었다.
두 번째 소환사는 대조적으로 아주 빠르게 소환을 끝마쳤다.
그리고 소환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소환 마법진을 양피지도 없이 허공에서 병렬로 전개했다.
"분명 보기엔 화려한데······."
침착하게 두 번째 소환사를 지켜보던 최고령 심사위원은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정작 소환수가 보이지 않는군. 몸을 숨기는 타입의 소환수인가? 자네. 이번 과제는 은밀성이 아니라 파괴력일세."
"파괴력을 보여드리기에 앞서,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심사위원님?"
"흐음? 설마하니 파괴의 개념에 대해 철학적인 논쟁을 할 셈인가?"
"그건 아닙니다. 그저 이 대회장이 얼마 정도 하는지 알아야 해서요."
"갑자기 부동산인가······."
심사위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렇다 해도 베테랑 프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법.
감정보다 대회의 진행을 우선시한 심사위원은 그의 요청에 차분히 답했다.
"대충 생각하면 1,400억 원쯤 되지 않을까 싶네만. 어차피 틀리겠지. 대충 그렇다고 해두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 소환수는 1,400억 원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쿠르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균열이 일었던 천장 한쪽이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붕괴했다.
포효의 여파는 아니었다. 무너져 내린 부분은 균열에서 멀었고, 인위적이었다.
"뭐였던 겐가. 지금 건!"
"선생님! 떨어진 파편을 보십쇼. 뭔가 있습니다!"
다른 심사위원의 말에 최고령 심사위원은 시력 강화 마법을 걸고 파편을 응시했다.
확실히, 무언가가 표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흰색에 살짝 주황빛이 도는 곤충.
구더기로 착각할 수도 있었으나, 그건 구더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파편 위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턱으로 파면을 깨부수고 있었다.
"저건, 개미인가?"
"흰개미입니다. 보통은 목조 건물을 주식으로 삼고, 저와 계약한 애들은 돌과 나무를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건물을 먹는다니. 참으로 두려운!"
"부동산 킬러······!"
"하, 하지만 일개 개미 아닌가. 여왕만 제거하면 저렇게 작은 개체는 번식이 어렵겠군. 그래서야 파괴력은 없지 않나?"
"아, 제가 설명이 부족했군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흰개미 소환사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스산한 한기가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퍼져나갔다.
"흰개미는 이름만 개미일 뿐, 가깝기로는 바퀴벌레에 가깝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 말을 들은 즉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120점 만점 중 120점.
용도 경외심과 환상을 자극하는 좋은 소환수였으나, 흰개미는 이를 뛰어넘었다.
부동산을 주식으로 삼는 바퀴벌레라는 건 심사위원들에게 현실적인 파괴였고, 소름 끼치는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두려워하고 경계하라. 당신의 집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새하얀 군단을. 부동산 시세를 먹어치우는 광란의 포식자들을.
- 작가의말
서울에 흰개미가 나왔다는 뉴스는 3천자 만큼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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