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미팅 2
또다시 4 대 4 미팅 자리를 잡은 그녀는 또다시 함께할 동료를 모집하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학점은 시원찮았지만 커뮤니티와 친화력만큼은 A+를 넘어 S라고 해도 좋을 그녀였다.
그렇다 해도 이번엔 쉽지 않았다. 지난 미팅에서 폭탄으로 준비했던 드루이드 친구가 사실은 폭발력을 숨기고 있던 엄청난 미녀였던지라, 그날 완전히 들러리가 되었던 두 친구는 좀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압도적 패배에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번엔 제대로 된 자리겠지?"
"그렇다니까! 걔 안 올 거야."
"우린 꿔다놓은 보릿자루조차 아니었어. 식당의 먼지조차 그것보단 존재감이 있었을 거야."
"그, 그건 미안. 설마 곰 가죽 뒤집어쓰고 다니던 애가 그렇게 꾸미고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미팅 끝난 뒤에 본모습으로 돌아와도 반전 매력이라고 좋아하더라."
"생각해보면 양치기는 한가해서 양치기를 하는 게 아니야. 존나 쎄니까 혼자서 양을 몰고 다니는 거라고······!"
"무슨 헛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기분인지 이해해. 하지만 이번엔 정말 괜찮을 거야! 남자들도 대박이라니까? 해외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대!"
"엥. 기사?"
"그치? 흥미가 생기지? 대박이지?"
"택배 기사나 딸배 아니고?"
"얘도 참. 진짜라니까? 사진으로 검까지 보여주던걸?"
"어머 그게 뭐래. 컨셉 심하다. 네 명 다 그래?"
"응. 넷 다. 이건 컨셉충이라도 한번 보고 싶지 않아?"
"흐으음. 매우 인터레스팅하면서 레어한데."
그녀의 친구는 제안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역시 지난날의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했는지, 진지한 얼굴로 조건을 붙였다.
"단. 배신은 용서 못 해."
이런 것까지 신경 쓰면서 미팅을 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친구의 진지한 얼굴에 강한 회의를 느끼면서도 감정을 숨긴 채 친구 좋다는 게 뭐겠냐는 너스레를 떨었다.
***
그리고 결전의 미팅 날.
놀랍게도 컨셉이라 생각했던 네 명의 남성은 진짜로 기사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유명한······.
"나는 죽음이요!"
"나는 전쟁이니!"
"나는 역병이고!"
"나는 기근이라!"
세계를 멸망시키는 자. 종언을 가져오는 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넷.
포 호스맨.
그들이야말로 묵시록의 사기사였음이라.
먼 곳으로부터 급히 나팔 부는 소리가 일곱 번 들려왔다. 묵시록의 사기사가 갑자기 모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천사들이 종말을 알린 것이다.
뭐, 이날 사기사는 미팅을 나왔을 뿐이고. 당연히 나팔은 오보가 되지만.
설령 오보라 하더라도 나팔은 울렸으니, 대혼란은 피할 수 없음이라.
"종말이다! 종말! 종말이 왔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신이다! 내가 빛을 만든다!"
"이 구라쟁이 새끼! 소매에 전등 숨겼잖아!"
"사이비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불은 답을 안다! 불로 정화하라! 불이 우리를 인도하리라!"
"파이어 펀치! 파이어 펀치!"
"햣하! 약탈이다! 이 TV는 내 거야!"
"회개하라 믿음이 부족한 자들아! 아, 와플은 포장해 주세요. 집에 가서 먹을 거라."
"사과나무! 사과나무 묘목 팝니다! 내일 세상이 끝나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보세요!"
"구~ 따라라♪ 스~ 따라라~♪"
대형트럭이 드리프트를 하고, 자전거는 도로 위에서 역주행을 시도했다. 창문마다 돌이 던져지고, 굴뚝 없는 빌딩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국회에는 참된 리더가 없었으며, 지위가 높은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민의 발아래로 끌려 내려왔다. 종말 날의 풍경이란 그런 법이다.
그나마 맡은 바 일을 다 하는 건 길거리의 기타리스트와 방구석의 웹소설 작가 같은 사람들 뿐이었다. 애초에 벌어둔 게 없으니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지옥 같은 풍경에 그녀는 잠시 벙찐 얼굴이 됐지만, 결국 이마저도 적응했다. 환경변화에 최적화된 인간의 뇌 가소성은 그만큼 뛰어났다.
그리고 믿음을 가졌다.
혼자 걱정해서 만사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오보니까 며칠 지나면 다시 정상화될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것보다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신나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음······. 우선 노래방에 가서 시원하게 질러볼까?"
"핫하! 기대하시게나 숙녀분들. 그대들에게 진정한 데스메탈이 무엇인지 들려드리겠네!"
죽음이 엄지를 치켜들고 생기발랄한 미소를 지었다.
미팅에서 데스메탈이라니 무슨 글러 처먹은 발상이냐.
그렇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걱정은 기우로 그쳤다.
미남과 '진짜'는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법.
죽음의 데스메탈은 단순히 고막을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근원에서부터 스릴과 오싹함을 불러일으키는 시원한 창법에 그녀와 친구들은 멈추지 않는 헤드뱅잉으로 화답했다.
"음악 최고! 너도 음악 최고라고 외쳐!"
"예아! 음악 최고!"
음악은 비명을 지우고, 헤드뱅잉은 몸을 지배했다.
- 작가의말
음악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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