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책 사냥
누구나 알고 있듯,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렇다면 가을에 읽을 책을 여름에 사냥해두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옳소! 정확히 맞는 말이다!"
"사냥을 시작하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고되고, 말은 마비된 듯이 늘어지는 천고마비의 무더운 여름날.
책갈피처럼 앙상한 몸에 통이 큰 로브를 걸치고 머리 대신 책이 자리하고 있는 책 수호자들은 전투용 만년필과 연필을 들고 용맹하게 포효했다. 페이지가 머리카락 대신 거칠게 팔랑거리고, 그들의 혀나 다름없는 미각기관인 가름끈이 용맹하게 흔들렸다.
무한도서관의 저주받은 서재에서 자라나는 책들 중 일부는 책장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책장을 퍼덕이며 날아가려고 한다.
그건 지식에 전파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역시 책들에게도 여름은 더워서인가. 그래서 철새 같은 감각으로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려는 것인가.
어떤 이유에서 책이 날갯짓하든. 책 수호자들은 책들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사람에게 있어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면, 책 수호자에게 독서는 말 그대로 식사다. 필사한 텍스트에 가름끈을 드리우고,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를 빨아들여 정보를 취하는 게 그들의 기본적인 식사법이다.
다시 말해, 무한도서관의 책들이 날아간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 먹으려고 기껏 마련해둔 빵이 갑자기 날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런 황당한 일이 용납될까 보냐. 평소라면 조용한 수도승 같던 책 수호자들이 격노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소에 쓰던 전투용 만년필과 붓을 내려놓고, 대신 방패를 대신하는 독서대와 손잡이 달린 문진을 들었다.
"책을 제압하는 자가 지식을 제압한다!"
"핫하! 역시 역사책은 내용이 많아서 움직임이 굼뜨군!"
"책을 훼손하지 마라! 포위한 다음 문진으로 눌러서 제압해!"
꾸욱. 꾸욱. 꾸욱. 꾸욱.
2인 1조로 양옆에서 누르거나. 위에서 누르거나. 아니면 독서대 위에 고정하거나.
책 수호자들은 무한도서관을 수호하는 자들인 동시에 독서와 책 관리의 프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책들은 순조롭게 붙잡혔고, 가죽끈으로 곱게 묶었다.
"후후후, 올해 태어난 책들도 아주 기운차군!"
"풍성한 가을이 기대되는데!"
군사학 책 수호자의 지휘로 책들을 조기에 제압한 책 수호자들은 광물 인간 셰이프들이 즐겨 부르는 바위 공주의 노래를 부르며 사냥한 책들을 옆구리에 낀 채 무한도서관으로 향했다.
한편, 가까운 해안가 절벽의 등대만큼이나 높은 도서관 탑에서 독서를 즐기던 모든 책 수호자들의 총괄자, 총람 책 수호자는 시끌벅적한 책 사냥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녀석들. 도서관인데 조용히 있을 생각이 아예 없구만."
지극히 도서관에서 나올 법한 클레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책 사냥에 참여하지 않은 책 수호자들도 날이 너무 더운 탓에 대부분은 책을 덮고 무한도서관의 코앞에 있는 해변으로 바캉스를 떠났기 때문이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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