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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백만잔의 서재

슈퍼 멍청한 판타지 모음집 2 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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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백만잔
작품등록일 :
2022.12.11 22:06
최근연재일 :
2023.10.17 11:33
연재수 :
2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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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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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글자수 :
551,006

작성
23.07.0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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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171. 현자 표류기 2

DUMMY

사람은 없고, 대신 광물 인간 셰이프들이 존재하는 바위공주의 섬.

사람 하나 없는 무인도에서 그는 유일한 현자다.

이명은 불사의 현자.

섬의 신비를 해명해 얻은 불로불사의 능력 덕분에 아무리 굶고 다치고 익사하고, 심지어 셰이프한테 뭉개져도 반나절 정도만 지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복구된다.

하지만 그게 무인도를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얘기가 달랐다.

섬 일대의 특수한 힘이 마법을 방해해 공간 전이처럼 상당한 마력과 수고가 들어가는 고급 마법은 사용 불능.

수년에 걸친 시도 끝에 가까스로 완성했던 행글라이더는 하필이면 그때 지나가던 바다신의 첫째 딸의 발에 맞아 격추.

헤엄쳐서 건너는 것도 무리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3,288번째 탈출계획으로 시도했다가 화려하게 실패한 계획이었다.

5년에 걸쳐 꾸준히 몸을 만들었지만 결국 철인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 불사의 현자는 섬을 봉쇄하는 것처럼 흐르는 해류를 이겨내지 못했다.

당시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겼던 셰이프의 말에 따르면 나뭇가지에 걸린 미역 같은 모습으로 떠밀려 왔다고 한다.


"불쌍해애애애."


현자가 너무 외로웠던 나머지 멋대로 '윌슨'이라 이름 지은 암석 셰이프가 동정하자 불사의 현자는 긴 시간에 걸쳐 풍화된 자존심을 긁어모아 콧대를 높였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고 윌슨. 탈출계획 5,171번을 세웠거든!"

"노력을 멈추지 않는 건 멋지다고 생각해!"


바위 셰이프는 약간 텀을 두고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이번엔 뭘 할 거야?"


다시 행글라이더를 시도하는 건 향후 5년 정도는 무리였다.

격추된 행글라이더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견본을 꾸준히 만들다 쓸만한 목재를 전부 소모했기 때문이다.

불로불사에겐 남아도는 게 시간이기에 묘목은 심어뒀지만, 비슷한 품질의 소재를 당장 확보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하늘도 바다도 무리라면, 해저로 가자고.


"후후후, 돌로 신발을 만들었지."

"해저는 위험해!"

"그야 공기가 없으니 평범한 사람에게는 위험하겠지. 하지만 괜찮아 윌슨. 몸이 재생될 때는 폐에 물이 차도 밖으로 밀어내거든. 아마 우주에 던져져도 부활 후에 1초 정도는 멀쩡하겠지!"


그리고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걸 알 수 있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았어."


행글라이더가 격추되었을 때의 경험이 아주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행글라이더가 격추당해 해류속에서 죽다 살기를 반복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지식이었으니까.


"행운을 빌어줘 윌슨!"

"몸조심해!"


윌슨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불사의 현자는 입수 후 5분 만에 익사했다.

여기까지는 현자의 예상대로였다.

돌 신발을 신고 있던 그는 익사해도 해류에 떠밀려가거나 해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의식까지 완전히 회복한 현자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익사 후 부활해서 한 걸음.

이걸 무한히 반복.

방향은 드라코 대륙이 있을 남쪽으로 잡았지만, 꼭 대륙에 도착할 필요도 없었다.

전제조건은 행글라이더 때와 다를 게 없다. 섬의 마법 방해 영향권에서만 벗어나면 그다음부터는 현자의 세상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짜디짠 죽음의 맛이 익숙해졌을 즈음, 불사의 현자는 목표했던 지점에 거의 다 왔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마법의 운용이 쉬워졌다.

불사의 현자는 물속에서 환호성을 내지르며 익사했고, 싱글벙글 웃으며 되살아났다.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죽도록 힘든 걸 넘어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하는 수난의 연속이었지만, 모든 건 계산대로였다.

그러나 불사의 현자는 이번에도 한 가지를 계산에서 빼먹었다.


"오, 안녕!"

" "


바로, 그의 운이 지지리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류가 자아내는 바다의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자고 있던 산호초가 현자의 돌 신발이 일으킨 묵직한 진동에 눈을 뜨고 인사했다.

사람 말을 하는 셰이프들과 자주 대화했기 때문일까. 섬 일대의 산호초가 사용하는 화법은 셰이프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마음이 맞았기에 광물 인간들과 친하게 지냈고, 광물 인간만큼 정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당연하고도 애석하게도, 광물 인간을 닮은 산호초는 불사의 현자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바다에 빠졌나 보구나! 괜찮아. 내 친구를 불러줄게!"

"뽀그르르! 뽀끄르르르르르! (아니야! 날 내버려 둬!)"

"도와줘 돌들아! 바다에 빠진 친구를 구하자!"

"푸르르릅! 뿌르르뽀그르르르! (오지 마! 떨어지란 말이다!)"


필사적으로 친절을 거절했지만, 그저 물거품이 나왔을 뿐이다.

그게 현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부활과 함께 마법처럼 생겨난 산소는 턱없이 적었고, 결국 현자는 몇 번째일지 모를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가 되살아나는 동안에도 바다의 '친절'은 멈추지 않았다.


"오, 안녕!" "오, 안녕!" "오, 안녕!" "오, 안녕!" "오, 안녕!"


데굴데굴.

하나둘씩 주변에서 굴러온 셰이프들은 늘 하는 인사와 함께 되살아 나는 중인 현자를 둘러쌌다.


"이 바위 신발은 무거운데!"

"친구로 만들까?"

"시간이 부족할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여럿이지!"

"합체하자!"


철광석, 수은, 모래, 망간 등등. 온갖 셰이프들이 서로에게 다가가 몸을 맞대자 흐물텅거리며 녹고, 은색을 기초로 여러 색이 섞인 표면과 사지를 가진 광물의 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된 이목구비가 없어도 대화는 가능했다. 애초에 원본부터 광물이니까.

그는 온몸을 진동시키며 우렁찬 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광물 전사 아말감. 여기에 탄생!"

"멋져! 광물 전사 아말감!"

"핫핫핫. 즐거운 프리 토크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챠앗!"


여러 셰이프가 합쳐진 영향으로 말투가 변한 아말감은 날카로운 기합성을 내지르며 현자의 돌 신발에 촙을 날렸다. 손날을 세운 절도 있는 일격은 현자의 몸은 조금도 상하게 하지 않고 신발만을 깔끔하게 부숴버렸다.


"아말감 전사는 이 친구를 해변에 데려가도록 하지. 또 보세나. 붉은 곡선이 매력적인 해저의 친구여!"

"또 봐!"


불사의 현자를 어깨에 짊어진 아말감 셰이프는 몸을 굽히는가 싶더니, 섬을 향해 일직선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뭐, 아무래도 헤엄이란 개념과 거리가 먼 광물이었으니까.

수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산소도 필요치 않았다.

아말감은 불사의 현자가 몇 날 며칠에 걸쳐 걸어온 길을 단 15분 만에 역주해, 미역처럼 축 늘어진 그를 해변에 눕혔다.


"오, 안녕!"

"안녕하신가 순수한 마음을 가진 형제여. 나는 아말감 전사!"

"아말감 전사구나! 팔다리가 있는 셰이프라니 대단해!"

"이자를 집에 데려다주고 싶은데, 혹시 아는가?"

"내 친구야! 나한테 윌슨이라는 이름도 붙여줬어!"

"그거 다행이군! 급한 대로 섬에 데려왔다만, 섬의 주민이었나?"


아말감의 질문에 윌슨은 조금도 주저 없이 순수한 울림으로 답했다.


"맞아! 여기가 그의 집이야!"

"핫핫핫! 알겠네. 그러면 아말감 전사는 안심하고 바다로 돌아가도록 하지. 좋은 일광욕이 되길 바라네 형제여!"

"응! 데려다줘서 고마워 아말감 전사!"


한참 후.

윌슨이 따뜻한 햇볕 아래 노래하는 가운데, 여전히 미역처럼 해변에 널브러져 있는 불사의 현자는 훌쩍이면서 중얼거렸다.


"끄으으으으으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됐던 건데······!"

"힘내! 다음엔 잘 될 거야!"

"그렇게 말할 거면 아말감이 되어서라도 도와줘 봐!"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윌슨은 해맑게 답했다.


"무리! 수은 셰이프는 정말 희귀해. 수은 셰이프가 없으면 아말감이 될 수 없어."

"그 아말감하고 만난 난 뭔데?"

"음······. 운이 엄청 좋은 거 아닐까?"

"으아아아아앙!“

”현자는 정말 운이 좋은 친구구나! 너 같은 친구를 둬서 난 정말 기뻐!“


악의 하나 없는 순수한 말이 현자의 속을 잔인하게 후벼팠다.

어떻게 죽어도 5분 정도면 부활하는 그였지만, 말에 난도질당한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 걸까.

불사의 현자는 다음 날 아침까지 해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작가의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광물 인간의 세계.

과연 불사의 현자가 섬을 탈출할 날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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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199. 현자와 용사와 기사 +1 23.09.20 24 1 26쪽
223 198. 판타지 사상 가장 오래된 궁극의 질문 +1 23.08.19 32 1 10쪽
222 197. 금도끼 은도끼 +1 23.08.17 29 1 3쪽
221 196. 불새 23.08.16 33 1 2쪽
220 195. 박힌 돌 +1 23.08.16 27 0 4쪽
219 194. 초전도 Ai 마왕 +1 23.08.09 28 0 6쪽
218 193. 마왕 3 +1 23.08.08 27 0 7쪽
217 192. 퇴마소녀 2 +1 23.08.04 25 1 5쪽
216 191. 초전도맨 +1 23.08.03 24 1 3쪽
215 190. 노랫소리가 멎는 날에 +1 23.08.02 24 0 4쪽
214 189. 닥터피시 +1 23.07.29 27 0 3쪽
213 188. 뱁새와 황새 23.07.23 60 2 3쪽
212 187. 꿈 +1 23.07.22 29 2 3쪽
211 186. 드래곤의 벌레 퇴치 23.07.21 22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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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183. 호밀밭의 저격수 23.07.17 27 1 3쪽
207 182. 다큐멘터리 4: 꿈의 세계의 서큐버스 +1 23.07.16 28 1 6쪽
206 181. 힘을 숨긴 헤어스타일 +1 23.07.15 25 1 3쪽
205 180. 누구나 아는 동화 +1 23.07.14 28 2 6쪽
204 179. 사천왕 2 +1 23.07.09 33 2 9쪽
203 178. 하얀 털의 유니콘 23.07.08 25 2 7쪽
202 114. 말 23.07.08 96 1 7쪽
201 177. 서큐버스 23.07.07 38 1 7쪽
200 176. 현자 표류기 3 +1 23.07.06 28 2 4쪽
199 175. 성녀 3 +1 23.07.05 28 2 5쪽
198 174. 수술 23.07.04 28 2 3쪽
197 173. 흡혈귀 3 23.07.03 33 1 6쪽
196 172. 사천왕 +1 23.07.02 30 1 9쪽
» 171. 현자 표류기 2 23.07.01 27 2 9쪽
194 170. 호위 +1 23.06.30 30 2 4쪽
193 169. 도시지기 2 / 빵타지아 +1 23.06.29 41 2 5쪽
192 168. 다큐멘터리 3: 기사돼지 +1 23.06.28 32 2 5쪽
191 167. 사제폭탄 23.06.27 45 1 3쪽
190 166. 꿀잠의 던전 23.06.26 30 1 6쪽
189 165. 암살 2: 멧돼지 암살자의 공포 23.06.25 3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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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160. 소환 2 23.06.19 29 2 5쪽
183 159. 현자 표류기 23.06.18 34 1 7쪽
182 158. 마녀를 물에 계속 던져라 23.06.17 49 2 2쪽
181 157. 전생자 5 23.06.16 39 2 9쪽
180 156. 갈색 털의 그리폰 +1 23.06.15 3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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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53. 성녀 23.06.13 32 2 6쪽
176 152. 천하제일검 +1 23.06.13 37 2 4쪽
175 151. 흡혈귀 2 23.06.12 29 2 4쪽
174 150. 미팅 2 23.06.12 29 1 5쪽
173 149. 미팅 23.06.11 33 1 3쪽
172 148. 여우와 두루미 23.06.11 55 2 5쪽
171 147.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1 23.06.10 38 2 10쪽
170 146. 마녀를 물에 또 던져라 23.06.09 28 2 4쪽
169 145. 인어와 청년 23.06.09 26 2 5쪽
168 144. 귀신의 집 23.06.09 30 1 7쪽
167 143. 마왕 2 23.06.08 26 1 8쪽
166 142. 완벽한 은하냉면을 만드는 방법 23.06.08 35 2 6쪽
165 141. 북풍과 태양 2 23.06.08 32 1 4쪽
164 140. 인어공주 세 자매 +1 23.06.07 33 1 6쪽
163 139. 숲의 친구 +1 23.06.06 35 2 12쪽
162 138. 사이비에게 어울리는 것 23.06.05 31 2 7쪽
161 137. Ai 2 23.06.04 32 1 6쪽
160 136. 별 23.06.04 33 2 4쪽
159 135. 다큐멘터리 2: 사얼거민 +1 23.06.03 36 1 5쪽
158 134. 사막 2 +1 23.06.03 35 1 6쪽
157 133. 사막 +1 23.06.02 32 2 4쪽
156 132. 광부 23.06.02 26 1 5쪽
155 131. 굴러온 돌 23.05.31 27 2 4쪽
154 130. 고문 23.05.31 29 1 7쪽
153 129. 북풍과 태양 23.05.31 30 2 2쪽
152 128. 강도 2 23.05.30 38 2 3쪽
151 127. 흡혈귀 23.05.30 39 2 4쪽
150 126. 애니메이션에서 흔한 23.05.29 37 1 3쪽
149 125. 마녀와 빗자루 +1 23.05.29 43 1 6쪽
148 124. 각오 X 결의 +1 23.05.27 48 2 8쪽
147 123. 1억 년 버튼 23.05.26 40 1 5쪽
146 122. 209℃ 와플 오디세이 23.05.25 77 2 4쪽
145 121. 안경 23.05.24 34 1 3쪽
144 120. 물음 23.05.24 40 2 4쪽
143 119. 뱀 23.05.23 52 1 2쪽
142 118. Ai 23.05.23 33 2 5쪽
141 117. 약 23.05.22 37 2 3쪽
140 116. 소환 23.05.21 37 2 7쪽
139 115. 뱃사람의 지혜 +1 23.05.21 55 1 5쪽
138 113. 전생자 4 23.05.20 75 2 4쪽
137 112. 과자의 집 +1 23.05.19 37 2 3쪽
136 111. 늑대와 양 23.05.19 68 2 4쪽
135 110. 산중 호걸 23.05.18 36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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