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호밀밭의 저격수
뭐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애들은 다른 동네 파수꾼이 알아서 잡겠지. 그것도 못 하면 치안 조직 같은 건 예산만 잡아먹는 돼지잖아.
호밀밭의 저격수로 고용된 그는 오래된 책을 냄비 받침으로 되돌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책에 어떤 좋은 구절이 적혀있던 그의 일은 변하지 않았다. 작가가 문장 한 줄 쓰는 것보다 세상이 느리게 변하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고용주는 그에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호밀밭을 지킬 것을 주문했으며, 그에게 주어진 의뢰비는 윤리관을 마비시키기엔 충분한 액수였다.
"끝도 없이 오는구만. 망할 새끼들."
탕.
총성이 울리고 수초 뒤에 비명이 돌아왔다. 저격수의 탄환이 밀수업자의 팔에 명중한 것이다.
탕.
이번엔 호밀밭에서 밀회를 가지던 커플의 발치에 경고사격을 날렸다. 흙이 튀고 짧은 비명이 울렸지만, 스코프 너머의 남녀는 호밀밭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용기는 가상했다. 사랑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된다는 신앙심을 가진 부류가 보일 태도였다.
그래서 호밀밭의 저격수는 두 사람의 심장을 한 발의 탄환으로 이어주기로 했다.
탄환은 단숨에 연인을 엮었고, 두 사람은 포개어진 채 영원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경고사격은 했다고."
"그, 그래도 죽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짜장면 배달부가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족족 죽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조언하자 호밀밭의 저격수는 땅에 침을 뱉으며 답했다.
"지랄 마쇼. 여기 사유지야. 들어오면 죽인다고 경고도 붙였고."
" "
"순수고 촉법이고 나발이고 남이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문은 물론이고 철책까지 쳐 놓은 땅에 멋대로 들어왔으면 호되게 당할 각오는 해야지. 안 그렇수?"
"그, 그래도 애들은 봐주는 게······."
"봐줘? 뭐, 그렇게는 해야지."
"휴우······."
"일단 스코프를 봐야 뭐가 보이니까."
"엣."
"난 어디 사는 전설적인 저격수는 아니거든."
탕.
저격수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철책을 넘어온 마약 운반책의 다리를 쏘고 난 뒤에 마저 답했다.
"난 용병이야. 돈을 주는 쪽이 시킨 일을 하지. 방침이 꼬우면 땅주인 한테 가서 따져. 나한테 시비 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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