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천하제일검
판타지 세계 최고의 검사를 목표로 여행하던 그는 과거 기둥왕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최강의 검사가 시골 영지 아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로 했던 최강의 검사는 휴일을 맞아 강가에 낚싯줄을 드리운 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내는 검을 뽑아 최강의 검사에게 겨누며 살기를 쏘아냈다.
"당신이 그 유명한 최강의 검사, 브류인가?"
상대가 조금은 긴장하길 바랐지만,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그뿐이랴, 답변도 기대에서 벗어나 있었다.
"지금은 ‘하지도 않은 불륜 때문에 아내에게서 쫓겨난 정육점 일꾼’ 브류라고 불리고 있지."
"어······. 그건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댁 잘못도 있지 않아?"
"글쎄다. 같이 여행하던 도적놈이 부활 부작용으로 여자가 되었다는 걸 설명할 재주가 없어서."
"그건······. 으음, 재난이었네. 아니 근데. 그러면 그 동료였던 사람을 끌고 와서 해명하면 됐던 거 아닌가?"
"그놈이 다른 전투에서 존재째로 소멸한지라 그만."
"으, 으음. 과연 천하제일검은 경험도 남다르군."
"남다르기는. 남들보다 재능이 좀 있는 쓰레기였을 뿐이야."
"그건 겸허야 자랑이야······?"
"주변 사람들이 하던 평가를 인용했을 뿐이야."
"그래? 그렇다면 그건 꽤 정확한 평가일······. 아니 야 잠깐! 아까부터 계속 살기 보내고 있잖아! 반응 좀 하라고. 왜 자꾸 딴소리야!"
"음? 그런 걸 하고 있었나? 나는 표정을 하도 찡그리길래 똥이 급한 줄 알았는데."
"크윽, 지독한 모독이다!"
"이해해주게. 예전부터 살기에는 영 둔감해서."
"이제 됐다. 너도 검사라면 명예와 자존심 정도는 있겠지. 검을 뽑아라! 누가 더 뛰어난 검사인지 논하자!"
"논술을 옛날부터 특기가 아니었는데······."
"아 씨. 말 드럽게 돌려대네! 야! 싸우자고!"
"그거야 상관없지만, 하나 조언해도 괜찮겠나?"
"헷, 싸우는 건 은근슬쩍 피하려 하면서 훈계질은 하고 싶으신가?"
"훈계라면 훈계겠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인데······."
스릉. 철컥.
천하제일검, 브류는 언제 꺼냈는지 감도 안 잡히는 검을 검집으로 되돌리며 말했다.
"검사라면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기 검을 휘두르도록 해. 마음이 흔들리면 검의 궤적도 힘을 잃을 거야."
"지금······. 검을 뽑았던 거야?"
아니, 허세겠지. 분명 그럴싸한 연출일 거야.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도저히 검이 닿을 수 없는 거리고, 다치지도 않았다.
논리적으로는 그렇지만, 어째선지 직감은 이미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기분이 너무나 꺼림칙했고, 사내는 영문 모를 패배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 그리고 검은 뽑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쉬는 날에는 낚시에 전념하고 싶거든."
"그렇게 말한다고 안 뽑을 거면 검사라고 칭하고 다니지도 않을 거다!"
사내는 호쾌하게 외치며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윽고 크게 휘둘렀을 때, 브류는 그를 흘끔 본 후 피식 웃었다.
"고맙군. 괜한 칼부림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어? 어어? 어라?"
사내는 뒤늦게 감사를 보낸 까닭을 이해했다.
손잡이의 연장선에 칼날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검신은 깔끔하게 잘려서 검집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세계 최고의 검사. 천하제일검이라 불린 브류가 검격이 닿지도 않을 위치에서 사내의 검을 정확히 잘라낸 걸까?
브류는 굳이 긍정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태평한 마음으로 수면에 떠 있는 낚시찌를 바라보며, 언젠가 인류왕국의 수도에서 들었던 멜로디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 작가의말
갑자기 작중 시간대에서 전작 주인공 동료의 근황을 쓰고 싶어진 김에 써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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