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인어공주 세 자매
광대한 해양지각을 자신의 영토로 삼는 하이크라켄.
해저에 박힌 채 해류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따개비투성이의 거대 촉수를 랜드마크로 삼는 산호 왕국에서 그는 바다신이라 불렸다.
그리고 바다신에게는 하이크라켄의 신체적 특징을 하나도 이어받지 않은 세 명의 인어공주가 있었다.
마법과 오컬트 연구에 재능이 있던 첫째 공주는 육지에서 연애에 실패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연구한 분야에서는 대성공을 거뒀다.
지상의 사람들은 그녀가 고백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바다에 돌아가 물거품이 되었다며 슬픈 동화를 만들었으나,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
바닷속 주민들은 알고 있다.
지상에서 차이고 바다로 돌아와 홧김에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퍼마신 그녀가 마법을 잘못 다뤄서 공기의 정령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말이다.
공기는 하늘에 더 어울리기에 그녀는 바다에서 떠났지만, 명절에 귀성할 때마다 바다에 막대한 물거품을 일으켰다.
바다 주민들의 솔직한 증언에 따르면 바닷물 속 산소 농도가 극단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민폐라고 한다.
둘째 공주는 머리가 좋은 첫째 공주와 대조적인 방면으로 머리가 강했다. 지식 말고. 물리적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몸단장보다 몸 단련을 좋아하는 철저한 육체파였다.
그녀도 해산물보다는 육지의 사람에게 연심을 느꼈지만, 마법 실력이 영 시원찮은 탓에 육지에서 걷기 위한 다리를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소녀심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려는 바보처럼 포기를 모르는 법.
주먹으로 마녀를 협박해 목소리를 주는 대신 사람의 다리를 얻은 그녀는 뭍으로 올라가 그토록 원하던 순수왕국의 왕자를 만났다.
그녀가 사랑을 전하는데 성대를 울리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
둘째 인어공주도, 순수왕국의 왕자도 무투파.
주먹이라는 이름의 육체언어로 뜨거운 펀치 라인을 교환한 두 사람은 단 한 줄의 대사도 없이 결혼에 성공한다.
한편, 다른 두 공주와 달리 유독 피부가 검은 셋째 인어공주는 아직 사랑을 알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가정교사를 겸하는 유모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저기 유모, 나는 왜 다른 언니들하고 달리 피부가 검은색이야?"
사람이라면 적당한 거짓말을 섞어 순수한 동심이 현실에 때 묻는 걸 조금이라도 늦췄으리라.
하지만 유모는 백상아리.
혈기 넘치던 시절에는 너무 흉포한 나머지 뭍의 어부들에게 '턱'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던 잔인한 싸움꾼.
바다신의 혈족에게 예를 표할지언정, 그 말과 행동에 거짓이나 후진은 없다.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노빠꾸였다.
"그건 세 분의 공주님들 어머님이 전부 다른 분이시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세 번 다 정식 연애가 아니라 불륜이었죠."
"와. 그럼 아빠는 엄마가 셋이나 있는 거야? 아빠는 엄마가 셋이라 좋겠다!"
"그 경우엔 엄마가 셋이 아니라 아내라 셋이라고 하는 거랍니다."
공주에게 정확한 표현을 알려준 후, 유모는 한 가지 더 정정했다.
"그리고 바다신 님의 경우엔 아내가 모두 2천 하고도 서른 여섯 분이랍니다. 저도 포함해서요."
"어라. 그러면 유모도 엄마인 거야?"
"후후후. 바다의 족보는 육지보다 물렁하니까 편할 대로 생각하셔도 된답니다."
"그렇구나아아아아아. 그럼 있잖아 유모."
셋째 인어공주는 옆에서 해파리를 씹으며 놀고 있던 자신의 324번째 동생인 옥토샤크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비와 모친의 영향이 반반씩 나타난 이 해저 생물의 상체는 백상아리였고, 하체는 문어였다.
"왜 나는 다른 언니하고 다르게 피부가 까만색이야?"
"그건 바다신님이 우리의 영향권 안에 있는 대륙이 아니라 더 먼 대륙에 사는 인간 여성과 교미를 해서랍니다."
"얼마나 멀리?"
"아아아주 멀리요."
"아빠는 탐험가이기도 했구나!"
유모는 지느러미로 눈가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용기보다 만용이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군요."
"그런데 유모, 우리 남매는 1만 하고도 2천이 넘잖아?"
"으음. 8천을 지날 무렵부터는 헤아리는 걸 포기해서 잘 모르겠네요."
"육지인하고 비슷하게 생긴 인어는 왜 셋뿐이야?"
"아아, 그거라면 쉽답니다 공주님."
유모는 산호빌딩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 촉수를 가리켰다.
"저 거대 촉수가 보이시죠?"
"응!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거대 촉수잖아? 어디서든 잘 보이니까 애들하고 약속장소로 자주 쓰는걸."
"저게 바로 바다신님이 아이를 만들 때 쓰는 세 번째 촉수랍니다."
이해를 못 한 셋째 공주가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유모는 백상아리 특유의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무리 물족보라 해도 족보가 너무 난장판이 된다는 의견이 부인회의에서 나왔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빨로 잘라 끊고, 첫째 인어공주님이 부패하지 않도록 땅에 심은 채 마법으로 봉인했답니다."
"대단해! 그러면 첫째 인어 언니하고 유모는 아빠보다 강한 거네?"
"힘으로는 못 당해내지만 우선 이론으로 깔아뭉개서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게 압박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싸움은 힘이 강한 쪽이 이기지만, 전쟁은 명분이 강한 쪽이 이기지요."
"엄마들은 아빠하고 전쟁한 거야?"
"명심하세요. 공주님. 사랑은 전쟁이랍니다."
"사랑은 전쟁이구나아아아아."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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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부터 해서 인어공주 이야기를 새드엔딩, 근육엔딩, 열린엔딩 버전으로 준비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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