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정말 불쾌하네요! 제가 범인이라면 체포라도 할 생각이신가요? 못하겠죠? 못 할 거랍니다! 단순한 심증만으로는 저를 체포하지 못할 것이어요! 이 나라의 법이 그러니까!"
귀족 영애가 악을 쓰자 112 치안 기사단 형사과에서 파견된 기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치안단은 인류왕국에 속한 1만 명의 기사와 300개의 기사단 중 최대급의 규모와 세 번째로 강한 공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함부로 체포할 수도 없었다.
특히나 범인이 귀족 영애로 좁혀졌다면 용의자로서 구속하기 전에 상당히 강력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했다.
피해자는 개인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게 낙이던 미술 영애.
목이 절단된 채 발견되었을 때는 사후 8시간이 지난 걸로 추정되었다.
비교적 깔끔한 단면은 상당한 수준의 힘과 기술로 절단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곤란했다. 상대를 무저항으로 만들어 놓고 충분히 무거운 도끼를 써서 내리쳤다면 연약한 귀족 영애라도 가능한 일이나, 전제조건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게다가 도끼를 다뤄본 적도 없을 영애가 도끼를 들어 목을 정확히 맞추려면 실력이 아니라 운이 필요했을 터다.
게다가 현장 자체도 영애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까다로운 형태였다.
살해 현장에는 미술 영애의 시신을 중심으로 페인트가 결계처럼 뿌려져 있었다.
페인트에 발자국이 찍혀있었다면 족적으로 범인을 좁혔겠지만, 페인트가 뿌려진 곳에 발자국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또한 페인트는 누가 봐도 안에서 밖으로 뿌려진 형태. 피해자를 살해하고 현장을 이런 형태로 만들었다면, 심지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면 범인은 시신과 함께 공방에 고립되었을 터였다.
페인트의 강을 건너서 현장을 벗어난 게 아니라면, 하늘이라도 날았다는 걸까?
물론 이 공방에도 창문은 있다.
문제는 그 창문이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고, 근처에 사물을 움직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있다고 해봤자 구석에 균열이 조금 있는 정도였으나, 이런 균열을 붙잡고 창문까지 오르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차라리 범인이 마법을 써서 날았다면 사건은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마법은 만능이나, 마법을 수사하는 마법도 따로 있으니까.
게다가 아이보다 무거운 질량을 가진 물체에 부유 마법을 걸려면 술식이 복잡해진다. 사전에 정련한 마력 초끈과 마법진이 필수로 요구되며, 두 가지 다 명확한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마력감식반에서 마법사용이 확인되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만약에.
목이 잘린 미술 영애의 시신을 발판 삼아 창문에 올라갔다면?
'아니. 그게 말이 될 리가.'
기사는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스스로 부정하며 조소를 흘렸다.
확실히 사후경직이 일어났다면 발판처럼 쓸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이 경우엔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전신에 접착제라도 바르고 죽은 게 아니고서야 경직된 시신이 이상적인 발판이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영애는 서커스의 예인 수준의 균형감각이 있는 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걸 입증할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인가."
"안됐네요. 그러면 기사님. 저는 이만 가봐도 될까요? 친구를 잃어서 너무 슬프네요."
영애는 말발굽을 연상시키는 발소리를 내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기사는 대놓고 화를 내는 건 기품이 없어서 스커트에 가려진 다리로 짜증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 붙잡을 이유가 부족하고 계급 차이까지 있다. 겉만 보면 항의는 정당하다.
"아뇨."
그러나 형사과에서 쌓아온 감이 기사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그녀를 이곳에 잡아둬야 한다고 말이다.
기사는 공방에서 나가려던 영애의 팔을 강하게 붙들었다. 깜짝 놀라서 팔이 일시적으로 굳어졌던 걸까. 그녀의 팔은 기사의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다. 마치 대리석을 쥔 듯한 감각이 손을 통해 전해졌다.
"뭔가요?"
"조금 더 계셔주셔야겠습니다."
"어째서죠? 제가 여기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겠어요? 입증하실 수 있으신가요? 자신의 경력과 기사의 명예를 걸고?"
단적으로 답하자면, 불가능하다. 그의 추리력으로는 그녀의 트릭을 입증할 능력이 부족했다.
"저라면 무리겠죠."
"하! 그럴 줄 알았사와요."
"하지만 미궁에는 미궁의 프로가 있는 법이죠."
"뭐라고요?"
***
잠시 후, 기사가 말한 '미궁의 프로'가 도착했다.
3미터가 넘고, 오우거와 씨름도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덩치. 폭이 넉넉한 트렌치코트로도 숨길 수 없는 근육이 위협적인 윤곽선을 그려낸다.
머리는 소와 같고, 한 쌍의 우람한 뿔이 위로 솟아 있어서 몹시 위협적이다.
미궁의 프로. 그 정체는 아인 계통의 반인반우 수인종.
사립탐정으로 일하는 미노타우로스였다.
수사 과정과 정보를 모두 전해 들은 미노타우로스는 불같은 콧김을 뿜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회색빛 미궁 세포는 사소한 정보에서도 사건 해결에 필요한 단서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렇군. 미궁의 실은 이미 내 손에 쥐어졌다."
결정적 대사를 입에 올린 뒤, 미노타우로스 탐정은 영애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요청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요청드립니다만, 영애님. 잠시 스커트를 들어 올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무, 무슨! 당신!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잖아요? 아니면 뭔가요? 내 발바닥에 페인트라도 묻었을까봐?"
"쿠후후. 특이한 농담이시군요. 영애님의 다리에 페인트가 묻으셨을 리가 없잖습니까."
"당연한 것이어요! 페인트 위에 발자국도 없는데 제가 이 위를 걸었다는 건 정말이지 멍청한 추리네요!"
"그야, 우제류(偶蹄類. 짝수 발굽을 가진 포유류의 총칭) 특유의 역관절을 연상시키는 다리 구조를 가지신 영애님의 각력과 탄력이라면 이정도는 간단히 뛰어넘으실 테니까요."
"무. 무. 무. 무. 무슨······!“
"그만한 힘이 있다면 목을 쳐내는 것도 쉬우셨을 테고.“
다그닥.
좀 전에 기사가 화풀이라고 '착각'했던 발소리가 다시금 공방 안에 울려 퍼졌다.
"조금 돈을 들인 신발과 약간의 노력이면 소리를 줄일 수는 있지만."
미노타우로스는 왼 다리를 든 채 발굽을 까닥이며 말을 이었다.
"레이디. 암살자가 아니고서는 같은 타입의 다리 끼리는 발소리를 속이기 어렵답니다."
"웃기지마! 이 뿔달린 짐승이!"
"스커트를 들추는 게 그렇게까지 싫으시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여기사를 불러서 머리카락 안쪽을 확인하도록 하죠."
" "
"동성이면 성희롱 의혹도 없이 정당한 수사가 됩니다만? 그리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인종. 그것도 뿔이 있는 수인 계통은 뿔이 웃음거리가 되어서 뿔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 하지만! 하지만! 나는 저 페인트 위를 뛰어넘지 않았어! 나는 결백해!"
"묘할 정도로 페인트 위를 넘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시는군요."
"윽······!"
어떻게든 논점을 흐리려는 영애였으나, 수많은 미궁을 경험한 탐정은 출구로 이어지는 실의 궤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애님이 페인트 강 위를 넘지 않으셨다는 전제하에······."
미궁 탐정 미노타우로스는 페인트 위를 지나 창가 근처의 벽을 조사하더니, 구석의 균열에 큼직한 손가락을 얹으며 물었다.
"그 균열을 어떤 수인의 족적이라 판단하고 치안단의 형사님께 감식을 의뢰해도 되겠습니까?"
"그, 그건······!"
"그게 단순히 벽에 간 금이 아니었다고?"
화들짝 놀란 기사는 뒤에서 대기 중이던 감식반에게 서둘러 발자국의 탁본을 확보하라고 고함쳤다.
동시에 그는 입구로 달려 나갔다. 사색이 된 영애가 도망치려는 걸 간파하고 퇴로를 끊은 것이다.
"영애님. 이 시점에서 도망치면 죄목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걸 원하십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자포자기한 영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저앉았다. 풀어져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는 뿌리 바로 앞까지 잘린 뿔이 드러났다.
"저 녀석이 먼저 모독했어. 짐승의 딸이라고 무시했단 말이야! 나는 나쁘지 않아! 원해서 수인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뭐가 나빠!"
"···현 시간부로 영애님을 구속. 치안단 본부로 연행하겠습니다. 자네들. 움직이도록. 최대한 정중하게 대해드려라."
"나는 나쁘지 않아! 지난 시대의 찌꺼기를 지웠을 뿐이야!"
"아니요 영애님. 당신은 쓰레기나 찌든 때를 지운 게 아닙니다."
담담하게. 냉정하게.
형사과의 기사는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했다.
"당신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만이 여기에 남은 사실입니다."
***
영애의 연행을 다른 기사에게 인계한 후, 그는 공방 앞에서 권련을 태우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옆에 섰다.
"한대 빌려도 되겠나?"
"지금은 인간용 권련은 안 가지고 있는데."
"상관없어. 그냥 태우고 싶은 기분이니까."
"부싯돌도 필요하나?"
"됐어. 이 갑옷 기동단에서 만들어진 거라서."
"아, 그 영웅이 설계한 갑옷인가."
손가락에 끼우기 다소 버거운 권련을 입에 문 채 손을 흔들자, 그의 검지 위로 작은 불꽃이 나타났다. 그걸로 권련에 불을 붙이고 다시 흔들자 불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트롤이나 미노타우로스, 오우거 같은 대형 아인종에 맞춰 제작된 권련이다. 조금 들이마셨을 뿐인데도 막대한 양의 연기가 폐를 휘젓다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사건을 해결해서 만족하지 않았나?"
"사건이야 해결했지. 사건이라면야."
"그런가."
그렇다면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느냐는 식상한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오래되고 깊은 하늘을 향해 두 줄기 담배 연기를 피워올렸다.
- 작가의말
사건 기본틀 자체는 잘린머리 사이클을 패러디 해봤습니다.
뭐, 당연히 풀이과정에는 변주를 넣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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