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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백만잔의 서재

슈퍼 멍청한 판타지 모음집 2 터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녹차백만잔
작품등록일 :
2022.12.11 22:06
최근연재일 :
2023.10.17 11:33
연재수 :
225 회
조회수 :
10,449
추천수 :
387
글자수 :
551,006

작성
23.05.31 09:40
조회
29
추천
1
글자
7쪽

130. 고문

DUMMY

홀로 마왕군의 야영지에 돌입했다가 실수로 잡힌 용사의 얼굴은 의외로 썩 어둡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개인행동을 추구했다. 때문에 정보는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어쨌든 국가의 지원을 받는 용사. 여러 의뢰를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러 정보를 접했고, 마왕군이 포로나 마왕성을 찾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았다.

마왕군에게 잡혔던 여기사는 방만 수감실이었을 뿐, 배급된 식사는 호화스럽다는 말이 붙을 정도로 고급이었다.

그뿐이랴. 마왕과 직접 대면한 용사는 마왕과 싸우는 대신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체류하다 금은보화를 받아 인류왕국으로 귀환했다.

전장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우지만 잡힌 상대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너그러운 게 마왕군의 방침.

지금까지의 문헌을 종합해 그 사실에 도달한 용사는 그때부터 한 번도 전력으로 싸우지 않았었다. 적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 정도로 기세를 올렸다간 포로가 되기 전에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대충 싸운 게 그가 붙잡힌 결정적인 원인이었지만, 적어도 포로가 된 것까지는 예상대로였다.


'이제 곧 푸짐한 식사를 받을 수 있겠지. 밥을 먹고 체력을 기르면서 탈출할 기회를 노리자.'


계획이 뒤틀린 건 잡힌 뒤부터였다.

그를 심문하기 위해 찾아온 인물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산의 현자라 불리는 오우거도 아니었고, 아인종 중 가장 흔하다는 오크도 아니었으며, 사람을 마시는 신을 섬기는 엘프도 아니었고, 짐승의 특징이 녹아있는 수인종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성을 가진 무기물인 광물 인간이나 알라우네 같은 유사 인간형 식물도 아니었다. 영체가 기반인 요괴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찾아온 것은 호밀빵.

제빵사의 불과 함께 살아가는 빵타지아에서 판타지 세계로 건너온 호밀빵 기사였다!


"이 뭔."

"반갑군. 인류왕국의 용사. 나는 마왕군 소속 호밀빵 기사. 슈나이저 바르츠켈렌 3세라고 하네."

"어째서 빵 이름이 그렇게 폼나는 건데."

"빵에 이름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아, 그렇군. 식빵을 하는 너희 종족은 이해하지 못하는 감성이겠어."

"아니아니. 식인 같은 어감으로 식빵을 말하지 말라고."

"그보다도 알려주지 않겠나. 최근 용사들의 움직임이 묘하다고 들었는데, 상부에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고 싶다더군."

"흥. 글쎄. 우선 상다리 휘어지게 밥 좀 먹고 생각하고 싶은데."

"흠. 정보 공개의 대가치고는 저렴하군."


여기까지다. 여기까지만 말했으면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용사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렇지. 간단한 요깃거리로 호밀빵과 고기 수프라도 가져오지 않겠어?"

"지금, 뭐라고 했지?"

"뭐라기는. 빵하고 수프 달라고. 빵은 사람에게 먹히는 게 당연한 거잖아."


빵을 상대로 하기엔 제법 좋은 농담거리 아닌가.

공기를 읽지 못한 용사가 그렇게 생각하며 실실 웃고 있을 때, 호밀 깊이 숨겨진 호밀빵 기사의 눈에 불같은 영맹한 기운이 일렁였다. 딱딱하고 거친 호밀빵 표면에 균열이 일고, 눈 같은 덧가루가 흩날렸다.

위기를 감지한 마왕군 병사들은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으나, 여전히 마왕군이 포로에게 상냥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던 용사는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봐! 이쪽은 배고프다고. 식사를 주지 않으면 아무 말도 안 하겠어!"

"그래. 먹을 거. 먹을 거 말이지. 알겠다.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지."


호밀빵 기사는 목소리를 낮게 깐 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생크림을 가져오도록."

"네? 하, 하지만 기사님. 그건 너무 비인도적인······."

"두 번 말해야 하는가?"

"히익."


여유만만인 용사와 달리, 병사는 알고 있다.

호밀빵 기사는 빵타지아 출신인 마왕군 중에서도 특히 거친 성격을 가진 빵.

가장 거칠고 투박한 빵은 곰보빵 전사라고 알려져 있으나, 호밀빵 기사 역시 이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이곳은 판타지 세계고, 빵타지아의 상식과는 다르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호밀빵 기사는 식빵을 목격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나, 요리 중 하나로 빵이 선택된 것까지는 받아들였었다.

빵타지아와 비교하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법칙과 섭리마저 달랐으니까. 이방인은 그들이었고, 침공 대신 공존을 바란 그들은 판타지 세계의 식문화를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존중이란 어디까지나 서로의 양보가 있을 때 싹트는 것.

일방적으로 무시당한 시점에서, 호밀빵 기사가 용사를 존중해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고지식할 정도로 격식을 중시하는 타입. 거칠어도 사나운 건 표면뿐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그는 상대의 무례에 상응하는 폭력 대신 용사가 요구한 '식사'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이윽고 생크림이 가득한 욕조가 도착하자, 호밀빵 기사는 엄지를 아래로 향하며 말했다.


"담가라."

"자, 잠깐! 진짜로 한다고? 고문을? 하지만 마왕군의 방침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원하지 않았나. 그리고 나는 고문을 해서라도 듣고 싶은 게 있지."


거기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쪽 기준이면 나는 한낱 빵에 불과한데. 먹거리에 말을 걸다니. 제법 소년소녀 같은 감성을 지녔군."

" "

"뭐하나 제군들. 세 번은 말하지 않겠다. 담가라."


호밀빵 기사의 기백에 눌린 병사들은 용사를 붙들고 '접대'를 시작했다.

머리를 붙들어 생크림 안으로. 욕조 바닥에 닿을 때까지. 깊숙하게.

마시면 혈당 급상승으로 인한 케톤산증으로, 마시지 않으면 질식으로 이어질 죽음의 접대였다.


"잠깐! 말할게! 말한다고! 용사들은 지금! 어풉! 찾고 있어! 아지랑이의! 우엑! 켈록! 평원에 있었던! 우읍!"

"기, 기사님. 뭔가 말하는데요?"

"제대로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용사를 붙든 병사들이 초조해져서 묻자, 호밀빵 기사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응했다.


"그래. 나도 들었다."

"그렇다면 생크림 고문은······."

"내 귀엔 이렇게 들리더군. 배가 고프니 생크림을 더 달라고."

"···네?"

"접대를 계속하도록. 포로께서 기다리고 있지 않나."

"네, 넷!"


그 뒤로도 용사는 비명을 질렀다. 생크림이 귀를 틀어막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도 구원을 간청했다.

그러나 호밀빵 기사는 인간이 만든 빵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토사물이 생크림 위에 토핑처럼 뿌려졌을 즈음, 딱 한 마디를 중얼거리듯 말했을 뿐이다.


"존중이. 사람을. 만든다."


호밀빵 기사는 마지막까지 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지성을 가진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오만한 용사에게 끝없는 생크림의 연쇄를 막을 힘 따위는 없었다.

훗날, 이 고문 사건은 마왕군 병사들의 입을 타고 전설이나 괴담처럼 다뤄졌다.

빵이든 적이든, 상대의 인격은 존중하는 편이 무조건 좋다는 교훈과 함께.


작가의말

빵을 존중하십시오.

다음에 ‘생크림’이 되는 건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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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196. 불새 23.08.16 33 1 2쪽
220 195. 박힌 돌 +1 23.08.16 27 0 4쪽
219 194. 초전도 Ai 마왕 +1 23.08.09 28 0 6쪽
218 193. 마왕 3 +1 23.08.08 27 0 7쪽
217 192. 퇴마소녀 2 +1 23.08.04 26 1 5쪽
216 191. 초전도맨 +1 23.08.03 25 1 3쪽
215 190. 노랫소리가 멎는 날에 +1 23.08.02 25 0 4쪽
214 189. 닥터피시 +1 23.07.29 27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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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187. 꿈 +1 23.07.22 29 2 3쪽
211 186. 드래곤의 벌레 퇴치 23.07.21 23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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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182. 다큐멘터리 4: 꿈의 세계의 서큐버스 +1 23.07.16 29 1 6쪽
206 181. 힘을 숨긴 헤어스타일 +1 23.07.15 25 1 3쪽
205 180. 누구나 아는 동화 +1 23.07.14 28 2 6쪽
204 179. 사천왕 2 +1 23.07.09 3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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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172. 사천왕 +1 23.07.02 30 1 9쪽
195 171. 현자 표류기 2 23.07.01 27 2 9쪽
194 170. 호위 +1 23.06.30 31 2 4쪽
193 169. 도시지기 2 / 빵타지아 +1 23.06.29 41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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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148. 여우와 두루미 23.06.11 55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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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145. 인어와 청년 23.06.09 26 2 5쪽
168 144. 귀신의 집 23.06.09 30 1 7쪽
167 143. 마왕 2 23.06.08 27 1 8쪽
166 142. 완벽한 은하냉면을 만드는 방법 23.06.08 35 2 6쪽
165 141. 북풍과 태양 2 23.06.08 32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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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139. 숲의 친구 +1 23.06.06 35 2 12쪽
162 138. 사이비에게 어울리는 것 23.06.05 31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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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36. 별 23.06.04 33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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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34. 사막 2 +1 23.06.03 35 1 6쪽
157 133. 사막 +1 23.06.02 32 2 4쪽
156 132. 광부 23.06.02 26 1 5쪽
155 131. 굴러온 돌 23.05.31 28 2 4쪽
» 130. 고문 23.05.31 30 1 7쪽
153 129. 북풍과 태양 23.05.31 31 2 2쪽
152 128. 강도 2 23.05.30 38 2 3쪽
151 127. 흡혈귀 23.05.30 39 2 4쪽
150 126. 애니메이션에서 흔한 23.05.29 38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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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24. 각오 X 결의 +1 23.05.27 49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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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120. 물음 23.05.24 41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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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116. 소환 23.05.21 37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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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13. 전생자 4 23.05.20 75 2 4쪽
137 112. 과자의 집 +1 23.05.19 38 2 3쪽
136 111. 늑대와 양 23.05.19 69 2 4쪽
135 110. 산중 호걸 23.05.18 37 2 4쪽
134 109. 게임 판타지이기에 +1 23.05.18 2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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